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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상혁 Sep 30. 2021

새우장과 전복장을 만들다.

1. 새로운 시작.

 짭조름하고 씹는 맛이 있는 반찬이 먹고 싶어 새우장과 전복장을 만들어 보았다. 나는 간장 게장을 무척 좋아하는데 꽃게가 무척 비싸기도 하거니와 먹는 데도 품이 많이 들고 먹고 나서 게 껍데기 처리도 살짝 걱정이 되어 게장을 만드는 것에는 망설임이 있었다. 무엇보다 딱딱한 게장을 먹다가 어금니 일부분이 깨진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간장 게장을 무척 좋아하면서도 잘 먹지 못했다. 존경하는 고(故) 박완서 소설가는 간장 게장의 맛을 ‘그건 맛의 오지, 궁극의 비경(秘境)’이라고까지 극찬을 했을 정도고, 나도 충분히 공감한다. 달달한 간장 맛과 어우러진 노랗고 진한 주홍색의 게 알과 내장이 붙어있는 게딱지에 뜨거운 밥 한 숟가락 얹어 비벼 먹으면 옆에 누가 죽어나가도 모를 만큼(?) 진저리 치게 맛있지 않은가?      


 처음에는 게장을 만들려고 하다가 위와 같은 이유로 쓰레기는 별로 안 나오면서 탱글탱글 오독오독 씹히는 ‘살맛’을 최대한 맛볼 수 있는 ‘새우장과 전복장’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가격 면에서도 중간 크기의 새우 30마리와 전복 10마리 정도를 합해도 꽃게 5마리 정도의 가격과 비슷했고, 손질하는 것이나 먹고 나서 음식물 처리 등을 생각하면 ‘새우장과 전복장’이 훨씬 간편하다고 생각했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새우와 전복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일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처음 고백하고 첫 만남 자리를 갖는 것만큼 설레고 기다려졌다.     

 며칠 뒤, 드디어 싱싱한 새우와 아직도 살아서 꿈틀꿈틀 움직이는 전복이 도착했다. 인터넷과 유튜브에서 제공한 손질법과 조리법대로 만들어 보기로 했지만 ‘계피’, ‘통후추’는 준비하지 못해 그걸 빼고 집에 있는 ‘파 · 양파 · 사과 · 마늘 · 레몬 · 요리용 술’ 등 냉장고 구석에 있던 재료들을 충분히 활용해서 만들었다. 재료가 도착한 기쁨도 잠시, 새우와 전복을 손질하면서 새우 머리 부분의 뿔은 날카로워 손가락이 몇 번 찔렸고 살짝 피까지 났다. 서툴러서 그런 것이다. 새우의 긴 수염과 수많은 다리를 가위로 잘라내고 내장을 빼내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걸 또 깨끗하게 몇 번이나 씻어야 했다. 그래도 새우 손질은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허리에 있는 내장을 이쑤시개로 파내는 일이 좀 번거로웠다. 내장이 잘 빠지지 않아서 대충 담갔는데, 나중에 먹을 때 일일이 손질을 하고 내장을 다시 제거해서 먹게 되니 손이 두 번 가지 않게 처음부터 새우 내장 제거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방 개수대에 서서 새우를 다듬고 전복을 씻는데 손목이 아프고 허리가 당기고 쑤셨다. 전복 손질은 정말 손이 많이 갔다. 일회용 칫솔을 이용해서 전복을 닦아내면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전복은 원래 검은색인 줄만 알았다. 내가 전복 살을 칫솔로 문대면 문댈수록 하얘지는 걸 보면서 지금까지 내가 먹은 전복은 무엇이었나, 갑자기 뜨악한 마음이 들었다. 칫솔로 전복 살 부분을 박박 문대기를 10분 이상 했더니 원래 하얗고 뽀얀 전복의 오동통한 색깔이 그대로 드러났다.     


