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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상혁 Nov 21. 2021

한 끼 식사를 해 먹는다는 것.

4. 새로운 시작.

 매끼 식사를 잘 챙겨 먹자고 스스로 다짐한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것은 삶의 무게를 만들어가지만,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삶을 지탱해가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고 정비하는 것은 내 일을 하는 데에 필수 요소이며 생활을 평안하게 해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나는 몇 년 전 위내시경 검사를 통해 ‘역류성 식도염’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한다. 그렇다고 ‘역류성 식도염’ 진단을 받기 전에 아무 음식이나 막 먹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매운 음식이나 내가 좋아하는 밀가루 음식 등을 조심해서 먹어야 하니 아쉬울 뿐이다.     


 음식이 맛있다고 조금 욕심을 내서 몇 젓가락 더 먹으면 그날 바로 탈이 나서 뱃속에서 아우성치는 걸 몇 번 겪고 나서는 겁이 나서 아무거나 못 먹게 된 것도 큰 역할을 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예전보다 더 조심성이 생기고, 무엇이든 의심하며 여러 번 확인한 뒤에 행동에 옮긴다는 말도 포함되는 거 같다. 

 잠깐 딴소리를 하자면, 옛날 중국의 황제는 우리가 한 번은 들어본 적 있는 ‘만한전석(滿漢全席)’을 매 식사 때마다 먹었던 인물이다. 그래서 매우 부러울지 모르겠으나 실제로 황제는 음식을 마음대로 먹지 못했다. 산해진미가 눈앞에 차려져 있어도 주변에서 보는 눈이 있으니 배가 고파도 게걸스럽게 먹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기미를 보는 환관이 일일이 음식을 먹어본 후에 황제에게 올렸다고 하니, 나 같았으면 신경성 위염에 걸리고도 남았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환관이 건네준 음식을 먹은 황제가 모처럼 자기 입에 맞아 한 번 더 먹겠다고 하면 환관이 한 번은 더 집어 건네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음식은 몇 달 동안 황제의 식탁에 오를 수 없고, 황제가 세 번째도 같은 음식을 먹겠다고 신호를 보내면 환관이 음식을 건네는 주나 아쉽게도 그 음식은 이후로 영원히 황제 식탁에 오를 수 없었다. 황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누군가 알게 되면 ‘독약’을 타서 황제를 독살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가 가장 큰 것이겠지만, 식탐을 경계했던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양껏 먹을 수 있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기도 하지만 엄청난 불행이기도 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해있는 음식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맛있다고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반드시 탈이 나게 마련이니, 부족한 듯 먹고 아쉬울 때 젓가락을 내려놓아야 다음에 또 같은 음식을 먹을 때 반가운 생각이 든다. 

 한동안 나는 먹고 싶은 것은 배가 부르도록 먹는 게 좋지 않느냐는 생각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어릴 때 집안 형편 때문에 뭐든 배불리 먹은 기억이 별로 없었고, 먹어보지 못한 음식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꽃게 찜이 너무나 먹고 싶은 때가 있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알이 꽉 찬 암꽃게 20마리 정도를 사서 동네 사는 선배와 같이 쪄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꽃게 찜에 한이라도 맺힌 것처럼 어디 한번 배 터지게 먹어보자, 라는 심사였었다. 꽃게는 지금도 비싼 음식이지만, 비싼 음식이기 때문에 늘 감질나게 먹었던 기억밖에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날을 잡아, 쉬는 날 새벽같이 내 차를 끌고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싱싱한 암꽃게를 3박스 정도 샀던 기억이 있다.      


 선배가 찜통을 꺼내며 입맛을 다셨고 나는 식탁에 앉아서 찜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며 찐 꽃게에서 나는 달달하고 고소한 냄새에 애간장이 녹고 있었다. 20분쯤 지나 드디어 잘 익은 빨간 꽃게가 식탁 앞에 놓였다. 선배와 나는 어른 손바닥보다 큰 꽃게 한 마리씩을 잡고 서로 아무런 말도 없이 오로지 꽃게만 먹어댔다. 꽃게 등 껍데기를 벗기니 주홍색으로 익어 꽃게 등짝에 빈틈없이 붙어 있는 게알들을 입안에 넣고 씹을 때는 정말 앞에 앉아 있는 선배가 죽어나가도 모를 정도로 맛있었다. 그렇게 미친 사람(?)들처럼 꽃게 20마리를 순식간에 해치웠지만 맛있고 즐거웠던 것도 잠시, 나중에는 꽃게 냄새만 맡아도 약간 역한 느낌이 날 정도로 꽃게찜에 물리고 말았다. 우리가 삶은 계란을 여러 개 먹으면 계란 냄새만 맡아도 닭 비린내를 맡은 것 같이 비위가 상하는 것처럼, 꽃게 10마리를 혼자서 먹으면 집안에 퍼진 비린내는 물론이요 내 몸 땀구멍마다 올라오는 꽃게 비린내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좋아하던 꽃게였는데 앞으로 1년 정도 꽃게는 쳐다도 보기 싫은 마음이 생긴다. 6마리 정도 사서 각각 3마리 정도씩 나눠먹었으면 딱 좋았을 텐데, 오늘만 사는 인생도 아닌 것을 그때는 돈이 없어 못 먹었던 설움을 씻어보겠다는 것과 음식에 대한 지나친 욕심에서 온 불온한 과열로 달구어진 심사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사람도 이와 같아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만나서 반갑고 좋았으면 아쉬울 때 헤어지는 것이 좋지, 좋다고 주야장천 붙어있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초래되고 대부분 그 끝이 좋지 않게 되는 것을 나는 삶을 통해 배웠다. 같이 사는 가족이라고 해도 각자의 사적 공간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최근 내가 원하지도 않고 평소 보지도 않았던 유튜브가 어떤 알고리즘으로 내게 왔는지 알 수 없지만 ‘먹방’ 유튜브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볼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선은 ‘먹방’ 유튜버들이 먹는 양이었다. 라면을 먹어도 두어 개를 삶아 먹는 게 아니라 기본 15개 · 20개씩, 닭갈비 철판구이에서 볼 법한 넓고 긴 철판에 가득 담긴 삶은 라면을 나처럼 별로 살도 찌지 않은 사람이 호로록거리며 깨끗하게 다 먹는 장면이었다. 라면은 한 개를 먹으면 부족하고 두 개를 삶으면 부담이 되는 일반 사람 눈에는 정말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많이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다음으로 놀란 것은 ‘먹방’을 보는 사람들의 조회 수였다. 10만은 우스운 소리고 100만 · 300만 · 1000만을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한 ‘먹방’ 유튜브 스타도 많았다. 나 같이 음식에 제한이 많은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먹지 못하는 걸 맛있게, 그것도 많이 먹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지만, 나는 먹방을 보면서 한도 끝도 없이 더 많은 자극을 원하는 나의 ‘본성’ 같은 것이 슬금슬금 발끝에서부터 머리까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먹방’을 보기 시작하면서 정상적인 양에서 조금 많이 먹는 유튜브를 보면 ‘에이, 뭐야, 더 많이 더 빨리 먹어야지.’ 하는 혼잣말을 무비판적으로 할 때가 있는 것을 깨닫고는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되도록 안 보려고 하나 알고리즘으로 올라오는 새로운 유튜브 영상이 눈에 띄면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일 때가 있으니,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것이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다.      


