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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Mar 16. 2021

쌍둥이 임신 중인 며느리

  


  주말에 아들과 며느리가 집에 온다. 오랜만에 다.  나는 금요일부터 바쁘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청소다. 평소에 잘 안 하던 청소를 깨끗하게 해야 한다. 손녀가 오면 여기저기 만지고 다니기 때문에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야 한다. 청소를 한다고 해도 어디 한구석은 안 한 곳이 생기는데 손녀는 꼭 그런 곳을 찾아 만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어쩜 이렇게 먼지가 많은지 새삼 놀란다. 하긴 먼지가 많다기보다 청소를 안 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직장에서도 가끔 청소 검열을 한다. 그럴 때 하는 청소는 짜증 난다. 그러나 이런 청소는 기분 좋다. 청소하는 걸 보며 신랑이 한 마디 한다. '며느리가 무섭긴 무섭네, 평소에 잘 안 하던 청소도 다하고' 놀려 먹는다. 그 말은 사실이다. 며느리가 온다고 하면 신경이 더 쓰이는 건 사실이다. 물론 우리가 아들 집에 가면 지금과 반대의 경우가 되겠지만 말이다. 이번엔 청소하는 김에 부엌 용품 정리도 했다. 그동안 버리지 않고 쌓아두었던 물건들을  버렸다. 얼마 전, 문화센터에서 정리수납 강의를 들은 적 있다. 강사가 말하길 정리수납의 기본은 버리기라고 한다. 버리기를 실천했다. 제일 먼저 버린 것은 책이다.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라 버리지 못하고 계속 가지고 다녔다. 집에 있는 책의 반 정도를 분리수거했다. 싱크대 선반에 있던 부엌 용품들도 많이 버렸다. 쓰는 것들만 몇 개 남겨놓았다. 그동안 버려야 할 것들은 너무 모아만 두고 있었다. 비우기를 하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 비움의 미학은 또 다른 채움의 미학이다.

 

  토요일, 시장에 간다. 밑반찬 재료 사러. 장조림, 연근, 시금치, 잡채 거리, 청경채 등을 샀다. 물김치는 목요일 미리 담갔다. 김치 하면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예전엔 나도 김치를 담가먹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그 친구가 김치를 사 먹는다는 말에 깜짝 놀란 적 있다. '세상에 김치를 다 사 먹니? 담가 먹지' 핀잔주듯 말했다. 하긴 그때만 해도 김치를 사 먹는 집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해놓고 지금은 내가 김치를 사 먹고 있다. 일은 어떻게 변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함부로 말할 것은 못된다. 그때만 해도 내가 김치를 사 먹을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우선 밑반찬을 만든다. 멸치 볶음. 연근조림, 장조림, 메추리알 조림을 만든다. 밑반찬은 한번 해 놓으면 편하다. 하는 김에 아들 줄 것까지 만든다. 솔직히 만들긴 하지만 며느리 입에 맞을지 걱정스럽긴 하다. 며느리는 마른 체격이다. 거기다가 둘째를 임신 중인데 쌍둥이다. 작은 체구에 뱃속에 둘씩이나 들어앉아 있으니 얼마나 힘들까? 생각은 들지만 어떻게 해 줄 도리는 없다. 입도 짧아서 식사도 아주 조금씩밖에 먹지 않는다.  저녁을 먹고 신랑이랑 또 마트에 간다. 이번엔 과일 사러 간다. 며느리가 임신 중이라 과일을 사서 보내려 한다. 애플망고, 망고, 블루베리, 딸기, 오렌지, 참외, 키위를 사고 집에 쓸 용품들도 더불어 산다. 마트만 가면 카트를 채워 사게 되니 문제다. 그래서 마트들은 카트를 크게 만들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잔뜩 장을 보고 집으로 간다.


