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괜히 엄마 속만 상하게 할까봐, 아버지가 5년 전부터 병원에 혼자 다니고 있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랑 마주 앉아 있는 것도 자신 없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요양원에 전화를 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랑 통화를 해야겠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침을 드시고 주무신다고 한다. 난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어디 아프시냐고 물어봤다. 그런 건 아니고, 간혹 오전에 잠깐씩 주무신다며 잘 지내고 계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난 아버지가 커피믹스를 좋아하시는데, 일어나시면 한잔 드리라고 부탁하니. 당뇨 때문에 안 된다고 나중에 상태 봐서 드리겠다고 한다.
아버지는 하루에 기본 3,4잔의 커피믹스를 드시곤 했다. 설탕 때문에 너무 많이 드시지 말라고 말려도 소용없었다, 건강에 안 좋은 건 알지만, 너무 좋아하시던 거라 하루 한잔 정도는 드셔도 좋을 듯싶었다. 커피믹스 말고도, 지금 아빠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잠도 원하는 시간에 잘 수 없고, 식사도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한다. 목욕도, 옷을 입는 것도...뭐 하나 아빠가 당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치매라는 죄로 너무 가혹한 감옥에 갇힌 것 같다.
드라마 “슬기로운 감방 생활”을 보면 죄를 지은 죄수들이 아빠 보다는 더 좋은 조건으로 수감 생활을 하는 것 같다. 적어도 그들은 커피믹스 정도는 마실 수 있는 것 같았다. 난 포기하고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는데, 그 잠깐 사이 난리가 났다. 알고 보니 아버지는 주무시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뒤늦게 이를 알아챈 요양원이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 응급실로 가고 있다며, 보호자가 쫓아오라고 연락을 한 것이었다. 오빠는 지방 출장 중이라 다급하게 우리에게 가보라고 연락을 했고, 다행이 연락을 받은 동생이 먼저 출발했다.
그러나 코로나로 적지 않은 병원들이 응급 환자를 아예 받지 않았고, 그나마 환자를 받는 몇몇 병원조차 미열이 있는 아버지를 받아주는 병원은 없었다. 아버지를 태운 구급차는 한참을 헤매고 나서야 겨우 입원 가능한 병원을 찾아냈다.
도대체 코로나 환자가 중요한지, 죽어가는 응급환자가 중요한지 묻고 싶었다. 그 당시만 해도 사망자 몇 명에 일일 확진자 몇십 명 정도로, 대부분 경증의 코로나 환자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때문에 혼수상태 환자가 입원할 병원을 못 찾아 서울 시내를 반나절이 넘게 뒤지고 다녀야 했었다. 아무리 위독한 상태여도 무조건 코로나 검사부터 받아야 했고, 아버지는 여전히 의식이 없는 채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기 상태로 기다려야 했다. 다행이 음성 판정이 나와 입원을 할 수 있게 됐고, 혼수상태의 원인을 찾기 위한 온갖 검사가 시작되었다.
모든 식구가 제 정신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혼수상태로 응급실로 실려 간다는 전화를 받은 엄마는 충격으로 쓰러져 팔이 부러졌고, 우린 우리대로 우왕좌왕 뛰어다녔다.
3주 만이었다.
거짓말로 요양원에 아버지를 억지로 집어넣었는데, 겨우 3주 만에 멀쩡하게 걸어 들어가셨던 분이 혼수상태로 실려 나온 것이다.
우리가 아버지를 저 지경으로 만든 것 같아...
우리가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것 같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3주 만에 다시 본 아버지의 모습은 처참했다. 어떻게 사람이 단 3주 만에 저렇게까지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나 싶어 가슴이 미어지고, 울화가 치밀었다. 치매 증상 외에 신체적으로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아무 문제도 없으셨던 분이었다. 그런데 단 3주 만에 아버지는 엉덩이와 발뒤꿈치에 욕창이 생기셨고, 손목과 발목은 얼마나 묶어놨던지 시꺼멓게 아니 새까맣게 피부가 죽어 있었다. 아버지의 손발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이대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것이 아닌가 싶어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나시려
하시는 것 같아,
이렇게 가시지 말라고,
이대로 떠나지는 말라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