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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상혁 Jan 07. 2022

내 친구 규진이 4.

10. 새로운 시작.

 그리고 정말 1년 남짓 우리는 서로 어떤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규진이는 규진이 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 일에 미쳐있을 때였다. 나는 규진이가 괘씸하다고 생각하니 아예 생각도 안 났다. 내가 이 정도로 사람을 단칼에 끊어내는 인간이었나, 의아해할 정도로 나는 아주 차갑고 냉정해져 있었다. 규진이를 내 인생에서 말끔하게 덜어냈다는 생각에 몸이 가벼워지기까지 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TV를 보는데 요리사가 나오면 장시간 물을 만져서인지 빨갛게 변한 요리사의 손에 나는 시선을 멈추었다. 이럴 때마다 규진이가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1년쯤 시간이 지났다. 어느 날 규진이에게 전화가 왔다. 발신자명이 없는 전화번호였지만 나는 누구인지 알았다. 규진이 번호를 지웠는데도 불구하고 규진이 번호를 기억하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 불쾌해졌다. 전화를 받지 않았더니 문자가 왔다. 길게 문자를 보낸 적이 없는 규진이가 구구절절 미안하다는 장문의 사과 문자를 보냈다. 아무리 화가 났어도 친구 사이에 ‘경찰’을 운운한 것은 두고두고 잘못한 일이라고 규진이가 인정했다. 하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한번 깨진 컵 다시 갖다 붙인다고 원래 컵으로 돌아갈 수 없는 법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닫았다.     


 다시 1년이 지났다. 규진이는 설날과 추석에 다시 문자를 보내왔지만 나는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규진이에게 폭발했던 화는 누그러져갔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규진이에게 받은 상처가 어느 사이 아물어 갔다. 상처의 흔적도 없어진 거 같았다. 규진이가 한 두어 번만 사과를 더 하면 나는 규진이 마음을 받아들일 것을 알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어처구니없게 화를 풀 거면서, 영원히 안 보려고 했다니…… 그래도 이만하면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가 싸우고 3년이 지난해, 내 생일날이었다. 나는 양력 생일이기 때문에 매년 생일 날짜가 일정했다. 하지만 규진이는 음력 생일이라 해마다 날짜가 달라 서로 생일은 챙기지 않기로 그 옛날에 합의했었다. 그 뒤로는 서로 생일이 언제인지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규진이가 내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이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다니, 나는 다소 놀랐다. 규진이는 축하 메시지 말미에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가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친구의 우정을, 저승에 가서는 꼭 이루자 친구야. 정말 미안했다.”     


 나는 이때 규진이가 문자를 보냈다는 것 하나로 지난 일들이 다 떠올라 열불이 나 찬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문자를 보고는 그만 입에 머금었던 물을 죄다 밖으로 뿜어버렸다. 그리고 배를 잡고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었다. 지금 생각하면 뭐가 그렇게 웃겼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너무 웃겨서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게 웃었더니 나중에는 배가 당기고 아파서 다시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를 정도였다. 규진이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투였기 때문이었다.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우정을 저승에 가서 이루자니, 신파극도 이런 신파극이 없구나 싶었다.


 웃다 보니, 그만 규진이와 내가 3년 동안 남처럼 지낸 것이 헛되고 헛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순간에 규진이를 이미 완전히 용서했고, 이렇게 유치하게 화해가 될 것을 3년이나 얼음처럼 굳어있던 내가 또 우스워져서 나는 그날 자면서도 혼자 큭큭 웃었다.      


 우리는 그렇게 3년 만에 서로의 직장 딱 중간 지점 고깃집에서 만나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규진이와 나는 바로 어제 만났다 헤어진 것처럼 음식 앞에서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색하게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규진이는 규진이 대로 나는 나대로 일에 지쳐 서로 피곤하다는 말만 주야장천 입에 올렸다. 그래도 편했다. 온몸으로 번지는 평온함. 평온함이 지나쳐 늘어져버리는 마음. 아, 너는 내 친구구나, 아마 우리는 서로 그렇게 생각하며 하품을 쩍쩍했을 것이다.


 규진이와 나는 집에서 밥을 먹는 것처럼 각자 편하게 밥을 먹고 식당에 켜 있는 TV에 시선을 두었다. 마침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규진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라 그 이야기를 하다가 시간이 되어 3년 전처럼 손을 흔들며 각자의 집으로 갈 길을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친구는, 이런 거겠구나. 피붙이처럼. 그래, 미워도 다시 한번’     

 허공에 대고 내가 살짝 헛헛한 웃음을 웃었고, 그날 밤공기는 무척이나 따뜻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내 인생의 질곡마다 규진이가 있다. 규진이는 코로나 시국인 지금도 여전히 식당 주방에서 하루 1,500만 원의 매상을 올릴 때도 있는 대단한 요리사가 되어 있다. 새해 인사로 전화를 해도 바빠서 전화를 받을 짬도 겨우 낼 정도였다. 나는 규진이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짧은 인사만 서둘러하고 전화를 끊어야 했다. 규진이가 나하고 그렇게 전화를 끊은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식당 주방 마감을 하고 늦은 시간에 내게 다시 전화를 해왔다. 2022년 1월 1일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그 시간에 통화를 했으니 새해 인사를 제대로 한 셈이 됐다.


 규진이는 집에도 가지 못한 채, 내일 음식 준비를 위해 식당 뒤에 마련된 임시 숙소 같은 데서 불편한 잠을 자야 한다고 했다. 집에도 못 가고 어쩌느냐고 내가 걱정을 하자 규진이가 그저 웃으며 식당 직원들 다 같이 고생한다는 착한 소리를 했다. 코로나로 직원들이 식당에서 많이 퇴사를 했고, 주방 직원들도 절반가량 줄어 규진이가 쉴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같이 일 할 사람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평소에 세 사람이 하는 일을 규진이 혼자서 하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양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규진이에게 하지 못한 말을 잠자리에서 중얼거렸다.     


 ‘나는 너를 존경한다. 네가 내 친구지만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시절을 통과해 허허벌판 같은 곳에서, 아무도 너를 뒷바라지해주지 않는 힘겨운 날들을 견뎌내고, 식당 홀 서빙 일부터 시작해서 주방 실장을 거쳐 어엿한 주방장까지 된 너를 나는 존경한다. 존경해, 규진아.’     


 나는 새해 첫날 새벽같이 일어나서 베란다 창밖으로 보이는 새해 일출 사진을 찍어 규진이에게 보냈다. 식당 주방에서 육수를 끓여내느라 새해 일출 같은 건 볼 수도 없는 규진이를 위해서 말이다. 그건 지금 내가 규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며, 친구로서 나의 마음을 듬뿍 담은 애정이기도 했다.     


 새해가 밝은 기쁨을 생각할 겨를 없이 매일 어두운 새벽에 일어나 주방에 붉을 밝혀야 할 규진이를 떠올렸다. 내가 찍은 일출 사진을 규진이에게 전송하며 나는 규진이가 내 옆에 서서 내 말을 듣고 있는 것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2022년 올해도 우리 한번, 떠오르는 태양처럼 서로의 자리에서 열정적으로 살아보자.’


 아마 내가 보낸 일출 사진을 보고 규진이가 웃었을 것이다,      

 

 떠오르는 태양처럼 눈부시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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