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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상왕
태양 빛이 여전한데 달 또한 큼직하다. 햇빛은 점차 사라지고 달빛이 해님보다는 못하지만 조금씩 빛나 세상이 완전히 어둠으로 가득 차는 것을 막아내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없는 곳, 길조차 없는 어느 산의 마련된 사냥꾼의 거처였다.
집 안에 마련된 입구를 통해 들어가는 사람들, 여러 사람 모여 있는데 보면 모두 옛 충신들이었다. 성삼문, 박팽년 같은 한글 창제에 이바지해 했던 신하들부터 김종서를 모셨던 신하들까지 있다. 어찌하여 살아남았고 아직도 단종에게 충성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모였다는 사실만으로 죽을 수도 있었다. 깊은 밤, 깊은 산골, 깊은 유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세조에게는 너무 위험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단종이었다면, 복위라면 더 위험한 일이었다.
그들은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비록 세조의 강압에 의해 억지로 왕권을 내주었지만, 그때는 너무 어렸고 이제는 나이도 찼고, 세종대왕과 문종대왕이 인정한 진짜 왕은, 오로지 단종이라는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 하는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다시 한 번 비밀의 문이 열린다. 모두가 긴장한 채 문을 쳐다본다.
놀랬다. 예정된 시간, 예정된 인원만 올 수 있는 장소였는데, 지금 이 출입으로 그 예정은 깨졌다. 누군가 발고해버린걸까, 잔뜩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채 그들은 한 곳을 응시했다.
“여기서 뭣들 하는 건가.”
그들의 대화의 주인공이었다. 다행히 그들이 치려는 세력이 아닌 그들이 지키려는 세력, 그들이 다시 받을려는 자, 단종이었다. 옆에는 든든하기로 조선 제일의 무인, 무신의 경지에 오른 조선제일검 무진이 있었다.
“전하, 오셨습니까.”
전하라, 한 때는 그렇게 불렸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홍위였다.
“나를 그리 부르면 안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모두가 엎드려 상왕 홍위를 바라보았다.
“전하, 전하를 따르는 무리가 비단 저희뿐만 아니옵니다.”
“맞습니다. 조선이 조선다워 지는 길은 오로지 전하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홍위는 무진을 보고, 그들을 보았다. 그리고 떠올렸다. 몇년전 그날을 떠올렸다. 자신에게는 아버지와 같았던 숙부 안평대군과 김종서, 황보인 등의 얼굴들이 그들과 겹쳐보였다.
“다른 사는 즐거움을 찾아라, 오늘 일은 못 본 것으로 하고 없었던 일로 하겠다.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으니..”
매정한 마음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곧장 나와 검게 물든 밤하늘, 유달리 빛나는 별들과 달빛을 위로 삼아 한숨을 쉬었다. 일찍히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지는 날이었다. 저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대의보다 힘이 센 권력이었다.
*
동궁전, 밤하늘의 별과 같이 아직도 밝은 동궁이었다. 책을 읽고 있는 의경 점차 숨이 거칠어진다. 온몸에는 식은땀이 가득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독한 고뿔이라도 난 걸까 싶어서 저녁에 약을 달여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나아지기는커녕 심해졌을 뿐이다. 일어나는 것도 잠드는 것도 힘들었다. 말을 타는 것도 검을 드는 것도 활을 쏘는 것도 힘들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책을 읽는 것조차 힘든 시간이 계속 반복되었다. 힘이 들었다. 숨쉬기조차도 힘들었다. 며칠 전부도 반복되는 고통이었다. 그와 동시에 아주 먼 미래의 예지에게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수업 도중에 식은땀이 나고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시야가 흐려지고 눈을 깜빡깜빡 뜨는 것조차도 힘이들었다. 교수가 이를 발견하고 학생 괜찮냐고 묻는데, 그 목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 병원을 가보라는 주변의 권유에 그래야겠다고 마음 먹는 예지였다.
예지, 수업이 끝나지 않았지만 교실을 빠져나와 벽을 짚으며 한걸음 한걸음 떼는데, 가방이 흘러내린다. 누군가 가방을 들어주는데, 실루엣을 자세히 보니 선배였다. 이 와중에 가슴이 콩닥 뛰어서 기뻤다.
“선배..”
“괜찮아? 걱정되서. 요즘 계속 그러네”
“괜찮아요. 선배.”
