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랑새 Jan 31. 2023

워킹맘과 전업맘 사이, 그 어딘가에 서서


대한민국 워킹맘 중에

아이에게 죄책감 없는 워킹맘이 있으랴.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닌데

그냥 때려치우고 아이와 있어주는게

더 나은거 아닌지 고민하지 않는

워킹맘이 있으랴.

이 고민은 늘 내 머릿속에 있었지만

아이가 1학년이 되고 여름방학을 맞이할 즈음,

나는 걱정과 고민의 격랑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집은 친정이

차로 20분 거리라서 감사하게도

워킹맘이 된 이후로 친정엄마가

아침 일찍 버스타고 오셔서 아이를 봐주셨다.

우리집에 7시 30분쯤에 오시는데 그 시간에 도착하시기 위해서

더울때나 추울때나 6시 30분에 일어나서 고양이 세수만 하시고

걸음을 서둘러서 버스를 타고 오신다.

친정엄마는 60세가 되셨는데

그 연세에도 딸 육아(?)와 손녀 육아를

동시에 하고 계시는 셈이다.



"엄마, 제발 집안일 놔두고 쉬어!

아이 오면 씻기고 간식, 밥만 챙겨줘."

친정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섞인 마음으로

매일 짜증스럽게 말을 해도

늘 어지러운 우리집을 정리정돈하면서

청소하고, 빨래도 해주신다.

엄마는 10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거동이 편치 않으시다.

그래서 좀 쉬셨으면 하는 마음 반,

엄마의 정리방식이 내 스타일에

맞지 않는 솔직한 마음 반으로

늘 쉬시라고 말을 한다.

그럼에도 친정엄마는 딸이 퇴근하고 와서

조금이라도 쉬었으면 하는 마음에

낮에 주섬주섬 딸의 살림을 대신 살아주신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지.

그저 오셔서 아이를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조금씩 친정엄마와의 더부살이 아닌

더부살이에 불편한 부분이 눈에 띈다.

어느 날은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았다.

아이가 떼를 써서 내가 퇴근할때까지

씻지 않고 있고,

아이 저녁은 대충 시리얼로 떼운 것 같고

엄마는 소파에 누워서 휴대폰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날의 발생빈도가 잦아졌다.

'아니, 왜? 애가 학교 마치고

아무리 늦게 와도 2시,

내가 퇴근하고 들어오는 시간은 7시인데

왜 아직 씻기지도 않았지?

이제 혼자서도 곧잘 샤워하는 아이인데

좀 씻겨놨어야하지 않나?

낮에 간식을 아무리 많이 먹었다고 해도

왜 저녁을 시리얼로 대충 떼웠지?

아파서 그런거면 눈 감고 쉬고 있지

왜 혼자 노는 아이와 떨어져

누워서 휴대폰을 보고 있는거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불만이 순식간에

내 안에 가득차오른다.

마음 한 켠에서는

'엄마가 컨디션이 안좋으신가보다.

정말 죄송하다.'라고 생각했지만

어디선가 부풀어오른 서운한 마음이 더 컸다.

아이가 방치되는 것 같아서 미안하고,

남편 보기에도 눈치가 보였다.

남편은 살가운 사위이지만

우리 엄마 성격이 살가운 장모는 아니라

늘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그런데 아이마저 방치되는 듯한 모습을

남편에게 보이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것이 그리 눈치가 보였다.

내 마음을 조금 입 밖으로 표현하려하면

짜증 임계치가 낮은 우리 엄마는

"아이고! 니 새끼 그러면 니가 키워라!"라고

말씀 하시던가,

말씀은 안하셔도 그런 생각을 하시면서

혼자 스트레스 받으실꺼란 생각에

나는 내 마음을 표현도 못하고 지냈다.

그나마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남편은 니 마음이 이해는 되지만

불편한 몸으로 오셔서 아이를 봐주시는

장모님께 늘 감사해야한다,

니가 장모님께 바라는게 너무 많다고 했다.

남편에게 고맙기도 하지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어떤 날은 자는 아이의 모습을 보다가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름에 접어들며

외할머니의 치매가 심해지셔서

친정엄마가 매일 우리집과

할머니 댁을 오가는 상황이 되었다.

외할머니 댁은 우리집에서 차로는 40분,

버스로는 1시간이 넘는 거리다.

친정엄마는 아이 등교 시키고 할머니 댁에 갔다가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춰서 다시 우리집으로 오는

숨가쁜 스케쥴을 소화하게 되었다.

