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철
어느새 크리스마스가 지났어. 넌 뭐 하고 지냈니?
난 얘기했다시피 친구들이랑 많은 얘길 나누며 그냥 그렇게 무덤덤하게 보냈어. 친구들과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싫은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이리 아파오는 걸까.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내가 딴생각을 많이 했나 봐. 친구들이 나보고 알다가도 모르는 애래. 양파 같다나... 근데 그 말이 듣기 좋진 않더라.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나도 모르게 했던 내 행동 내 말투들이 어쩜 나와 그렇게 거리를 두게 만들었을까. 신경 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나만 힘들고 나만 아파서 모든 걸 회피하고 무시하고 그렇게 지냈었나 봐.
애들이 그러더라. 내년엔 제발 만나지 말쟤.
각자 애인 하나씩 차서 내년엔 연인과 보내자나. 나쁜 것들... 하지만 모두들 조만간에 좋은 사람들을 만날 거 같애. 모두들 착하고 이쁘고 또 남을 배려하고 이해할 줄 아는 마음들을 가졌으니깐. 그러고 보면 나만 못됐다.
좋은 시 또는 좋은 글귀들을 적어 보내고 싶어서 내가 갖고 있는 것들 중 뭐 없을까 하고 뒤적여 봤는데 전부 사랑에 관한 것들이야. 난 그런 거 말고 그냥 들으면 마음 따뜻해지고 용기 얻을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원하는데 아마 좀 힘들 거 같애. 전부들 사랑하고 원수 졌나. 순 이별, 아픔, 고통, 해후, 사랑... 기타 등등. 노래도 거의가 그렇잖아.
내일모레 특박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정말 나오는 건지 모르겠어.
만약 나오게 되면 그래서 이 편질 부대가 아닌 서울에서 보게 된다면 잘 보내구 들어 가라구. 난 며칠 못 볼 거 같아 아쉽지만. 잘 됐네. 푹 쉬다가 또는 친구들도 만나고 좋은 시간 많이 보내라.
은경인 좀 아쉽긴 하지만 회사에서 하는 송년회라 빠질 수도 없고, 이래저래 아쉽다.
얼마 만에 나오는 건데, 그치? 부모님도 좋아하시겠네. 식구들도 그렇구.
내가 좀 이상하다. 횡설수설하고.
암튼 잘 지내다 들어가. 건강에 유의하고.
1998. 12. 26.
P. S. 올 겨울 많이 춥고 해서 걱정했는데 , 것두 아닌가 봐.
엘리뇨 하고 라니냐 하고 싸워서 엘리뇨가 이겼대. 그래서 아마
춥지 않은 건가 봐. 난 좋지만 말야.
토라진 듯한 이 편지의 봉투에는 우표도 소인도 없다.
특박 나와 직접 받은 편지이다. 나 또한 답장을 전했다.
이는 나의 세 번째 편지였다.
To. 은경.
이게 너한테 쓰는 세 번째 편지 인가 보다.
나 참 못됐지? 네게 받은 편지는 거의 100통이 다 돼 가는데... 나는 고작 3통 이라니...
바보야! 이런 못된 놈을 왜 좋아하니? 편지 자주 쓰지도 않지, 전화도 자주 안 하지, 약속시간 매일 늦지...
그래두 어제는 난 엄청 기분 좋더라.
그 어느 때보다 너랑 얘기 많이 한 거 같고 그리고 너와 더 많이 가까워진 것 같았거든.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너의 맘이 어떤지 조금은 알 수 있었고 부족하지만 나의 마음도 너에게 조금은 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어제 우리 그런 이야기했었지? 내가 처한 상황 때문에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리고 그 상황 때문에 네가 나에게 잘해 주는 것 같다고... 우리 서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었지? 우리 둘 다 너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서로가 서로를 더 많이 생각하고 좋아하면서 한 편으론 둘 다 어리석게도 같은 걸 걱정했잖아.
은경아! 어제도 말했지만 정말 아니야.
자신 있게 말하지만 내가 지금 군인이 아니었다면 너를 더 많이 생각하고 좋아하며 아마 훨씬 더 적극적으로 너에게 다가갔을 거야.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너에게 항상 미안하고 나 또한 많이 힘들어.
바보야! 왜 내 맘을 그렇게 몰라 주냐? 남 속도 모르는 이상한 소리만 하고...
나 제대할 때까지 네가 내 곁에만 있어 준다면 난 절대로 변하지 않아. 혹시 변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너를 좋아하는 너를 갖고 싶어 하는 남자로 변할 거야.
네가 그랬지? 그 약속 지켜달라고...
나는 지금까지 어떤 중요한 이유가 있는 줄 알았어. 그런데 지금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 생각이 잘 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나만 진실하면 그 따위 약속 따윈 깨끗이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은경아! 나 잘할게, 정말 잘할 거야.
그러니까 너도 나를 조금만 더 믿어 주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내가 자신하는 것처럼 너 또한 우리의 미래에 대해 좀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
알았지? 나의 마음도 네 맘과 똑같다는 것만 알아줘.
은경아! 사랑해. 정말이야.
나 너 정말 많이 살아하고 있어. 그동안 가장 하고 싶었지만 반면에 가장 조심했던 말이기도 해.
이제 속 시원하다. 다음에 네가 보내는 편지에서 나 또한 이 말을 읽을 수 있다면 나 정말 기쁠 거야.
너도 그렇다면 꼭 듣고 싶다. 정말 꼭!
1998.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