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교에서 3일을 보냈다.
그날 저녁 아버지가 바나나 한 봉지를 사들고 집에 오셨다. 그때는 바나나가 고급 과일이었다. 아마도 처음 맛보았던 것 같다.
이틀밤의 부재를 만회하려는 듯 뒤늦은 질문들을 하신다. 누나가 대신 대답을 다 해줘서 무척이나 고마웠다. 코가 쑥 빠져 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일말의 죄책감이었는지 처음 가는 학교에 많은 아이들 앞에서 내가 주눅 들지 않고 칠판에 이름을 대단히 크고 당당하게 썼다고, 뒷문에서 다 보고 오셨다며 역시 내 아들 똘똘하다고 추켜세워 주신다.
난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무조건 글씨는 크게 써야 한다며 공백 없이 쓰라고 다그치고 쥐어박던 사람이 누군데...
난 선생님이 필기하고 남은 칠판 빈 공간에 공백 없이 채워 썼을 뿐이다. 글씨만 크게 쓰면 똘똘한 건가? 그렇다면 공책 한쪽에 한 글자씩 그리던 시골 특수반 꼬질이는 대체 얼마나 똘똘한 거래?
언제나 아버지와의 대면은 불편하고 불안한데 그날은 유독 심했다. 다행히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되었고 나는 일등으로 씻고 자리에 누웠다. 아버지가 옷을 갈아 입자 형도 누나도 제 자리를 찾아갔다. 잠시 후 문을 닫기 위해 누운 자세로 턱을 올려 발을 뻗으니 누나가 문틈으로 아버지의 옷 갈아입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유심히, 한참이나... 헉! 변태~
다음 날 아침 식사 중에 아버지가 먼저 일어나시자 누나가 형에게 “오빠~ 아부지 속옷이 바뀌었어, 이상하네 저런 색 있는 거 안 입으시는데...” 큰형도 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형은 “뭐, 어쩌라고?”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계속 밥을 먹는다.
누나의 저 말은 한참 뒤에 의미심장하게 다시 귓가에 맴돌았다. 역시 여자들의 Six Sense란...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여자의 무서움을 알아 버렸다.
그리고 남자의 무서움도...
그랬다.
아버지는 일곱 식구가 상경하는 대업이 진행 중인 시점에 불륜을 저질렀다.
자신의 생일, 소를 잃어버렸을 때, 엄마 생일, 대밭에 불이 났을 때, 심지어 내 힘든 전학날에도 그것은 진행형이었다.
상대는 시골에서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다 오래전부터 서울에 살고 있던 옛 이웃 동생이었다.
내 부모가 어떻게 이 사건을 정리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이전과 이후의 아버지의 태도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만 정확히 알고 있다.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혹, 내 마음속에 H와 같은, 아버지의 그리움의 대상이 그 상대방은 아니었을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정말 틀려 먹었다.
가슴에 두어야 아름다운 것은 그저 그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내 엄마는 그들의 몫까지 가슴에 묻고 또 묻어 다다른 한계에 결국 텅 비었으리라.
애처로운 나의 대나무!
그래도 이때까지는 그 속에 마디는 존재했을 것이다.
철이 들면서 난 항상 조마조마했다.
저 마디도 무너지면 저 마디마저 허물어져버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