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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상혁 Jan 03. 2022

내 친구 규진이 3.

9. 새로운 시작.

 나는 한번도 스포츠형 머리로 깎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민 대머리로 바뀌어 가는 내 모습이 쑥스럽기는 했지만 다소 신기하기도 했다. 내 머리통이 이렇게 생겼구나, 하는 어떤 발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를 보던 규진이가 갑자기 크게 한숨을 쉬더니 눈빛이 흔들렸다. 친동생을 군에 보내는 친형처럼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군에서 한 고생들이 그 순간에 모두 떠올라서 그랬는지, 규진이는 그때부터 나보다 더 불안해했다.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규진이와 30년간 친구로 지냈다. 중학교 한문 시간을 제외하고는 규진이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다. 훈련소 연병장에서 입소하는 신병들 집합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나는 규진이를 돌아보았다. 이제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규진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이었다. 턱에 거뭇거뭇한 수염이 난 까무잡잡한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서 울려고 하는 것이었다. 나도 그 모습에 눈물이 떨어지려고 했다. 서둘러 규진이한테 인사를 하고 연병장으로 뛰어가려는데 규진이가 식당 일로 거칠어진 손으로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놓았다. 규진이 손이 이렇게 두꺼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군 입대 전에 제일 친한 친구와 함께라서 그나마 나는 씩씩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그날따라 규진이가 눈에 잘 띄는 노란색 잠바를 입고 왔었는데, 내가 연병장에서 훈련소 막사로 들어가기까지 멀리 서 있는 노란색 잠바를 입은 규진이가 보여서 큰 위안이 됐었다.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규진이는 식당 홀 서빙 일에서 식당 주방 일로 자리를 옮겼고 본격적으로 실전 현장에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군에서 제대했을 때, 규진이는 어엿한 요리사가 되어 있었다. 규진이를 만나면 규진이가 식당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은어인 ‘식당 용어’를 나한테 알려줬다. 규진이와 대화를 이어가려면 규진이가 식당 주방에서 쓰는 말을 알아들어야 했기 때문에 내가 꼬치꼬치 물어보기도 했다.

 예를 들면 대화중에 규진이가 ‘육부’라는 말을 하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내가 대화를 끊고 물어보게 된다. 그러면 규진이는 “육부란, 식당 주방에서 ‘고기’만 담당하는 사람을 일컫는다.”라고 대답해줬다. 그 외 세부사항은 다음 대화로 자세하게 이어졌다. 나는 규진이 입에서 나오는「식당의 세계」가 무척 흥미로웠다. 온갖 흥망성쇠가 다 깃들어 있는, 웬만한 사극 한 편의 삶이 녹아들어 가 있는 듯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내가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때였다. 막 퇴근을 하려던 참에 규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일이었고 그때가 저녁 식사 시간이었기 때문에 규진이가 누구보다 바쁠 때였다. 그런 때 전화가 왔으니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규진이 목소리가 들렸다. 심하게 갈라지고 낮은 목소리였다. 앓고 있는 목소리가 분명했으므로 무슨 일이냐고 내가 다급하게 물었다. 식당 주방에서 일하다가 손가락을 크게 베어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것이었다.

 내 직장은 강북 쪽이었고 규진이는 남양주에 근무했기 때문에 그리 멀지 않기도 해서 나는 당장 차를 몰고 규진이가 입원했다는 병원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나는 규진이 생각을 하며 얼마나 크게 손을 다쳤으면 입원을 할 정도인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차가 많이 막혔다. 나는 남양주까지 가는 길에 조급한 마음에 다소 난폭하게 차를 운전했다.      


 규진이는 손·발가락 접지 전문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규진이 어머님과 여동생은 멀리 있었기 때문에 내가 병원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 규진이가 오른손 팔오금부터 엄청난 두께의 붕대를 감고 있었다. 손가락이 잘린 거냐고 차마 물어보지를 못하고 있는데, 내 흔들리는 눈을 보고 눈치챘는지 손가락이 잘린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규진이 여동생에게 전화가 와서 내가 받았고, 내가 있으니 병원에 천천히 오라고 안심을 시켰다.

