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하다'
Time costs lives.
시간은 생명을 소비한다.
- 댄 페나 -
인간 모두의 동일한 운명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다.
내가 나의 죽음을 맞이할 때, 난 무엇을 가장 후회하게 될까. 그런데 인생이 꼭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 하나. 그냥 좀 놀면 안 되나. 좀 대충 살면 안 되나...
2002년 영국 청소부로 일하던 19세의 마이클 캐롤은 1파운드를 주고 산 로또에 당첨 180억 거금을 수령하게 된다. 그는 당첨 후 유흥에 빠져 4,000여명의 여자와 잠자리를 하고, 한때는 범죄에도 연류되는 등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리고 당첨 후 10여년 후 2013년에 파산하게 된다. 파산 후 그는 정신 차리고 헤어졌던 전처와 재혼을 하고 일자리를 찾는 등 다시 열심히 살고 있지만, 한 인터뷰에서 한 인터뷰에서 로또 당첨 후 10년간의 방탕한 생활에 대해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1파운드로 내 인생 최고의 10년을 보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범죄까지 연루된 방탕한 생활을 칭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로또 당첨 후 인생 말아먹은 많은 당첨자들 이야기 사이에 그가 유독 기억에 남았던 것은 그의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라는 말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후회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할 정도의 인생이라면 뭔가 엄청난 업적을 이루어 내거나, 아니면 아주 근면 성실하게 한 점 후회도 없이 열심히 살아오거나... 같은 인생에서 할 수 있는 말이지, 범죄까지 저지르며 몇 천 명의 여자와 방탕한 생활을 한 후에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머릿속에 아직도 고등학교 윤리 책 한 권 정도는 탑재하고 있는 내 머리로는 납득이 안 되는 말이었다.
'도대체 뭘 잘했다고 저런 말을 하지?'
틀에 박힌 생각에 갇혀 버린 나의 한계에 대한 답답함이었을까... 나는 그의 도발을 넘어 막돼먹기까지 한 삶에 부럽기까지 했다. 우린 모두 한 번 뿐인 인생을 살고 있다. 후회 없는 삶에 대한 기준은 교과서도, 선생도, 철학가도 아닌 오롯이 본인의 만족감이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범죄와 방탕한 삶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근면 성실한 인생’ 뭐 이런 뻔한 도덕적인 기준에 얽메이지 말자는 것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는 거니까. 나도 범죄까지는 아니어도 상또라이짓을 하더라고 당당하게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국내당일여행에 몇 번 참석했던 적이 있었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국내 관광 명소를 구경할 수 있는 상품들이 꽤 많았다. 한 번은 버스 옆자리에 앉았던 여자와 함께 숲길을 걸었던 적이 있었다. 벤치에 앉아 잠시 쉬는데, 그 여자가 뜬금없이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의아해보는 나에게 여자는 자기는 여행을 좋아해 평생 길 위에서 산 것 같다며, 이제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언제든 이렇게 여행 다니다 죽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이어도 상관없을 것 같다고...
‘충분하다!’
도대체 뭘 얼마나 어떻게 했길래 ‘충분하다’는 기분이 드는 것일까?
항상 부족했다. 돈도. 시간도. 만족감은커녕 불만만 충분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한때, 예전에 가끔! 충만한 느낌이 들 때가 있긴 했었다. 아주 오래 전 일을 하며 간혹, 긴 배낭여행을 다녀오며 공항에서 잠깐. 팔 다리가 쭉 뻗어나가며 내 몸이 하늘로 솟구치는 듯한 ‘뿌듯함’ .... 맞아... 그럴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팔다리가 쪼그라들고 구겨져 좁은 상자 안에 처박혀있는 듯한 기분이다.
‘뿌듯함’같이 건전한 느낌이 아니더라고, 미친 듯이 즐겁기라도 하던가. 놀면 불안하고 일하면 짜증나고 뭐 하나 시원한 것 없이 어정쩡한 고만 고만한 지루한 인생. 지금 나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지 않다. 틈만 나면 침대와 한 몸으로 핸드폰을 끼고 살고, 오직 배고플 때와 화장실 갈 때만 직립보행이 가능한 인간임을 확인하는 나에게 아버지가 ‘정신 차리라’고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하고 싶어도 더는 아무것도 해볼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때가 올 거라고... 그러니 누워만 있지 말고 지금 당장 일어나 무엇이든 해보라고... 그렇게 나를 꾸짖고 계시는 것 같았다.
아마존 설립자 제프 베조스는 무언가 결정을 할 때, 미래 80살의 관점으로 생각해 본다고 한다. 80살이 되었을 때 절대 후회하지 않을 일. 시도조차 하지 않은 일은 후회가 되어 평생 자신을 쫒아 올 것이기에, 실패하더라도 일단 해본다고 한다.
지금의 나를 80살의 관점으로 생각해봤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달콤함에 탐닉하던 초콜렛이 치통으로 남아 나를 괴롭히는 것처럼, 귀찮음과 게으름을 탐닉하던 시간들이 후회로 남아 죽는 순간 내 발목을 잡고 늘어질 것 같다.
만약 당신이 15년 전에 했었다면,
10년 전에 했었다면,
5년 전에 했었다면,
6개월 전에 했었다면,
지금 그 자리에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 댄 페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