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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역사를 거슬러
잡힐 듯 말듯하면서 스쳐 가고 있는 손등이었다. 잡을 듯 말듯하면서 스치는 두 사람의 손길이었다. 그렇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손길의 움직임이 멈춰 섰다. 신호에 따라 사람이 움직이냐 차가 움직이냐 갈리는 건널목이었다. 보도 앞에 선 두 사람은 시선을 두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목하게 웃는 두 사람의 얼굴이었다. 예지는 자신의 눈에 담긴 선배가 좋았다. 자신의 귓가에 닿은 선배의 목소리가 좋았다. 덥석 잡고 싶지만 잡지 못한 선배의 손이 좋았다. 그냥 선배의 모든 것이 좋았다.
보도에 서자, 말이 없어진 두 사람이었다. 먼저 움직임을 보인 건 선배였다. 고개를 돌려 예지를 보았다. 이에 반응하듯 예지가 선배를 보았다. 서로의 눈동자에 서로가 비췄다. 발그레 웃는 예지였다. 선배도 문득, 가만히 보니 예쁜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랬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는 예지였다.
“예지 너는, 이 동아리 선택한 게 알아가 보자 한 거밖에 없어?”
무슨 말이었을까. 무슨 말일까, 왠지 모를 질문에 화들짝 놀라는 예지였다. 자신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자신을 더 놀라게 했다.
“에잇. 선배 때문이죠….”
허억. 무슨 말을 한 거지, 못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필이면 차도 멈춰서서 소음이 줄어들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응?”
“아니, 선배가 너무 멋있어 보여서 저도 그래서….”
이제는 그냥 막가자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예지였다. 이제 다 끝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는 처음엔 모르쇠의 표정을 짓더니 나중에는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표정에 예지는 망연자실하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하게 되었다.
“나 같아지고 싶었다고? 벌써 그런 생각을 하다니”
하고 있는데, 예지는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신호등 불 바뀌자마자 에라 모르겠다 뛰어가다가 돌아섰다.
“저, 먼저 갈게요 선배. 하하~ 내 이. 일.”
“예지야!!!”
멈춰서 있는 차들 사이에서, 멈춰서야 하는 차 하나가 멈추지 못하고, 바닥과 타이어 사이에 불빛이 교차하며 마찰을 일으키며 삐이익, 늦게서야, 멈춰서고 있었다. 선배가 서둘러 달려나가 보는데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예지가 차에 치이는 장면이 바닥에 비친 그림자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늦은 선배의 그림자가 애처롭게 손을 뻗어 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바람이 불었다. 매우 거세게 불었다. 모래바람이 흩날렸다. 바닥에 모래는 없었는데, 아주 거세게 불었다. 예지에게 달려가는 선배의 옷이 조선 시대 호위무사 복장으로 바뀌며 ‘세자저하!’라고 부르는 목소리와 함께 달려오는 권신의 모습이었다. 쓰러진 세자를 부축하며 일으켜 세워본다. 다급하게 숨을 몰아쉬는 세자의 모습이었다. 괜찮은지 살피는 권신, 그리고 선배의 모습이었다.
“괜찮다.”
괜찮다고 하며 혼자 일어서려다 다시 쓰러지는 의경 세자였다. 권신이 다시 부축하려면 말려보지만, 다시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다가 끝내 쓰러져 버린다.
*
동궁, 밤이 깊었다. 의경 세자를 걱정하는 얼굴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세자빈이 있었고 세녕공주도 옆에서 간호하며 살펴보고 있었다.
어의가 이장을 살펴보며 여기저기 급하게 살핀다. 마지막에 코앞으로 엄지와 검지로 확인하고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젓는다. 세자빈이 아니라고 울부짖으며 인정하지 않고 세녕도 눈물을 흘린다.
“저하!!, 세자저하!!!”