선배가 이렇게 옆에 있으니까 괜찮아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벅차오르는 느낌이 들어 아닌가 싶다가도 또 선배를 보면 괜찮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갑자기 선배의 손길이 예지의 미아에 닿았다. 예지의 심장이 더할나위 없이 행복하다는 신호를 보내며 마구잡이로 뛰었다.
“없는데, 땀은 많이 나네.”
예지도 이마에 손을 데어 본다. 정말 열은 없다. 얼떨결에 선배와 예지의 손이 겹쳐졌다. 처음으로 손을 맞잡은 건가, 싶었다. 눈치 못 채다가 선배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예지도 그때서야 아뿔사 싶었다. 당황하니까 얼굴이 붉어졌다.
“정말 괜찮아? 얼굴까지 붉어지는데?”
“그건, 네.. 괜찮아요. 그냥 잠깐 쉬면 될 것 같은데”
“그래? 그럼 쉴래?”
“네. 선배는?”
“이미 나온 수업을 다시 들어갈 수는 없고. 나는 뭐...”
다행히도 복도에는 아무런 훼방꾼 없이 둘 뿐이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던 예지였다. 아무도 없는 복도, 나를 걱정해주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그래서 아프지만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파서 좋을 리가 없는데, 아파서 좋았다.
“그럼 같이 있어요!”
“그래..? 그럴까 그럼?”
*
동궁 밖으로 나와 잠시 바람을 쐬는 의경이었다. 건물 밖으로 나와 화단 사이에서 바람을 쐬고 있는 예지였다. 서로 다른 시간대 다른 장소였지만 의경을 보는 권신과, 예지를 보는 선배였다. 의경이 움직이면 권신이, 예지가 움직이면 선배가 부자연스럽게 부축하려다가 말고, 멀찍이서 지켜보는 두 사람이었다. 괜찮타며 손사래 치며 걷는 두 사람이었다. 의경과 예지였다.
조금 걷다가, 권신과, 선배를 보는 의경과 예지, 미소를 지어 보이다가 다시 걷는데, 툭. 하고 쓰러진다.
“세자저하!!”, “예지야!”
*
병원 침대에 예지의 잠들어 있는 모습, 그 주변으로 왔다갔다 하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뒤로 갔다가 앞으로 갔다가 균현을 잃고 왔다갔다하였다. 많은 움직임 속에 그리고 그녀가 사는 집, 동네, 가족들,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평소 예지가 다니던 길, 버스 정류장, 학교, 동아리실 등, 스치듯이 모든 장소와 시간들이 지나간다. 그 속에 일그러져 있는 균열이 일어난다. 균열은 보이다가 보이지 않다가 다시 보이기를 반복하는데 다시 보일 때마다 커진다. 살짝 보이지 않아지다가 모든 걸 집어삼키듯 다시 커지면서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동궁, 잠들어 있는 의경세자의 모습으로 시간이 뒤로 갔다 앞으로 갔다 한다. 빨리 감기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들이었다. 먼 과거로 가서 울며 아버지를 막는 의경의 모습이 보인다.
“안됩니다!!”
아버지의 가랑이를 잡으며 안된다고 말하지만 이를 떼어 놓으며 앞으로 가는 세조의 모습이 보였다. 뒷모습만 울면서 바라보는 의경이었다.
수양대군이 의경을 떼어놓고 앞으로 나아가자 따르는 사람들, 그 뒷모습을 울면서 바라보는 의경의 모습이었다.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흘러서 수양이 따르던 병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어느 집으로 대문으로 빠르게 들어서 사람들을 베어간다. 김종서의 집이었다. 베고 또 베고, 베어가더니 어느새 단종의 앞으로 도착한 수양대군이었다. 그 뒤에는 김종서와 황보인 등 의정부 사람들의 사체가 가득하였다.
“무, 무섭습니다. 숙부”
웃으며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는 수양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조카님. 간신들을 제거했을 뿐입니다.”
수양은 터벅터벅 걸으며 단종의 앞에 섰다. 올라서서 단종과 눈높이를 맞추는 수양이었다.
“왕이 제대로 였다면, 간신은 없었겠죠. 조카님?”
두려워 떠는 단종을 옆으로 밀어내는 수양의 모습이었다.
“이 자리가 탐이나서가 아닙니다. 간신이 없는 백성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카님?”
수양의 손짓으로 밀려나 굴러떨어지는 단종, 무서워 떨며 쫒겨나듯 도망가는 모습이이 보인다. 의경이 그 모습을 본다. 초라한 단종의 뒷모습이었다. 그리고 옥좌를 보니, 세조가 앉아 있었다. 팔을 괴고 의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주변의 모든 인물들은 먼지처럼 사라지고 세조와 의경, 두 사람만 근정전에 있었다.
