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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세녕공주
달과 별들이 얼굴을 드러낸 깊은 밤이었기에 잠을 청해야 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지 하는 생각이었다. 거울에 비춰야 할 어여쁜 자신의 모습은 사라지고, 미중년 남성의 모습으로 수염이 자란 걸을 보면 이제 막 스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이 도대체 뭐지 싶었다. 아까 저하라고 한 거 같은데, 뭐지, 꿈인가 싶어서 볼을 세게 꼬집어 본다. 세게 꼬집었더니 매우 아프다. 볼을 어루만지는 예지는 지금 이게 꿈인데도 너무 생생한 꿈이라 볼까지 아프구나! 생각한다.
초롱초롱, 달과 별의 빛을 담은 눈빛이 미쳐 잠들지 못하였는데 어느새 날은 밝았다. 새벽닭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자연의 시계 소리에 이불을 뒤집어 보는 예지였다. 그러다 이불을 내팽개친다. 이불킥 정도가 아닌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날도 밝았다.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문을 열자 놀란 내시가 옆에 있었다. 아랑 곳이 밖으로 나선다. 그러자 내시가 놀라 따라나선다. 흰 소복을 입고 나서는 세자를 보자 그 차림으로 어디를 가느냐 묻는다. 예지가 돌아서 왜? 이게 뭐? 하는데 보니까 소복을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다.
“이러면 안 돼?”
묻는 말에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응수하는 내시였다. 그 표정을 보니까 안되는구나 싶은 건 알겠는데 그런 게 지금 중요한 거 싶은데, 어느새 옷을 가지고 와 걸쳐주자, 자연스럽게 입게 되었다. 진짜 뭐야,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예지였다. 그리고 곧장 밖으로 나왔다.
동궁을 나와 돌아다니는 세자였다. 그 뒤를 줄줄이 따르는 내시들과 호위무사와 궁녀들이었다. 놀라서 쫓아가고 있는 모습이 필시 잡을 수 없는 술래를 잡으려는 술래잡기와 같았다.
*
의경 세자를 쫓는 사람들이 어느새 술래를 놓쳤는지 흩어졌다. 술래잡기에서 숨바꼭질로 바뀐 분위기였다. 신하들이 의경을 찾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모습을 어물쩍 바라보는 한 사람의 그림자가 있었다. 그림자는 천천히 궁궐을 걸으며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살펴보았다. 해양대군이었다.
곧장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채 식은땀으로 이미 다 젖어버린 신하 한 명과 마주친 대군이었다. 대군이 그 신하를 불러세웠다. ‘동궁의 사람이 이리 급하게 무언가를 찾는 건 무슨 일일까, 세자가 무슨 일을 시킨 것인가, 아니면 세자가 사라진 것인가‘ 궁금해진 대군이었다.
“저하께서 말도 없이 사라지기라도 한 것이냐?”
대군의 질문에 어찌 대답해야할지 고민하는 건지, 쉬이 대답을 하지 못하는 신하의 모습이었다. 대군이 신하의 표정을 살피고 주변을 살핀다. 그 모습을 발견한 권신이 달려온다.
“... 아닙니다.”
달려와 말한다. 멀리서 대군의 말을 들었던 건지, 신하 대신 대답하는데 그 대답이 쉬원치 않다. 오히려 궁금증을 크게 불러 모은다. 숨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 뭐지...?”
“시키신 명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못미덥다. 세자의 호위무사들, 동궁의 별운검들이라 불리는 저들, 갖고 싶으나 갖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미련일까, 집착일까, 순간 아버지 세조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이 너무 나선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 여기까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대군이었다.
“그래, 가봐라”
동궁의 별운검이라 불리는 세자의 호위무사들과 내시, 궁녀들의 모습을 다시 살펴보는 대군은 자신의 뒤에 있던 호위무사를 손짓으로 불러 귓속말로 무언가를 지시하는 모습이었다.
