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상혁 Oct 12. 2021

점액종, 그리고 알게 된 것들.

2. 새로운 시작.

 나는 간식으로 쥐포나 마른오징어를 씹어 먹는 걸 좋아한다. 입이 심심할 때, 이만한 간식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쥐포를 씹으며 책을 보다가 그만 오른쪽 아랫입술을 이로 콱 씹어버렸다. 순간, 너무나 아파서 손에 쥐고 있던 쥐포를 바닥에 떨어트리고 그 바람에 한 손으로 잡고 있던 책도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아!’라는 소리만 내면서 눈을 질끈 감으니 눈시울이 시큰해지며 눈물까지 맺혔다. 입을 벌려 씹은 부위를 집게손가락으로 대어 보니 피가 묻어있었다. 그야말로 제대로, 입술을 씹어버린 것이었다.     


 가끔 있는 일이었으니 ‘아, 재수가 없었다.’ 하고 집에 있는 구내염 연고를 찾아 입술 안쪽에 바르고, 한동안 멍 때리며 앉아 있었다. 아팠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도 입술이나 혀를 씹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경험도 아닌데, 나는 전보다 훨씬 아팠다는 생각만 하며 빨리 통증이 가라앉기를 바랐다. 짭조름하고 쫄깃쫄깃한 쥐포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순식간에 너무나 원망스러워져서 바로 쥐포 봉지를 고무줄로 꽉꽉 묶은 뒤에 냉장고 어디 구석에 처박아두었다. 아무 죄도 없는 ‘쥐포’에 화풀이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씹은 자리는 보통 구내염으로 진행하고 일주일 전후로 낫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에는 혀가 상처 부위에 닿아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구내염에 한번 걸리면 상처 부위에 뭐라도 살짝 닿았을 때, 그 쓰리고 아린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당분간은 뜨거운 음식이나 매운 음식은 못 먹겠구나 했는데, 전혀 그런 것 없이 단지 상처 부위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을 뿐이었다. 마치 사마귀처럼, 무슨 작은 혹처럼 하얗게 봉긋 올라와 있었다. 나는 ‘아, 이런 구내염도 있구나.’ 싶어서 또 열심히 끈적끈적한 구내염 연고를 열심히 바르고 잤다.     


 그러나 일주일 가까이 지나도 볼록 튀어나온 구내염은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더 커져있었다. 좁쌀만 하던 것이 콩알만 해지고, 어느 순간 새끼손톱보다 좀 작은 크기까지 커져있었다. 이건, 단순한 구내염이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왜 이러지, 싶어서 우선 집 근처 치과를 방문했다. 여름의 끝자락에 남아있는 더위는 쨍쨍했고 치과까지 가는 길에 나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단순히 더워서 땀에 젖었다기보다는, 어떤 두려움이 몽글몽글 가슴 어디선가부터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구내염이 아니라면 뭘까……, 뭔데 일주일도 넘게 혹 같은 게 입안에 생겨서 사라지지 않은 것일까. 좁쌀만 하던 두려움이 점점 커져 콩알만 해지고 그보다 더 커질까 봐 겁이 났다. 치과 의사는 내 입술을 보자마자, 여기서는 치료할 수 없고 좀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치과 의사의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내 가슴에서 어떤 덩어리가 쿵 떨어져 내려 이번에는 차가운 식은땀이 전신에 흐르는 거 같았다.

 “큰 병원이라면 대학병원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여기서는 치료할 수가 없고요, 침샘 관련 문제 같은데 정확한 것은 정밀 검사를 해봐야 할 거 같아요. 여기서는 해드릴 게 없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단순한 구내염이라고만 생각해서 동네 치과에서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해드릴 게 없다.’라니. 이건 무슨 큰 병을 앓고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환자에게나 하는 소리가 아닌가 싶었다. 무슨 병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치과 의사가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침샘 관련 문제일 수 있다고만 말하고 서둘러 진료를 마쳤다. 나는 어리벙벙한 상태로 치과를 나와 집으로 걸어왔다. 평소 가지 않던 집 앞 ‘다른 치과’에 나도 모르게 발길이 향했고, 접수처에 접수를 하고 환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손에 땀이 났다. 

 ‘아니, 입술 한번 깨물었다고, 대학병원에 가라고? 무슨 병인데? 해드릴 게 없다니?’     


 이번 치과에서는 내가 분명 입술을 씹어서 구내염이 심해진 거 같다고 이야기했는데도 불구하고, 치아 파노라마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해서 졸지에 나는 엑스레이 사진까지 찍게 되었다. 처음에 만났던 치과 의사보다 젊은 의사가 역시 내 입안 상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는 치료할 수 없고요, 대학병원 가셔야 해요. 점액종일 확률이 90% 이상이고요, 자세한 거는 검사를 하셔야 해요.”

