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이외

3

by 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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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적자 이외


깊은 어둠이 있었음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찬란한 새벽이 왔고, 어두웠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맑고 투명한 하늘이었다. 하늘의 맑음처럼 마음이 맑은 이유는 옆에서 자신을 바라봐 주는 선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배, 예지를 서로 지긋하게 바라보고 있다. 예지도 선배를 바라보는데, 두통이 느껴져 머리를 어루만진다. 선배가 놀라서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예지 너무 아픈 나머지 듣지 못하고 쓰러질 듯 비틀거린다.


“아파? 오늘은 걍 쉴래?”

“아니예요. 괜찮아요.”


선배를 볼 수 있는 시간은 그저 행복하다.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하는 예지다. 그냥 잠깐 통증이 있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은 일어난다. 예지는 멀쩡하다는 듯 한 바퀴 돌아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한다. 선배가 피식 웃었다. 두 사람은 동아실로 걸어간다.


동아리실에 도착하니 이미 도착한 동아리원들 몇 명 보이고, 선배가 준비해온 자료들을 나누기 시작하고 예지도 곧장 선배를 돕는다. 자료들을 보면 조선 시대 세조의 이야기였다. 예지는 자료들을 보며 이 시대에 자신의 시조인 선유명이라는 할아버지가 있었다는 말을 하는 어른들의 얘기를 떠올린다.


동아리원들이 얼추 모이자 시계를 보고 시작하자는 얘기를 하는 선배다. 선배는 세조반정, 계유정난을 이야기한다.


“사실 세조는! 이 나라 조선을 망친 지름길!!”


이라고 말하자 그에 반대하며, 경국대전을 이야기하는 다른 선배가 나선다. 두 사람의 토론이 시작되었다. 단종은 너무 어렸고 종사를 돌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세조의 손자인 성종을 봐라 태평성대를 이뤘다. 이런 말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개인의 감정으로 나라의 정사를, 역사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게 반대파의 입장이었다.


“나쁜 놈이라고 나는 생각해, 반정으로 인해서 단종이 쫓겨나고!”


선배의 말들은 사뭇 그래 보였다. 개인의 감정이 섞인 느낌이 들기도했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예지는 몰랐다. 개인의 감정이라고 말하니까 개인의 감정처럼 들리기도 했는데 또 자세히 들어보면 아닌 것도 같았다. 그저 말없이 토론을 듣고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 동아리 사람들을 둘러본다. 왜 이 사람들은 여기 있는 걸까? 궁금하고 신기했다. 이 동아리는 역사 토론 동아리는 아니었다. 선배가 나눠준 종이처럼 무언가 다른 일을 하는 동아리였다. 그런 동아리에 든 이유는 그런 일들에 대해서 관심 있어서는 아니었다. 예지가 관심 있는 사람은 오직 단 한 사람, 선배였을 뿐이었다.


예지가 선배를 지긋히 바라보면, 선배가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선배의 얼굴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호위복장으로 바뀌고 권신이 숨을 고르게 쉬며 세자의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세자의 뒷꽁무늬를 놓칠세라 부랴부랴 쫓고 있는 권신이었다. 담을 넘어가고 있는 두 모습을 건너 건물 사이에 바라보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림자의 정체는 의경세자의 동생, 해양대군이었다. 특별히 들키지 않기 위해서 몰래 보는 건 아니었다. 우연히 보았다고 하기에는 또 숨어서 보고 있었다.


“다들 잘 들었지? 그럼 예지가 설명한 거 요약해서 얘기해볼럐?”


세조반정에 대한 설명이 끝났다. 예지가 선배를 바라보았다. 세조의 아들 예종에 대해서 설명하는 선배였다. 남이라는 인물을 시기해 죽인 찌질이 왕이라고 말했다. 예지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그냥 들었다. 그러다 졸렸고 자신도 모르게 하품이 나올 거 같아 꾹 참았다. 선배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어서였다. 그러면서 몰래 휴대폰으로 예종을 검색하는 찰나였다. 쿵, 심장이 빨리 뛰었다. 선배한테 잘 보이고 싶은데 어떡하지 하는 심정이었다. 놀란 마음이었다. 방금 본 내용들을 떠 올리려 애썼다.


