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1

by 라한
역성표지.png


1. 모래시계


“알아야 한다.”


바다와 땅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파도에 휩쓸려 밀리다가 쓸리다를 반복 했다. 햇볕에 잘 말려진 모래를 누군가 한 움큼 집어 자신이 가져온 주머니에 넣는다. 주머니에 들어가던 모래들은 어느새 투명한 상자에 담겨 역삼각형 모양의 작은 구멍으로 향해 비례하고 있는 다른 정삼각형 모양으로 떨어진다.


작은 남자아이가 자신보다 조금 큰 여자아이에게 모래를 넣은 투명한 주머니를 전달받는다.


“예쁩니다.”


아름답게 비친 노을이 비춘다. 두 아이의 그림자를 늘려가며 시간의 흐름을 빠르게 한다. 육조의 거리와 기와를 올린 집들이 사라졌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솟아 오는 빌딩이 솟아 오르고 곧 빌딩으로 가득 찬 광화문 한복판이었다.


느렸지만 확실했다. 줄어든 크기만큼, 늘어난 크기만큼 시간이 흘렀다. 모래알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모래시계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 그 시선을 느껴 고개를 돌리는 소녀의 이름은 예지였다.


“예쁘네, 모래시계”


자신이 좋아하는 선배의 칭찬에 헤벌쭉 두 입술 끝이 올라가며 미소짓는 예지였다. 예지의 미소와 같이 겹쳐져 주변이 변했다. 높은 빌딩들은 사라지고 예술처럼 무너졌던 건물들이 다시 올라간다. 시간이 떨어지는 모래시계가 다시 위로 올라가며 예지의 미소를 닮은 의경이 모래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다른 시간 속에서 같은 모래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둘 다 놀라 모래시계를 놓았다. 모래시계는 다른 시간 속에서 같은 방향으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시계가 깨어지고 부서져 모래가 흩어졌다. 다른 시간이 섞이기라도 한 것 같았다. 깨어진 두 개의 모래시계는 더 이상 두 개처럼 보이진 않았다.


모래가 떨어지지 않게 주워 담는 손길이 닿았다. 그러자 다시 모래시계가 부서지기 전으로 돌아갔다. 어느 통에 있었던 건지 모래인지는 구분할 수 없었다. 모래시계가 떨어지는 것을 붙잡은 선배의 손길, 간신히 떨어져 바닥으로 부딪치기 전에 떨어지는 시계보다 빨리 흐르는 시간보다 더 빠르게 내려 잡았다.


“소중한 거라며, 큰일 날 뻔했다”


혹시라도 깨지진 않았는지 살펴보는 선배였다. 자신의 옷깃으로 닦아낸 후 예지에게 건넸다. 예지가 고맙다며 얼굴을 붉히며 모래시계를 건네받는다.


“고마워요.”

“그럼, 들어 올 거지?”

“그, 그건 좀”


예지는 이제 막 대학교에 들어간 신입생이었다. 선배는 그런 예지를 자신의 동아리로 끌어들이려는 중이었다. 예지는 대학에 들어가면 썸타고 놀고 그러고 싶었는데 이 선배랑은 썸은 타고 싶었지만, 선배가 있는 동아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노는 동아리가 아니었다. 잘 모르는 그리고 마치 사회운동가가 되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띠고 있는 그런 동아리였다. 피식 웃는 선배, 그 얼굴을 보며 따라 웃게 되는 예지였다. 환하다. 태양보다 환하고 바다보다 넓고 바람보다 시원하다.


“장난이야, 잘 생각해봐. 여기 광화문도 원래는 뭐였는지 알아?”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모르는 척 예지는 고개와 몸과 귀를 선배에게 기울인다. 그러자 선배가 그것도 모르냐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예지를 본다. 눈을 맞추며 입을 연다. 선배의 입과 똑같은 입,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시간을 거슬러가 다르게 변한다.


“괜찮으십니까?”


