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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쁜샘 Dec 16. 2022

유모차, 독일 공항 프리패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울려퍼진 울음소리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 입국장

표정 없이 앞만 바라보고 있는 독일 사람들의 뒷통수를 바라 보고 쭈뼛쭈뼛 줄을 선다.

아이가 있다고 비행기에서 일찍 내리는 특권을 얻었으면 뭐하나.

유모차를 기다려 아이를 태우고 왔더니 

거대한 비행기가 토해낸 승객들이 이미 입국심사장에 똬리에 똬리를 틀고 겹겹이 서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반으로 착착 접혀서 기내에 들고 탈 수 있는 유모차를 살 걸 그랬다 싶다

휴대용 유모차가 있는데 뭐하러 또 사냐고 남편에게 핀잔을 주었던 내가 한심스러워지는 순간.


이 길고 긴 줄에서 우리 차례는 언제쯤 오려나


비행기에서 잠든 아이를 안고 비행기 입구에서 기다렸다.

투명한 연결 통로의 창 밖으로 거대한 수화물 더미 앞쪽에 빨간 유모차가 보인다.


직원이 친히 들고 계단을 올라와 건네주는 유모차를 받아 아이를 간신히 눕혔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린 독일은 환한 대낮이었지만 한국 시각으로는 오밤중이다.

고맙게도 비행기가 착륙할 때 품에 안겨 잠든 딸을 똑바로 앉혀 벨트를 채우고 

다시 안아 비행기에서 내리고 

유유히 지나가는 승객들을 바라보며 유모차를 기다리고 그 곳에 눕힐 동안

작은 아이는 깨지 않았다


예쁜 것

한국 시각으로 지금은 오밤중이니 누가 업어가도 모를만큼 잠들었구나


유럽에 네 살, 여섯 살 아이들과 함께 왔다.

한국인 가족여행객이 넘쳐나고 정보도 넘쳐나던 괌과는 준비 과정부터가 달랐다.


영어를 글로만 배운 남편은 900점 토익점수가 무색하게

외국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를 말하기에 나의 어깨가 무겁다.


그래도 아이 둘 중 한 명이라도 자고 있으니 괜시리 긴장되는 입국장에서 

그나마 정신을 챙기고 서있게 된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독일은 입국장이 어찌 이리 조용할 수 있는가 참 신기한 사람들이다

하는 생각이 스칠때 즈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도 탈래"


허걱

아빠한테 안겨있던 아들이 불편했는지 잠든 동생 치우고 내가 눕겠단다

흔들리는 유모차

으, 아웅, 우

유모차에 누워있던 딸이 뒤척이기 시작한다.

행여나 이 시점에서 잠에서 깰까 입으로는 아들을 구슬리고

손은 좁은 줄에서 앞 뒤로 열심히 유모차를 움직여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으앙

터져버린 울음

낯선 공기, 낯선 사람, 낯선 냄새

순하다 자처한 딸인데 지금 이 순간은 온 힘을 다해 울고 있다.


내가 딸을 유모차에서 내려 안기도 전에 공항 직원이 한걸음에 달려온다.

자기를 따라 오라더니 똬리를 튼 줄의 가장 앞쪽으로 우리 네 식구를 세워준다.

비즈니스석 일등석 사람들이 부럽지 않은 순간이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아동친화적인 국가 독일을 여행하다 보니 딸이 울기 전에는 

아이가 있는 가족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기에 긴 줄 끝에 우리를 뒀었구나 싶더라


흐미.

길고 긴 줄의 무표정한 독일인들이 눈총이라도 보낼까 

미안한 마음 가득담아 슬쩍 쳐다보니 누구하나 눈살을 찌푸리는 이가 없다.

눈을 마주치니 무표정했던 그들이 도리어 미소를 날려준다.


작은 아이를 향한 배려와 함께

빨리 저 가련한 동양인 가족 좀 나가게 해주라는 따뜻한 무언의 메세지를 보내는 듯하다.


입국심사대의 품이 넉넉한 아주머니는 딱딱하게 생긴 제복마저 그 품으로 안은 듯했다.

한 명씩 들어가야 하는 그곳에 네 명이 함께 오라 웃으며 손짓하신다.


모든 것이 신기한 여섯 살 아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하얀 피부 노란 머리의 아주머니를 쳐다본다.

아주머니도 갈색 피부 까만 머리의 우리 가족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패밀리?

트래블?

하며 간단한 질문을 하고 쿨하게 쾅.쾅.쾅.쾅.

네 개의 여권에 요란스레 도장을 찍어주시고 네 명을 세트로 통과시켜 주신다.


딱딱한 나라, 법과 원칙이 무엇보다 중요한 나라

내가 오기 전에 들은 독일이었다.

그러나 오늘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독일은 따뜻한 나라.

아이의 시끄러운 울음 소리에 미소를 날려주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다.


독일에서의 첫 날, 공항 입국장에서

아이 먼저, 아이가 편하게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아동친화적인 국가 독일과의 첫 만남을 경험했다.

(너도 아이랑 나도 아이랑, 가족 관광객이 넘쳐나는 괌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입국장에서의 경험이다.)


잠에서 깨는 신호를 알리는 딸의 울음 소리는 곧 나의 휴식이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이기에 늘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길고 긴 줄에서 우리의 존재를 명확히 알리며 때맞춰 울어 준 딸의 울음소리는 

센스넘치는, 타이밍 끝내주는 알람이 되었다.


이제 어서 가야지

아차, 하지만 공항에서 나가려면 또 다른 관문이 남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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