“그러니까, 예종은 세조의 둘쨰 아들로 아버지랑 성격이 비슷해서, 그래서, 찌질이였어요”


얘기를 하는 도중에 창밖의 산들이 빠르게 자신의 뒤로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를 타고 달리는 기분이었으나 조금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운전대 대신 말 고삐를 잡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말 발굽 소리가 산을 메우고 있었다. 권신과 의경은 누가 먼저 도착할지 내기라도 한 듯 옥신각신 말을 타고 달리고 있었다. 산등을 여러 넘어 초라해 보이는 어느 초갓집이 보였다. 의경이 맘을 멈춰 세우자 말 고삐를 붙잡는 남자가 있다. 무진이었다.


의경이 무진의 도움으로 말에서 내리고, 권신도 곧장 말에서 내려 무진에게 예를 갖춰 인사를 했다. 무진은 의경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를 전한다. 무진, 그 때문에 세조가 감히 단종을 건들지 못하고 있는 존재 자체로 위협이 되는 무인이었다.


“오셨습니까”


무진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례하는 의경이었다. 초갓집을 바라보며 무진에게 물었다.


“무고하신가.”

“살펴주신 덕분에 무사하십니다.”


의경을 바로 집 안으로 안내하는 무진이었다. 의경과 권신이 곧장 따랐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반가워하며 맞이하는 양위한 후 상왕이 된 문종의 적자, 세종의 적손자 이홍위, 단종이었다.


“오셨는가”


반가운 마음으로 의경을 맞이하는 단종이었다. 단종이 예를 갖춰 의경을 맞이하려고 하자 서둘러 저지하는 의경이었다.


“형님”

“큰일 날 일을 하고 있으시네. 자네는 장차 이 나라의 왕이 될 사람일세”


끝내 예를 갖추려는 단종을 보며 슬픈 눈으로 단종을 보던 의경은 끝내 저지하며 말했다.


“형님은 왕이셨던 분이지요.”

“다 지난 일. 이제 와 무슨 소용인가.”

“죄송합니다. 그래도 어찌 이런 곳에 머무십니까”

“감옥 같은 수강궁보다는 편하고 편한 이 초라해 보이는 초갓집이 낫다”


먼저 예를 갖추는 의경이었다. 그런 의경을 일으키며 단종이 말했다.


“이렇게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 고맙네.”


두 사람의 만남을 슬프게 바라보는 권신과, 무진이 있었다.


*


단종이 있었던 자리, 훗날 의경이 있게 될 곳의 현재의 주인은 세조였다. 세조는 자신의 아들 해양대군과 산책을 하고 있었다. 궁을 거닐고 있는 두 사람 뒤로 수많은 내시와 궁녀가 따르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가면 어디든 길이 되었다. 마냥 걷던 세조는 걸으며 해양대군을 바라보았다.


“세자는 무얼 하고 있는 가, 오랜만에 함께 마실을 하면 좋을 거 같은데 불러보면 어떤 가”


대군은 세조의 말에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말을 이었다.


“저하는 잠시 궁 밖으로 나가신 것 같습니다.”


대군의 말을 듣고 잠시 하늘을 바라보던 세조가 다시 말했다.


“그러느냐, 자주 나가는 구나. 너는 세자의 동태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구나”


세조의 말에 바닥을 보다가 조금씩 시선을 올려 세조를 바라보는 대군이었다.


“백성의 일을 살피러 가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도울 일이 잇으면 언제든 도우려 하는 것입니다.”


세조가 흐뭇한 듯 웃어 보였다. 살짝 구겨진 얼굴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형제의 애가 깊어 만족스럽구나. 세자는 장차 왕이 될 자. 너는….”


잠시 머뭇거리는 세조였다. 작은 차이였으나 대군이 느꼈고 주위에 모든 신하가 느꼈다.


“도와라.”


해양은 그 머뭇거림보다 조금 더 길게 머뭇거렸다. 대답 없이 바닥을 도로 떨굴 뿐이었다.


“...”


그런 대군을 보고, 무언갈 떠올린 듯한 눈길을 보내는 세조였다. 목소리가 조금 굵어지고 무거워지는 세조였다.


“형제끼리 싸움은…. 좋지 못하다.”

