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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마흔 Jul 30. 2024

어묵은 오뎅맛이 안 나



 카톡!

 [경동택배] 배송 안내

 경동택배? 엄만가? 아빠 병시중으로 정신없을 텐데, 또 뭘 보냈을까?

 아침 8시도 안 돼 카톡 하나가 뜬다. 분주한 시간이라 미처 열어보지 못했다. 경동택배는 대부분이 시골에서 오는 택배다. 

 여느 날처럼 일찍이 책상에 앉았으나 뒤숭숭한 것이 집중이 되지 않았다. 어제 읽다가 만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을 이어서 보았다.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중요한 기능들 중 하나는, 고통을 보다 잘 견디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데 있다.'라는 문장과 '슬픈 일들이 더 슬퍼지는 건 우리가 혼자 슬픔을 견디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을 수첩에 적어 놓았다. 예술을 '글'로 바꿔 읽으면 곧 작가의 역할이 되기에 한 자 한 자에 의미를 담아 가며 읽었다. 이어서 쌓여 있는 동시집을 읽고 김연수의 에세이를 읽었다. 두 시간 동안, 쓰기 위해 읽었으나 백지는 채워지지 않았다. 

 숲에 가야겠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듯 무언가 복잡한 날엔 절로 숲이 당긴다. 핸드폰과 손수건 한 장만 챙겨서 나가려는 순간 낯선 번호의 전화가 온다. 택배다. 아, 택배! 

 어묵이다. 시누이의 둘째 시누이, 그러니까 나에겐 사돈 되는 분이 다대포에서 어묵 공장을 하신다. 몇 년 전 어묵을 보내주셔서 가벼운 답례를 했더니, 그 이후로 잊을만하면 선물이 날아온다. 비싼 고래사 어묵부터 떡볶이에 넣기 좋은 사각 어묵, 모듬 어묵탕, 손가락처럼 길쭉길쭉한 어묵 등 종류별로 들어있다. 이번엔 뽀빠이 소시지처럼 생긴 '어세지'도 몇 봉지나 들어 있다. 어머님과 나눠도 한참 먹을 양이다. 오늘 저녁 메뉴는 어묵탕이다. 나머지는 냉동실에 바로 넣고 숲으로 향했다. 

 연일 비가 온 탓에 계곡물이 는 모양이다. 들어서자마자 물소리가 귀를 울렸다. 도심에서 100m도 채 떨어지지 않는 곳에 완벽한 숲이 있다는 게 놀랍다. 그러면서도 자주 오지 못하는 건 변명 같다. 소리만으로도 이미 시원해진다. 난간에 기대어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물줄기를 한참 바라보았다. 구름에도 위아래 층이 있듯 물줄기에도 위아래 겹이 있다. 큰 물줄기 아래 작은 물줄기가 잰걸음으로 흘러간다. 단지 몇 걸음 위로 올라갔을 뿐인데 물소리가 달라졌다. 다시 돌아와 물소리를 비교했다. 물은 그저 흐를 뿐이었으나 바위와 돌의 생김새에 의해 소리가 달라졌다. 소음은 폭포에서 증폭되었다. 절벽이 있어야만 폭포가 되는 물의 운명이다.

 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때 막내 오빠가 6학년이었다. 오빠는 여덟 살에 입학했으나 그 이후로 한 번도 학교에 못 갔다고 했다. 농사일에 바쁜 엄마는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나를 오빠에게 떠맡긴 모양이고 아빠도 이를 묵인한 모양이다. 그다음 해에 다시 입학해서 1학년이 되었다. 6살 터울인 우리가 일 년이라도 같이 국민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이유다. 여태 별생각 없이 살다가 작년에서야 혹시나 오빠가 그 일로 나와 부모에게 원망이 있는 건 아닌지 물어보았다. 오빠는 절대 그렇지 않으니 염려치 말라고 했다. 오빠가 넷이나 있었지만, 터울 많은 탓에 형제의 정을 나눈 기억은 막내 오빠가 거의 유일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빠들이 이불 귀를 하나씩 붙잡고 비행기를 태워준다고 트램펄린에서처럼 나를 날려줬던 기억은 있지만 대부분의 기억이 캄캄하다. 

