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 소원 꽃
소년이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가을의 색이 모두 하얗게 칠해진 지도 어느덧 셀 수 없이 많은 날이 오고 가고 하여 희미해지고 있는 시간이었다. 소년의 집에서 소년을 돌봐주는 소년보다 소년 같은 어른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이 소년 때는 더 긴 겨울의 방학이 존재했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계절의 반 이상을 집에서 보냈다는 그 동경스러운 이야기는 소년을 슬프게 하고도 충분했다.
소년의 슬픈 마음을 달래주는 이야기는 소년이 집으로 가는 길에 발견할 수 있는 작은 꽃잎으로부터 시작한다. 매 년, 매 계절, 봄이 올 때쯤 피어나는 새싹이었다. 어떻게 그 자리만을 고집하는지, 그렇다고 조금만 더 옆으로 걸어가면 볼 수 있는 나무처럼 자라나는 것도 아니고, 매번 가을이 올 때면 사라졌다가 다시 봄이 오면 피어나는 들꽃이었다.
들꽃의 이름을 묻지도 꺾어 집에서 보고자 하지도 않았다. 그랬다면 이렇게 힘든 등하굣길에 행복할 수 없을 테니까. 그저 잠시의 힘듦을 잊게 하는 시간을 가지면 충분한 것이었다.
소년이 처음부터 그 꽃을 꺾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그 길가에 그 들꽃과 같은 꽃의 뿌리는 더 있었고 그 들꽃 사이에서 이제 겨우 마지막으로 남은 들꽃이었다. 소년은 이 꽃의 이름을 알고도 아직도 그 꽃을 들꽃이라 불렀다.
꽃에게 소원을 빌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고도 그 꽃이 언제나 피어나기를 바라기에 소원을 빌지 않았다. 어쩌면 소년의 소원은 그 꽃을 계속 보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살아생전, 그 이후에도 꽃이 피고 지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소년은 들꽃으로 만나, 소원이란 이름을 알게 된, 봄이 오면 피고 가을이 지면 지는 ‘소원꽃’을 사랑 했다.
“소원 꽃이 진다는 건 누군가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거야!”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마음은 누군가 소원을 빌어 소원 꽃이 지어버리면 어떡하지였다. 그렇게 피어난 꽃이었는데, 그런 이유로 자라나는 꽃인데, 소년은 꽃이 지는 게 싫었다. 누군가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건 슬픈 일이지만 꽃이 지는 건 싫었다.
어느 날 소년은 책을 읽다가 발견한 문장으로 자신이 소원을 빌지 않는 이유를 설득했다.
“들가에 핀 아름다운 꽃을 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꽃을 꺾어 집으로 가져가는 거고, 하나는 들가로 나가 꽃에게 인사하는 방법이예요!”
한번은 소년이 생사의 사선을 넘고 있을 때 어른들은 소년에게 '살려달라고' 소원꽃에 빌라고 애원했지만, 소년은 차라리 죽고 말겠다며 어른들의 속을 썩였다. 소년에게는 제 죽음보다 아픈 것이 꽃의 죽음이었다.
소년이 아주 오랜만에 ‘소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들꽃앞에 섰다. 아니 '들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원꽃 앞에 왔다. 이제는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쌓인 주름과 낮아진 목소리, 구부러진 허리였지만 꽃은 수십 년의 세월동안 기다려왔다는 듯이, 바로 알아보았다는 듯이 바람을 빌려 인사를 청했다.
소년이었던 소년의 주름진 손과 소원 꽃의 꽃잎이 악수를 하였다. 차디도 뜨겁지도 않은 바람이 둘을 감싸안았다. 지난 바람의 시간들을 견더왔던 소년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꽃은 마치 ‘지금까지도 충분히 고마웠어’ 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무수하게 많던 꽃잎 하나가 떨어지고, 수많은 꽃잎이 처음 지어가는 꽃잎을 따라 바닥으로 떨어졌으나, 바람은 오랜 친구의 지어감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바람 곁에 꽃잎이 흩날렸다. 오랜 세월 피고 진 꽃이라 도저히 하나의 꽃에서 나왔다고 보기 힘든 꽃잎들이 길가를 넘어 마을을 뒤덮었다.
꽃잎들이 모두 날아가 버린 채 시들어버린 줄기를 부드럽게 붙잡고 눈물범벅인 채 울고 있는 소년이었다. 마을을 넘어 산과 강을 넘어 대도시의 어느 병원으로 흩날려온 꽃잎 하나가 만유인력의 법칙을 모두 무시하고 병실의 어딘가로 당도했을 때였다.
초록의 빛으로 한 줄을 긋던 선이 아래로 위로 휘어지더니 삐이익, 시끄럽던 소리가 끊어진다. 꽃잎이 끊어 낸 느낌이었다.
-죽는다 다더니 안죽네
-맨날 마지막이래.
