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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바뀐 역사, 바뀔 역사
뜨거울 정도로 강렬한 햇빛이 비치었다. 그 햇빛을 받들어 알려주고 조선 사람들에게 있는 양구 일부를 발견하는 예지는 신기해하며 다가갔다.
“광화문에 있던 건데!! 찐 이다!!”
해시계를 발견하고 신기해하며 쳐다보는 의경 세자였다. 그런 모습을 보자 낯섦을 느끼는 권신이었다.
“우와 이게 해시계구나”
의아한 표정을 짓는 권신이었다. 그런 권신을 보는데, 햇빛이 비치어 빛났다. 후광이 비치는 느낌이었다.
“양구 일부를 할아버님께서 만드신 훌륭한 물건이라고 늘 자랑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늘 품에 계신 누님께서 주신 모래시계 와요.”
“헐, 세종대왕이 내 할아버지야?”
할아버지라는 말에 놀라는 의경, 그 말에 더 놀라는 권신이었다. 놀람을 빨리 진정시키며 혹시라도 주변에서 듣지 못했나 살폈다. 예지는 권신의 말에 모래시계를 찾아보았지만, 지금은 없었다. 늘 품에 갖고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네, 생각했다. 권신이 주변을 살피는 모습을 발견하고, 내가 실수했나 싶어서 덩달아 주변을 살펴본다.
“저하!! 어찌 그런…. 언사를….”
“아, 방금 건 잊어줘.”
“저는 오직 저하를 지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권신의 말이 귓가를 타고 마음에 전해진다. 비록 내가 아닌 이 몸의 주인에게 하는 말이겠지만 지금 그 말들 듣는 건 자신이니까, 선배를 닮은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까 설렜다. 그냥 닮은 정도가 아니라 존 똑, 완전 똑같으니까. 천천히 아련하게 권신을 보는 예지였다. 세자가 자신을 아련하게 쳐다보자 어색해지는 권신이었다.
“크, 멋있다. 그 말. 좋아. 좋아.”
세자의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식은땀이 흐르는 권신이었다.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계속 당황한다. 황당한 일들만 계속 일어나는 최근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가, 조선이구나…. 세종대왕이 내 할아버지면, 그럼 그 사람은…. 문종? 세조…? 둘 다…. 아들들은 빨리 죽는데…. 그게 난데…. 난 단종인가…. 그럼!! 수양대군을 조심해야 해…!!!”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들리지 않게 말하는 세자를 보고 권신은, 아직 제정신이 돌아오시지 못하고 계속 아프시구나 하는 생각에 안쓰러웠다. 듣지 못해 다행이었다.
*
햇빛이 중천에 떠 있었다. 저잣거리에서 세자와 호위무사를 지켜보던 시선의 주인공이 대군을 알현하고 있었다. 의경이 궁에서 일으킨 일을 보고하고 있었다. 하인의 보고가 끝나자 나가보라고 말하는 대군이었다. 하인이 나가고, 가만히 앉아서 곰곰이 생각하는 대군, 해양이었다.
“아프다가 일어나시더니, 갑자기 뭔….”
천천히 생각하다가. 벼루에 먹을 간다. 한참을 갈더니 붓을 잡고 글씨를 쓴다. 그림을 보면, 잘 그려진 사신도였다.
*
양구 일부의 시간이 끝나고, 밤이 찾아왔다. 날은 어둡고 사람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경계를 위해 돌아다니는 사람들만 궁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니, 의경도 있었다.
밤이 깊었는데도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에 다리를 두드리는 신하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어린 궁녀에게 힘내라고 말하는 늙은 기녀의 모습이 있었다. 그런 모습을 세자는 외면한 채 걷고 있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멈췄다가 다시 이동하기를 반복하였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길은 없었다. 자신이 찾는 길은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예지였다. 여기는 어디고, 지금 나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 사람, 의경 세자라는 사람의 몸에 나는 왜 깃들었고, 원래의 나로 돌아가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아직 썸을 제대로 시작하지 못했는데, 대신 여기 꼭 닮은 거기다 무예를 하는 게 조금 더 멋있어 보이기는 하는, 이 자가 옆에 있지만 결국은 선배는 아닌걸…. 그냥 똑같이 생긴 사람일 뿐인걸. 하는 생각이 드는 예지였다.