  일요일, 아침 눈뜨자마자 음식 준비로 바쁘다. 잡채는 고기를 빼고 야채 위주로 만든다. 당면, 시금치, 파프리카를 색색으로 넣고 만든다. 쪽파에 오징어를 넣고 해물파전도 부친다. 호박전, 청경채 볶음, 시금치 무침을 만든다. 12시에 아들과 며느리, 손녀가 왔다. 올 때마다 손녀 키가 조금씩 큰다. 뒤뚱거리던 걸음이 제법 또박또박해졌다. 처음 볼 땐 낯설어 하지만 금세 방긋방긋 웃는다. 실은 이번에 집에 온 것도 손녀가 보고 싶어 신랑이 호출했다. 클수록 이쁜 짓을 많이 한다. 영상 통화를 하는 것으론 만족하지 못한다. 직접 봐야 한다면 오늘도 호출을 당해 온 것이다. 우리가 보고 싶다고 해서 매일 오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솔직히 나도 며느리 시절을 보내봐서 안다.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얼마나 불편할지. 그래서 몇 번씩 보러 간다는 걸 말리고 말려 이렇게 가끔 한 번씩 본다. 손녀는 잡채만 먹는다. 호로록호로록 당면 빨아먹는 재미에 맛들 린 것 같다. 다른 것은 먹지 않고 잡채만 계속 먹는다. '잡채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 그 덕에 우리 모두는 즐겁다.


  며느리가 오면 한 세 시간 정도 집에 머물다 간다. 중간에 고모랑 커피집 가서 커피 한잔씩 마시고 오기도 한다. 며느리는 해물파전만 먹고 밥은 거의 먹지 못한다. 입덧은 거의 없어졌다는데 입에 맞는 게 없나 보다. 예전에 파전 잘 먹는 걸 봐서 몇 장 부쳤다. '파전도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엄마랑 딸이랑 비슷하다. 며느리는 파전, 손녀는 잡채, 그것만 먹는다. 그거라도 입에 맞으니 다행이다 싶다. 한참을 더 놀다가 과일과 밑반찬을 싸서 보낸다. '내가 해준 반찬들을 버리지 않고 다 먹을까? 과일들은 썩히지 않고 다 먹을까?' 쓸데없이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속으론 그러지 말아야지. 해주면 그걸로 끝이지 다른 생각은 절대 하지 말자 다짐을 하면서도 더러 그런 생각을 한다. 버리지 말고 다 먹어주길, 맛있게 먹어주길 바란다. 솔직히 나는 시어머니가 밑반찬이든 뭐든 나를 위해 해 준 적은 없다. 우리 시어머니 세대는 며느리들한테 얻어먹을 줄만 알았지 당신들이 며느리들에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배우진 않은 세대다. 또한 그럴만한 하게 잘 살지도 못했던 세대였다. 기대를 한 적도 없긴 하다. 의례히 우리가 시어머니를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달라진 시대에 맞게 나도 변해야 되는 게 맞다. 그래야 서로가 편하다. 그렇지 않으면 둘 다 불편하다.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솔직히 불편한 점이 많은데 그런 것 까지 보태면 더 힘들 것이다.


  나는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본 적이 거의 없다. 걸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솔직히 전화를 걸 일도 별로 없다. 나도 내 일로 바쁘다. 며느리에게 전화 걸만한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고 있다. 어찌 보면 다행이다. 불편할 걸 뻔히 아는데 전화하기 싫다. 나도 불편하다. 특별하게 전화할 일이 있으면 아들에게 하면 된다. 처음엔 신랑이 그런 부분을 싫어했다. '우리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전화도 한 번 안 하다'며 서운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손녀가 생기면서부터는 싹 사라졌다. 그저 손녀만 보면 모든 게 만사형통이다. 우리도 어쩔 수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가는 것 같다. 난 아직도 내가 할머니라는 게 실감 나지 않을 때가 있다. 손녀에게 말로는 '할머니야'라고 말하지만 손녀가 가고 나서 평소에 나로 지낼 때는 할머니란 말에 거부감이 생긴다. 난 할머니가 되고 싶지 않다. 할머니 되기를 거부한다. 서른한 살에 결혼하고 시댁을 갔다. 신랑보다 먼저 결혼한 조카들이 있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나에게 '할머니' 하고 부르는데 소름이 돋았다. 이제 막 결혼한 새댁 보고 할머니라니 미칠 지경이었다. 촌수를 따지면 할머니가 맞는데 할머니라고 부르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참 난감했었다. 물론 할머니 맞다.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할머니가 싫다. 이 나이에 벌써 할머니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니 정말 내가 싫다. 아직 팔팔한데 그런 소릴 듣다니 정말 인정하기 싫다.


