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티움’

살아갈 힘을 주는 나만의 휴식

by 민정애

나의 ‘오티움’(살아갈 힘을 주는 나만의 휴식)


오늘도 나의 루틴을 마쳤다. 어깨가 뻐근하다. 하지만 마음은 한없이 기쁘고 평화롭다.

시간 가는지 모르고 피아노 연주를 했다. 미리 밝혀두지만 나의 피아노 연주 실력은 전공자가 들을까 봐 겁나는 수준이지만 나는 아주 만족한다. 웬만한 곡은 악보만 보면 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올드팝, 영화음악, 발라드. 가곡, 트로트, 세미클래식까지 다 칠 수 있다. 거기다 고전 음악도 재즈방식으로 편곡된 곡은 얼마든지 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독학을 했다는 자부심이다. 제대로 피아노 공부한 사람이 들으면 가소롭겠지만 어쨌든 나의 현재 실력에 만족한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음악이 어찌나 많은지 매일매일 들어도 끝이 없다.


나는 초등학교 때 합창반이었다. 내가 어떻게 합창반에 들어갔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선생님의 권유였을 것이다. 중학교 때도 음악 시간이 좋았다. 그냥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았다. 또 중학교 때 처음 접한 무용 시간도 좋았다. 무용 시간에는 선생님이 나에게 앞에 나와서 시범을 보이게 하고 아이들이 나를 보고 따라 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예능에 재주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부모님도 몰랐던 나의 재능이었다. 부모님 역시 공부만 하라고 했지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나도 피아노나 무용을 하고 싶다는 말을 안 했다. 지금처럼 부모들이 자식 교육에 관심 있는 시대였다면 나는 지금 피아니스트나 아니면 무용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저 먹고살기도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부모님도 학교공부 외에는 시킬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또 시골에서 자랐으니 보고 듣는 것도 없었다. 어쨌든 나는 직장 다니며 새벽 시간에 피아노를 배우러 다녔다. 그때 체르니 30번에 10번 정도까지 배우고 나의 피아노 교육은 끝났다. 결혼하고도 계속 배우고 싶었지만 아이들 교육이 우선이었고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30대 후반에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 성인을 위한 재즈피아노 반주반이 생겼다. 그때 재즈반주를 위한 코드 반주법을 몇 개월 배웠다. 물론 재즈 피아노 배울 때도 체르니까지 배웠던 기초가 있었기 때문에 수월하게 접했을 것이다. 몇 개월 배우니 쉬운 곡 노래 반주는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계속 더 배우고 싶었지만 아이들 키우며 나의 취미 생활에 돈을 계속 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또 흐지부지 한동안 피아노를 잊고 살았다. 세월이 흘러 50대 후반에 고단한 삶의 흔적으로 큰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 후 회복 기간에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피아노 치는 시간에는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피아노 사랑은 이어졌다.


요즘 ‘오티움’이라는 단어를 접했다. 정신과 의사 문 요한 님이 쓴 책 제목인데 ‘내 영혼에 기쁨을 주는 능동적 여가 활동’ 이란 뜻의 라틴어란다. 그러고 보니 나의 ‘오티움’은 피아노 연주였던 것이다. 독학을 하다 보니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음악이론부터 고전음악의 작곡가들의 삶, 작곡의 배경, 음악사 등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다행히 유튜브가 있고 가까운 도서관에 가면 궁금증을 금방 해결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요즘은 음악이론을 공부하고 싶어 도서관에서 관련책을 빌렸는데 놀란 것은 그 책의 저자가 음악 전공자가 아니고 물리학 전공자였다. 그 사람의 ‘오티움’도 음악이었나 보다 생각했다. ‘오티움’의 저자는 이렇게 정의했다.

"행복의 핵심은 좋은 경험에 있다. 좋은 경험의 특징은 빠져드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그 활동 속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몰입하게 된다.

나는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

중년의 위기를 잘 넘어서는 이들은 삶의 외부를 꾸미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삶의 내부를 가꾸는데 치중한다. 즉 ‘꾸밈’에서 ‘가꿈’으로 삶의 방식이 바뀌는 것이다. 여가는 쉼과 함께 채움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만들어가고 싶어 하는 존재다. 그것이 꼭 위대하고 거창할 필요는 없다. 내 영혼이 작은 기쁨을 느끼는 나만의 세계를 만드는 것 또한 훌륭한 삶이다. 그 시작이 바로 ‘오티움’이다. "


70이 넘으니 하루 24시간이 모두 내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다행히 젊었을 때 없었던 마음의 여유가 있으니 그동안 몰랐던 음악의 아름다움을 깊이 파보고 싶다.

오늘 나의 루틴의 마지막 곡으로 슈베르트의 ‘밤과 꿈’을 연주하며 그 음악의 아름다움에 빠져본다. 오페라가 인정받던 시대에 오페라 작곡에 실패한 슈베르트가 마지막으로 힘을 쏟은 연가곡은 지금까지 슈베르트를 가곡의 왕이라 불리는 계기가 되었다. 요즘 나는 낭만주의 음악의 개척자라 불리는 슈베르트의 서정적 가곡의 멜로디와 사랑에 빠졌다. 시인 마테우스 폴 콜린의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부친 ‘밤과 꿈’은 나를 몽환의 세계에서 행복을 느끼게 해 준다.


“성스러운 밤이여,

그대 내려와 드리우니 꿈도 함께 드리우네.

그대의 달빛이 허공에 스며들면서 고요한

우리의 마음을 파고드네.

사람들은 즐거이 꿈을 엿듣네 그들은 날이

밝아오면 이렇게 외치네.

돌아와 주오, 성스러운 밤이여! 돌아와 주오,

달콤한 꿈이여”


아름다운 시에 황홀한 멜로디!!!

예술가들은 정말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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