의경 세자의 걸음이 멈추었다. 모두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의경이 하늘을 보다가 모두를 둘러보다가 다시 걸으려 하다가 멈춘다. 급제동 걸리듯이 다시 다들 멈춘다.
“내가 누구냐”
“...”
아무도 대답하지 못한다.
“권신”
“예, 저하”
“내가 누구지.”
“세자 저하이십니다.”
의경, 멈춰선 곳을 둘러보는데, 무기고인지 무기들이 가득하다. 자리를 잘못 잡은 것 같아 연못가가 있는 곳을 다시 찾아가려는데 권신이 한 마디 하였다.
“생각이 깊으신 밤마다 했던 것처럼. 오늘도 검을 드시겠습니까”
“검? 내가? 말도 안 돼….”
권신의 말을 듣고, 한 번 둘러본다. 각종 무기가 있었다.
“???”
권신은 또다시 이상한 반응을 하는 의경의 모습에 당황해하였다.
“무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하.”
권신의 행동에 손사래를 치는 예지였다.
“아니, 아니다. 하자, 어떻게 하면 되지….”
무기고 있는 곳으로 가는 예지, 신하가 달려와 무릎 꿇고 검을 받친다. 놀란 예지,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음. 느낌이 이상했다. 떨리는 손으로 신하가 내민 검을 잡는다. 무겁다. 검을 잡았더니 생각보다 묵직하고 무거워 떨어트려 버린다.
“어…? 아 이렇게”
신하들이 놀란다. 세자가 검을 떨어트리다니, 불길한 징조가 아닐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를 어찌해야 할꼬, 하는데 예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다시 잡는다. 다시 잡아보니 아까보다 훨씬 익숙하다. 이것도 이 몸의 원래 주인의 영향이겠지 생각하는 예지였다.
의경이 검을 잡고 자세를 잡자. 앞으로 나서는 권신이었다. 네가 왜 나와 하는 표정의 예지였지만, 이렇게 대결을 하는 건가, 곧 생각했다.
의경과 권신, 격무를 위해 서는데 진검을 들고 있는 권신이었다. 예지의 손에도 진검이긴 하였다. 의경이 갑자기 멈춰선 채 손짓한다.
“진검은 아닌 것 같아. 가검으로 하자.”
권신은 또 놀란 표정으로 의경 세자를 본다. 하루에도 몇 번을 이렇게 놀라게 하는 건지 이제는 셀 수도 없다.
“평소에…. 아니. 아닙니다.”
예지의 말대로 가검으로 바꾼 두 사람이었다. 검무를 겨루는데 1합만에 무너지는 의경 세자였다. 권신이 당황해 그만 피하려고 해도 크게 의경을 때리고 말았다. 으악, 소리와 함께 의경 세자는 쓰러지고 말았다.
“저, 저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엎드리는 권신이었다. 예지는 아파 죽겠지만, 일어서려는데 죽을 것처럼 아프다. 진검이 시야에 보이자, 진검으로 했으면 아찔하다. 고개를 젓는 예지, 가검으로 한 게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아니…. 아니 괜찮아. 일어나….”
“... 그만하시겠습니까.”
“아니 아니. 다시 해보자”
원래 그런 마음 없었는데 게임에서도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이었는데 왠지 모를 오기가 가슴속에서 끓어 올랐다. 권신과 의경, 다시 검을 잡고 마주 본다. 권신, 이번엔 약하게 하려는데 아까와는 다르게 바로 다르게 달려드는 의경의 모습에 놀라 검을 놓치고 말았다.
예지, 오 뭔가 이상하게 한문도 그렇고 검무도 그렇고 좀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신기하군.”
“???”
“다시 해보자”
의경은 놓친 검을 주어 다시 검무를 준비한다. 약하게 해야 할지 강하게 평소처럼 해야 할지 고민한다. 도저히 장단을 맞추기가 어려워진 세자의 모습은 하루하루, 매시간, 순간을 긴장하게 했다.
의경, 권신과 1합을 겨룬다. 칼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한밤중 내려앉은 공기 사이에서 퍼진다. 2합은 조금 밀리지만 금세 처음보다 훨씬, 아니 굉장히 나아진 모습이었다.
땀이 흐를 정도로 겨룬 두 사람이었다. 예지는 이제 땀을 식히자며 좀 걷자고 한다. 밤마실 좋잖아, 선배였으면 더 좋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권신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였다.