*
궁궐의 화원, 세녕과 궁녀들이 꽃을 가꾸고 있는 모습이엇다. 세녕이 꽃을 어루만지고 조금씩 물을 주는데, 덤불 사이로 불쑥 얼굴을 들어내는 의경이었다. 세녕이 놀라서 뒤로 고꾸라지자 의경이 서둘러 덤불을 헤집고 나와 세녕을 붙잡아 안는다.
“괜찮아요?” 하려다가, 내가 세자인데, 이런 말투가 맞나 싶어서 다시 말하는 세자였다.
“아니, 괜찮느냐?”
“뭡니까?”
뭐지? 세자한테 이렇게 말해도 되는건사 싶은 예지였다. 역시 다 꾸미어진 이야기인가, 아니면 꿈인건가, 하는 생각을 한다. 도통 정체를 알 수 없는 지금이었다.
“누님을 그렇게 놀리니까 좋습니까?”
아 누나구나. 하는데 누나? 놀라 붙잡은 손을 놓아 버렸다. 결국 세녕은 넘어지고 말고 아뿔싸 하는 의경의 모습이었다.
“요즘 전하의 속을 썩이더니 이제는 제 속마음까지 썩힐 생각이십니까?”
넘어진 채 꺅, 하는 비명 뒤에 자신을 혼내는 세녕의 모습이었다. 같은 여자가 봐도 아름다워 보였고 첫눈에 반할 거 같은 외모였다. 아니 이제 자신은 남자라서 그렇게 느껴지는 건가 싶었다. 근데 가족이라면서, 나는 가족이 아니라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건가 싶었던 예지의 영혼이 깃든 의경 세자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됐습니다. 오랜만에 얼굴 봤는데 건강해 보여 다행이군요.”
뭐라 대꾸를 하려는데, 뭐라고 말할지 생각이 안난다. 처음 일어났을 때, 다들 눈물을 흘리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을 때 얼핏 본 거 같기도 한데, 그게 오랜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의기소침해지는 예지였다. 그런 세자를 보고 의아하다는 표정과 주변을 살펴보는 세녕이었다. 세자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고 열을 확인하기도 하는 세녕의 모습이었다.
“네...”
“아무도 없이 이렇게 돌아다니다 궁이 발칵 뒤집히겠습니다. 권 무사도 없이 돌아다니다니요.”
“권, 무사요? 아 권신, 그렇죠, 그 무사 이름이 권신.. 잘생겼죠?”
권 무사, 권신이라 사람들이 부르던 그 무사가 떠올랐다. 선배와 쏙 빼닮았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처음엔 선배인 줄 알았다. 선배가 함께 장난치는 건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모습에 놀랐던 예지였다. 그러고 보니 자신을 따라오던 거 같은데, 어느새 놓쳤다. 선배를 떠올리니 왠지 두근거리고 발그레해지는 예지였다. 그런 의경의 모습을 보고, 권신이 잘생겼다는 그 말을 듣고 괜히 발그레해지는 건 세녕 공주도 마찬가지였다.
“네에..? 아니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네.. 누님 제가 그러니까 말못할 사정으로 막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데, 참 모르겠습니다.”
“네에? 저는 저하가 더 모르겟습니다.”
“뭐가요??”
“아바마마 속 썩이는 방법을 바꿔가면서까지 그래야겠습니까?
세녕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예지였다. 아바마마라, 아바마마라면, 세자의 아빠겠지? 세자의 아빠라면!! 왕이다! 왕이었다. 그럼 지금 무슨 시대의 왕이지, 누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 공부좀 제대로 해놓을 걸 이라는 생각을 하는 예지였다. 다른 시간도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사회 시간에는 더 꿀잠을 자는 시간이었을 뿐인 예지였다. 역사하면 교수님이랑도 열정을 다해 토론을 하는 선배가 떠올랐다. 이럴 때 선배가 필요한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권신과, 선배의 얼굴이 동시에 떠올라 다시 붉어지는 얼굴이었다.
”아, 근데 지금의 아바마마 성함이 어떻게 돼죠?“
”네...?“
너무 놀라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못한 표정으로 의경 세자를 바라보는 세녕 공주였다.
