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새로운 시작.
나는 2015년에 본격적으로 소설 쓰는 길에 들어섰다. 그 전에도 계속 소설을 썼지만 마음을 먹고 소설을 써보겠다고 다짐한 것은 2015년이 기점이었다. 꿈에도 바라던 데뷔를 했고 문예지에 등단작이 실렸다. 아무도 관심은 없었겠지만 나에게는 온 세상이 바뀌는 경험이었고 앞으로 나아가는 기폭제와 기동력이 되었다. 소설가의 길에서 죽고 살기를 결정한 순간이기도 했다.
소설 쓰는 사람이 되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주어진 시간을 낭비한다는 자책이었다. 24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 계획표도 짜 보았다. 세계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소설을 쓴다고 해서 그것도 따라 했다가 나는 일주일 만에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내 몸의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남의 몸 리듬에 나를 맞추려고 했으니 처음부터 될 리가 없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 하얀 천장을 보면서 허탈하게 웃었던 생각이 난다.
박사학위를 받으면 그간은 지도교수 밑에서 논문을 썼지만 이제는 혼자서 논문을 써도 될 만하다는 자격을 인정받는 것처럼, 나는 등단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문단에 데뷔를 했다고 해서 소설가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너 혼자 쓰고 고쳐 문예지 등에 발표할 만한 자’ 정도의 자격을 얻은 것이라 판단된다.
등단을 하고 나서 발표하는 작품에 주목을 받지 못하면 문단에서 곧바로 잊히거나 사라지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신춘문예 및 신인 문학상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천, 수백의 응모작 중에 단 한 작품만 선정을 한다. 그 무시무시한 경쟁을 뚫고 문단에 나오면 역시 어마 무시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실력자’들만 있게 마련이고, 그곳에서 다시 현재의 내 수준을 절절하게 파악하게 된다. 등단의 기쁨도 잠시, 나의 위치를 파악하는 순간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한 겨울에 꽁꽁 언 강 위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양새로, 소설 쓰는 자의 글 위에 홀로 서게 된다.
실력과 운이 모두 받쳐주어 등단하자마자 각광을 받아 문운(文運)이 펼쳐지면야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나는 그것과는 상관이 없었고 출판사에 청탁을 받기는커녕 작품을 발표하기 위해 일반 투고로 수도 없이 작품을 보내고 퇴짜를 맞았다. 그야말로 문전박대, 또는 아무런 응대가 없었으므로 존재 자체를 무시당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그때마다, 무릎이 꺾이고 남모르게 눈물도 흘렸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늘 그런 도전 속에 살아가야 한다.
작년에 등단 5년 만에 첫 번째 소설집을 묶었다. 중소 출판사에서 힘겹게 출간을 했다. 등단하자마자 대형 출판사에서 앞 다퉈 출판을 하는 내 또래 작가들을 보면서 나는 부러움에 사무쳤다. 내 수준은 생각도 안 하고 그저 남의 성공을 보며 박수를 치고 축하를 하며 나는 작아지고 쪼그라들었다. 잠자리에 들면 생각했다. 이 길을 계속 가도 될까, 무명이기는 하나 어쨌거나 나도 책을 내고 작품 활동을 하는 소설 쓰는 사람 아닌가, 여기서 그만두면 다음은 없을 것이고 그러면 내 인생은 뭔가.
한창 직장 다니는 재미에 빠져있을 때, 나는 소설 쓰기를 포기한 적이 있었다. 소설보다 재미있는 게 이렇게나 많은데 뭐 하러 고생스럽게 돈도 안 되는 소설을 쓰겠다고 온 인생을 뒤엎으려 하나, 그저 고급 독자로 남자, 그것도 괜찮지 않나. 그러면서 주변에 ‘나는 고급 독자로 살 거야.’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 말을 하고 돌아서면 나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했으면서도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떠들었다.
그게 오래갈 줄 알았다. 그러나 오래가지도 못했고 소설을 쓰지 않으니 나는 계속 아팠다. 잊어버리려고 직장 일에 미친 듯이 매달려서 남보다 두 배, 세 배 일을 했다. 그러니 안 아플 수가 없었다. 또다시 병원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면서 생각했다.
‘바보, 결국 안 되는 거야. 네가 할 일을 안 하고 사니까 아픈 거야. 힘든 거야. 행복하지 않은 거야.’
그렇게 말하며 나는 살짝 눈물을 비친 것도 같다.
소설을 쓰는 내게 어떤 사람들은 묻는다.
“너 맨날 뭐해?”
이 질문을 받으면 나는 순간 화가 치밀지만, 그저 씁쓸하게 웃으며 ‘글 쓰지 뭐.’라고 대답하고 화제를 재빨리 다른 데로 돌린다. 소설을 쓰는 나에게 이 질문은 곧,
“너 놀고 있니?”