*
권신과 예지, 후원을 걸었다. 계속 걷다가 예지가 연못을 본다. 자신의 비치는 모습이 의경 세자의 모습인 것을 보고 옷을 걷어 자신의 손과 다리 등을 살핀다. 궁녀들이 고개를 돌린다. 권신도 고개를 숙인다.
“신기해”
“.,...”
세자의 요즘 들어 바뀐 모습이 더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고 마는 권신이었다.
몸을 살피는 예지, 갑자기 머리가 짜릿하다.
삐이익, 소리와 함께 찾아오는 기억이었다. 교통사고 때의 기억이었다. 달려오는 차량, 자신에게 달려오는 선배의 모습이 보인다. 동시에 엄청난 고통이 온몸에 느껴지고 이내 달려오는 선배가 시야에서 빠르게 흐트러지면서 사라진다. 온몸이 떨리고, 무서워지는 예지였다. 자신에게 달려오던 선배의 모습과 권신이 오버랩되면서 비추었다.
21세기의 선배, 15세기의 권신. 두 사람인 듯한 사람인 그대. 권신,
“니가 있어 다행이다.”
“저하….”
고개를 들어 세자를 보는 권신이었다. 어딘가 낯설고, 애처로워 보였다.
*
밤이 깊어 이제는 새벽이 왔고 내일을 위해 그만 잠을 청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간청에 못 이겨 잠을 청하러 왔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방 안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다가 자려고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혹시나 해 꼬집어보면 역시나 아플 뿐이었다.
아프다. 괜히 꼬집었다 싶어서 어루만진다. 베개를 잡는데 뭔가 이상한 게 잡혀 베개 피를 뜯어보는 예지였다. 뜯어보니 열쇠 하나가 나온다. 설마 싶어 아까 열리지 않았던 곳으로 가 열쇠를 넣어보니 열렸다. 안을 보니 이상한 문서가 가득하다. 눈에 띄는 책을 펴보니 일기가 있었다. 의경 세자의 일기였다. 궁금해 호기심을 가득 안고 책을 펴 본다.
예지가 핀 첫 번째 내용은, 계유정난이었다.
‘아버님은 왕이 되셨다.
백성을 위한 길이라고 한다.
아무리 봐도 자신을 위한 길인데.
왕도란 무엇인가.
왕이란 하늘이 내리는 자라고 하는데.
나는 그저,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 이유.
진평대군을 거쳐 수양대군이 되어
그리고 조카 홍위 형님을 몰아내고
왕이 된 아버님의 아들 이장일 뿐이다. ’
부르르 떨리는 예지였다. 그때 그 본 사람이, 수양대군이었다니, 선배가 그렇게 미워하던 사람이었다니, 내가 수양대군의 아들로 환생? 아니, 뭐 어쨌든 수양대군의 아들이 되어있다니. 이제는 대군이 아니라 왕인가.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 깊어진 것처럼 자신의 생각도 까맣게 물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예지는 서둘러 밖에 누구 없느냐, 말하며 권신을 불렀다. 곧이어 권신이 들어오면 앉으라고 말하는 예지였다. 낮과는 다른 비장한 표정을 한 의경이 나타난 것 같은 느낌에 시키는 대로 앉았다. 그러더니 마주 보며 자신의 양 팔뚝을 툭. 잡는 의경 세자, 예지였다. 권신이 느끼기엔 한나절 사이에 사람이 바뀐 것 같았다.
“내가 이장으로 보이는가?”
착각이었나.
“그렇습니다.”
“오늘 같은 모습을 보였어도 그러는가?”
“제겐 언제나 세자 저하는 세자 저하일 뿐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셨지’
입술을 굳게 깨문듯한 비장한 표정의 의경 세자, 예지를 보는 권신이었다. 낯설지 않은 모습이었다. 자주 뵈었고, 그렇게 믿음직하였고 충성을 다하겠다 맹세했던 그 표정이었다.
“그래, 나는 이장이다.”
“...”
“세조의 아들, 의경 세자다. 역사는 지금, 나로부터 바뀌었다.”
비장한 건 좋은데 이건 비참한 기분이 갑자기 드는 권신이었다.
“...?”
“바뀔 거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느낌, 기대, 생각하고 행한 게 아니라 저절로 고개가 조아렸다.
<역성>
역성이 일어난 지 수십 년 후,
두 번째 역성이 있었다.
왕으로부터 이로.
남으로부터 여로.
그것이 역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