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보다 중요한 것

8

by 라한
NREMpIrDQBYogHRruw%3D


8. 식사보다 중요한 것


잘 모르겠다.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지, 연못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은 어떤 낯선 한 번도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세자라는 신분의 남자였다. 하지만 자기는 분명히 성은 선 씨이고, 이름은 예지인 선 예지인데, 이게 뭐지 싶어서 멍하니 한숨만 짓는다. 자신을 따라붙은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뭐하라, 뭐 하냐부터,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부모님 잔소리는 애교였을 수준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선배를 닮은 저 권신이라는 호위무사였다. 잘생겼다 생각했고, 선배처럼은 아니지만 좋았다. 선배 느낌이 아니었다. 아닌가, 뭔가 차가운 선배 같았다.


권신을 보다가, 자신을 이곳으로 끌고 온 사람들이 들어온다. 스승이라고 한다. 옛말에 군사부일체라 하여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같다고, 시강이라는 것을 시키는 사람들, 경서라는 이름의 책과, 사적이라는 이름의 책을 가르친다. 처음엔 한문도 모르는데 이건 왜 해, 싶었지만 이상하게 배우기를 걸음을 시작할 때부터 포기했던 한문이 술술 읽혔다. 처음엔 신기해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하고 싶지 않았는데 계속 끌려다닌다, 개인 시간이 없다. 왕자라면서, 세자라면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세자라면서!! 억울하다. 이런 몸에 갇혀, 과거에 갇혀서 휴대폰이 없는 지금도 너무 외톨이가 된 거 같은데, 이런 시강은 무슨 시시꼴꼴한 짓에 시간을 보내는 게 안타깝고 불쌍했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싶을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우울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권신의 얼굴을 보며 참는다. 그만큼 선배가 보고 싶다. 선배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문득 생각하게 된다.


스승이라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사극 같은데 보면 스승은 한 명이었던 것 같은데, 실상은 참 많다. 대소변을 보는 것도 불편하고 자유가 일절 없는 궁궐 생활이었다. 무슨 단서가 있을까 찾아보았지만, 헛수고였고 그럴 때마다 전하께서 아시면 어쩐다고 난리다. 전하라, 아버지라, 왕이라, 그 사람은 누구지, 나는 지금 어느 시대에 있는 걸까 생각하는 예지였다.


하늘은 걱정많은 예지와 다르게 어쩜 이렇게 구름 한 점 없이 밝고 참 좋은지, 날씨는 참 좋았다. 그거 하나와, 권신만이 위안이었다.


“저하, 먼저 오셨습니까”


예를 갖춘다고 말하는 저 사람, 싫다. 가장 지적질을 많이한다. 질문도 많이한다. 그래서 싫다. 이 개꿈같은 배울 시간,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


“군자는 고로”


재미없는 말들이 이어진다. 공자가 말하기를, 맹자가 말하기를 하면, 그 말들은 어떻게 다 기록한 것인지, 누군가 따라다니면서 다 일일이 기록한 건가, 그때 종이는 있었나 몰라, 이런 생각을 하면서 따분한 시간을 참고 있는 예지였다. 아 저기 한 사람 있었다. 서기관이라고 했나? 꽤 직급도 높다고 했다. 에이 모르겠다. 이런 걸 왜 하는지, 그런데 어째 가끔은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 몸의 원래 주인이 해놓은 것을 답습하는 걸까 하는 이상한 생각도 떠올랐다. 몸의 주인이라, 그럼 다시 빼앗기는 건가, 여긴 정말 꿈의 꿈인 건가, 아니면 진짜 과거로 온 건가, 복잡한데, 자유는 또 없어서 늘 뭐지, 어떡하지만 반복하는 예지였다.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푹 쉬게 되는 예지였다.


세자의 한숨을 보고 시강원 강사들이 세자에게 시선을 고정하였다.


“저하, 참된 군주로 나아가는 시간입니다. 어진 임금만이 귀한 백성을 이끌 수 있습니다.”


말이야 곱다. 생각하는 예지였다.


“이거 다, 성경처럼 지어낸 거 아니예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건지”

“성경이 무엇입니까?”

“불경과 헷갈리신겁니까?”


