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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Apr 03. 2021

자기소개서, 다시 쓰다

  


  이십 대에 이력서를 여러 번 썼다. 그리곤 직장에 다녔다. 한 직장을 오래 다녔다. 한동안 이력서 쓸 일이 없었다. 나 때는 이력서 용지를 문방구에서 샀다. 거기다 사진을 붙이고 필요한 것을 적어 제출하곤 했다. 뽀샵이 없던 시절이라 사진도 본연의 자기 얼굴 그대로였다. 점이 있으면 있는 대로 뾰루지가 있으면 있는 대로. 최근에 이력서 쓸 일이 생겼다. 써 본 지 30년이 훌쩍 넘은 것 같다.  기억도 가물거릴 정도다. 작년부터 동시를 배우며 쓰고 있다. 동시는 아이들의 마음으로 써야 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써야 한다. 그런데 난 그게 잘 안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른의 시선으로 쓰게 된다. 동시를 시처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결심했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 봐야겠다고. 곁에서 같이 지내면서 경험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아이들 관련 봉사활동이다.


  봉사활동을 해보려고 여기저기 찾아봤다. 봉사 활동하는데도 별걸 다 써내란다. 이력서는 기본이고 자기소개서, 등등을 써내란다. 이력서, 몇 년 만에 다시 보는 나 자신의 모습인가? 새삼스럽다. 내가 다시 이력서를 쓸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긴 요즘은 백세 시대라고 한다. 우리 엄마 세대 같으면 벌써 한물 간 세대라고 쳐주지도 않을 나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막상 자기소개서를 쓰려고 하니 앞이 캄캄하다. 어디서부터 써야 할까? 무엇을 써야 할까? 고민도 많고 생각도 많다. 자판을 두드리다가도 머뭇거리는 게 다반사다. 커서가 깜빡일 때마다 눈동자도 껌벅거린다. '자, 빨리 커서를 움직여' '빨리 생각해 봐" "무얼 하고 있는 거야, 얼른 쓰지 않고' 다그치고 재촉한다. 그래도 커서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안내해 주는 것 같다. 릴레이 선수가 다음 주자에게 줄 바통을 쥐고 달리고 있다. 너무 빠르다. 천천히 갈 시간이 없다. 쏜살같이 달려야 한다. 그런데 어디로 달려가야 할까?


  우리는 획일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관공서나 학교는 특히 더 그렇다. 교실이나 사무실 밖으로 나가면 큰일 나는 줄 안다. 그러나 바깥도 안과 특별나게 다를 건 없다. 이중잣대로만 판단할 일은 아니다. 같은 문제라도 교실에 있을 때와 교실 밖에 있을 때 생각이 다르다. 사무실 안에 있을 때와 사무실 밖에 있을 때 생각이 다르다. 또한 본인이 어떤 상황인지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고 해석도 달라진다. 나의 경우도 그렇다. 퇴직을 하고 나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 직장 다닐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 조금씩 보인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동료와 신경전을 벌이던 일, 상사와 불편한 관계에 있던 일, 지나고 보니 정말 별일 아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날을 세우고 속상해했는지 모르겠다. 하긴 그때는 그때만의 일이 있었다고 겨우 진정시키곤 한다. 시간이 지나면 진정 안 될 일이란 없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 괜히 있는 말은 아니다. 정말 약이 된다.


  얼마 전에 친구 아들 결혼식에 다녀왔다. 이 결혼식은 참 독특했다. 보통의 경우 신랑 신부 엄마는 한복을 입는다. 그런데 여긴 드레스를 입었다. 난 그 결혼식을 보면서 안심했다. 그 결혼식장에서 아들 결혼식을 안 한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했다. 거기서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신랑 엄마가 내 직장동료이자 친구다. 분홍색 드레스를 입었다. 날씬하고 예쁜 친구라 그런지 썩 잘 어울린다. 주변에서도 신부보다 예쁘다고 난리였다. 하객들 한데 그런 소리 많이 들었다며 살짝 창피하다고 했다. 일반적인 결혼식장보다는 특이하고 재미난 경험이었다. 혼주들이 촛불을 켜는 대신 모래시계를 섞는다. 색이 다른 모래시계가 섞이면서 한 세상을 함께 이루어 나간다는 뜻 이리라 생각된다. 썩 괜찮아 보인다.


