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게 안녕히

번 외

by 라한

-다정하게 안녕히


“우리 그만 하자, 이제 그만 하자”


천천히, 나긋하게, 또박또박 말했다. 못들은 척하고 싶었지만 너무 또렷하고 확실해서 그럴 수 없었다. 아니라고 말해도 아닐 수가 없는 얘기였다. 그는 떠났고 나는 남았다. 내 마음엔 아직 그가 남았는데, 이렇게 많이 남아 있는데, 이렇게 많이.


둘이 샀던 옷과 둘이 샀던 신발과 둘의 이름이 새겨진 반지가 아직 내 손에 끼워져 있는데, ‘우리 그만하자’라는 한마디로 이제는,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었다.


넓은 카페 속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그 반대가 되어버렸다. 이별의 계획이 어디서부터였을까. 왜 오늘이었을까. 내일이었어도 어제였어도 똑같았겠지만 문득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며칠 갑자기 연락이 안돼서 하루 종일 걱정했었던 어제의 시간이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자는 연락에 다시 행복해진 마음으로 와 반갑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몇 마디 나누지 않은 우리는 이제는 연인이 아니게 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해되지도 않았다. 그의 마음은 이제 나와 다른 방향을 보고 걸었다. 함께 걸어서 참 좋았는데 이제는 그렇지 못했다. 너무 큰 충격에 바깥에 소란이 나도 관심이 가지 않았다. 앰뷸런스가 급하게 오는 것 정도까지는 카페에 자리를 틀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말해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날이 무척 밝고 맑았던 날이었다. 구름 한 점이 없어서 햇빛이 쨍쨍히 그대로 바닥까지 공정한 날이었다.


무거운 짐을 끙끙되며 옮기던 할머니를 도와주던 남자, 파란색의 셔츠에 흰색의 구름 무늬를 입었던 그 남자가 땀을 흘리며 손부채를 하고 있던 모습이 있었다. 그렇게 어느 한적한 기차역에서 만난 우리는 우연히 같은 방향으로 기차를 탔다.


기차의 칸과 칸 사이, 자리가 없는 입석들이 모이는 공간이었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 끊임없이 지도와 스마트폰을 확인하던 내게 “여수 가시나 봐요?” 하고 물어왔던 그가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내 모습을 한참을 내려다보던 그가 있었다. 그 두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있었다. 그때 그는 너무 수줍어하는 내모습이 마치 천사 같아서 순간 심정지가 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의 목적은 여수가 아니었는데, 그때부터 여수로 바꿨다고 했다. 깜빡 속았다. 취소된 약속이었지만 예매 취소를 깜빡해 울며겨자먹기로 출발한 여행이었다. 혼자 여행은 처음이라 낯설고 두려웠지만 기대도 됐다. 그를 만난 이후로 그 기대를 모두 보상 받은 느낌이었다고 그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여수 여행을 몇 달 전부터 준비한 나보다 잘 알았던 그 사람이었다. 나와 어떻게든 행선지를 같이 하려고 살면서 가장 많은 정보를 빠르게 찾아냈었다고 사귀고 난 후에 고백하는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던 그였다.

내가 한 마디 하면, 그 한마디로 지도를 완성시키던 그가 있었다. 사랑받는 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끼게 해준 그가 있었다. 내가 너무 부족해서 나를 떠난 그가 있다. 좀 더 잘할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 참았는데, 막아내지 못한 눈물이 새어 나왔다. 우리의 사랑처럼 뜨거웠던 눈물이 그 따스함으로 두 뺨을 어루만지는 순간이었다. 눈물에 비쳐 보이는 저 꽃잎 하나가 보인다. 얼마전까지, 아니 지금도 사랑하는 그 사람이 있던 그 자리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흐으어으어흑흑”


소리 내어 울었다. ‘저년 참 독하다’ 라면서 태어날 때 빼고 울음소리 들어 본적이 없다며 금순이 보다 굳세다며 어른들의 혀를 치게 했었는데, 이별 앞에서는 굳셀 수 없었다.


우리는 모를 줄 알았는데,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별’ 이라는 거, 그런 거, 아니었다.


*


도시,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병원, 그중 급히 실려오는 환자를 보며 차트를 보고 있는 어떤 의사 한 명.


“이 환자, 사라졌던 그 환자지? CCTV 보니까, 기적처럼 걸어갔던”

“네?! 그, 그렇네요”


아무리 애써도, 아무리 애써봐도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


‘안된다는 거 알잖아?’


“제발 한 번만, 한 번만, 아니면 끝까지 나 포기못할 사람이예요.”

‘사연은 누구에게나 있어. 자 부른다. 세번만 참아’

“한 번만 보게 해주세요. 그 한 번이면, 나는 듯이 가겠습니다.”


중환자의 병실, 화분에 핀, 들꽃처럼 피어 존재조차 아는 이 없지만, 어떤 이가 들꽃이라 이름 지었던 꽃이 진다.

한 번만 외치던 그가 일어서서 자신의 소지품을 찾았다. 휴대전화를 꺼내 1번을 꾹 누른다.


뚜르르.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너무 아름다운 목소리가 그의 몸에 퍼진다. 행복이 퍼짐을 느낀다. 잠시 머뭇거리다 세상 가장 강력한 중력으로 끌어당기며 무거워진 두 입술을 떼어낸다. 이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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