병실에서 일어난 후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신 걸까 생각했다. 소원꽃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왜 그 꽃에게 소원을 빌지 않았는지 몰랐지만, 소원이 생긴 지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꽃을 사랑했던 아버지와 꿈을 사랑한 자신이 다르지 않음을 아니까.
무대 뒤편, 애써 표정을 숨기는 아내에게 키스한 그는 행복한 표정으로 무대에 오른다.
아버지에게 전해 꽃에 빌어진 소원,
“마지막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줘.” 라는 그 말을 지키려 한다. 무대에 오르지 않으면 살 수 있었지만, 그에겐 그건 죽음이었다. 죽은 채 살아가는 것보다 무대에서 죽는 게 나았다.
“안녕하세요. 가수 이무태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무대에 오른 그를 향한 목소리는 환호의 목소리로 환영받았다. 훗날 이 무대의 주인이 되는 소년 ‘빅’이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죽음을 이겨낸 무대꾼, '좋은구역'의 공연을 보고 있었다.
그는 도저히 아픈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동료들과 환상의 무대를 선보였다. 사람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태양에도 흑점이 있듯이 듬성듬성 아픈 거 맞아? 라며 꼬투리를 잡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행복한 밤을 외치며 무대를 장악하는 그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노래를 남기고,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몰락하기를 바라던 노래가 무대를 시기심으로 메웠고, 사랑은 환상이라는 노래가 무대를 화끈하게 만들었다.
세계 최고의 무대, ‘마음’에서의 일이었다.
-진짜 죽네
-이제 속이 후련하냐
무대의 신이라 불리며 사랑받았던 무태의 죽음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슬프게했다. 무태와 함께 무대를 누비던 주훈은 그날로 은퇴를 선언했다. 다른 동료들이 좋은구역의 활동을 이어갔지만 두 주역이 사라진 이후 그들의 이름은 기적같이 사라져갔다.
어느 날이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다가 갑자기 멈춘 날이었다. 왠지 그리운 무태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만 같은 날이었다. 자신에게 갑자기 자신보다 한참은 어린 청년의 사진을 들이밀며 아는 사이냐고 묻는 정연이 나타난 날이었다.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처음 보았다. 그래서 무슨 짓이냐며 무시하며 길거리를 걷다가, 한동안 자신을 뒤에서 쳐다보던 정원이 안보일정도로 걷게 되고 나서였다. 하늘에서 비가 우두둑, 소나기가 갑자기 떨어지고서야 어디서 보았는지 알 것 같은 얼굴이었다. 왜 처음이었지만 낯설지 않았는지 알 것 같은 얼굴이었다. 조금은 다르지만, 분명히 그 얼굴은 무태였다. 이정훈, 그 이름은 분명히 무태가 남기고 간 흔적이었다. 어릴 때 보고 너무 아파서 거의 30년은 찾아가지 않은 오랜 추억이었다. 오랜 꿈이었다. 오랜 사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찾아온-, 꿈-. 사랑이었다.
빗물에 숨은 채 눈물을 흘렸다. 아니 펑펑 울었다. 엉엉 울었다. 바닥에 뒹굴어져 울었다. 겨우겨우 참아내고 있었던 버팀이 무너졌다.
보고싶어 미칠 거 같은데, 그래서 잊고자 했는데, 서고 싶어 죽겠는데,
“이 사람 압니까?”
‘알다마다.’
과거를 조금 전으로 되돌렸어도 똑같았겟지. 하며 원망이 섞인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비 내리는 도시는 사라지고, 행복하게 웃음 지으며 무대에 올라 있는 무태와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깊게 새겨진 발자국이어서,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과거가, 역사가 있었다.
다시, 할 수 없겠지. 생각했는데.
왜 갑자기 나타난거냐는 원망이 들었다.
그 무대는 그대로일까 애써 외면했던 곳으로 발길이 옮겨졌다. 이름도 모양도 바뀌었지만 무대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마음’ 인건가, 이 무대의 이름이, 처음부터 마음이었나, ”
30년이 지나버린 기억은 완전하지 않았다. 먼지하나 끼지 않은 채 더 웅장하게 변해버린 옛 기억은 괜히 긴장하게 만들었다.
조용히 들어서려 했으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기억에서 멈춘 것은 자신뿐이었나 보다. 그가 긴장하여 주변을 둘러봤을 때 자신에게 무태 아들의 사진을 내밀었던 정연이 저만치서 보였다. 달려가서 어디서! 그 사진은 어디서 났냐! 라고 물어야 하는걸까 주춤하는 사이였다. 뒤에서 엉거주춤 움직이다 자신과 부딪친 사람을 돌아보자 사진의 주인공이 “죄송합니다” 말하고 있었다.
30년의 세월 동안 외면했던 그가 사랑했던 꿈, 그리하여 이제는 꿀 수 없을 거라 생각했었던 꿈이, 그 오랜 세월을 건너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