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돌이가 된 아빠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모아두었던 서류 외에, 조금 두툼하게 스템플러가 찍힌 병원 서류가 한 묶음 더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지하철 사고 외에 크게 다치신 기억이 없는데, 무언가 싶어 살펴보니 아주 오래 전, 거의 5년도 넘는 병원 진단 서류였다. 그때 이미 아버지는 기억력 저하를 인지하시고, 혹시 치매인가 싶어 병원에 가서 뇌사진도 찍어보고, 정신과에서 상담도 받으셨던 것 같다.
상담 기록에는 사업 실패와 사기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이로 인해 우울증을 겪고 계신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신문을 읽어도 내용을 옮기기 어렵고, 간혹 늘 다니던 곳인데도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서 내리기도 하고, 중요한 결정을 혼자하기 어렵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맙소사... 이렇게 오래 전부터...
우린 아무것도 몰랐었다.
아버지는 병원 상담에 항상 혼자 가셨고, 누구에게도 아무 말씀도 안하셨다.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이 치매라고 한다. 혼자 치매 진단을 받으시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모든 것을 감당 해오셨을 때,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그렇게 혼자 힘겹게 치매와 싸우시다 결국 정신줄을 놓아버리신 것이다.
의사 소견은 치매로 보여 지는 경미한 인지 장애 단계로, 꾸준한 투약을 권해드렸지만, 환자 본인이 치매센터 진료비 지원대상자가 아니다보니, 약값이 비싸서 못 드시겠다는 기록이 남아있었다. 그 약값이 얼마나 한다고, 약을 못 드시겠다고 한단 말인가!
이때쯤부터였던 것 같다. 아버지가 짠돌이가 된 것이...
아버지는 항상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라도 가지고 있는 것을 몽땅 다 퍼주시는 분이셨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지독할 정도로 돈을 아끼셨다. 공짜인 지하철을 제외하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어 다니셨다. 사고로 다리를 다친 뒤에도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걸어 다니셨다.
엄마는 아빠가 우유 하나 안 사다주고, 어디를 가든 돈 한 푼 안낸다며, 다 늙어 왜 저렇게 돈을 아끼는지 점점 미운 짓만 한다며 항상 불만이셨다. 아버지는 아버지 자신에게도, 엄마에게도 심지어는 그렇게 예뻐하던 손자, 손녀에게 조차 돈 한 푼 안 쓰는 지독한 구두쇠 할아버지가 되었다.
나중에 보니 아버지 통장에는 4천만 원이 넘는 돈이 모아져있었다. 돈을 버신 적도 없고, 수입이라고는 우리가 드리는 용돈이 다인 분이 많이도 모아 놨다. 이 돈을 모으기 위해 아무리 다리가 아파도 걸어 다니셨을 것이고, 아무리 목이 말라도 물 한 병 안 사 드셨을 것이다.
이 돈 때문이었을까....
아버지는 어느 때 부턴가 본인은 다 준비를 해놓았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땐 몰랐다. 그것이 무엇을 준비해놓았다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