 재료 손질을 마치고, 간장을 달이기 시작했다. 위에서 언급한 재료 이외에도 생강과 설탕을 조금 넣고 달였다. 물을 잘 맞추지 못해 간장이 너무 짜서 물과 설탕을 좀 더 넣고 다시 달이니 달달한 맛이 났다. 개수대에 찬물을 가득 채우고 간장 달인 냄비를 담가 두고 식혔다. 그 사이에 냉장고에 마침 ‘인삼’이 한 뿌리 있어 ‘인삼’을 편으로 썰고 역시 냉장고 한쪽 구석에서 말라가던 ‘풋고추’도 하나 썰어 두었다. 조리법에는 ‘인삼’을 넣으라는 말이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지만, 나는 인삼을 좋아하기도 하고 인삼을 넣으면 왠지 살균도 되고 몸에도 좋으면서 간장 맛도 더 고급스러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혼자 즐거워했다. 그러니까, 냉장고에 있는 웬만한 재료는 거의 다 간장 달일 때 넣거나, 간장 식혀서 락앤락 통에 ‘새우와 전복’을 넣어 담글 때 같이 넣었다. 야채를 사뒀다가 잊어버리거나 먹다 물려서 못 먹는 경우에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냉장고에 넣어두다 결국 버리게 되는데, 이럴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간장을 달이면서는 가스레인지 앞에 딱 붙어 서서 혹여 너무 짜거나 달지 않을까 달이면서도 심란했다. 간장 맛이 너무 강하면 ‘새우와 전복’ 고유의 맛이 사라지는 건 아닌지 별의별 걱정이 다 됐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구나, 처음으로 깨달았다. 재료를 구입할 때도 좀 더 신선하고 크기가 알맞은 것을 고르기 위해 여러 사이트를 비교 검토했다. 온라인 쇼핑에 에너지와 시간을 쓰고 싶지 않은 게 평소 내 신념이라 물건을 살 때 나는 대충대충 보며 눈에 들어오면서 가격이 싼 걸 사는데, 내 입에 들어가는 건 그렇게 간단하게 살 수 없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재료를 고르고 구매자들의 코멘트도 꼼꼼하게 읽고 결정했다.      


 그런데, 나는 전복장을 담그면서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전복은 손질을 하고 난 뒤에 찜통에 10분 정도 찌고 나서 전복장을 담가야 한다는 걸 까먹은 것이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신경을 써야 할 게 많다 보니까 하나를 놓쳐버렸다. 집에서 제일 큰 락앤락 통에 생전복 10마리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얇게 썬 레몬을 얹었다. 레몬이 살균의 효과도 있고 상큼한 맛을 더해준다고 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냉장고에 두 달 전에 사 둔 레몬 한 개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달 전에 산 레몬을 썰어내면서 느낀 건, 얼마나 방부제를 끼얹었으면 두 달이 지난 레몬이 조금도 썩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새우장과 전복장’ 만드는데 레몬이 재료가 되어 다행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앞으로 레몬을 또 사서 먹어도 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레몬 위에 새우를 곧게 펴서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전복 10마리와 새우 30마리를 다 넣으니 통이 꽉 찼다. 그 위에 달여 식힌 간장을 붓고, 편으로 썬 인삼 한 뿌리와 풋고추 하나도 얹은 뒤에 뚜껑을 닫고 냉장실에 넣었다. 다음 날,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냉장실에서 통을 꺼내 간장만 냄비에 다시 따라 부은 뒤 사과 반쪽과 요리용 술을 반 컵 넣고 다시 끓여냈다. 그러기를 3번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입에 군침이 돌았고, 나는 이상하게 ‘몰입’이 되어 있었다. 잘 만들고 싶다는 마음, 제대로 맛을 내고 싶다는 욕심, 돈과 시간을 투자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다는 심리, ‘새우장과 전복장’을 만들면서 나는 어떤 승부욕에 잠시 취해있었다. 재료를 구입해서 손질하고 담그고 숙성시키고, 간장을 다시 끓여 붓기를 3번 한 뒤에야 접시에 ‘새우장과 전복장’을 올려놓을 수 있었다.     


