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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호랑이는 호랑이를 낳고
세조와 세녕공주와 해양대군이 어려운 말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채윤이 있었다. 채윤은 세 사람의 말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시간을 보냈고 끝난 이후에는 세녕을 돕다가 자신의 일로 돌아가 다시 궁의 일을 마치고 해가 떨어질 때쯤 퇴궁하여 집으로 간다.
정문을 나서는 모습은 어쩐지 낯설다. 곧장 집으로 돌아가려다 장터에 들려 먹거리를 사들고 가는 채윤이었다. 여인들이나 하는 치장구에 눈길을 주다가 다시 걸어간다. 집안에 도착해 문을 모두 닫고, 초를 켜 방을 밝힌다.
굳이 어둡게 방을 만들어서야 머리를 풀어 헤치고 가슴을 쥐어짜던 천을 풀어헤치니 억지로 쥐어짜던 가슴이 제 형태로 돌아간다. 풀어헤친 옷을 주섬주섬 주워 쌓는 모습을 보면, 남자가 아닌 여자의 모습이었다.
몸을 정갈히 하고 오늘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채윤이었다. 기록된 글자의 글자들, 글씨체 바뀌면, 기록하고 있는 사람은 의경이다. 두 사람은 다른 시간, 다른 장소였지만 일기를 기록하는 만큼은 두 사람에겐 몇백 년 후의 사람이겠지만 성웅의 모습을 닮았다.
*
시끌벅적, 초를 켜 밤을 밝히던 세월은 어느새 기억에도 없는 시간이었다. 가로등 등불과 온갖 다양한 색들의 빛들이 밤길을 비추고 있었다. 동아리원들과 뒤풀이를 하고 있는 예지의 모습이었다. 다들 각자 주량에 따라 잘 마시고 있는 상황이었다. 선배가 슬쩍 예지 옆에 다가와 아까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예지가 괜찮다고 슬쩍 웃어보였다. 선배가 따라 웃었다. 항상 예지가 따라 웃었는데 이번만큼은 역전이었다.
이때 저 멀리서 다른 주제로 토론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근데 드라마처럼 남장한 여자 관리들은 실제로 없었을까?”
무슨 이상한 상상을 하는 거냐며, 그게 실제로 가능하겠냐며 한탄하는 목소리가 반론으로 들린다.
“상식적으로 있겠냐? 조선시대인데”
“그렇지? 들키면 바로 사형감인데 없겠지”
그러자 선배의 세워졌던 귀가, 귀만 보내기 아까웠는지 몸까지 그쪽으로 달려간다.
“그러니까 왜 그게 사형 감이어야!! 하냐고!”
취했는지 버럭하는 모습이었다. 예지는 살짝 웃으며 바라보았다. 어떻게 저렇게 열정적일 수 있을까, 그래서 좋은 걸까, 아니면 좋은 거니까 그냥 좋아 보이는 걸까 싶었다. 술 한 잔 하며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예지였다. 선배의 말에 온 정신을 집중하여 들으려 하였다.
세 사람의 토론이 거세지자 끼어드는 사람들이 늘었다.
“왜, 얼마전에 남장으로서 조선시대에 있었던 관리 일기가 발견됐다던데?”
들으면서 어이없다는 듯 끼어드는 또 다른 동아리원이었고, 그런가 싶은 표정을 짓는 사람들, 그런 표정들을 술기운에 바라보는 예지는 피식 웃겼다. 이 상황도 웃겼고, 선배의 모습은 너무도 재미있었고, 그런 모습을 보는 자신은 행복했다.
“미친 소리 하지마, 그거 소설이지. 누가 난중일기처럼 소설을 쓴 거지 가능 하겠냐”
“하긴 그래. 그게 가능할리 없겠지?”
*
밤이 깊은 날이었다. 모든 불이 꺼지고 빛나는 거라고는 태양의 빛을 받은 달빛과 그 옆에 있는 별들뿐이었다. 소리조차 숨을 죽이고 새벽이 지나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런 적막을 깨고 발길을 멈춘 곳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채윤이었다.
잠시 기웃거리다. 조용히 말한다.
“있는 가?”
조금 열린 대문 사이로 고개를 비추는 얼굴은 정은이었다. 반가운 표정으로 채윤을 맞이하는 정은이었다.
“오셨네. 그래 남자의 삶은 어떤가?”
안으로 들이는 정은의 뒤를 따르는 채윤이었다.
“놀리지 말고”
“용케 아직 안 들켰나 보네.”
“앞으로도 안 들킬 걸세”
“말투보소, 궁궐물 다 들었네”
정은의 말에 피식 웃는 채윤이었다. 잠시 별들을 바라보다 달빛을 보다 다시 정은을 보았다.
“이게 내 길이 맞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쉽기도 하고.”