  우린 평범한 것을 선호하지만 때론 색다른 것에 매혹된다. 어쩌면 내가 다시 쓰는 자기소개서도 색다른 사람을 찾아내기 위한 한 방편일지도 모른다. 결혼 식장을 오고 가면서 옛날 동료들과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나눴다.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나도 직장 다닐 때 겪었던 일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제삼자의 입장이 되고 보니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 만약 내가 사무실 안에 있었다면 분개했을 일이다. ' 도대체 그 직원은 왜 그러니?" " 그 상사는 또 맨날 왜 그래? 하며 맞장구를 쳤을 것이다. 그렇다. 그 안에 있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밖으로 나와보니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도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별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안과 밖의 차이가 그런 것이다. 속하는 가? 속하지 않는가? 그것에 따라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수십여 통 썼다. 몇 번 쓰다 보니 그것도 일이라고 적응이 된다. 자기소개서를 하나 써놓고 그것을 기본으로 조금씩 수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요즘은 시대가 좋아져서 이력서를 직접 들고 오라는 곳은 거의 없다. 이메일로 보내면 된다. 그 부분은 아주 권장할 만하다. 취업이 되면 다행이지만 결정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확실치 않은 일에 이력서 들고 왔다 갔다 시간 투자하는 일은 없어져서 그나마 다행이다. '딸, 내가 요즘 이력서랑 자기소개서를 몇 통이나 쓴 줄 알아?' 했더니 한마디 한다. '엄마, 몇 통 가지고 뭘 그래, 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썼어'. 딸이 다니던 직장을 퇴사했다. 재취업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취업난이 심각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젊은 세대가 느끼는 취업난을 지금 나도 조금은 느끼고 있다. 메일로 보낸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읽어보지도 않는 회사도 있다. 물론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밝혀오는 곳도 있다. 막상 그런 내용의 문자나 메일을 받을 때 참 허탈하다. 다행히 연락이 와서 한 곳에 봉사활동을 하게 됐다.


  연락이 온 곳의 자기소개서를 다시 한번 읽어 봤다. '왜 그곳에서 연락이 왔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다른 소개서에 비해 그 소개서는 나의 단점이 많이 쓰여있었다. 자기소개서는 본인의 자랑거리를 늘어놓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 소개서는 그렇지 않다. 내가 자기소개서를 넣은 곳은 그동안 내가 몸담아 오던 곳과는 생판 다른 곳이다. 그래서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곳이었다. 아이들과 관련된 곳이었는데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베이스로 깔고 글을 쓰긴 했다. 내가 그곳에 가서 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내가 이러이러해서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 직장을 정말 오래 다녔다. 끈기가 있다. 그러니 믿고 선택을 해주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거다. 이런 구절도 있다. '경험이 없어 부족하다고도 느낄 수 있겠지만 내가 내민 손을 잡아주면 아이들과 함께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충 이런 식의 소개서였다.  


  뫼비우스 띠는 안과 밖이 연결되어 있다. 안인가 하고 보면 밖이고 밖인가 하고 보면 안이다. 우리의 삶도 그럴 때가 있다. 구성원에 속해 있다가 구성원 밖으로 밀려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다시 직장에 재취업하는 경우도 있다. 수시로 안과 밖을 드나든다. 안에 있을 땐 밖을 잘 보지 못한다. 밖에 있을 땐 안을 잘 보지 못한다. 그것이 한계다. 서로 잘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여건상 그렇지 못하다. 수시로 안과 밖을 드나드는 젊은 친구들을 본다. 그렇게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때만 해도 한번 직장을 들어가면 오래 다녔다. 지금 20-30대는 그렇지 않다. 비정규직이 많다. 시대가 달라졌다. 여건상 한 직장을 오래 다니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거리에서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예전엔 나이 든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청년들이 많다. 그만큼 취업난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쉽게 풀렸으면 좋겠다.


  이력서를 쓰는 사람들 심정은 조마조마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역시나 변할 때마다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도 그런 마음이 드는데 젊은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고민이 많을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자기소개서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복제품들이 많다. 그게 그거 같고 이게 이것 같다. 비슷비슷하다. 나는 오로지 나다. 인터넷에 떠도는 누구나가 아니다. 그만큼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남들은 하지 못하는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 누구인 척하는 것들은 배제해야 한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이력서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 날아가고 싶은 곳으로 훨훨 날아갈 수 있는 멋진 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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