  오늘은 그동안 코로나로 미뤄왔던 수채화 강의가 있었다. 물감을 열심히 칠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후배가 한마디 한다. '언니, 나는 내가 지금 이 나이가 됐다는 게 실감이 안 나" '그게 무슨 소리야, 그건 내가 할 소리다, 얘, 내가 지금 이 나이에 할머니 소릴 듣고 살잖아' '하긴 언니, 할머니구나'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지 마라' 강의실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할머니가 되는 일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좋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거부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 줄 안다. 끝내 인정하리란 것도 안다. 이중 잣대로 할머니를 재고 있다. 나를 이등분하고 있다. 겉으론 그런 척 속으론 안 그런 척 살고 있다.


  얼마 전에 초음파 사진을 보내왔다. 꼬물꼬물 아기들이 두 명이다. 옆에 알콩이, 달콩이 태명도 적혀 있다. 귀엽고 귀한 아기들이다. 쌍둥이 일거라곤 아들도 며느리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나도 뜻밖이지만 두배의 기쁨을 주려고 그런 것 같다. 아들과 며느리는 걱정 일 것이다. 우리도 걱정이 되긴 한다. 쌍둥이까지 태어나면 아이가 셋이다. 셋, 정말 힘들 것이다. 어떤 말로도 그 힘듦을 표현해 내긴 어렵다. 난 연년생 키우는데도 힘들었다. 하물며 셋을 키우려면 얼마나 더 힘들까? 정말 걱정이다. 난 입으로만 걱정이지만 며느리는 더 걱정이 될 것이다. 내가 가는 유치원에 쌍둥이들이 온다. 여자 쌍둥이다. 꼭 같은 옷을 입고 온다. 신발은 다른 걸 신기도 한다. 머리핀도 다르다. 눈에 띄지 않는 소품들은 다른 걸 하지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옷들은 꼭 같은 걸 입고 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확실하게 쌍둥이인 줄 안다. 공주 쌍둥이들은 볼 때마다 며느리 생각이 난다. 아들 쌍둥이 일지, 딸 쌍둥이 일지는 아직 모른다. 아들이든 딸이든 건강하면 된다.


  아파트에 아들 차가 도착했다. 베란다에서 보고 있던 신랑이 뛰쳐나간다. 앞뒤 안재고 뛰어 나가다 현관 유리창에 꽝, 머리를 부딪쳤다. 세상에 유리창이 안 보였단다. 얼마나 좋으면 저럴까? 문 열 생각도 안 하고 무작정 달려가다 생긴 일이다. 그 광경을 아기 안고 들어 오던 며느리가 봤다. 소리가 너무 커서 자기도 들었다면서 아버님, 머리 괜찮으시냐며 묻는다. 이마에 혹이 났다. 영광의 상처다. 머리가 띵 하단다. 머리가 아파도 손녀 보면 아프지 않단다. 이제 조금 컸다고 오면 안기고 제법 따른다. 전에는 와도 낯선지 잘 안기지 않았다. 애걸복걸 따라다녀야 겨우 안을 수 있었다. 이젠 따로국밥이 아니다.  얼굴을 알아보는지 이젠 정말 식구가  된 것 같다. 딸기를 작게 잘라 입에 넣어주면 오물오물 먹는다. 연근 칩을 만들었다. 작게 잘라 주면 이쁘게 받아먹는다. 손녀도 귀하다. 며느리도 쌍둥이들도. 아들도 모두 귀하고 소중하다. 기쁨만 두배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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