 나는 스스로 먹을 수 있는 양이 적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병원에서도 내가 평균 남성들보다 위가 다소 작은 편에 속한다는 말을 들어 음식에 욕심을 내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많이 먹어서 위를 늘리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는 시간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지 많이 먹기 위해 일부러 위를 늘리고 싶지 않고, 생긴 대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맞지 않나 싶어 주어진 음식만 잘 먹어보자고 다짐한다. 

 아침은 미숫가루와 따뜻한 차 한 잔이면 충분하고 점심은 위 상태가 좋다면 가볍게 국수를 말아먹어도 된다. 저녁에는 아침이나 점심보다 좀 많은 양을 먹는데, 되도록 기름지지 않고 밀가루 음식을 피하며 야채와 생선을 먹으려고 한다. 식사를 할 때는 식사에만 집중하라고 하지만, 보통 뉴스를 보면서 저녁을 먹을 때가 많아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어떤 건강 전문가들은 음식을 100번씩 씹어 삼켜야 한다고 해서 그것도 한번 따라 해 봤는데 나는 영 맞지 않았다. 그래도 꼭꼭 씹고 천천히 먹어 민감한 위를 살살 달래면서 배가 부르지 않게 먹으려고 애쓴다.      


 이렇게만 먹으면 당연히 배가 고프다. 여러 가지 간식 중에 특히 나는 ‘젤리’를 좋아해서 마트에서 싸게 팔 때 젤리를 한 박스 사다가 놓고 심심할 때마다 먹었다. 어느 날 건강검진에서 몸무게가 늘어나 있고 무엇보다 당 수치와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져있어 겁을 잔뜩 집어먹고 ‘젤리’를 끊었다. 대신 각종 씨앗을 비롯한 견과류를 먹기 시작했다. 견과류는 씹히는 맛이 있어 입이 심심할 때 먹으면 제격이고, 한 주먹 정도 먹으면 배도 부른다. 무엇보다 몸이 가벼워진다. 가끔은 누룽지 같은 것도 아주 좋은 간식이 되기도 한다. 식사 이외에 내가 먹는 것은 이 정도가 전부이나 가끔은 아이스크림이나 떡볶이를 비롯한 야식이 너무나 먹고 싶어 한밤중에 냉장고를 뒤져 뭔가 위장에 부담스러운 음식을 만들어 먹고는 속이 거북해지면 약을 먹으면서 또 후회를 한다. 돼지도 아니고 사람이 왜 이렇게 먹는 것을 못 참고 남들 다 자는 시간에 냉장고에 코를 박고 있나 스스로 반성도 해보지만, 글쎄 어느 정도 수양을 쌓아야 될까 지금도 여전히 수련 중이다.     


 한 끼 식사를 해 먹는다는 것은 아주 큰 뜻이 담겨있다. 내가 하루를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것, 내가 나를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내 몸을 존중한다는 것, 나의 건강을 통해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것, 몸에 맞는 음식을 먹어 내 몸과 마음 · 정신에 부담을 주지 않으므로써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을 통해 얻어지는 안정과 평온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좀 더 여유 있게 대할 수 있다는 것과 남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스스로 잘 챙겨 먹는 ‘음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끼 식사의 소중함이 이와 같다.     


 사람을 너무 좋아해도 병이 되고 너무 싫어해도 병이 되는 것처럼 식탐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몸과 마음을 망치게 되고, 반대로 무리하게 살을 빼기 위해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그것은 곧 살려고 하는 자기 몸의 욕망을 억지로 내리눌러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니,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남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잘 먹어야 한다.     


 잘 챙겨 먹는다는 것은 바로 내 존재에 대한 존중과 사랑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과 의무라고도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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