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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도 겨울을 볼 수 있을까?

by 박가을




“내년에도 겨울을 볼 수 있을까?”


아빠는 안방 창문 앞에 서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혼잣말하셨다.


그 이후로 아빠의 겨울은

두 번 더 이어졌지만,

그다음 겨울은 오지 않았다.


우리는 마치 자신의 겨울이

영원히 반복될 것처럼 살아간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마지막 겨울은

찾아온다.


나 역시 계절이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찾아오는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우리는 계절의 품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단지 계속 살고 싶어서’

고통과 싸우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생이 다하는 날까지

살아가려는 의지와 희망을 붙들며

고군분투한다.


희망은 그 어떤 고통도 견디게 만든다.

우리는 희망이 없을 때 쉽게 절망한다.


희망이 전혀 없는 삶과

단 0.01%라도 남아 있는 삶은

완전히 다르다.


미래에 대한 어떤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면

지금의 고통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우리가 삶의 끈을 붙잡을 힘과 용기를

얻는 이유는 희망 때문이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나치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추위와 굶주림, 폭행 등

온갖 비극적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박사는 반드시 살아 나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강의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런 희망이 있었기에

삶의 의지와 의미를

끝까지 붙잡았다.


최악의 고통 속에서도

결국 살아남았다.


중환자실에 있을 때

몸은 괴로웠지만,

정신은 그렇지 않았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내가 회복해서 중환자실을 나가도록

세심하게 보살펴주었다.


뽀글거리는 파마머리에

갈색 안경을 쓴 여자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여기 중환자실에서 제일 젊은 사람은

가을님이세요.

빨리 좋아져서 얼른 나가야죠.”


그때 나를 살게 하는 단 한 가지는

스스로 혹은 타인에 의해

마음에 새겨진 ‘확고한 희망’이었다.


곧 중환자실에서 벗어난다는

작은 희망이 현재의 고통을 견디게 했다.


나를 향한 사람들의 눈빛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내 의지는 진작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오늘이 행복한 이유는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기대할 수 있다는 희망 속에서

매 순간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음은 강민호 작가님의

책<브랜드가 되어 간다는 것>에서

공감했던 문장이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행복한 오늘이 실현되었을 때가 아니라,

행복한 내일을 기대할 만큼의

여분이 남겨진 오늘입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라고

간절히 기도하던 순간들이 기억난다.


그 이후 덕분에 자연을

매 순간 느끼는 사람으로 변했다.


밖에 나갈 때마다

하늘과 구름을 올려다본다.


햇살과 바람을 감각한다.

꽃과 나무도 관찰한다.


‘하늘이 예뻐서, 나무가 푸르러서’

감탄하곤 한다.


병원 침대 위에 아빠가 누워계셨다.


아빠는 조금 전 세상과

찰나의 이별을 하셨다.


내 시선은

옆의 작은 직사각형 창문을 향했다.


아빠가 병원에 입원한 첫날,

눈이 펑펑 내렸다.


11월의 첫눈이었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뒤덮였다.


2017년의 겨울은

끝내 아빠를 품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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