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제발 저에게 기운을 주세요"
"반찬 좀 가져가라”
아버지가 요양원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혼자 지내면 반찬을 조금씩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엄마는 여전히 혼자 먹기에 너무 많은 반찬을 만드셨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입소하신 후 어머니는 평생 처음으로 혼자 덩그러니 집에 남게 되셨다. 결혼 전에는 대가족 속에서 사셨고, 결혼 후에는 남편과 자식들, 그리고 서울 입성을 원하는 많은 친척들의 방문으로 항상 시끌벅적한 집에서 사셨다. 그래서 엄마는 음식을 만들 때 항상 대여섯 명은 넉넉하게 먹을 수 있을 양을 만들곤 하셨다. 나이 들어 자식들이 모두 분가하고, 아버지와 두 분만 살게 되었을 때조차 엄마는 습관적으로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드셨다.
평생 가지고 있던 습관이 하루아침에 달라지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난 엄마가 하루 빨리 혼자인 생활에 익숙해지셨으면 했다. 엄마에게 반찬을 조금만 만들라고 잔소리를 하니, 먹기 싫으면 오지 말라며 갑자기 버럭 짜증을 내신다.
덜컥 겁이 났다.
엄마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아무도 아버지가 치매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때, 아버지는 별 것 아닌 일에도 순간적으로 화를 버럭 내시곤 했다. 생전 안하던 가구까지 집어 들고 화를 내시는 모습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내 미안해하시는 모습에 나이 드시고 집에만 계시니 그런가보다 하고 무심코 넘겼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일종의 치매 증상 중의 하나였던 화가 많아지는 증상이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혹시나 엄마도... 하는 마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난 당장 짐을 챙겨 엄마 집으로 갔다. 아무리 집으로 오시라 해도 아빠도 없는 텅 빈 집에서 꼼짝도 안하신다. 며칠 만에 본 엄마의 모습은 많이 초췌해지셨다. 전화로는 괜찮다 그러시더니,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수면제 없이는 잠도 못 주무시고, 소화가 안 돼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면서 이젠 아버지가 드실 수도 없는,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잔뜩 만들어두셨다.
식구들 모두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애쓰고 있었지만, 사실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은 없었다.
저녁 식사 후, 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 주무신다던 엄마가 일찍 잠에 드셨다. 내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지셨나 보다. 혼자 여행갈 때마다 “너 뒤엔 엄마가 있다”고 든든하게 응원해주던 엄마는 더 이상 없다.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 많은 할머니가 있을 뿐이다.
난 살짝 거실로 나왔다. 아버지가 없는 거실은 낯설고 이상했다.
항상 아버지가 계시던 곳... 늘 그 자리에 계실 줄 알았던 아버지는 이제 우리 곁에 안 계신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시간들은 어느덧 우리를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데려다 놓았다. 흘러가는 시간이 무서움으로 다가온다.
난 자려고 소파에 누웠지만, 여기저기 아버지 흔적이 남아있는 거실에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TV를 켜보았지만, TV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옆에 어지럽게 수북이 쌓인 서류 더미만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자료를 빠짐없이 모아두고, 파일을 깔끔하게 정리해두는 것을 좋아하셨다. 난 서류 정리를 위해 쌓인 서류들을 거실에 펼쳐놓았다. 중구난방으로 정리된 서류들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류에 박힌 스템플러의 숫자가 늘어난다. 오래 전 서류에는 한 모서리에만 박혀있던 스템플러가 시간이 흐를수록 두 모서리에 이내 세 모서리에 결국에는 네 모서리 모두에 박혀있다. 아버지는 정신 줄을 놓으면서 더 강박적으로 스템플러를 박아댔던 것이다. 스템플러를 뜯어내고, 쓸모없어 보이는 서류들은 버리고, 필요하다 싶은 서류들만 모아 따로 정리하는데 유난히 병원 서류들이 많다. 그 중에 아버지의 메모가 남겨있는 병원서류가 보인다.
‘하느님,
제발 저에게 기운을 주세요.’
몇 년 전 아버지는 지하철에서 아버지를 밀치고 도망가 버린 사람 때문에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셨다. 인파로 복잡한 환승역에서 도착한 지하철을 타려고 계단을 뛰어 내려오던 젊은 남자는 천천히 걸어 내려오던 아버지를 앞지르다 아버지를 밀쳤고, 아버지는 그대로 계단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 사고로 아버지는 고관절에 다리까지 부러져 큰 수술을 해야 했고,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 계셨었다. 이건 그때의 서류였다. 정성을 들인 글씨에서 아버지의 간절함이 보였다. 그때 만해도 몸이 아팠지, 마음이 아프진 않으셨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그때 이미 아버지의 정신도 병들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