걷다 말고 멈춰선 의경에게 호위무사 권신이 물었다. 역행해온 시간 뒤에서 선배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다 놓고 의상만 바꾼 모습이었다. 듣지 못하였는지 대답하지 않고 다시 걷는 의경이었다. 그 뒤를 권신과 호위무사 몇 명과 나인 몇 명이 따르고 있었다. 이쪽저쪽 궁궐이 얼마나 넓은지 확인이라도 하는 듯 계속 걷는 세자였다. 어느새 후원의 연못까지 걸어와 앞에 있던 나무에 턱 부딪히자 그때야 세자를 말리려 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딪친 곳을 어루만지며 언제 여기까지 왔지 하는 표정으로 주변들 둘러보는 세자였다. 그러다 조금만 더 늦게 정신을 차렸으면 빠져버렸을 연못을 내려다본다. 연못에 자신의 얼굴이 비친다. 세자의 발길로 작은 돌 하나가 연못으로 떨어져 물길을 일으키고 그 물길이 번진 자리부터 예지의 얼굴로 변한다.


번져진 물길은 거울로 변하고 거울에 비친 예지는 열심히 화장하고 있다. 매우 열정을 다해서 화장하고 고치고 하다 반복하고 있다. 문득 옆에 보인 상자를 보고 씩 행복해하며 웃는다. 혹시라도 부서질까 조심히 포장을 열고 화장품을 꺼낸다. 조심히 얼굴에 바르고 만세를 부르며 좋아 죽을 듯한 미소를 지으며 침대에 뒹군다. 화장이 묻지 않게 조심하면서였다. 휴대폰을 꺼내 들어 앨범으로 들어가자 선배의 사진이 있다. 올라가는 입꼬리와 함께 휴대폰 속 사진을 들여다 보는 예지였다.


“선배!! 감사히 잘쓸게요!!”


마치 선배가 옆에 있기라도 한 듯 한끗 애교를 모아 말하는 예지였다. 화장품을 품에 꼭 안고 어쩔줄 몰라 좋아한다. 집에 오기 전 기억을 떠올리는 예지였다.


버스 정류장, 예지가 타려는 버스가 오는 것을 확인하는 두 사람이었다. 예지가 선배한테 인사하려는데 머뭇거린다. 정적을 깨는 건 선배가 내민 손이었다. 가방을 뒤적거린 이후 무언가를 내민다. 뭐지? 하며 기대가 서린 채 선배의 손길을 바라보는 예지다. 보면 포장되어진 상자 하나가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춘 채 선배의 손에 올려져 있었다. 선배가 머쓱한 듯 웃으며 선물을 건네고 있었다.


“얼마 전 생일이었다며. 여기 늦었지만 선물이야.”


선배의 얼굴과 선물을 번갈아 보는 예지는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인다. 바로 받아야겠다 생각했지만 몸이 얼기라도 한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두근두근 거리는 심장은 그런 얼은 예지를 모른 채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어,, 고, 고마워용!!”


말을 하고보니 발음을 굴렸다는 사실을 창피했다. 버스가 도착하고, 얼른 올라타서 옆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선배가 머 쩍은 척 예지를 바라보다가 손바닥을 내보이며 팔을 흔들었다. 예지도 웃으며 한 손으로는 선물을 꽉 안은 채 한 손으로 팔을 흔들어 화답했다.


“너무 좋다, 선배 냄새 나는 거 같아”


갓 포장을 뜯은 선물에서 왠지 모를 선배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소중히 간직하는 예지의 모습이었다. 예지가 선배를 처음 본 것은 이제 막 대학에 들어왔을 때였다. 스무살의 티를 벗고 싶었지만 새내기 향기를 가득 묻힌 채 처음으로 대학의 정문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었던 때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은 밖으로도 삐져나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담으려 했다. 이미 한 번 와본 적은 있었지만, 이 학교의 학생으로 다닌다고 하니까, 설렜다. 학교 정문은 어디 산행을 나서는 느낌이었지만 수백 년 이어온 전통의 명문대학이었다. 예지처럼 새롭게 대학에 입학한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그리고 그런 신입생들을 노리며 여러 전단지를 뿌리는 대학에서 보낸 시간이 조금 긴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고, 선배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대학 정문에서 홍보지를 뿌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러 사람이 있었다. 동아리며 학회며 여러 가지를 홍보중이었다.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어디로 가야 저 사람들을 피해갈수 있을가 고민하는 예지였는데, 선배를 보고는 그 마음을 금방 잃어버렸다. 순간 돌덩이가 돼서는 움직이지 못하고 자신에게 내밀어진 전단지에 반응도 못할 때 였다. 선배가 불쑥 예지의 앞으로 나타나 전단지를 내밀었다. 다른 전단지는 모두 무시했는데 그 전단지는 무시할 수 없었다.