*
아무것도 없는 흰 배경이었다. 양 끝에 의경 세자와 예지가 있었다. 서로 이곳이 어디지 살펴보며 앞으로 걸어간다. 서로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살피며 걷고 있었다. 걸어가면서 스쳐 가는 기억들에 한마디 하고, 한 발짝씩 옮겨가고 있었다. 서로 마주하기 직전, 지나치듯 엇갈리는 두 사람이었다. 계속 걸으려던 두 사람이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예지가 돌아보려는데 그에 의경도 돌아보려 한다. 서로 스친 두 사람이 돌아보려는데, 돌아보는 도중에 의경이 가루가 되어 바람 곁에 흩날려 사라진다. 예지가 돌아보자 아무것도 없는 흰 배경만 가득하였다. 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없이 흰 배경만 가득한 시선에서 다시 고개를 돌려 걸었다.
“저하! 세자저하!!”
문득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예지였다. 이상한 느낌에 다시 고개를 뒤로 돌려 보았다. 고개를 돌려 보자 날아가는 잿더미들이 보인다. 잿더미들이 스치자 이내 간지러운 듯 털려다가 하늘로 손을 올려 날아가는 가루가 되어가는 의경을 붙잡는다. 무언가 손에 잡히는 예지, 놓지 않고 꽉 붙잡는다.
흰 배경에 가루들이 퍼져서 동굴을 이룬다. 허공에 저었던 예지의 팔에 의경 세자의 옷으로 둘러진다. 예지가 허공에 저었던 팔을 보면 의경의 것이 되었다.
*
팔을 들어 올리는 의경, 깨어나는 의경이었다. 헉헉, 자신을 보며 울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찡그려지는 표정을 짓는 의경이었다. 아니 예지였다. 보면 조선 시대에나 입을 뻔한 한복을 입고 있어서 어지러우면서 웃겨 미소가 나오는 의경, 아니 예지였다. 분위기가 너무 엄숙해서 자신이 잘못한 거 같은 느낌도 들었다.
모두가 놀라 한다. 어의가 제일 놀란 표정을 짓고 어이없어하고 있었고, 세녕이 눈물을 닦으며 의경을 보았다. 세자빈이 덥석 의경을 끌어안았다.
이럴 때일수록 안정을 취해야 한다며 세녕이 모두를 물려 의경을 쉬게 하였다. 예지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모르겠었다. 장난치고 있는 건가, 피곤하긴 한데, 우선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쉬려고 누웠는데 잠은 오지 않았다. 이게 뭐지 하는 그런 생각만이 가득했다. 여긴 어디고, 나는 예지인데, 그럼, 여기만 어딘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때 주상전하 드십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웬 풍채 좋은 아저씨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예지는 뭐지 싶어서 그냥 앉아 있었고, 뒤에 있는 사람들이 놀라서는 어찌할 줄 몰라하고 있었고, 그 아저씨가, 손짓하여 괜찮다고 표시한다. 예지에는 모두 낯선 상황이었지만 이 상황에 낯설다는 느낌이 그렇게 많이 들지는 않았다.
“괜찮으냐?”
자신한테 괜찮냐고 물어보는 이 사람은 누구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예지의 영혼이 깃든 의경 세자였다.
“네.” 하고 우선은 대답했다.
“...”
“저하께서 아직 온전치 못하신가 보옵니다.”
이때 내시가 끼어들었다. 세조가 씁쓸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래, 괜찮다면 됐다.”
하고 일어서 나가려는데, 다시 한번 돌아서서 보고, 다시 나가는 세조였다.
세조가 사라진 후 몇 시간이 지났다. 계속 가만히 누워만 있다 보니 목이 마른 예지였다. 덜컥 일어서서 여기저기 살피는데, 무슨 궁궐 같다. 신기해서 이것저것 뒤져보는데 한 서랍의 두 번째 칸이 열리지 않는다. 다른 모든 칸은 열리는데 유독 그곳만 열리지 않았다. 이게 다 뭐지 하면서 보는 의경의 모습을 한 예지였다.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들어오는 내시, 방안을 헤집어 놓은 모습에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저하, 무얼 찾으십니까”
“저하? 무슨 이상한 소리야? 지금 내가 잠시 잠든 사이에 몰래카메라도 찍는 건가? 그만 해요! 어디서 오셨어요? 친구들이 섭외 한 거죠?”