어떤 날은 내가 퇴근하면 할머니댁에

다시 가봐야한다며 갔다가

심야버스도 끊겨서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가는 일이 생겼고

안그래도 딸과 손녀 육아로 고단한

친정엄마 일상의 레벨이게임으로 치면

갑자기 보스몹 급 레벨로 상승하였다.




설상가상, 나도 직장에서 너무 일이 많아서

제 시간에 퇴근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1시간 걸려서 퇴근하면 다시 엄마를

할머니댁이든 친정이든 모셔다드리고

9시가 넘어서야 씻고 밥 먹는 일상의 나날이었다.

아이의 취침 시간도 당연히 늦어졌다.

아이는 여전히 방치되어 있었고,

어떤 날은 엄마가 할머니댁에 급하게 가게 되어서

아이 혼자 3-4시간 집에 있어야하는 경우도 생겼다

물론 아이는 의연하고 그 시간에도 할일 딱 끝내고 너무도 잘 있어주었지만

아이와 엄마에 대한 내 죄책감은

바벨탑 마냥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만 갔다.



그러던 와중에 최근에 지금 직장보다 거리가

더 가깝고 월급을 더 많이 주는

직장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당연히 옮겨야지!라고 처음엔 생각했는데

계속 내 마음속에 물음표가 생겼다.

'이게 맞나?

애초에 내가 일한답시고 애를 이렇게 방치하는

작금의 상황이 맞나?

아이를 두고 내가 밖에 나가서 일하는게 맞나?

내가 일해서 우리 집에 돈이 얼마나 남지?

시간 대비 가성비가 있는건가?

내가 일 안하면 현실적으로 우리집 생활비는

어떻게 되는거지?'

쉽사리 답을 낼 수 없는

수많은 물음표에 함몰되어 갔다.

오죽 답답했으면 여덟살짜리 아이에게

푸념하듯이 나의 고민을 말했다.

그런데 그 때 아이가 한 말이 두고 두고

내 가슴에 남는다.


"엄마. 나는 어른 여자 그림을 여기 놔둬요.

(현관에 중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곳)

이 그림 보면서 학교 다녀오면

엄마가 집에 있다고 상상해요.

나는 할머니도 좋지만

엄마가 집에 있으면 좋겠는데

우리 엄마는 집에 없으니깐

이 그림이 엄마라고 생각해요."

아이의 대답에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리 ㅇㅇ는 엄마가 집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구나. 그런데 엄마는 니가 갖고 싶은거,

입고 싶은거, 놀러가고 싶은 곳  

다 하게 해주고 싶어서 밖에 나가서 돈 버는거야.

니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엄마도 너무 행복하거든."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고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엄마. 나는 포켓몬 스티커 하나만 가져도 되고,

집 앞에 놀이터만 나가도 되요.

그런데 엄마가 옆에 있으면 나는 언제나 행복해요."

차마 아이에게 미안해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렇구나."를 반복하며 아이를 꽉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사실 모르겠다.

빠듯하게 맞벌이하며 살아왔는데 퇴사 이후에

우리 집 생활이 어떻게 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이가 4살일때부터 지금까지 나름 사회생활하며 자아실현의 욕구도 충족하고,

다른 이들보다 길고 심하게 겪었던

출산 및 육아우울증도 극복했고,

경제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에

자부심도 느꼈다.

살림도 더 나아지며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퇴사 이후의 생활은

아마 현실적으로는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확실한건 점점 자라나는 아이에게

엄마가 세상의 전부인 이 시기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며,

이 시기를 밖에서 일하며 보낼 정도로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열정과 애정이 없다.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떤 선택도 후회는 남을 것이고,

단지 내 선택을 감당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퇴사하기로 했다.




아마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외벌이가 되어서 경제적으로 힘들어질 것은

당연하다.

'나'라는 개인보다 '엄마'의 역할에 비중을 크게 두어 내리게 된 퇴사 결정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결정은 사회생활이 힘들어서 하는

현실도피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다시 '엄마'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했다.

몸 아픈 우리 엄마도

육아에서 해방시켜드리고 싶다.

엄마가 늘 그립고도 어딘가 모르게

엄마가 어려운 우리 아이에게

다시 엄마를 선물하고 싶다.

길고 긴 내 인생과 아이의 인생에서 아이의 독립

이전까지의 시기에 크지는 않지만 소소한 행복을

많이 만들고 싶다.

훗날 내 아이가 내 나이가 되었을때

그때 그랬잖아~하고

타임캡슐을 열어서 꺼내보는 그 시절 얄궂은

장난감처럼 추억을 나누고 싶다.

그래서 2022년 8월 말,

워킹맘이 아닌 전업맘으로 복귀하였다.


출처: 픽사베이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가 사라졌다(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