아, 이 사람들은 아직 성경에 대해서 모르나, 불경은 또 뭐야, 성경은 들어봤어도 불경은 아닌가, 어디서 들어봤나? 성경이 되레 뭔지 묻는 신하들의 질문에 예지는 무시하고, 모른 척 넘어간다. 나중에서는 강사들이 질문을 하지 않고 따라하라고만 한다. 예지의 대답이 잠시, 아픈 세자가 정신이 조금은 혼미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듯 스스로들을 위로하는 느낌이었다.


그대로 따라 하라고 해서는 따라 했는데 못 미덥다는 표정을 짓고 예지를 보는 강사들이었다. 그들은 느꼈다. 평소와는 다른 세자의 모습을 느꼈다. 매사에 진중하고, 열정을 보였던 세자의 모습이 아니라, 시간을 때우기 위해 앉아 있는 저 모습은 마치 그 몸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저하,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공자, 맹자, 왈, 옛 어른들의 말씀은 다 좋지요. 근데 그분들 말씀 들어서 만든 나라가 이 나라 조선이죠?”


답답하다 못해 생각으로 도돌이표를 찍던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밖으로 빠져 나와버렸다. 예지도 말해놓고는 당황했지만, 시강원 강사들보다는 아니었던 싶었다. 그들의 표정은 마치 자기 자식이나 부모와 가족이라도 살해를 당한 것처럼 나라라도 잃은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맹자의 가르침을 실천한 삼봉 선생께서”


삼봉이라는 말 때문이었을까, 세자가 말한 내용 때문이었을까, 놀란 시강원 강사들, 자기들끼리 수군되고 있었다. 예지는 물음표를 그렸다. 그러다 침묵을 먼저 깼다.


“그 말씀들 백 번 천 번 듣는 것 보다 실천하는 게 중요치 않겠습니까? 저는 그만 실천을 하러 가보겠습니다.”


자기가 말해도 멋진 말이었다. 그래 백 번을 듣는 것보다 한 번을 보는 게 낫다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 말을 이렇게 써먹으니 싫은 것도 안 해도 되고 얼마나 좋아, 라고 생각하는 예지의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다는 듯 바로 파훼를 시도하는 강사가 있었다.


“그럼 이번 시강은 이걸로 마치고 모샇ㄴ 것은 저녁에 채우겠습니다.”


일어서서 나가려다 돌아서서 말하는 예지였다.


“또 있습니까?”

“하루 세 번,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식사보다 중요한 시강을 피하시려는 겁니까? 숨어서 피하시기만 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꽤 강하게 나온다. 그럼 나도 강하게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예지였다.


“피한 것이 아니라, 하기 싫은 겁니다.”


이건 강한 게 아니라 너무 솔직했나 싶었다. 저 표정들을 보니 확실해졌다. 좀 심햇다. 어이가 없는 표정들, 나라를 잃은 표정들, 나라 참 잘 잃는 분들이다. 저 분들은, 그런 생각을 하는 예지였다. 눈을 비비고 자신을 보는 저 사람은 지금,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는 것만 같았다. 재미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시대는 저분들이 원하는대로 변하지 않는다. 예지는 그걸 알앗고, 이런 말들이 예지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실천이었다. 백번은 누구나 천번도 누구나 말하지만, 한 번의 실천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선배가 더 멋있었던 것이었으니까.


“하하, 농답입니다. 그럼 다음에 봅시다.”


다음은 없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예지였지만 우선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저, 저하!!”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저 저하는 말, 언제 들어도 낯설다. 저하는 무슨, 나는 선예지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나와 이리저리 두리번 거린다. 대충 길은 외웠다. 이제 궁으로 나갈 수 있는 길도 알고 있다. 이 순간을 기다렸다. 궁을 나가면 자유가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대가 들었다. 왜 사극에서 그렇게 다들 궁을 나가고 싶어하는 지 공감이 됐다. 이 답답한 곳, 감옥 같은 곳!!