 “점액종이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입술 씹으셨을 때 침샘이 있는데 그걸 잘못 씹으면 침샘이 막혀버려서 침이 돌지를 못하니까 물혹이 생기는 증상이에요. 엄청 흔한 질환입니다. 많이 놀라셨나 봐요? 대학병원에서 수술하시면 됩니다. 다만, 재발 확률이 매우 높아요.”     


 나는 진료비를 내고, 집으로 돌아와 구강내과 전문의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한 형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다시 한번 제대로 확인을 받고 싶어 상처 부위를 찍은 사진을 지인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지인 역시, ‘점액종이 맞고, 생활에 불편이 없으면 그냥 둬도 되나 더 커져서 불편해지면 수술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내 입술에 있는 상처는 단순 ‘구내염’이 아니고 ‘점액종(일종의 물혹)’이라는 것이었다. 일단, ‘큰 병’은 아니라니 안심이었지만 ‘점액종’이라는 병명을 들으니 왠지 오싹하고 무서워졌다. 이보다 큰 병이나 심각한 질환을 의사로부터 통보받게 되었을 때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생각해보는 계기도 됐다.     


 나는 그 후, 한동안 인터넷에서 ‘점액종’ 관련 내용을 쥐 잡듯이 뒤져서 각종 치료 방법을 알아봤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나하고 똑같은 증상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뭘 먹다가 입술이나 혀를 씹는 것은 살면서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점액종’으로까지 심해지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을 뿐이었다. 대부분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중에 ‘프로폴리스’라는 꿀벌에서 채취한 용액을 상처 부위에 바르면 염증이 가라앉는다고 하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나는 즉시 ‘프로폴리스 원액’을 인터넷 주문했다. 치과에서 아무런 치료약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그렇다고 ‘점액종’이 점점 커지는 걸 그냥 두고 볼 만큼 내 성질이 느긋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게 된 사실은, ‘점액종’은 침샘 관련 질환이기 때문에 치과의 ‘구강내과’에서 진료를 받아도 되지만,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더 정확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며칠 뒤, 주문한 ‘프로폴리스’가 도착하자마자 나는 용액을 부풀어 오른 ‘점액종’ 상처 부위에 발랐다. 용액이 살에 닿자마자 벌에 쏘이는 것 같은 화한 통증이 있었지만 견딜 만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내가 알레르기 체질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옻닭’ 같은 것을 먹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몸에 조금이라도 안 맞는 음식을 먹으면 바로 전신에 두드러기 반응이 일어난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다지 많은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까지 딱히 음식을 가리지 않고 살아왔다. 다만, ‘프로폴리스’는 ‘꿀벌’로부터 얻는 것이어서 ‘벌독’ 같은 게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그런데 ‘프로폴리스’를 바르고 하루가 지난 뒤, 거짓말처럼 부풀어있던 ‘점액종’이 사라지고 상처부위가 납작하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나는 욕실에서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을 정도였다. 이렇게 간단하게 낫는 것을 보름 가까이 마음고생을 했구나 싶으면서 ‘수술 같은 소리 하고 있네.’라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이틀 뒤 ‘점액종’은 다시 원래 모양대로 그대로 봉긋 솟아 있었다. 더구나, 걱정한 대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 내 입술이 평소보다 2배 정도 부풀어 있었다. 마치 입술을 도톰하게 보이기 위해 보형물이라도 집어넣은 거 같은 꼴이 되었다. 나는 아침에 거울을 보고 겁에 질려 세수도 안 하고 택시를 타고 집에서 좀 떨어져 있는 ‘이비인후과’에 달려갔다. 정말 눈물이 다 나려고 했다. 별거 아니라고, 생활에 불편함이 없으면 괜찮다고, 프로폴리스 바르면 낫는다고……, 아프면 병원을 가서 진단을 받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치료받을 생각은 안 하고 혼자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다, 결국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내 꼴이 나는 너무 처량해서 슬퍼졌다.     


 프로폴리스가 구내염을 낫게 해 준다고 믿었고, 분명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치료약이 아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이었다. 약이라고 생각했는데, 독약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그 와중에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 편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알고 봤더니 뒤에서 나를 가장 욕하고 있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로폴리스’의 배신이 그동안 내가 겪은 사람들에 대한 배신으로까지 연결되며, 택시 안에서 나는 온갖 어두운 생각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을 툭 떨어트릴 것처럼.      


 나는 내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이비인후과 의사에게 어린아이가 억울한 일을 엄마에게 일러바치는 것처럼 마구 쏟아냈다. 이비인후과 의사는 내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 나를 애처롭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러나 의사의 눈빛에 밝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기 때문에 울 것 같은 내 심정이 가라앉았다. 의사는 내게 말했다.