     

 규진이는 주방에서〈요리사 전용 칼〉을 썼고, 그 칼은 요리사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언젠가 규진이와 밥을 같이 먹기로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규진이가 신문지에 둘둘 말은 것을 가방에서 꺼내 다시 꼭꼭 싸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뭐냐고 넌지시 물었는데〈칼〉이라고 해서 내가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칼을 왜 들고 다니느냐고 미쳤냐고 나무랐는데, 생각해 보면 내가 학교에서 분필이나 보드 마커로 칠판에 판서를 해야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처럼, 규진이는 칼이 있어야 요리를 해서 손님 상에 음식을 내놓을 수 있었으니 가져 다닐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무슨 사정이 있어 위험한 칼을 밖에까지 가지고 나왔느냐고는 묻지 못했지만, 요리사에게 있어〈칼〉은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라는 걸 깨달은 때이기도 했다.

 그런〈칼〉이 무슨 사정으로 새로 바뀌거나 아니면 음식을 할 때 잠시 다른 생각을 하게 되면 여지없이 주인의 손에 상처를 내고야 만다고 한다. 그래서 음식을 할 때는 온 신경을 집중해서 해야지만 다치지 않고, 음식에 맛도 난다고 규진이가 말했었다.   

   

 식당에서 내가 모르는 일로 규진이 마음을 흩뜨려놓는 일이 많을 것이고 그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 오늘처럼 큰 사고로 이어진 거라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병원에 갔다고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지만, 규진이가 시키는 심부름을 하고 그날 늦은 밤까지 곁에 있어주었다. 천만다행으로 손가락 신경은 다치지 않아서 치료만 잘 받으면 요리를 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던 것이 기억난다.


 그 밤, 나는 차를 몰고 집으로 오면서 규진이가 일하는 직장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항상 뭔가 펄펄 끓고 있을 것이고, 대량으로 식재료를 자르고 다듬어야 하는 곳, 위생이 다른 어느 곳보다 중요하니 위생 관리는 물론일 것이다. 식사 시간에 밀려드는 손님들 음식을 뜨거운 불 속에서 끓여내고 만들어내야 하는 규진이를 생각하니 그저 마음이 아팠다. 세상에 쉬운 일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교사의 길을 걷고, 규진이가 요리사의 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서로의 공통 주제가 너무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가끔 전화를 하고 아주 가끔 만나서 밥을 먹었지만, 그때는 서로 직장 생활에 지쳐 만나서 거의 말도 하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은 채 밥만 먹고 서둘러 헤어졌다. 말을 하면 기운이 빠졌고 술을 마시면 다음 날 일이 걱정이었으니 허기진 배를 채우고 각자의 집으로 가기 바빴다. 그래도 우리는 친구였기 때문에 서로의 경조사를 잘 챙기며 잊을 만하면 만나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그러다 규진이와 크게 다투고 3년간 연락을 끊은 적이 있었다. 아주 사소한 일이었는데 나는 정말 규진이와 절교를 하고 다시는 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어찌 화해를 했지만, 그때는 내가 규진이에게 너무 실망을 했고 규진이도 본인 스스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내게 사과를 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우리는 거의 반년 만에 서로 쉬는 날이 맞아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고깃집에서 만나 고기를 굽는데 규진이 손가락에 껴있는 여러 개의 금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규진이는〈금〉을 무척 좋아했다.〈금〉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혈액순환이 잘 되고 건강에 좋다는 것도 있지만 뭔가 번쩍번쩍 빛이 나는 것을 규진이는 유난히 밝혔다. 나는 피부 묘기증(살짝 긁어도 부풀어 오르는 증상)이 있어서 반지 같은 걸 잘 끼지 않는다. 그리고 몸에 장신구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규진이가 새끼손가락에 끼고 있는 금반지가 자꾸 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몸에 좋기에 매일 식당에서 물을 만지는 일을 하면서도 반지를 부적처럼 끼고 있는가 싶었다. 그래서 내가 규진이 새끼손가락에 있는 금반지를 잠깐만 빼 달라고 했다. 술을 한잔 나눠마셔서 인지 규진이가 흔쾌히 반지를 빼줬고, 나는 규진이 새끼손가락 금반지를 내 집게 손가락에 끼어봤다. 그런대로 맞는 듯해서 잠시 끼고 있었다. “노인네처럼 금반지는…….” 하면서 내가 구시렁거렸고 규진이가 그 사이에 화장실에 다녀오고 이어서 내가 다녀왔다. 우리는 술을 더 마셨고 그러다가 내가 규진이에게 반지를 돌려줘야 한다는 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집에 오고 보니 내 손가락에 규진이 금반지가 끼어 있는 걸 알아챘다. 나는 서둘러 규진이에게 전화를 해서 반지 돌려준다는 걸 잊어버렸다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다음에 만날 때 돌려주겠다고 했다. 규진이도 흔쾌히 괜찮다고 하며 다음에 만나면 돌려주라는 말을 분명히 했었다.