라는, 알려지지 않은 소설가를 무시하고 내려 까는 말이 녹아들어 가 있는 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는 42살이고 곧 43살이 된다. 그런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물론 많다. 마흔 살이 넘으면 이런 고민 같은 것은 안 하고 살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나는 매 순간 머리가 깨질 정도로 고민하며 사는 인생이 됐다. 나 같은 인생 어디 없나 찾아보니 우연히 다음과 같은 분을 만났다. 다산 정약용이었다. 공부와 저술에 힘쓰느라 복사뼈에 구멍이 세 번이나 났다는 다산 정약용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미혹(迷惑), 공자는 마흔을 가리켜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고 했지만 나는 매 순간 휘둘렸다.’
아, 다산 정약용 선생님도, 마흔 살에 늘 흔들린 정도가 아니라 휘둘리며 사셨구나. 천재인 분도 그러신대 나 같은 둔재(둔재는 좀 너무 했나.)나 범재(凡才)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겠구나 하며 위로받았다.
소설 문장이 안 될 때, 투고한 작품이 반려됐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 어떻게든 좋은 작품을 써야겠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나를 괴롭힐 때, 소설로는 밥을 못 먹고 산다는 불안에 다른 일을 알아보는 내 눈길이 우연히 다음과 같은 일화를 만나게 됐다.
영화 ‘기생충’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했고 연극에서 닦아온 연기력을 십분 발휘해 현재 드라마와 영화에서 비중 있는 조연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정은 배우의 이야기다. 이정은 배우가 무명 배우의 삶이 고달픈 나머지 연기를 그만두려고 할 때 故 김영애 배우가 한 조언이었다.
‘어떻게 유명해질까? 어떤 작품을 할까, 얼마를 벌게 될까 생각하지 말고 계속해라. 네가 좋아하는 일인데 무슨 고민을 이렇게 많이 하니.’
나는 이 일화를 보며 머릿속에서 종이 울리는 거 같았다. 무슨 고민을 이렇게 많이 했나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가 선택해서, 내 힘껏 하고 있는데 뭔 고민을 이렇게나 한숨을 푹푹 쉬면서 땅이 꺼지게 하고 있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주위를 둘러보며 걱정을 할 시간에 좀 더 나에게 집중하는 것과 내 작품에 몰입하는 것, 어렵겠지만 그렇게 해보자고 나는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글쓰기의 최전선」의 작가 ‘은유’는 말했다.
-세상에는 나보다 학식이 높은 사람, 문장력이 탁월한 사람, 감각이 섬세한 사람, 지구력이 강한 사람 등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고도 많다. 그런 생각을 하면 기운이 빠진다. 이미 훌륭한 글이 넘치므로 나는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내 삶과 같은 조건에 놓인 사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나의 절실함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나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또 기운이 난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나는 위의 문장에 줄을 빡빡 치면서 읽고 또 읽었다. 읽다 못해 메모장에 옮겨 쓰고 심지어 외우기까지 했다. 직업으로서 소설가라는 자에 대한 주변의 시선이 꼬부장해 내가 작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면, 나는 마음속으로 위 글을 암기하고 또 암기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달랬다. 책을 통해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의 생생한 체험을 듣는 것은 크나큰 공부가 됐고 또한 위안이 됐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어떤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님께서 어떤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저는 소설 쓰는 일이 이 세상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이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고, 가장 즐거운 일이고, 가장 의미 있는 일이고, 가장 보람스러운 일이고, 가장 가치 있는 일이고, 가장 행복한 일입니다.
내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발견한 글귀였다. ‘정신 차리고 네 할 일 열심히 해라!’라고 엄중히 나를 꾸짖는 이야기 같았다. 내가 자신감을 잃고 불안해지면 조정래 선생님을 생각하며 힘을 낼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랬다.
나는 왜 이것밖에 못 하지, 나는 왜 이 모양이지, 나는 왜 이렇게 다른 사람들 말에 휘둘리지, 나는 왜, 나는 왜……, 하면서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벼랑 끝으로 몰고 가 나 스스로를 ‘학대’ 했다. 나는 귀하고 소중한 사람인데,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인데 왜 내가 나를 이렇게 하찮게 여겼을까 스스로 반성도 많이 했다. 나의 사소한 이야기를 하는 것, 내가 겪은 일이나 생각한 이야기를 나의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 나의 색깔과 빛깔로 빚어가는 글들은 나만이 쓸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거듭하면서 내가 즐겨 본 ‘전원일기’ 드라마 속 대사를 써본다.
‘비교하지 마라. 파란색과 노란색, 어느 것이 더 예쁜지 알 수 있나.’
몇 번을 읽고 되새겨도 이처럼 당당하고 멋진 말을 보기 어렵고, 이 대사를 만들어낸 것도 바로 ‘작가’이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하든 말든 나는 넓고 깊은 바다 같은 이 길을 가 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