“그럼 나와”
대책 없는 정은의 말에 미소짓는 채윤이었다. 나온다. 하고 생각해보다가 말했다.
“나오면? 책임 져 줄건 가?”
“자네는 온 사람들이 남자로 아니, 나랑 둘이 살면 되지.”
“자네의 능력이 큰데, 쓰임이 그것밖에 안되는 세상이 원망스럽네”
“나는 너 처럼은 안 할 거야. 난 여자인데, 왜 남자의 탈을 써!”
어느새 가져온 술잔을 따르며, 부딪치며, 달빛의 위로를 벗삼아, 별들의 노래를 흥 삼아 취하는 두 사람이었다. 자주 말이 없어지는 건 채윤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정은은 정은에게 술잔을 부딪쳐 주었다.
“...”
“그렇다고 뭐라고 하는 건 아니고. 그냥, 그런 세상이나까. 그렇다는 거지”
“언젠가 올까?”
정은의 질문이 있었지만 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테니까, 올 수 없을테니까,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나라가 바뀌는 일은 가능해도, 하늘과 땅이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지 않는다. 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자가 벼슬아치가 되는 세상이?”
“...”
침묵하던 정은이 취했는지 속을 꺼내 보이자, 채윤은 답답했지만 할 수 있는게 듣는 것 뿐이니 그 역할이라도 제대로 수행하자 마음먹었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정도는 돼야. 그런 세상 오겠지? 세상이 뒤집혀야만.. 오겠지 그런 세상..?”
“...”
대답하지 않는 채윤이 조금은 원망 될 만한 도 한데, 정은은 이미 알았다. 자신이 하는 말이 주정이라는 것을. 그래서 술에 취했다고 말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었다. 변명하기 위해서 마시는 술이었다. 어차피 푸념한다고 바뀔 세상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저 달빛을 맞추겠다 활을 겨누고 쏘아도, 결국 까마득하게 멀리, 닿지도 못하고 바닥으로 고꾸라질 화살임을 알고 있었다. 우연히 지나가는 토끼는 맞출지 몰라도, 저 달에 닿지는 않으리라는 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정은이었다.
그래서 괜찮다는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괜찮다는 말투로 말해 보았다.
“꿈이라도 실컷 꾸지 뭐!”
손에 든 잔을 다시 내밀며, 툭, 부딪치며 잔을 나누었다. 복숭아밭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나눔이었다.
“이제, 재밌는 얘기나 해보세” 하며, 푸념은 그만하자는 제안을 하고, 받아들이는 두 사람이었다. 채윤과 정은은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었다. 둘은 시간이 가는지 모르게 술을 마시었다. 잠시 정은이 빈 술병을 채우러 비웠을 때, 정은의 방안을 우연히 보게 되는 채윤이었다. 채윤의 눈에는 글공부의 흔적들이 가득한 정은의 방이 비추었다. 나지막하게, 지긋이 바라보는데, 정은이 다가오는 낌새가 느껴지자 보지 못한 것처럼 잠시 아래쪽을 향해있던 양 끝 입술이 별과 달처럼 올라가게 하며, 미소지으며, 웃어 보이며, 취해갔다.
*
의경과 권신이 야행을 끝내고 담을 넘어 동궁으로 복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난 해양대군이었다. 의경 조금 놀란 모습을 보이고 권신은 예를 갖추 인사한다.
“전하께서 찾으셨습니다.”
“... 그래.”
대군을 스치는 세자였다. 그때 대군이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
세자가 대군을 뒤돌아 보았다.
“보려는 눈, 들으려는 귀, 말하는 입. 모두 셀 수가 없습니다.”
대군이 돌아서서 세자에게 말했다. 세자가 대군의 눈을 보았다.
“그 모든 위에 나와 아바마마가 있는 것 아니더냐?”
세자의 말에 대군이 입을 닫았다. 잠시의 정적이 있었다. 권신이 긴장하였고, 대군과 세자역시 마찬가지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대군이었다.
“... 맞습니다.”
지나친 발걸음을 돌이켜 대군에게 다가서는 세자다.
“내가 보지 마라는 것, 내가 듣지 마라는 것, 내가 말하지 말라는 것, 너는 해선 안된다. 너는 내 아우고, 나는 널 지키고 싶다.”
세자의 말이 대군에게 어떻게 전해졌을까, 권심이 자신의 검집에 손을 둬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했다. 그때 대군이 입을 열었다.
“저 또한 마찬가지 옵니다. 형님.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그만 가 보아라.”
“...예.”
대군이 세자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하고 돌아서 떠난다. 대군의 그림자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한동안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세자였다.
대군이 사라지는 시간동안 해가 떠서 오르고 있었다. 동궁이었던 세자의 궁궐의 위치에서 어떤 누구보다 빠르게 붉고, 찬란한 태양의 빛이 닿았다.