“아바마마가 없는 저와 홍위 형님이 뭐가 다릅니까”
의경이 질문했지만, 세조는 대답하지 않았고, 먼지처럼 사라질뿐이었다.
*
“예지야! 예지야!!”
예지를 급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뜨는 예지, 건물 밖 화단사이였다. 살딱 떠진 눈에 희미하게 비친 권신의 얼굴, 무언가 낯설지 않은 낯선 모습에 다시 눈을 떠 바라보니 선배의 얼굴이 보인다.
“선배...”
“괜찮아? 병원 가봐야겠다.”
“아니 괜찮아요. 요즘, 갑자기”
“자주 이래?”
“아니요. 그냥..”
선배와 있고 싶은 욕심은 버리고 오늘은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예지였다.
“집 가서 편히 쉬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럼 괜찮을 거 같아요.”
“그래? 그럼 그럴래?”
“네….”
아쉽다는 느낌이 목소리에도 그대로 전달되어버렸다. 예지의 걱정이 앞선 것인지 그런 거에는 관심이 없는 것인지 선배는, 야속하게도, 또는 다행히 눈치 못 챈 거 같았다.
“바래다줄까?”
“네. 좋아요!”
*
어느 한적한 길이었다. 평소에도 자주 걷던 길이었는데, 이 길이 이렇게 설레는 길이었나 싶은 예지였다. 그저 한 사람이 같이 걷고 있을 뿐이었는데 인생의 모든 순간이 반짝이는 느낌이었다. 마음속에서 하고싶은 말을 혹시라도 할까봐 꾹꾹 눌러 담고 있는 예지였다.
“선배.”
“응”
엇, 자신도 모르게 불러버렸다. 그냥, 좋아서 불렀는데 딱히 할 말은 없었는데 이렇게 불러보니 또 부르고 싶었다. 근데 골목이 조용하니까 너무 느낌 있게 불러버렸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어떤 말도 안 떠올랐다.
“왜 그렇게 조선시대를 싫어해요?”
한다는 얘기가 이런 얘기라니, 주제를 잘못고른 것 같았다. 어떤 스타일의 여자 좋아하세요? 이런 질문을 하고싶었는데 너무 속보여서 못했다. 용기가 없는 자신을 탓해야만 하겠지. 생각하는 예지였다.
“조선시대 때문에 이 나라가 지금 이 꼴 이잖아. 그러니까 싫지.”
“그런데, 그 시대 나름의 그래도 뭔가 있지 않을까요?”
“그걸 지금도 용납해버리면 다음세도다 아마 그 시대의 무언가 때문에 못 바꿨다고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선배의 논리에 말문이 턱 막혀버리는 예지였다. 그래서 좋았다.
“그건... 그런가.”
“조선시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야. 그런데 그 잘못된 건 인정하자는 거야.”
“잘 모르겠어요.”
예지를 보며 피식 웃어보이는 선배였다. 멋졌다. 더 하늘의 달보다, 별빛보다.
“잘 모르겠어요.”
“천천히 알아가면되지. 그러려고 동아리 들어왔다며.”
씩, 웃어보이는 예지였다. 그런 건 잘모르겠고 선배보려고 들어간건 맞는데, 하는 속마음을 들킬리는 없을테니, 마음으로만 말하는 예지였다.
“네에.. 맞아요~ 천천히 조금씩 그리고 완벽하게 알아가면 돼죠! 내걸로 만들면 돼죠!”
갑자기 씩씩해진 예지를 보며 씩 웃는 선배, 약간 갸우뚱하기도 했다.
“그래.. 이제 좀 괜찮은가봐. 잘 웃고.”
발그레 웃으며 선배를 보는 예지였다.
“네. 괜찮아 졌어요. 선배랑 잇으면 늘 괜찮아요.”
“..? 응. 그래“
두 사람 걷다가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다시 말이 없어진 두 사람이었다.
불이 바뀌기 직전 선배가 물었다.
”너는, 이 동아리 선택한 게 알아가 보자 한 거 밖에 없어?“
”에잇. 선배 떄문이죠..“
문득 꾹꾹 눌러 담았던 말이 새어 나오자 놀란 예지는 바로, 건너가 버린다….
저 멀리서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달려오는 차량을 발견하지 못한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