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부를 이름

by 초동급부

생각나니? 이 노래... 김경호 3집 말야.
당연히 생각 안 나지? 우리가 처음 만난 날 한강시민공원에서 너랑 나랑 한쪽 귀에 꽂고 들었던 노래가 바로 김경호 3집이야. 그래두 생각 잘 안 나지? 다 알어.

아주 오랜만에 이 노랠 들었어. 작년일이 생각나고... 또 벌써 반년이 흘러 버렸구나. 그땐 한 살 차이라는 게 참 부담스러웠어. 물론 생각엔 그냥 하루 만나서 재미있게 놀지... 그랬거든. 근데 널 만나고 또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심상치 않은 생각이 들었어. 왜 있잖아. 여자의 예감이라는 거... 왠지 모를 인연이 될 거 같았어. 그래서 너한테 부탁했었던 거야. 한 가지만 약속해 달라고. 그때 나 참 웃겼지.

첫 만남에서 것두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별 희안한 얘길 다 하구. 그치만 그땐 왠지 그 얘기를 꼭 해야 할 것만 같았어. 그 덕분에 우리 첫날부터 좀 다퉜지. 지하철역에서 너 뿌리치고 나 혼자 가는데 너한테 되게 미안하더라. 내가 이런 얘기 처음 하는 거지? 그냥 말하고 싶었어. 내가 왜 너한테 그런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아무런 감정도 너한테 없었더라면 그런 얘긴 입 밖에 내지도 않았을 거야.

내가 그랬지. 한 살 차이가 부담스러웠다고.
근데 지금은 되려 헷갈린다. 내가 뱀띠인지 용띠인지 스물셋인지, 넷인지. 너 때문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반말과 네가 부르는 내 이름. 넌 날 전혀 누나라고 생각되지 않는 모양이지? 쨔사. 그래두 내가 누나다. 너 내 동생 해라. 응? 남동생 하나 있었으면 했는데. 너 대들어도 좋구 맞먹어두 좋으니까 내 동생 해라. 그럼 이 누나가 잘해줄게... 벌써 마음이 든든한 걸. 나 욕심두 많지? 친구 하자 그랬다가. 동생 하자 그러구. 담엔 뭐 하자 그럴까?

근데 지난 얘기 하니까. 재밌다.
지금 또 생각났는데, 네가 무슨 이승환이냐?
폭탄 맞은 이승환 이구만... 너 솔직히 불지 그랬어. 그래도 난 폭탄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폭탄이라고. 너는 뭐 이미지가 아니 닮았다구 했어. 이승환이랑. 농담이야. 삐친 거 아니지? 이승환은 무슨. 배용준이야.

넌 나한테 누구 닮았다고 했는지 생각나?
잘 생각해 봐(생각 안 나면). 너한테 그 얘기 들은 후로는 많은 사람들한테 듣고 다닌다. 한두 명 얘기한 게 아닌 듯싶은데...

감기가 올려나 봐. 목도 아프고. 여러 번 오길 시도했지만. 내가 물리쳤지. 요번에도 꼭 물리쳐야 하는데... 아프면 서럽잖아. 따뜻한 말 한마디와 이마 한 번 짚어 줄 사람도 내겐 없는데... 그저 가족들 밖에는... 너두 아프지 마. 거긴 더 외로울 테니깐.

1999. 1. 6.

P. S. 복권 잘 받았어? 생각해 보니까 편지 봉투가 좀
작아서 잘 갔는지 모르겠어. 네가 못 받았다는 편지도
폭시 그게 아닌가 싶고, 그래서 모험을 해봤어.
과연 잘 도착했는지, 아니면 못 받아 봤는지 말아.


언젠가 너는 물었지. 니가 처음이냐고 난 대답대신 이런 말 했지
내 삶의 마지막 순간 그 누군가 떠 오른다면 오직 한 사람 너일 거라고

너의 사진 또 바라보다 슬픈 너의 얘기
다시 생각나 눈물 흘려
너는 말했지. 사진과 얘기하는 그 슬픔 너는 아마 모를 거라고.
하지만 난 너를 보낸 뒤 알았어
누군가 아프도록 사랑해 본 사람만이
그 마음 아는 걸 테니

너의 편지 그 안에 써있던 슬픈 너의 글씨.
다시 그에게로 간다고
보내야 했지 먼 훗날 니가 눈을 감을 때 나의 품에 안겨
부를 그 이름이 그라면. 아마 난 너 힘들 테니

얼마나 더 사랑해야 니가 사랑한 사람까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걸까. 오~ 널 위해
너는 알까. 긴 세월이 흘러가도
이 세상 나 떠나는 날 그날 보고플 단 한 사람
아직도 그건 너란 걸


- 김경호 3집, 마지막 부를 이름 -


잊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들을 다시 기억하게 해 준 편지이다.

한강둔치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눌 때, 내 귀에 그녀가 한쪽 이어폰을 끼워줬던 기억은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 들려주었던 노래가 이 곡인지는 1999년 1월 이후 처음 알았다. 무엇보다 우리 두 사람에게 이 '여자의 예감'이 무척이나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서로의 모습을 눈에 담고 서로의 목소리를 귀에 담고 우리의 감정이 가슴에 고였던 짧디 짧은 시간에 반해 너무도 컸던 그녀가 내게 준 마음, 그 괴리를 채워주는 편지 같기도 하다.


이놈에 누나타령은 지치지도 않냐... 잘 나가다 한 번씩 이런다. 그래, 애인 하자는 말은 안 했지만 남편 하자고는 했지...


서로 얼굴을 마주하기 전 잠시 연락하던 시간이 있었다.

내가 크나 큰 실언을 했었던 것 같다. 폭탄... 이 또한 실로 오랜만에 상기했다. 배용준은 또 뭐지?


편지무리와 함께 복권도 섞여 있었다.

서너 차례 복권을 보내 줬으니 이것이 당시에 동봉한 것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기업복권, 제29회, 영화 간첩리철진이라고 되어있다. 당첨금 2천만원, 두장의 복권은 물론 꽝! 이다. 복권에는 작은 포스트잇도 붙어 있는데, 이렇게 쓰여있다.

'그냥 사봤어. 일확천금을 꿈꾸는 건 아니지만 500원짜리라도 되면 기분 좋잖어. 외출 때 보자. (심심하면 긁어 보고.)'


내가 본 미래 속 예언은 빗나간 것 같지만, 편지 속 복선은 그때 못 본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언을 담고 있는 듯...



폭탄 커플은 부부가 되었고 저자는 폭탄 맞은 이승환의 마지막 부를 이름이 되었다.

무엇보다 행복하고 감사한 것은, 내가 마지막 부를 이름이 하나 더 늘어 무려 둘이라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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