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학교와 서울학교의 차이는 컸다.
무엇보다 배우는 속도가 너무 달랐다. 시골에서 절반정도 진도를 나갔는데 여기서는 다 끝나간다. 대관절 왜 이리 빨리 배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짝꿍이 맘에 안 들고 아이들도 훨씬 시끄럽고 극성스럽다.
우선 말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웠다. 몇몇 아이들이 말을 걸어와 대답했지만 잘 알아듣지 못하고 웃기만 한다. 우려하던 상황이 현실로 다가왔다. 사투리를 고쳐야 할 텐데...
점심시간이 되었다.
새 학교는 급식을 해 나만 혼자 도시락을 먹었다. 작은 누나가 공들여서 새 도시락에 귀한 반찬을 싸주었는데 왜 이리 맛이 없는지... 정말 모래를 씹어 먹는 것만 같았다. 막내 동생 서울학교 전학날의 첫 도시락, 누나라는 책임감으로 얼마나 정성을 들였겠는가?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반에 반도 먹지 못했다. 시골에서는 1년 가도 몇 번 싸가지 못하는 반찬들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보았으면 다들 부러워하며 “하나만~”을 연발했겠지만,
난 제일 먼저 식사를 접고 화장실로 가 한참을 울었다.
왜 그리 엄마가 보고 싶은지, 엊그저께 아침에 보았던 엄마의 얼굴인데 왜 그리 오래된 것 같은지...
혼자 운동장 벤치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교실로 돌아가기 위해 1층 계단에 들어서자 어떤 커다란 물체가 나를 가로막았다. 큰형 키만 한데 체구는 형의 두 배정도 되어 보이는 녀석이 세 쌍둥이는 속에 있을듯한 어마어마한 배로 나를 밀치는 것이었다. 아무 말 없이 비켜가려 하자 또 막는다. 사투리라는 핸디캡으로 말다툼부터 자신이 없던 나는 회피를 선택했다. 다행히 같은 행동을 더 하지는 않았으나 학년 짱 체면도 말이 아니다.
정말 일주일 같았던 새 학교에서의 첫날이 갔다.
역시 홀로 돌아오는 길, 모두들 즐겁고 밝은 모습이었으나 나만 슬프고 외로웠다. 정말 세상에 나 혼자만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죽을 상을 하고 집에 오자 누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것저것 묻는다.
“진도가 틀리고, 밥도 틀리고, 씨~ 선생님도 틀려먹었어~” 내 대답이다.
저녁 무렵 걱정되었던 큰 형이 일찍 퇴근을 했고 누나에게 한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울고야 말았다.
“틀렸어, 틀렸어 다 틀려먹었어~~~” 다르다는 말을 몰랐었던 것 같기도 하다.
6학년 막내아들을 전학시킨 첫 등교일, 누나도 형도 철부지 동생 걱정에 귀가를 재촉했건만 저녁을 먹고 밤이 되어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내일이 오지 않거나 영원히 잠에서 깨지 않기를 바라며 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전학 첫날 느낀 내 감정들은 추억이라 해도 좋을 만큼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서울에서의 내일 또 내일들은 더욱 슬프고 외로웠다.
세상에 나 혼자만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과 상황들을, 익숙하다 해도 좋을 만큼 꾸준히 그리고 독하게 마주하곤 했다.
아버지가 틀리고, 가족도 틀리고, 씨~ 나도 틀려먹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