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박과 감금에 동의
우리말을 믿고 얌전하게 요양원에 입소하신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가 우리의 거짓말을 눈치 채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로 다음날 요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밤에 잠을 안자고 요양원을 다 뒤지고 다녀 엉망으로 만들어놨다는 것이다. 아침에는 집에 가겠다고 난리를 피워 붙잡아두느라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약을 좀 더 센 걸로 바꿔야겠고, 다른 분들을 위해서라도 밤에는 침대에 묶어놔야겠는데 괜찮겠냐고 물어본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러시라고 했다.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실 수도 없고, 아버지가 이곳에서 쫓겨 나신다면 더 험한 곳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아버지의 포박과 감금에 동의했다.
아버지가 제 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그 심정이 얼마나 참담하고 비참할지 감히 상상이 안 된다. 그저 그 상황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고 먹먹해질 뿐이다.
아버지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통화라도 한 번 하면서 사정을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요양원은 코로나를 핑계로 면회와 통화 모두를 금지 시켰다. 통화까지 왜 안 되냐고 물으니, 아버지가 시설에 적응하는데 방해된다며 당분간은 연락하지 말라고 한다.
우리는 아버지가 필요한 것을 챙겨드리려 여러 번 요양원을 갔지만, 한 번도 아버지를 직접 볼 수는 없었다. 닫힌 요양원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버지는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저 제발 편안하게 잘 계시길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3주가 흘렀다.
잘 계신다는 요양원 측의 말과, 간혹 보내주는 아버지의 사진들로 우리는 아버지가 요양원에 잘 적응하고 계신다고 믿고 싶었다. 그래야 우리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졌다. 그렇게 눈 가리고 아옹 하는 식으로 우리의 생활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그러나 사실 그때 아버지는 죽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