“받아가요.”


예지에게 자신의 동아리 홍보지를 내밀며 말하는 선배였다. 어디선가 배경음악이 틀어진 느낌이었다. 샤랄라, 라는 곡명은 그런 느낌이었다. 아직은 이른 시기였으나 이미 벚꽃이 피고, 피었던 꽃이 바로 흩날리는 느낌이었다. 흔들리는 꽃들 사이로 에지의 마음도 흔들려 그만 가슴에 꼭 안고 있던 책들을 떨어 트리고 만다. 전단지를 건넨 선배가 놀라한다. 그때야 예지도 돌덩이에서 빠져나와 놀란다.


“으아아악!”


책이 바닥으로 우르르 떨어졌다. 선배가 “괜찮아요?” 물으며 책들을 주섬주섬 담는다. 가방에 넣어놓지 않은 책들은 신입생의 기본이라 배워 그렇게 했는데, 이런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예지였다. 선배가 물어보는 ‘괜찮아요?’ 라는 말에 ‘아니요. 안 괜찮아요.’ 하며 선배를 쳐다보는 예지였다. 선배를 본다. 계속 본다. 반했다. 첫눈에 반했다.


어느새 책을 모두 주워 예지에게 건네고 있는 선배의 모습이었다. 예지는 선배의 얼굴을 보느라 그 모습을 눈치채지 못하다 선배가 계속 부르자 마침내 환상에서 깨어났다.


“저기요?”

“...”

“저기.. 후배님?”

“아 네!!!”


대학 교정이 떠나가라 큰 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한순간에 예지와 선배에게 집중된다. 선배는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내밀고 예지가 넙쭉 받는다.


“조심해야죠. 여기. 책”

“아, 네!”


책을 받아드는 예지였다. 위에는 동아리 홍보지가 함께 있었다. 예지에게 책을 내밀며 다른 신입생을 찾아가 전단지를 내미는 선배였다. 그런 모습을 멍하니 보는 예지였다. 한 명 한 명 다른 신입생에게도 전단지를 전하는 선배의 모습이었다. 흘깃 예지를 보는 눈치였다.


선배는 떠났지만 채 떠나지 않았다. 예지는 그 짧은 시간동안 자신의 마음속에 선배를 새겨버렸다. 그래서 자신에게 선배가 진짜로 남기고 간 책 위로 올려진 전단지를 본다.


“남자가 이런 걸 해?”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말했다. 그러다 선배를 다시 몰래 보려는데 눈이 마주치는 것 같아 얼른 검은 눈동자를 다른 곳으로 돌리다 다시 본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는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어디갔지 하며 고개를 돌려 찾는 예지였다.


“아직 안갔어요? 관심있어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는 예지였다. 다시 한 번 책기 쏟아 질뻔 했지만 선배가 빠르게 먼저 쓰러지지 않게 받치는 모습이었다.


“..네..! 네이..?? 아, 아니 남자가 이런 걸 하나”


예지의 말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선배가 중간에 먼저 말을 했다.


“정의에는 남자 여자가 없죠~”


하는 소리였다. 예지의 마음에는 이미 선배가 새겨졌는데, 다시 한번 예지의 마음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굴이 붉어지고 부끄러워 고개를 피하는 예지였다. 선배가 웃으면서 말했다.


“너무 아재였나? 그럼 관심 있으면 연락줘요.”


하고 시계를 보더니 교정으로 사라져갔다. 어느새 밀물처럼 밀려오던 신입생들도 거의 사라진 후였다. 남은 것은 선배에게 마음을 빼앗긴 예지와 첫날부터 ‘지각’ 이라는 것을 하고있는 신입생들뿐이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