내시의 복장을 한 남자에게 묻는 예지였다. 연기 잘한다고 엄지를 내밀며 따봉 제스쳐를 취하는 예지였다. 그런 모습을 보이는 의경 세자의 모습을 보고 내시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가? 자신이 배운 교양에서 생각해 보려 애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매우 당황해서 어찌할지 모르는 내시였다.
“예…? 저하….”
아이고머니 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상황에 대한 교양은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는 상황이었다. 정신이 이상해지신 건가 걱정이 들기도 하였다.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아저씨 연기 잘하신다. 배우신가. 여긴 어디예요?”
그런 내시의 모습을 보고, 참 웃긴다며,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예지였다. 서로가 서로를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이었다. 내시는 지금.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히지만, 애써서 참는다. 그러기를 수십 년인데 이 정도 시련에 무너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내시였다.
“동궁전이지 않습니까? 저하. 어찌 그런 걸 여쭤 물으십니까”
“동궁? 그게 뭐예요? 아 됐다. 답답하니까 물 좀 주세요.”
“.. 예. 저하….”
당황한 기력이 역력한 내시지만 세자가 명한 일에 대한 일은 확실했다. 큰 목소리로 내시가 명하자 궁녀들이 물을 떠 오는데, 흰 그릇에 깍듯이 담긴 물을 가져오며 조심스럽게 세자에게 내미는 궁녀였다. 예지는 자신의 친구인가 확인하기 위해서 궁녀의 모습을 살핀다. 그러자 내시가 아이고머니나, 하는 표정을 짓고, 뒤에 다른 궁녀들은 부러운 표정을 지었고, 물을 가져온 궁녀는 얼굴이 빨개지며 부끄러워하였다.
“저하….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뭐가 안된다 입니까.”
“법도에 어긋나는 법입니다.”
알면서 왜 그런 걸 물으시냐는 표정과 말투로 말하는 궁녀였다. 그런 말의 의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의경은 정말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이거에 법도에 어긋난다니….”
세자의 푸념 섞인 목소리에 동궁의 사람들이 모두 놀라 무릎을 꿇어 절을 한다.
“저하…. 망극하옵니다.”
그런 모습을 보자 놀란 예지는 뭐냐 이거, 이런 연기까지, 엄청나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니….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아. 됐어 물이나 좀 마실게요.”
하고, 물을 덜컥덜컥 마시려고 했는데, 물이 담긴 그릇을 집어 올리는 순간, 비친 얼굴이 자신이 아님을 확인하는 예지였다. 예지의 얼굴이 물살에 따라 의경의 얼굴로 변했고, 그 비친 얼굴을 확인하는 예지의 영혼이 깃든 의경이었다. 예지는 놀라서 물을 엎지르고, 그릇을 바닥으로 떨어트린다. 그릇이 깨져 파편이 튀었다. 놀라 궁녀들이 바로 치우려고 했다. 예지는 놀라서 엉덩방아를 찍은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궁녀가 황급히 깨진 그릇과 엎어진 물을 정리하는데, 엎질러진 물에 비친 의경 세자의 모습에, 예지는 놀라움을 감출 수 있는 표정을 짓지 못한다.
‘이게 무슨 일이야 맙소사….’
서둘러 깨진 그릇과 엎질러진 물이 치워지고 새롭게 가져온 물이 담긴 그릇이 있었다. 혹시나 해 나무로 된 그릇으로 물을 가져오는 궁녀였다. 자신의 센스가 칭찬받지 않을까 싶어 의경을 홀깃 보는데 그럴 기미가 전혀 없어 보였다.
사람들이 물러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예지였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의경 세자의 모습이었다. 여러 자세로 거울에 비친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일이 이상함을 짐작하고 조금 전과 다르게 자신이 있는 곳을 보는 예지였다. 그리고 작게, 작게 말했다. 방 밖에 비치는 그림자조차 듣지 못할 소곤소곤 정도의 소리였다.
“말도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