 먹기 좋게 새우 껍질은 다 벗기고 그때 보이는 내장도 같이 떼어내 손질했다. 전복은 숟가락으로 관자 부위를 힘 있게 눌러 껍데기에서 분리했다. 새우장은 그럭저럭 먹을 만했는데, 전복장은 비리고 질겼다. 그때서야 내가 뭔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조리법을 다시 확인하니 위에서 언급한 대로 전복을 삶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됐다. 생전복을 간장에 담그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전복의 쫄깃한 식감을 최대한 만끽하려면 찐 전복으로 전복장을 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 기다리고 고대하던 저녁밥을 내 갖은 노력이 들어간 ‘새우장과 전복장’으로 반찬을 해서 먹으면서 이미 담가버린 생전복을 어떻게 하나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이렇게 돈과 시간을 투자해 만들어낸 ‘새우장과 전복장’이 실패로 끝나는 것이 너무 속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미 간장에 담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냥 먹자, 라는 생각으로 그날 잠자리에 들었다가 결국 나는 새벽 1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찜통을 꺼내고 락앤락 통에 얌전히 있던 전복을 죄다 헤집어 꺼내 간장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전복을 기어코 10분 쪄내고 식힌 뒤에 다시 락앤락 통 간장에 담그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이불속에서 잔뜩 몸을 오그리고 ‘어쩌지, 어떻게 하지?’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던 1시간 전과 사뭇 다르게 나는 이부자리에 완전히 대자로 누워 편안하게 잘 잤다. ‘새우장과 전복장’을 담그려고 마음먹고 재료를 구입해서 만들어 먹기까지 무려 일주일 가까운 시간이 들었다. 다 만든 ‘새우장과 전복장’이 담긴 락앤락 통을 보면서 나는 흐뭇한 마음에 자꾸만 냉장고를 열어보았었다.       


 그러니, 어머니들이 겨울에 김장을 담그고 냉장고에 김치를 꽉꽉 채워 넣었을 때, 얼마나 뿌듯했을까? 어머니들은 가족들 먹이려고 음식을 하느라 한 땀을 흘리며 만들어 내놓고도 막상 식탁에서 잘 먹지 않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진이 빠졌기 때문이었다. 나도 ‘새우장과 전복장’을 만들면서 정말 진이 빠졌다. 매일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 또는 아버지는 얼마나 힘든 걸까. 각종 식당에서 일하시는 수많은 분들의 손은 마를 날이 없는 것이다. 새우와 전복이 가득 담긴 락앤락 통만 봐도 나는 배가 부른 거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머니들이 만든 음식을 가족들이 배불리 먹는 것을 보면서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라고 하는 말의 의미를, 나는 ‘새우장과 전복장’을 직접 만들고 나서야 더욱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새우장과 전복장’을 또 만들어 먹으라고 하면, 과연 할 수 있을까 싶다. 돈을 주고 사 먹는 음식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생각되었다. 접시에 깔끔하게 담겨 나오는 모든 음식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하게 되고,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그 복잡다단한 과정을 곱씹어보니,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은 우리 어머니(또는 아버지) 세대를 비롯하여 모두 정말 훌륭한 분들이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음식으로 보여도 그 음식을 만들어 내는 사람의 정성과 솜씨가 더해지면 ‘맛’이라는 것은 천차만별로 달라지며, 맛뿐만이 아니라 음식의 깊이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내가 만든 ‘새우장과 전복장’은 내입에는 맛있었지만 누구에게 선 보일만한 음식은 아니라는 것도 통감했다. 모든 한 번에 되는 건 없다. 운이 좋아 한번에 잘 만들었다 해도, 그 솜씨와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반복 연습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내 ‘손 맛’이 발휘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앞으로도 도전해보련다. 더 나은 맛을 위해서, 그것이 결국 내 입이 즐거워지는 것이고 내 입이 즐거워지면 내 삶도 행복해지리라 믿기 때문이다.     


 ‘새우장과 전복장’을 만들면서 깨달은 값진 경험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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