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철에게
크리스마스가 언제 오려나 했는데 내일이면 크리스마스이브야.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지?
넌 뭐 하니? 난 그냥 친구들 만나기로 했어. 딱히 할 일도 없고 집에 있자니 왠지 섭섭하잖아. 그래서 친구들이랑 날밤 새기로 했지. 매년 그래 오긴 했지만 말야. 매년은 아니구나...
애인도 없는 나는 이런 날이 참 싫다.
크릐스마스니, 밸런타인데이니, 화이트데이니, 어쩌고저쩌고. 다 짝 있는 사람들만 놀라는 거야 뭐야. 우쒸. 열받어.
한 해를 정리하면서 카드를 썼어. 너한테는 미리 보내야 했기에 젤 먼저 써서 붙였지만. 내일 만나는 친구들을 위해서 몇 장의 카드를 썼어. 근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 참 이상하지. 안타까운 친구도 있고 마음이 심란한 친구도 있고. 내년엔 모두들 잘 되길 바라면서 진심으로 썼다. 새삼 친구가 참 소중하다고 느꼈어. 네가 처음 나한테 준 편지에 이런 글을 썼었어. (기억날지 모르지만) 군대에 와서 배운 것이 딱 하나 있다고 '소중함'이란 말 뜻을 깨달았다고...(이젠 정말 보지 않아도 편지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술술 나온다. 이 편지 어쩌면 네가 특박 나왔다가 복귀해서 보게 될지 모르지만은 암튼 지금은 아니니깐....)
우리 29日날 송년회 한다. 회사에서.
그전부터 편지에 이 얘길 쓸려고 했었는데 오늘에서야 쓰는구나. 네가 28日날 특박 나온대서 하는 얘기지. 나는 평일에 나올 줄은 생각 못했거든. 그래서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거야. 아마. 근데... 너 28日날 특박 나오면 한 번 밖에 볼 수 없겠구나. 28日 하루. 29日은 송년회라 빠질 수 없는 자리구 30日은 너 부대에 들어가야 하잖아. 안타까운걸...
얼마 만에 보는 네 얼굴인데 고작 하루밖에 볼 수 없다니 다른 때 나와라.
우리 31日도 쉬고 1日, 2日도 쉰단 말야. 좋은 날은 다 피하고 왜 하필 그런 날 나오냐.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고...
잘살어. 감기 조심하구. 그럼 안녕.
1998. 12. 23.
P.S. Merry Christmas
지난 '먹보'편의 다음 날인 18日 편지에는 19日에 내게 면회를 오려고 했던 내용이 담겨있다.
연말을 즈음하여 특박이 예정되어 있던 나는 면회를 오지 말라고 했었다. 집에서 동서울터미널까지 가서 고속버스를 타고 충주까지 그리고 충주에서 부대까지... 4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그 길에 가능하다면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대로 다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그 길은 눈물 말고는 동행할 것이 없다는 현실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미치도록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은 그녀이지만 헤어짐과 헤어짐을 견디는 우리의 아픔도 작지않았다.
극히 희소하긴 하지만 쫄따구가 좋은 점도 있다.
바로 특박이 돌아오면 최우선하여 빠른 날, 좋은 날로 잡아 준다는 것이다. 근무에 따라 적절한 인원 안배가 필요하므로 막내들을 먼저 챙긴 이후에 조율하다 보니 나와 같이 고참도 아니고 막내도 아닌 일병들은 평일로 밀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크리스마스도 아니고 연 초도 아닌 애매한 평일로 정해졌다. 이전까지는 주로 주말이나 휴일을 포함해서 세상에 나왔을 것이다.
면회까지 사절하는 인고의 결단을 한 이후의 특박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짧은 2박 3일 중에 하필 회사 송년회가 잡힌 그녀가 많이 속상했던 모양이다. 수십 년 지나 편지를 펴보는 지금의 내가 봐도 31, 1, 2日에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데, 그녀는 오죽했을까...
아직 다음 편지들을 정독하지 않았다.
정말 하루밖에 보지 못했는지 혹여라도 일정이 변경되지는 않았는지 몹시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