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진 Jun 30. 2022

메멘토모리 까르페디엠

무한리필


Memento mori (메멘토 모리)
Carpe diem (까르페 디엠)

당신도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현재 순간에 충실하라

                                                 



아버지가 혼수상태였을 때우리는 무조건 아버지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내달렸다다행이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되찾으셨고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뻐했다그러나 우리는 단 한 번도 아버지 스스로가 살아남에 안도하거나 기뻐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오히려 제정신으로 돌아오시면 원망으로 눈물을 흘리곤 하셨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아버지가 죄를 지어 벌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단지 나이가 들어 병이 든 것뿐인데도아버지는 자신이 죄를 지어 벌을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셨다그러면서 당신은 단돈 천원 한 장도 남의 돈을 훔친 적이 없고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을 해코지 한 적이 없다며 억울해하셨다     


사람 사는 세상이 착한 사람은 복 받고나쁜 사람은 벌 받는 그런 공평한 세상이었나세상은 불공평하다아빠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일 텐데 떼를 쓴다오히려 착한 사람은 하늘이 사랑해서 더 빨리 죽고나쁜 사람은 욕 많이 처먹어 오래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착한 사람은 이래저래 살기 녹록치 않은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이곳이다     


원망한다고 들어줄 사람도해결해 줄 사람도 없다하느님부처님종교가 없는 내 입장에서 보면적어도 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이 이렇게 부당함과 불공평이 넘치는 이런 엉망진창인 세상 일 리 없을 것 같다이것도 신의 뜻이라고그런 신이라면 뭐 하러 믿고 따르나!  

 

난 새로 산 옷과 간식을 준비해 요양원에 가서 상담을 요청했다그리고 나중에 혹시라도 아버지에게 응급상황이 발생하면응급실로 이송하기 전에 우리가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요양원 측은 응급상황에서 그럴 시간이 없다며 일단 자기네가 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모시고 가면보호자는 병원으로 직접 오면 된다고 한다     


지난번에 한번 해봐서 그런 절차는 안다.           


난 아버지가 어떤 생명 연장 치료도 원하지 않으셨다고 말하고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방치하라는 것이 아니라우리가 병원으로 모시고 갈 수 있게어떤 치료든 우리의 동의하에 이루어질 수 있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행정상의 절차보다 한 인간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부탁하고 싶지만그 사람들에게 아버지는 단지 입소자 중 한명일 뿐이다.           


고통스러운 생명 연장을 원하지 않은 아버지를 위해 병원과 요양원을 오가는 죽음의 사이클만은 멈춰드리고 싶다때가 되면 지켜드리려 애쓰기보다는 고통스럽지 않게 잘 보내드리려 애쓸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내일 일지한 달 후 일지일 년 후 일지 모를 일이지만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지금이 순간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전화도 자주 하고시간되는 대로 자주 찾아가 뵙고,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도 넘치게 자주 해드리겠다오늘은 컨디션이 좋으신지 옷도 마음에 든다고 하시고간식을 챙겨왔다고 하니 고맙다며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신다아픈 뒤로 아빠가 울보가 되어버렸다     


당신의 젊음을 받쳐 키워 온 우리가 뭐 그리 대단한 걸 한다고 그렇게 고마워하시고그렇게 미안해하시는지...     


시간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지팡이를 짚고 걸어가시는 분이 내 부모가 될 줄 몰랐다요양원 창살로 창밖을 내다보는 분이 내 아빠가 될 줄 몰랐다집에 가면 언제나 왔니하면서 나를 반길 것 같았는데...     


아빠가 가시는 길을 언젠가는 나도 가야 할 날이 올 것이다더 이상 내가 나 자신을 챙기기 힘든 그런 시간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그런 시간들이 올 것이다그리고 언젠가는 영원할 것 같았던 이 모든 것들이 끝나는 순간이 오겠지시간은 무한리필되는 것이 아니다그것이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해야 하는 이유다     

이전 15화 앉아서 자는 아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