 1학년에 입학해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막내 오빠가 쉬는 시간에 우리 교실을 찾아왔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어디 보자, 내 동생 어디 있나? 혹시나 괴롭히는 것들은 없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교실 뒷문으로 들어온 일이 내겐 감동이었다. 보디가드 같기도 하고 깡패처럼 거들먹거리는 모습 같기도 했지만, 살면서 몇 번 느껴보지 않은 든든함이었다. 

 시골장은 3일, 8일에 열렸다. 엄마는 맡아 놓은 자리도 없으면서 콩이든 깨든 무언가 팔 물건을 가지고 장날에 동참했다. 남의 가게 앞이나 건물 모서리 어딘가에 앉아 서툰 진열을 하고 흥정을 해 구깃해진 돈을 건네받았다. 그 돈으로 새 호미를 사고 농약을 사고 죽은 전어와 도시락 반찬 할 손가락만 한 어묵을 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기름 묻은 번들번들한 까만 봉지가 찬장 기둥에 걸려 있었다. 냄비 뚜껑까지 열고 반찬을 훔쳐 먹는 고양이를 피해, 도둑고양이보다 더 무서운 우리 눈을 피해 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 못에 걸어두었다. 순경보다 빠른 건 도둑이다. 엄마보다 더 약삭빠른 건 우리다. 어디에 무얼 숨겨놓던 찾지 못할 음식은 없었다. 학교 다녀와 배가 고픈 우리는 고소한 어묵 냄새를 외면할 수 없었다. 오빠가 나를 번쩍 안아 까만 봉지까지 올려주면 원숭이처럼 봉지를 걷어 내려왔다. 고소한 어묵이 열대여섯 개쯤 들어 있었지만 마음껏 먹을 수 없었다. 당근과 파가 씹히고 어쩌다 무른 살덩이가 씹혀 고기보다 맛있던 어묵이었다. 재화는 몰랐지만 다 먹으면 안 된다는 눈치는 있었다. 한 두어 개씩이나 먹었을까? 표나지 않을 정도로 먹고 비디오를 되감듯 다시 원래 자리에 걸어두었다. 고양이가 먹든 우리가 먹든 도둑맞은 건 마찬가지다. 엄마는 봉지 밑이 뜯긴 흔적이 없음에도 어묵 양이 줄어 도둑고양이 짓이 아니란 걸 알았을 테지만, 사라진 어묵의 행방에 대해선 묻지 않았고 어쩌면 우린 더 많이 먹지 않은 걸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여보, 오늘은 어묵탕이야."

 불금엔 무언가 특별한 메뉴를 원한다. 영화도 한 편 봐야 하고 맥주도 한잔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같이 어묵이 박스째 들어온 날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싯물을 진하게 우려낸다. 디포리와 멸치, 대파와 매운 고추를 넣어 기초부터 정성을 들인다. 모듬 어묵 한 봉지를 썰어 넣고 간장과 마늘을 다져 넣는다. 특별히 표고버섯에도 별 모양 칼집을 넣어 궁중음식 같은 멋을 낸다. 고추 하나를 또 넣어 맛뿐만 아니라 모양새도 만들어준다. 마지막에 후추를 톡톡 처넣으면 더할 나위 없는 어묵탕이 된다. 곁에 있는 남편에게 숟가락을 건네며 "맛 좀 봐라."라고 뉘앙스에 변주를 준다. 감탄사 대신 음미하는 소리가 길다. 뭔가 부족하단 뜻이다. 

"좀 더 진한 맛이 나야 하는데..." 부족한 맛이 무언지 찾는다.

"어묵탕이라서 그래 여보, 어묵은 오뎅맛이 안 나."

남편이 찾던 조미료가 바로 그것이었다는 듯 포기하고 돌아서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 온다. 그리운 옛날 오뎅맛이 되살아나기라도 할 양 오래전 추억을 꺼내며 오락가락 장맛비 속에 뜨끈한 어묵을 건져 먹는다. 사라진 많은 것들 가운데 살아남은 소중한 기억이 떠올라 소주마저 단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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