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이 쏟아지는 시간

by 민정애

지난 일요일 오후 평소 가깝게 지내는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피아노 악보를 카피해 달라는 부탁의 전화였다.

선생님과 만나게 된 계기는 5년 전 복지관의 글쓰기 수업에서 나의 수강생으로 만났다.

연세 80이 넘으셨지만 지하철에서 젊은이들이 자리를 양보해도 극구 사양하시는 멋쟁이 어른이시다. 또 나이가 훨씬 적은 나에게도 언제나 선생 대접을 해주는 고마운 어른이시다.

독특한 감성과 지혜로 젊은이들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글쓰기로 우리를 감동시키셨던 분이다.

선생님 댁을 방문할 때마가 항상 식탁 위에는 읽으시는 책이 놓여 있다. 손자가 할머니께 선물한 책들이다. 멋쟁이 할머니에 멋쟁이 손자임이 분명하다.


지난번 만났을 때, 그동안 복지관에서 이것저것 배우셨는데 코로나 기간 3년 동안 배우는 것을 멈추다 보니 이제 더 배울 의욕이 없다시며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걱정하셨다.


‘선생님, 젊으셨을 때 피아노 하셨다면서요. 피아노 하세요. 정말 재미있어요. 제가 하는 재즈피아노 하세요. 기본 코드 좀 배우시면 재즈는 물론 가요, 팝송 등 원하시는 거 다 연주할 수 있어요. 정말 재미있어요. 제가 가르쳐드릴게요. 수강료는 무료예요.’


‘글쎄 다 잊어버렸는데 손가락이 굳어서 될까? 그리고 피아노도 사야 하는데 이 나이에 피아노 산다면 자식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내 돈 내고 내가 사는데 왜 자식들 눈치를 보세요?’ 나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엄마들은 그 마음 이해할 것이다. 나 역시 무슨 일을 할 때 자식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먼저 신경 쓰게 되니 말이다.


다행히 선생님은 딸에게 말했더니 ‘엄마 너무 좋은 생각이세요’ 라며 선뜻 최신형 피아노를 사주었단다. 역시 멋쟁이 선생님의 멋쟁이 딸이다.


악보를 준비해 선생님 댁으로 갔다. 재즈피아노 반주를 할 수 있는 기본코드부터 가르쳐드렸다. 진지하게 배우시는 모습에 감동받는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Love me tender’ 악보를 드리며 다음에 뵐 때까지 숙제를 꼭 해놓으시라고 당부했다.


일본의 노인 정신과 전문의 와다 히데키는 그의 저서 ‘80세의 벽’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생로병사의 거대한 벽을 잘 넘는 방법은 노화를 받아들이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소중히 여기는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노후의 예술적 취미 활동으로 감정을 표현하면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고 우울증도 치료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80의 벽을 잘 넘어서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20년이 기다린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피아노를 시작한 선생님께 크게 응원해 드린다.


96세에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첼리스트 카잘스가 95세 때

기자가 아직도 6시간씩 매일 연습하는 이유를 묻자

‘저는 지금도 조금씩 발전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죠.’라고 대답했다.

카잘스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바흐의 프렐류드(어떤 곡의 도입부 역할을 하는 짧은 형식의 악곡)를 연주했는데 그 시간이면 자기 집으로 축복이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고 그의 저서에 쓴 글을 읽으며 감동받았었다.


선생님, 우리도 매일 축복이 쏟아지는 것을 느끼며 즐겁게 삽시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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