*
어전으로 가 세조를 알현하고 아침 문안인사를 드리는 세자였다. 앞으로 가면 어전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얼굴이 드러나는 세조의 모습이 보였다.
“몸은 괜찮으냐?”
“며칠 안좋았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세조가 수염을 만진다. 생각을 하게 될 때, 주로 수염을 만지는 세조의 습관이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좀처럼 드러내진 않지만 의경에겐 자주 보이는 모습이었다.
“괜찮지 않아도 늘 괜찮아야 하는 게 좋다.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면 사냥감으로 보일 거다.”
세자의 말이 끝나자, 세자가 생각했다. 사냥감, 가장 사냥을 잘했던 아버지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사냥감으로 봤었던 걸까? 그랬던걸까? 생각하는 의경이었다. 그런 생각을 짧게하고 정리하여 말했다.
“누구보다 노련한 사냥꾼의 아들입니다. 호랑이의 자식이 고양이 일 리 없는 법이지요.”
세자의 말에 쓰다듬던 수염의 손길이 잠시 주춤한 세조다. 약간 마음이 상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어여쁜 자식이고 이 나라의 훗날 왕이 될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다음 왕은 너다. 왕이 될 자 답게 언행하거라. 이미 왕이 된 것처럼도 안 되며 아직 덜 익은 것도 안 된다.”
세조의 말을 듣고 세조를 올려다 보는 세자 의경이었다. 왕이란 무언인가 고민했다. 통치를 못한다 하여 새로 나라를 세운 고조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만인지상이 된 증조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성군으로 여겨지며 늘 백성을 걱정했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왕의 존재를 고민할 뿐입니다.”
세조가 다시 수염을 쓰다듬는다.
“존재를- 고민 한다?”
“백성을 위한 것, 백성을 위하는 법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왕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소자가 왕이 될 운명이면 왕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왕이 되지 못할 운명이라면 그렇지 못하겠지요. 다만 백성을 위하는 길은 운명을 떠나 이루고 싶은 꿈이라 그 길을 고민할 뿐입니다.”
세자의 말들 듣고 흠칫 놀랐으나 표현하지 않고 수염을 쓰다듬던 손을 어좌의 팔걸이로 가져가 툭, 축, 치다가 말하는 세조였다.
“싹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법이다.”
“...”
“이겨내라. 왕도가 따로 있겠느냐. 너의 모든 길이 왕도다.”
“...”
몸을 바로 잡고, 세자를 자세히 보려는 세조였다. 세자의 모습을 천천히 조금씩, 모두 확인하듯 바라보는 세조였다.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조선의 왕세자다. 장차 조선의 왕이 될 자다. 잊지 말거라. 백성이 원하는 왕은”
말을 잇기 전 다시 한 번 더 세자를 자세히 보는 세조였다. 자신과 닮은 눈, 눈매, 목, 어디하나 자신을 닮지 않은 게 없는 자신의 아들이었다. 처음 봤을 때 울기만해도 어여뻤던 그 모습의 아이가 그 어렸던 것이 어느새 이렇게 컸다.
“너다.”
세조의 말이 끝나자 세조를 올려다 보다 머리를 떨어트려 절을 하는 세자, 의경이었다.
“예. 전하.”
“그럼 됐다.”
*
대학 강의실, 태종과 세조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왕이라며 말하는 교수의 강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에 바로 반발하는 선배의 모습이 보이고 예지가 피식 웃으며 반해서는 보고 있는데, 세조는 자신에게 반하는 세력인 사육신과 생육신을 만들었다며 반발하며 조선을 망치는 지름길이 됐다고 말하는 선배의 모습을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받치며 보고 있는 예지였다. 그때 이명현상인 것처럼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안되옵니다!!”
“어찌 여성부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너가 왕이다.”
“그만!!”
반복되는 목소리들, 이상한 소리, 처음 들어본 목소리들에 예지는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벅차고 일어섰다. 정신을 차려보니 모두의 시선이 예지에게로 향해있었다. 예지, 식은땀으로 온 몸이 젖어 있었다. 주섬주섬 자신의 물걸들을 챙겨 서둘러 강의실을 빠져나가고, 그 모습을 보고 선배가 따라나선다.
앞서가는 예지를 부르지만, 대답 없자, 서둘러 뛰어가 예지의 앞에 서서, ‘예지야’ 부르지만, 못 들은 건지 반응이 없는 모습이었다. 주춤하다가 팔목을 붙잡고, 그제야 선배를 발견한 예지였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예지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는 선배의 모습이었다.
“괜찮아?”
괜찮아지고 싶었다. 저 말이면 뭐든 괜찮았는데, 괜찮았는데. 여전히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아서 괜찮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