“예. 아바마마.”


세조, 멈춰서서는 잠시 옛 생각에 잠긴 듯하다. 눈을 감고 사색에 잠겼다. 대군은 그런 아버지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고 그저 옆에 서서 다른 생각을 하였다. 하늘은 높았고, 태양은 빛이 났고, 궁궐을 두루 비치고 있었다.


“할아버님, 아버님, 나, 너. 모두 장손이 아니지.”

“...”


세조, 대군의 손을 잡는다.


“피를 묻히지 말거라. 비린내가 진동한다. 아직. 씻기지 않는구나.”


대군을 바라보는 세조였다. 해양의 동공이 떨린다. 입술이 조금은 부르르 떨린다. 자신의 속마음이 들키기라도 한 것 같았지만 아무 말도 없었다. 확인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세조의 감긴 두 눈에 보이는 회상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 아래로 내려가니 빗물 대신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궁궐, 어좌에 앉아 있는 단종이 스스로 내려온다. 조용히 퇴장하고 있다. 신하들이 옆에 있었으나 세조의 옆으로 지나치는 단종을 따르는 이 아무도 없다. 세조는 그런 단종을 보았다. 단종의 걸음마다 죽어갔던 사람들이 흰옷을 입고 나타나 단종에게 절을 한다. 세조에게 그들이 보이는지 안보이는지 눈에 힘이 들어가고 찌푸려진다. 이내 고개를 돌려 걸어가 올라 어좌에 안았다. 옷에 피가 묻어 있다. 아래로 보면 흥건하게 젖어 흐르고 있었다.


눈을 떠 대군을 바라보는 세조였다. 대군이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잡고 있는 세조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조가 팔을 놓고 다시 걷는 두 사람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앞에 세녕공주가 궁녀들과 함께 꽃을 가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뒤의 신하 주채윤도 함께 있다. 세조가 곁으로 다가서자 세녕이 놀라서 서둘러 인사를 한다. 채윤도 인사를 세조가 이를 받고는 곧장 입을 열었다.


“꽃을 보느냐?”

“그렇습니다. 아바마마”


세조는 세녕이 보고 있던 꽃을 바라본다. 꽃을 어루만져 보다가 향을 맡아 보기도 하는 세조의 모습이다.


“꽃이 아닌, 강한 쇠였다면 더 많은 것을 했을 텐데”

“꽃과 쇠, 모두 사람을 위해 쓰이는 것은 다른 게 아니지 않겠습니까.”


아쉬운 마음을 토해보는 세조였는데, 그런 세조에게 아쉬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한 세녕의 말이 세조의 마음에 가닿았다. 그러나 왕이기에 귀엽고 어여쁜 딸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알려줘야 하기에 아프겠지만, 아프게 해야만 했다.


“다르다.”


너무 아픈 말인가 싶어 조금은 머뭇거리다 말한다.


“그 차이가 크다.”

“...”

“...”


세녕도, 해양도 그 말을 듣고 있었다.


“능력이 높아도 쓰지 못하는 건 차라리 없는 게 낫다.”


세조는 말을 하면서 대군을 본다. 세녕이 가꾸고 있던 꽃들 사이에 나뭇가지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넘지 않아야 하는 산을 넘보면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법. 커가는 법을 배우지 마라. 살아남는 법만 배워라. 방해되면 결국 잘라내야 하는 법”


*


조금 어지러워진 정신을 바로 잡기 위해 고개를 흔드는 예지였다. 그러자 이상한 현상들은 사라지고 선배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특히 이 선 유명 이 자는 간신배 중의 간신배로서! 세조 역사시대에는 무려!!”(하는데)

“선배! 그 선 유명, 예지 선조신데요”


하려는 찰나에 예지의 친구가 손을 흔들며, 그 뒤에 말은 하지 말아 달라는 강한 시늉을 한다. 동아리 분위기가 싸해지면서 사람들은 선배와 예지를 번갈아 본다. 예지는 손사래 치며 괜찮다는 반응을 보인다. 선배의 눈치가 보였다.


“아니, 뭐, 내 선조가 한 일이라도 나쁜 짓은 나쁜 짓이지!”


선배는 당황해하는 표정과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예지를 보고 있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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