슬픈 배웅

by 초동급부
삼철에게...

충주에서 서울을 3번 올라오면서 제일 일찍 온 날인 거 같다.
10시에 집에 도착했거든. 많이 허전하고 쓸쓸해. 가끔씩 나와서 보는 네가 내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때론 좋지만 오늘 같은 날은 참 힘들어.

저녁까지는 아니더라도 따뜻한 커피 한 잔이라도 마시면서 같이 앉아 있고 싶었는데 커피는커녕 오히려 내가 널 더 힘들게 한 거 같다. 고참의 매서운 눈초리를 나도 느낄 수 있었는데 넌 오죽했겠어. 많이 미안하더라 괜히 나 땜에 기지버스도 놓쳐버리고 따가운 눈총에... 부대에 들어가면서 혼나지는 않았어? 아무런 갈굼 없이 잘 갔는지 궁금해서 그래. 나 역시 잘 와서 이렇게 네게 편지 쓰고 있잖아. 점심을 많이 먹은 탓에 배가 고픈 줄도 모르겠고 그냥 대충 씻고 제일 먼저 네 생각하면서 편지 쓰고 있지. 어릴 때 네 사진 보면서 도저히 지금의 네 모습과 연결시켜 볼려고 해도 이미지가 너무 틀린 바람에 다른 사람 사진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야.

나 솔직히 많이 걱정했었어. 5개월 후에나 나온다는 너의 말에 난 어떤 희망으로 살아야 하나 싶어서 말야. 근데 1월 중순쯤에 잠깐 나올지도 모른다는 네 말에 한가닥 희망이라도 생겼으니 다행이야. 꼭 나오면 좋겠다. 하루가 될지 이틀이 될지 모르지만...

삼철아. 아까 충주 터미널에서 7:30 차를 끊고 너 먼저 갔었지. 너 가는 뒷모습 차마 바라볼 용기가 없어서 애써 외면하려 했던 내 모습 알 수 있었니? 차표를 끊고 택시들이 서 있는 쪽을 보니까 니 얼굴이 보이더라. 기쁜 마음에 얼른 달려갔는데 어느새 너는 없더라. 부대를 간 건지 근처에 어딜 들른 건지 차 시간이 다 되도록 헤매어 봤지만 널 찾을 수 없었어. 허탈함에 기운이 쭉 빠지드라구. 택시 타고 가는 뒤꽁무니라도 봤으면 좋았을 걸...

여전히 바보같이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눈물을 감출 수가 없더라.
이럴 땐 눈물 많은 게 참 싫어. 나도 남들처럼 웃으면서 배웅해 주면 좋을 텐데 떠나는 사람 발걸음도 무겁게 왜 질질 짜고 그러는지...

너 제대하고 나면 난 아마 그 충주란 곳에 발걸음도 하기 싫을 거 같애. 아픈 추억만 있는 곳이잖아. 널 그곳에 혼자 두고 올라오던 일, 면회가 끝나고 그 허전함으로 대합실에 않자 울면서 네가 쓴 편지를 보던 일, 충주 싫다 정말.

삼철아, 다음 보는 그날까지 항상 건강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군 생활 해.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편지 쓰는 일 밖에 없다는 게... 미안해. 면회도 자주 가고 그래야 할텐데...

1998. 12. 30.

P. S. 경황이 없어서 새해 인사두 못했어.
새해 복 많이 받구. 앞으로도 항상 건강하고. 용기 잃지 마.
벌써 너 보고 싶어서 나 어쩌니?


애매한 특박 날짜로 인해 토라져, 잘 나왔다 들어가라고 했던 그녀가 또 충주까지 배웅을 와 주었다.

송년회가 끝난 늦은 밤에 집 앞으로 찾아왔고 다음 날도 만났다. 우려와 달리 우리는 3일 내내 얼굴 보고 손 잡을 수 있었다.


고참의 매서운 눈초리에서 당시 광경이 언뜻 떠오른다.

내게 무언가를 사주려고 그녀가 약국에 간 사이 충주터미널에서 부대로 들어가는 기지버스가 떠나 버린 것이다. 함께 택시를 타고 복귀해야 했던 고참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새해를 맞는 인사는 물론 제대로 된 작별의 인사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택시정류장에서 나를 보고 달려갔는데 없었다는 내용에, 그때 그곳의 풍경과 그 시절 아내의 모습을 알고 그날 우리 두 사람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아는 나이기에, 혼자 헤매는 그녀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마음이 아프고 아프다.


주말 새벽에 주로 거실에서 글을 쓰는 나는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를 위해 가장 낮은 조명의 스위치를 켠다.

게다가 지독히 나쁜 눈에 노안까지 찾아와 아내의 편지를 타이핑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보고 또 보고 자주 안경을 벗고도 보아야 한다.


특박이 끝나는 날의 편지는 볼 때마다 눈가가 촉촉해진다.

오늘 편지는 유독 심하다.


이날의 편지, 앞으로도 또 있을 이런 날들의 편지에는 참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밀려오지만 능력이 부족해 모든 것들을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 여운이 손가락을 게으르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잘 거 다 자면서 부쩍 아침잠이 줄었다며 아직 오지 않은 갱년기를 걱정하는 이 날의 짠이가 잠시 후면 눈을 비비며 잠옷 차림으로 등장할 것이다. 모 드라마의 영향으로 한동안 걸핏하면 아내가 했던 말을 오늘은 내가 행동으로 옮겨 주고 싶다.



안아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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