 시간은 지났고 우리는 좀처럼 만나지 못했다. 나는 규진이 금반지를 내 책상 한쪽에 올려두고 볼 때마다 이걸 돌려주기 위해서라도 가까운 시일에 만나서 밥 한번 먹어야겠다,라고 생각만 했지 실천하지 못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다.     


 그날은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주말이어서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규진이에게 전화가 와서 반가운 마음에 밝은 목소리로 받은 거 같다. 그런데 규진이가 다짜고짜 반지 언제 줄 거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안 그래도 마음에 걸렸다고 급하면 이번 주라도 우리 집 근처에 갈빗집 맛있는 데 있으니 갈비라도 같이 먹자고 했지만, 규진이는 지금 당장 돌려달라고 성화였다.


 나는 너무 황당해서 왜 그러느냐고 언성을 높이게 되었고, 다른 사람도 아닌 나에게 빚쟁이처럼 달려드는 목소리에 기가 막혔다. 나도 역심이 나서, 그렇게 급하면 네가 우리 집에 와서 직접 가져가라고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그랬더니 규진이가 지금 당장 돌려주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고 나에게 악을 써댔다.


 나는 순간, 어지러워졌다. 나를 못 믿는구나, 이 금반지 한 개가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금반지보다 못한 게 우리 우정이었구나, 그런 생각에 서글퍼졌다. 나는 전화를 끊고 인터넷에서 퀵서비스를 검색했다.  그리고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퀵서비스 기사에게 연락했다. ‘돈은 얼마든 상관없으니 1시간 내에 물건을 배달해 달라’라고 부탁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었으나, 나는 보통 퀵서비스보다 웃돈을 주고 금반지를 규진이에게 보냈다. 서울 동작구에서 경기도 남양주까지, 그 빗속을 뚫고 30분도 안 걸린 시간에 도착했다는 퀵서비스 기사의 문자가 내 휴대폰에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규진이에게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고 일갈하고 규진이 전화번호를 삭제하고 카톡에서도 차단했다. 화가 풀리지 않아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규진이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다 지우고 삭제해버리고 싶었으나, 규진이와 내가 연결된 것은 겨우 휴대폰 전화번호와 카톡뿐이었다.


 20년이 넘게 친구로 지내왔으면서 우리가 연결된 것이 이것뿐이구나, 그래서 그렇게 나를 못 믿는 거구나, 그 당시 생각했었다. 반대의 경우라면 어땠을까 자문해보았다. 내가 규진이에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을 의도치 않게 넘겨주었는데, 생각처럼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도 규진이처럼 이성을 잃고 친구에게 경찰까지 들먹이며 말할 수 있을까? 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경찰까지 부르겠다고 한 말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건 20년간 쌓아온 ‘우정’과 ‘신뢰’의 문제였다. 그렇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라면 매일같이 전화해서 나를 닦달할 수도 있었는데, 우리는 정말 3개월 만에 처음 전화 통화를 한 것이었다.


 내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규진이가 아무 말 안 한다고 해서, 규진이에게 금반지가 단순한 금반지가 아닐 수도 있었는데 내가 세월아 네월아 하며 가지고 있었던 것은 잘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영원히 안 볼 사이도 아니고, 그냥 친구도 아닌 ‘절친’인데 이런 일로 ‘경찰’을 운운한 것을 나는 용서할 수가 없었다.


 “사람을 어떻게 보고……, 도대체 나를 어떻게 보고 그따위 말을 지껄이는 거야!”


 나는 부아가 나서 벽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악을 써댔다. 내가 태어나서 머리끝까지 화를 내 본 것이 손가락에 꼽는데, 그중에 한 번의 사건이었다. ■


                                                                                            「내 친구 규진이 4.」로 이어짐.


                                                                                                                   사진출처: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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