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철
이제 98년두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정말로 아쉬워.
난 왠지 21c가 오는 게 싫거든. 그냥 내가 살고 있는 한은 계속 20c였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어디 막을 수 있는 건가 그게.
아까 이런 말을 들었어. '잊을 건 빨리 잊고 추억으로 간직할 건 추억으로 간직하고 98년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자구' 생각해 보니까 그게 제일 현명한 방법인 거 같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괴로워한들 아무런 것두 할 수 없을 텐데 뭐. 과거에 대해서는 말이야.
넌 좋겠다. 시간이 빨리 가야지만 얼른 제대할 테니깐. 그래두 앞으로 이번 말고 2번이나 새해를 더 맞이해야지만 제대할 수 있겠구나.
내일 1월 1일 이잖아. 형들이 너 면회 간다고 했었잖아.
근데 지금 벌써 7신데 아직 연락이 없는 걸. 너 충주 갈 때 차 안에서 그랬잖아. 작은형이 연락한다고 그랬다구. 어떻게 할까 생각했었어. 네가 물어봤을 때 내가 머뭇거렸던 건 가기 싫어서가 아니라, 형제들끼리 모이는데 내가 방해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선뜻 간다는 말을 못 하겠다라고. 그리구 내가 끼면 어색할 거 같기두 하고 해서 나중에 혼자 다녀오려고 생각했었는데 가만 보니까 새해잖아. 99년의 첫 시작인 날. 그날 너를 본다면 왠지 99년 한 해 동안 좋은 일만 있을 거 같아서 갈려구 했었는데 전화가 안 오네.
내가 해두 되겠지만 혹시 내가 가는 게 불편해서 안 하는 걸 수도 있잖아. 그래서 아직 모르겠다. 이 편지를 내일 너한테 직접 줄 수 있을지 아니면 그냥 우체통에 넣게 될지 말야. 보고 싶은데... 봤으면 좋겠는데... 내가 그냥 형한테 전화해 볼까? 아냐. 그래두 전화 준다고 하셨는데 좀 더 기다리면 오겠지 뭐. 너 잘 모르겠지만 내가 기다리는 거 잘 못하는데, 조바심이 나서 말야.
어제 서울 도착했는데 무지(x2) 춥더라. 이제 본격적인 겨울인가 봐. 어쩌지? 난 월동준비도 못했는데. 젤 중요한 월동준비. 옆구리가 허전하잖아. 썰렁했나 암튼.
에이 모르겠다. 만나서 이 편질 전해주던 아님 그냥 우표를 붙인 채 받게 되던 간에. 잘 지내구. 그래 그 말뿐이다. 한 살 더 먹는 거 축하해. 나두 축하하고. 그런 안녕.
1998. 12. 31.
P. S. 내일 볼 수 있길 바라며...
하루 전에 충주까지 나를 배웅하고 혼자 쓸쓸히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주간이나 힘들어하던 예전에 비해 많이 밝아져서 다행이다.
1월 1일 나의 면회를 위해 형들의 연락을 이토록 애타게 기다리며 쓴 이 편지는 결국 우표와 함께 소인이 선명하게 x2개 찍힌 채 내게로 배달되었다.
삼철에게..
12월 31일부터 내리 나흘을 쉰다. 지금, 아니 오늘이 벌써 3일째야.
쉬는 건 좋지만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하기만 한 거 있지. 그렇다고 회사 가는 게 좋을 린 없고 말야. 정초에 너한테 면회 갈려구 했었는데...
많이 섭섭했지? 나는 둘째치고 네가 많이 서운했을 거야.
형들이 며칠 전부터 간다고 얘기한 거니깐. 그치만 네 마음보다도 아마 형들이 훨씬 더 맘 아팠을 거야 . 작은형이 네 걱정 많이 하시더라구. 난 미처 생각 못했지만.
1월 중순께 나올지도 모른다고 했지. 이 편지 받고 나서 전화할 기회가 닿으면 언제 나오는지 얘기해 줄래? 물어본다는 게 깜빡했어. 경황도 없었구... 나오게 되든 못 나오게 되든 날짜는 알고 있어야지. 그래야 너 못 오게 되면 면회라두 가지. 근데 넌 나 면회 가는 거 별루 달갑지 않지? 네 입에서 면회 오라는 소릴 별로 못 들었다. 그치? 정말 그렇니? 그런 거야?
지금 오후 4시 좀 안 됐거든. 근데 아마 이따 저녁때 또 편지 쓸 거 같애. 벌써 우표만 붙여놓은 편지도 2통이나 되는데... 너무 많은 거 같다. 심심해 죽겠다. 그냥 나 혼자서라두 면회 갈걸 그랬나 봐...
짜식, 나흘이나 쉬는데 오늘이나 낼 들어가면 좀 좋아.
은경이는 이렇게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데. 넌 거기서 속도 참 편하겠다.
그래서 넌 역시 나쁜 애라는 거다. 바보야. 은경이 삐졌슴...
에이 그냥 잠이나 실컷 자야지. 방해하는 사람두 없는데... 뭐.
199. 1. 2.
아마도 형들은 사소한 사정이 생겼거나 막상 가려고 보니 귀찮아졌을 것이다.
난 그 인간들을 잘 안다... 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연락이라도 해 주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일 텐데...
오직 은경이만 애태우고 속상하고... 가장 서운했던 것이다.
그래도 나와 형들을 오히려 위로하고 다독이는 그녀이다. 이때는 마음씨가 참 고왔다. 이때는...
그녀의 말처럼 내가 면회를 먼저 오라고 하거나 왜 오지 않느냐고 타박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난 은경이를 안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그저 엄마 품처럼 포근했다. 정말 소중하고 가치 있는 무언가를 내 품에 가득 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하겠는가...
특박의 마지막인 배웅의 길 역시 힘들지만 적어도 절반은 함께이다.
면회는 혼자 왔다 혼자 가야 하는 더욱 외로운 길임을 나도 알고 있다. 달려 나가 애써 멀어지고 나서 손 흔들며 흘리는 눈물을 눈은 보지 못해도 가슴은 너무도 또렷하게 본다. 소중한 사람에게 다시 그 고독한 과정을 겪으라고 차마 요구할 수 없었다.
만난 지 만 14년이 되는 날 결혼을 했고 13년을 부부로 살고 있다.
27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 동안 많이 서운하기도 했고 밉기도 했다. 결혼 전에는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다.
그럴 때면 아내는 나를 두고 화낼 때는 불같고 냉정할 때는 얼음 같다고 한다.
불같고 얼음 같은 성격의 나도 연재를 이어가는 지금에는 그럴 때에도 이 일주일을 넘기지 못한다.
아~ 이놈에 편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