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 사형이다.”

유한한 인생 무한한 인생처럼

by 민진


항상 미안해하셨다.
항상 괜찮다고 하셨다.



우리가 생활비를 드리면 항상 미안해하시고, 필요한 걸 사드리려고 물어보면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항상 괜찮다고 하셨다. 그렇게 미안하면 자식들 힘들게 돈 벌며 학교 다닐 때, 대출로 결혼 할 때, 대출로 독립 할 때, 일 좀 하셔서 도와주시지... 아버지는 그냥 술만 마시며 미안해만 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미워했던 적도 많았다.

대학 다니면서 커피 한잔 맘 편히 못 마셨다. 친구들과 맘 편히 여행가본 적 없고, 몸이 아파도, 주말이어도 알바를 쉬어 본 적도 없다. 집에 와보면 아버지는 술만 마시고 있고, 그런 아버지가 미웠다. 그땐 아버지의 절망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많이 싸웠고, 남 같으면 인연을 끊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는 열심히 일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우리에게 먹이고 싶어서 두 손 가득 빵을 사오던 모습이, 그 빵 먹고 배탈이나 밤새 설사하던 우리를 번갈아 엎고 병원으로 내달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사업이 망하기 전에는 술도 많이 안 드시던 분이셨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시던 분이셨다. 그러나 한번 무너져버린 아버지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셨다. 마치 생을 포기한 사람처럼 그렇게 술만 마셨다. 많은 시간을 술과 원망으로 보내시던 아버지는 우리가 대학가고 각자 알바를 하며 생활해나가자 조금씩 나름 안정을 찾아가셨다. 그러면서 술도 줄이시고 다시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을 보이셨다. 그러나 시간은 아버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미 그 당시 예순이 훌쩍 넘어버린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아니 거의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을 찾으셨고, 다행이 경비 자리를 구하실 수 있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한테 지기 싫어하고, 자존심이 강하셨던 아버지는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모습 보이기 싫어 두문불출하며 살아오셨다. 그런 아버지가 경비를 하시겠다고 하셨을 때, 우리는 얼마 못가 그만 두실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아버지는 정말 열심히 다니셨다. 아주 오랜만에 아버지의 활기차고 의욕 넘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좋았다. 그러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아버지의 열정은 얼마 오래가지 못했다. 한 달쯤 지나, 아버지는 허리가 아파서 그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경비가 아니라 청소였다. 예전에도 허리 디스크 때문에 고생하셨던 분이 청소 일을 하면서 다시 도지고 만 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한 달 일하고, 두 달 넘게 치료를 받으셨다.


우리가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몸도 안 좋은 고령의 아버지가 일하기를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우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허리 치료를 받자마자 열심히 일을 찾으러 다니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버지는 그 뒤로 더 이상 일자리를 구하진 못하셨다. 무엇이 그렇게 아버지를 절박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야속한 세월은 아버지에게 남겨진 기회들을 거침없이 걷어가 버렸다.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빠삐용(원작)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 너의 죄명을 알겠나? "

" 전 결백합니다. 난 죽이지 않았어요. 증거도 없이 뒤집어씌운 겁니다. "

" 그건 사실이다. 너의 진짜 죄명은 살인과는 상관없다"

" 그럼 무슨 죄죠? "

" 인간으로서 가장 큰 중죄로 널 기소한다. 그건 인생을 낭비한 죄! 사형이다.


빠삐용은 이 말에 더 이상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 못한다. 인생을 낭비한 대가로 처벌을 받을 대상이 비단 빠삐용뿐일까. 아버지는 그러한 죄목에 당당할 수 있을까. 그럼 나는?! 위의 판결로 하면 아버지나 나나 둘 다 ‘유죄’,‘사형’ 판결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책 하나 쓴다고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떤 작가는 책을 쓰기 위해 카페 알바를 하고, 어떤 작가는 직장을 다니며 글을 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글만 써서는 먹고 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었던 나는 다시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했다.


통장 잔고에 따라 몇 달 씩 알바를 하고, 그만두면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했지만, 막상 쉬면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마냥 게으름만 부렸다. 글을 쓰는 것도, 그렇다고 제대로 즐겁게 보내는 것도 아닌, 그냥 뒹굴거리기만 했다. 시간나면 해야지 했던 일들은 '내일부터’, ‘모레부터’, ‘다음주부터’라는 식으로 한도 끝도 없이 미뤄지기만 했다.


계획은 미뤄지고, 수도 없이 바뀌다가는 결국 삭제되곤 했다.

오늘 마신 커피를 내일도 당연히 마실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 같다.

오늘 탄 지하철을 내일도 당연히 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 같다.

이렇게 당연한 듯 주어지던 일상이 어느 순간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 시간이 올 텐데...


유한한 인생을 살면서 무한한 인생을 사는 것처럼 여유를 부린다.


이전 20화걸어 다니는 운기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