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 앞의 계절 May 29. 2021

낯선 공부방 교실에서



 아이들을 바라본다. 똘망똘망 눈망울이 나를 향해 있다. 다람쥐처럼 작은 눈망울의 아이, 기린처럼 커다란 눈망울의 아이, 토끼처럼 놀란 눈망울의 아이, 사슴처럼 선한 눈망울의 아이,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눈망울의 아이, 강아지처럼 순박한 눈망울의 아이, 모두 여섯 명의 아이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다. 난 아이들을 가르쳐 본 적이 없다. 선생님을 해 본 적도 없다. 기껏 해봐야 우리 아이들 어릴 때 학습지 같이 풀어준 정도의 엄마다. 그런 내가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하게 되었다. 물론 중간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정년퇴직 후 여기저기 일할 곳을 찾아봤다.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나를 위한 일자리는 거의 없다. 있다 치더라도 내키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면단위 소재 작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그때만 해도 선생님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교권이 많이 추락했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다. 그 시절 내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하는 모든 것들이 멋져 보였다. 나는 모르는 것들은 선생님은 어떻게 저렇게 잘 알까? 선생님이 되면 저렇게 똑똑해질 수 있을 거야!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하며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성인이 되면서 선생님에 대한 꿈은 사라졌다.  대학 못 보내준다는 바람에 상고로 진학했고 곧바로 취직하는 바람에 선생님에 대한 꿈은 이미 물 건너 간 상태였다. 늦게 대학을 가긴 했지만 다른 꿈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버려졌던 선생님에 대한 꿈이 다시 나를 찾아온 것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 불리긴 하지만 정식 선생님은 아니다. 그냥 시간 강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행복하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즐겁고 기쁘다. 몰론 아이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면 다들 집으로 간다. 그런데 이 교실에 오는 아이들은 집에도 가지 못하고 다시 이곳에서 공부를 해야만 한다. 나의 고민은 거기서 출발한다. 어떻게 하면 이곳으로 오는 발길이 즐거울까? 어떻게 해야 이 곳이 재미난 공간이 될까? 이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지곤 한다.


  아이들은 모두 공부를 싫어한다. 책을 주고 문제를 풀어보라고 해도 책조차 펴지 않는다. 필통도 꺼내지 않는다. 그저 멍하니 책 표지만 보고 앉아있다. 책과 눈싸움 중이거나 그러다 포기하고 만화책을 꺼낸다. 공룡을 그리거나 낙서를 한다. 자기 책을 집어던지고 필통도 집어던진다. 책상 위에 있는 가림막을 집어던진다. 앞에 공부하고 있는 친구에게 연필을 집어던진다. 친구 가림막을 쓰러뜨린다. 지우개로 친구를 맞춘다.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를 거부한다. 심지어 책상에 앉지 않고 뒤에 있는 소파에 눕는다. 실내화를 벗어던진다. 가방을 내팽개치고 잠바도 바닥에 휙 집어던진다. 한 친구가 화장실 간다고 손을 들면 너도 나도 따라서 화장실 간다. 6명이 다 화장실 가고 나 혼자 교실을 텅 빈 교실을 지킬 때도 있다. 분명히 수업시간인데도......


  쉬는 시간엔 절대 화장실 가지 않는다. 그 시간엔 웃고 떠들고 방방 뛰어다닌다. 인형 집어던지며 야구한다고 난리, 물구나무서기, 칠판 뒤에 올라가기, 책장 사이에 숨기, 온갖 진기명기가 펼쳐진다.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소용없다.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계속 주의를 줘도 막무가내다. 그래도 계속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주시하는 수밖에 없음을 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서로 밀치고 그러다가도 금방 화해를 하곤 한다.  


  고학년 담당 선생님과 가끔 통화를 한다. 자기네 반에는 아예 공부방에 오지 않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아마 공부하기 싫어서일 거라고 말한다. 그 이야길 들으면서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반 아이들은 우리 공부방에 오는 걸 싫어하진 않는 듯하다. 공부방에 오기 싫다는 아이는 없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있다는 얘기다. 당장 공부를 잘하게 되지는 않겠지만 언젠간 이 교실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기긴 한다. 공부가 싫으면 학교도 가기 싫다. 더군다나 수업 다 끝나고 나만 가야 하는 공부방 교실이라면 더더욱 그럴 법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좋다. 물론 공부는 하기 싫겠지만 우리가 서로 만나서 즐겁고 재미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눈치가 보이면 책을 덮고 게임을 유도한다. 게임 이야기만 나와도 눈빛이 똘똘해지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신기하다.


  아이들은 국어보다 수학을 더 좋아한다. 국어 시간에 수학을 하겠다고 할 때가 많다. 막상 수

학을 하면 또 어려워한다.  손가락, 발가락을

모두 동원해도 안 되는 덧셈, 뺄셈이 나오면

난감한 표정들이다. 물론 잘하는 아이도 있

고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다. 솔직히 나도 중학교 때부터 수학을 싫어했다. 그렇게 수학과는

거리가 멀어졌던 기억이 있다.


  오늘은 국어 시간에 낱말카드를 숨겨놓고 보물 찾기를 했다. 교실 밖으로 아이들을 내 보내고 카드를 숨겼다. 13개 숨겼는데 아이들이 모두 찾아냈다. 난 소풍 가서 보물찾기 했을 때 한 번도 찾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다 찾았다. 찾은 낱말카드를 칠판에 쓰는 것으로 보물 찾기는 끝났다. 보상으로 끝나고 집으로 가는 손길에 사탕을 쥐어 주었다. 교실을 나가는 아이들 발걸음이 달달하다.   

작가의 이전글 어서 와, 면접은 처음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