*


궁을 빠져나온다. 광화문이란 현판을 돌아보니, 왠지 낯설지 않은 처음 보는 곳이 펼쳐진다. 육조거리, 사진으로 한 번 본적은 있는 것 같은데, 원래는 있어야 할 건물들은 없고, 넓은 거리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코를 찌르는 이상한 냄새들도 함께였다.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혹시나, 혹시나 이 이상한 꿈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예지였다. 예지가 호기심이 깃든 아이와 같이 이곳저곳을 살피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림자가 있었다. 권신이었다. 의경 몰래 한숨을 쉬어가며 뒤따르고 있었다. 원래는 그런 감 같은 건 없었는데, 예지도 뒤따르는 권신을 느꼈다. 처음엔 잘 몰랐으나, 선배를 닮은 권신이라서 느껴지는 건지, 느꼈고 알았다. 부끄러워서 발그레해지는 예지였다. 좋은 느낌이었다. 세자의 붉어진 얼굴을 미처 확인하지 못하는 권신이지만, 알게 된다면 같이 붉어질지, 아니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일부러 권신의 시야에서 사라져 보았다. 이런 게 되는 게 신기했다. 아마 전 주인, 진짜 세자의 노력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건가 생각하는 예지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영혼이 바뀌어도 몸의 재능은 전 주인의 상태를 따라가는데, 그런 건가 생각하는 예지였다.


시야에서 벗어난지 얼마지나지 않았는데 바로 쫓아오는 권신이었다. 그런 권신에 갑자기 나타나서는 고생했다고 머리를 쓰다듬는 예지였다. 권신 놀라서, 당황한 채로 쓰다듬을 받는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어서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랐다. 그냥 가만히 있었다. 돌처럼.


“너무 좋구나”

“예이..”


코를 막으며


“근데 이 냄새,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좀 씨어야..

”... 백성들은 불을 떼기가 힘듭니다.“

”그래..? 조선은 그렇구나.“

”...“


세자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 예지 빼고 다 알 수 잇었다. 이상하다. 참 이상하다 생각할 게 분명했다.


”여긴 아직 보일러가 없으니까.. 음, 내가 그걸 만들 줄 알면 좋을텐데, 아 전기가 없나..“

”?? 저하, 아직 편찮으십니까?“

”아니, 나 팔팔해.. 너무 팔팔해서 답답해 죽을 것 같다고!! 그나저나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여기 나오면 뭐 좀 있을까 싶었는데, 나랑 같은 사람이 나뿐인가“


이상한 말을 늘어 놓더니 갑자기 저잣거리 한복판으로 나서는 세자였다. 권신은 멍하니, 쳐다 보았다.


”여기 대한민국을 아는 사람 있습니꽈!!!“


소리치는 세자의 모습을 보았다. 권신은 놀라 곧장 검집에 손을 가져가 호위태세를 취한다. 의경의 큰 소리에 저잣거리가 한동안 조용해졌다. 모두가 의경을 본다.


그 시선 중, 권신도 의경도 눈치채지 못하게 두 사람을 미행했던 그림자가 있었다. 그 그리자는 말했다. ‘큰 백성의 나라..? 무슨 역적의 소설이구나.’ 싶은 작은 소리였지만, 의경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그쪽을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돌아보니 권신도 보고 있었다.


”역시 없나, 세트장 같으면서도 아닌 것이 신기하네, 근데 이 냄새는 쫌.. 어떻게 살아.. 이런 곳에서.“


코를 부여잡고 부채질을 해대는 세자를 보고 권신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백성의 냄새가 곧 나라의 냄시이고 삶의 냄새라며 좋아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훌륭했구나, 세자는“

”네에..??“

”아니, 그때는 훌륭했다고, 그때는 좋았나보지 뭐...“

”...“


됐다 됐다 손사래치면서 거리를 활보하던 예지는 해시계를 발견하고 뛰어간다. 권신이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함께 만드셨다며 늘 자랑하시지 않았습니까 말한다. 함께? 누구랑? 이렇게 물으니, 할아버님과 누님, 그리고 상왕을 이야기하며, 세종에 대해서, 대호군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는 권신이었다. 그러자 예지는 ”!“를 그린다. 이 시대는 세종의 시대! 문종의 시대겠구나! 선배의 이야기가 떠오르며 그러면 나는 단종인건가? 수양대군을 조심해야겠다!라고 생각이 드는 예지였다.





목요일 연재
이전 07화세녕공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