 “프로폴리스 바르셔서 알레르기 반응 나오신 거 같아요. 주사 맞으시고 약 며칠 드셔야겠네요. 그리고 입술 상처는 말씀하신 대로, 또 다른 치과 의사 분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점액종’이 맞습니다. 다행히 저희 병원에서는 수술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서 대학병원 안 가시고 여기서 수술받으시면 됩니다. 내일모레 수술할게요. 10분이면 끝나고, 막힌 침샘을 걷어내는 간단한 수술이니 걱정 마시고요. 재발 확률이 높으나, 제가 지금까지 수술하고 나서 재발한 환자를 만난 적은 없으니까 괜찮을 겁니다.”     


 살다 보면 ‘구세주’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그대로 해주고, 내가 고민하고 있는 일들을 한 번에 해결해주겠다고 하는 사람들, 그것도 신뢰와 믿음이 가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듣고, 따뜻하게 빛나는 눈빛을 마주 했을 때는 그 앞에 엎드려 발에 입이라도 맞추고 싶은, 그런 ‘구세주’ 말이다.      

 나는 이틀 뒤에 수술대 위에 누웠다. 얼굴에 수술포가 씌워지고 입술 주위에 따끔한 마취주사가 주입되었다. 펜슬 같은 길고 얇은 전기 절단기 같은 의료기기로 내 입술의 문제 부위를 제거하는 거 같았다. 살 타는 냄새가 났지만, 나는 그보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점액종’ 때문에 수술대 위에 올라서 초록색의 수술포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는 내 모습에 문득 서글퍼지고 서러워졌다. 혼자였기 때문이었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도, 수술이 끝나고 나가 안정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접수처에 수술비를 내고 병원을 나가는 그 길에도, 나는 혼자서 모든 걸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무척이나 친절하고 겸손한 태도로 환자인 내게 안정감을 주었지만, 나는 전기 의료기기가 내 입술의 ‘점액종’을 제거해가는 고통은 전혀 느끼지 못하면서도 스산한 마음과 함께 몰려오는 외로움과 공포심을 수술대 위에서 주먹을 꼭 쥐고 떨쳐내려고 애썼다.


 연 초에 재미로 본 인터넷 올해의 운세에, 질병을 조심하라고 하더니 기어코 몸에 칼을 대는구나 싶었다. 수술은 잘 됐고, 나는 진통제 및 항생제를 한 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절개한 부분을 실로 봉합했기 때문에 실밥을 풀러 며칠 뒤에 다시 병원에 가야 했지만, 나는 집에 와서 한없이 평온해지는 마음에 안심이 되었다. 이제 다 끝났다, 라는 마음에 진심으로 기뻤다. 입술을 씹고 점액종이 생겨 수술을 받기까지의 기간을 어림짐작해보니 한 달 가까운 시간이었다. 한 달 가까운 시간, 나는 일을 하면서, 밥을 먹으면서, 잠자리에 들면서도 가슴 한편에 불안한 마음이 욕실 타일 바닥 물때처럼 구석구석 끼어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작은 질환에도 온몸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고 나니, 우리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 상황 위에 놓여있는 것인지 돌아보았다. 상황에 따라서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으로 한 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이 삶이라는 것도 다시 한번 생각하며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점액종’을 제거한 것에 무한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행운이었구나, 이비인후과에서 좋은 의사 분을 만난 것은, 올해 내게 있어 큰 행운 중에 하나였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깨달은 사실 하나가 있었다. ‘질병’이라는 생각의 무서움, ‘질병’이라는 생각에 골몰하여 함몰되어 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매일 보는 ‘태양’과 ‘달’이, 매일 살갗에 닿는 ‘바람’과 ‘온도의 변화’가 평온과는 거리가 멀고 먼, 흔들리는 불안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나를 흔들어놓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생각일 때가 많다.     


 그리고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수술을 받는 전후 내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다름 아닌 ‘위로’였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순간 불안해하는 나를 달래주고, 때때로 한없이 좁아진 마음으로 인터넷 사이트에서 ‘점액종’ 치료 방법을 뒤지고 있는 내 등을 다독여주고, 잠을 자면서 초조함으로 뒤척이며 이불을 걷어차는 내게 배앓이하지 말라고 이불을 덮어주는 손길. 불안한 내 마음을 가라앉게 해 주고 무서워하는 나를 누군가 꼭 안아주길, 그러면서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손길. 내가 그런 손길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아프면 마음이 약해진다고 했으니, 약해진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건 역시 따뜻한 심장이 있는 ‘사람’ 뿐이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나는 사무치게 깨달았다. ■                                      


                                                                                                                     사진 출처: Daum     



이전 08화 나를 보호해야 할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