”그러니까, 존함이...“
“아바마마의 존함을 그리 쉽게...”
“그러니까 왕의 이름이..”
“네...”
대화가 진행될수록 미궁에 빠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 세녕 공주와, 동시에 예지의 영혼이 깃든 의경세자였다.
“그 묘호, 아니 시호던가, 그..”
의경이 한마디를 덧붙일때마다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표정을 짓는 세녕의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보니 자신이 실수하고 있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는 예지는 당황하지 않을래야 그럴 수가 없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세녕의 표정을 보고, 정말 어이가 없는 예지였다. 이게 무슨 상황이냐... 싶었다.
“그게 무슨... 나중에 저하께서 만드시겠죠.”
“아니 그럼 지금이 몇 년대죠..?”
“지금은 병자년 이지 않습니까..”
“병자년...”
“....”
병자년, 병자년, 그래 2000년 2010년, 2020년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병자년이라고 말하는구나, 그 병자년은 무슨 년도일까, 모르겠다. 60년을 주기로 바뀐다는 건 들어 본 거 같은데, 언젠지는 모르겠는 예지였다.
이때 저만치서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세자를 찾던 신하들의 모습이었다. 동궁의 사람들에서 시강원의 사람들까지로 늘어난 모습이었다. 급히 와 세자를 찾는 모습을 어렴풋이 본 세녕이었다.
“시강원을 그냥 넘기시려는 요량으로 이러십니까? 이제 깨어났으니 이렇게까지 안 하셨어도 됐을 텐데…. 갑자기 하지 않던 행동하십니까”
시강원, 그건 또 뭐지 하는 생각을 한다. 자신이 왜 이러는지 말을 해도 못 알아듣겠지 생각하는 의경이었다.
“그건 말을 해도 못 믿을 겁니다.
”그런 세상이지만, 그래도 본인의 일을 잊지 마세요. 세자.“
”세자... 세자라니...“
물음표의 표정을 짓는 세녕이었다. 자신을 부정하는 건가, 이제 와서 세자의 자리가 싫다는 건가, 아니면 설마 더 높이 올라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릴 적 그렇게 순수하던 아이, 아버지에게 유일하게 정난은 잘못된 것이라 말하며 하지 말라고 말리려다 상처받고 울었던 그 아이, 그래서 자신은 정말 백성들에게 좋은 왕이 될 수밖에 없다며 열심히, 너무 열심히 자신을 버려가면서까지 노력하던 그 아이가 비췄다. 세녕 공주의 눈에는 그런 의경 세자의 역사가 비추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알 수 없었고, 제자리를 찾지 않으면 도로 모든 게 어긋나고 말 것이었다. 그때처럼, 겨우 찾은 안녕이었기에 다시는 그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세녕이었다. 할아버지가 살아생전의 모습은 다시 올 수 없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찾은 안녕인데 또 잃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이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하던대로만 하자고 얘기하고싶었다. 세자의 볼을 어루만지며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신분도 신분이고, 그럴 수는 없었다. 시강원의 사람들이 떠나기전 그들을 한 번 보고, 다시 세자를 보는 세녕 공주였다.
“제가 저들을 부릅니까? 먼저 가시겠습니까?”
“... 먼저 가겠습니다.”
세자가 사라지는 뒷 모습을 지켜보는 세녕 공주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팠다. 오늘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차를 직접 끊어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할아버님도 좋아했던 그 차였고, 대호 군도, 좋아했고, 대제학도 좋아했으며, 큰아버님도 좋아했던 그 차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좋아했던 그 차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는 세녕 공주였다.
슬픔은 언제나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었고, 세녕 공주는 늘 남겨지는 쪽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그랬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세종이 자신이 여자라서 안타까워한 일들이 떠올랐다.
세종의 대군시절, 충녕의 모습을 완벽하게, 또는 그 이상의 재능을 타고난 여자 아이, 세녕 공주였기에, 세종도, 문종도, 세조도 안타까워한 인물 세녕, 공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