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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움트겠지

첫 번째 참패

by LEESHOOP 리슙 Feb 28. 2025




나는 학교가 인생은 미리 실험해 보는 안전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시험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재능을 발견하는 곳, 자기의 과제와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을 배우는 곳,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언제 필요한지를 깨닫는 곳, 인생과 사회에 대한 가치와 신념은 탐구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내가 볼 때 그런 것들이야말로 지식 위주의 교과 과정보다 더욱 매력적인 교육이다.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학생들 모두에게 황금 씨앗을 주어야 한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고 한다. "왜 우리는 학생들에게 그들의 본질은 가르치지 않는가? 우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넌 네가 누구인지 아니? 넌 하나의 경이로움이야. 넌 독특한 아이야. 이 세상 어디에도 너하고 똑같이 생긴 아이는 없어. 네 몸은 한번 살펴봐. 다리와 팔, 귀여운 손가락, 그것들이 움직이는 모양 등 모두 하나의 경이로움이야. 넌 세익스피어, 미켈란젤로, 베토벤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어. 네게는 어떤 것이든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넌 정말로 하나의 경이로움이야"


-찰스 핸디,《코끼리와 벼룩》








 그의 말처럼 황금씨앗을 심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겨울방학 두 달 동안 정규수업 말고 별도의 수업을 무료로 만들어 봤다. 중학교 1학년 친구들 중 그나마 올 가능성(?)이 있는 세 명을 데리고. 수업의 이름은 이름하야 [책 읽기]. 대학교 때 가장 좋아했던 교양 수업의 이름을 그대로 따라 지었다. 목표는 8주 동안 책 두 권을 읽고 5번 모이기. 한 권은 인디고 서원과 청소년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지 《인디고잉》, 다른 한 권은 거기에서 다룬 박민경 작가님의 책 《사람이 사는 미술관》이었다.

  


박민경(효주) 작가님의 브런치 스토리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름 신경 써서 질문지도 만들어 보고, 토론도 꿈꿨다. 최재천 교수님의  《숙론》을 읽은 후부터 꼭 건강한 토론을 해보고 싶다는 꿈에 부풀어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웬 걸, 다섯 번의 모임에 세 명이 모인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나마 출석률이 좋은 친구가 세 번 왔다면 말 다 했지 뭔가. A가 빠지면 B, C 가 빠지고, 다음에 B가 오면 A, C가 오지 않는 식이었다. 그마저도 읽어오라는 데까지 읽어오지 못했고, 오라는 시간에 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덕분에 토론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전원 참석하는 게 이다지도 어렵다니, 의아했다. 왜냐하면 세 명 모두 반년 에서 1년 이상 함께 해오면서 휴가나 학교 행사를 제외하고는 수업을 빠진 적이 없 때이다. 학교 성적도 좋고 숙제도 잘해온다. 정규수업과는 180도 다른 출석률 때문에 허탈했다. 보통 학원들은 방학 때 더 바빠지기 마련이기에 없는 시간을 쪼개서 나름 야심 차게 계획한 수업이었는데 말이다. 한창 속상해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제껏 주어진 질문에 정해진 답 고르기에만 익숙해서,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본 적은 거의 없었겠구나. 그래서 어려워겠구나.' 마지막 수업 때 많이 어려웠냐고 물어보니 역시나 다들 그랬다고 곧잘 대답한다.


 그만큼 일방적인 흡수만 허겁지겁하느라 자신의 생각은 마음껏 들여다보지도 펼치지못했을 거란 사실 양심 쑤셔왔다. 문제를 많이 풀고 많이 맞을수록 좋은 거고 문제를 적게 풀고 적게 맞을수록 나쁜 거라는, 진짜 나쁜 관념을 심는데 나도 분명 일조했을 테니 말이다. 크게 긋는 동그라미에 희열을 느껴 곡예하는 느낌으로 공부하지 않기를 바랐면서 또한번 잊고 살았다. 공부하는 이유의 일순위 칭찬과 박수가 되어선 안 된다. 그런 공부는 자기 앞길만 바라보게 하고 종국에는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습된 무기력 역시 그에 따른 결과이다.


배움 항상 '수용'과 '공유' 두 가지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가르치는 사람은 학생 스스로가 품은 의문, 자신에게서 태어난 호기심이 싹을 틔워 마음껏 자라나도록 계속해서 좋은 씨앗, 황금씨앗을 뿌려줘야 한다. 언제까지 얼마큼 자라야 한다는 기준 없이,욕심 없이. 나중에는 뿌렸다는 사실도 잊어야 한다.



 힘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그들은 씨앗이고, 원래 농사는 매우 힘겨운 일이라는 사실을 떠려 본다. 특히 사람 씨앗은 언제 발아할지 아무도 모른다. 만약 지금이 아니라 10년, 20년 먼 미래에 싹이 나더라도 괜찮다. 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불현듯 자라나 숲까지 이룬 나무들을 이들이 마주하게 된다면 그 또한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일일 것이다. 재발견은 삶의 또 다른 선물이자 기적이니까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디시 마음이 설레온다.




You can lead a horse to water, but you can't make it drink.
말을 물가에까지 데려갈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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