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하시모토에서, 너와 함께.
나는 면 요리를 아주 좋아한다. 특히 냉면을 좋아하는데, 냉면을 좋아하는 데에는 초등학교 1학년 즈음 아픈 추억이 하나 있다. 여름이었는데 동네 어른들이 한 집(우리가 세 들어 살던 주인집이었다.)에 모여 더위를 이겨보자고 냉면을 만들어 먹을 때였다. 아버지를 포함한 아저씨들은 러닝셔츠만 입은 채 모여 있었고, 부엌에서 냉면을 만들던 엄마를 포함한 동네 아줌마들은 손들이 무척 바빴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동네잔치처럼 가까운 동네 사람들이 모여 냉면을 만들어 먹는다는 건, 냉면을 제공하는 집이나 얻어먹는 집이나 즐거웠을 거라 생각한다. 꽤 큰집이었는데, 대여섯 집 식구들이 죄다 모였으니 집안이 꽉 찼었고 한 집에 아이가 하나씩만 있다고 해도 여러 명이었을 테니 어수선하고 시끄러웠다. 나를 포함해서 동네 친구들은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신나 있었다. 큰 냄비에 냉면을 삶고, 냉면 사리를 건져내서 찬물에 씻고, 양념장을 만든다고 그 속에 새콤한 식초를 넣고 참기름 한 방울을 떨어트렸으니 고소한 맛이 얼마나 침샘을 자극했겠는가? 초등학교 저학년 꼬맹이들이 각자 젓가락을 들고 아우성을 쳐댔을 것이다. 나는 왜소하고 약한 터라 늘 친구들 몸싸움에서 튕겨져 나갔어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양이 많은 냉면을 차지하겠다고 아줌마들이 건네주는 스텐 그릇에 담기는 냉면 사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버지나 동네 아저씨들에게는 커다란 냉면사발에 사리를 담고, 양념장을 얹고 오이며 냉면 무김치와 계란 같은 고명을 얹은 냉면이 제공되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어린아이들에게는 아줌마들이 김장할 때나 쓰는 큰 볼에 남은 냉면 사리를 전부 넣고 양념장을 넣은 뒤 비빔국수처럼 버무려 국그릇 정도 되는 스텐 그릇에 담아 나누어주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주인집 아줌마가 상혁이는 규호(가명)보다 몸집이 작으니까 많이 못 먹을 거라면서, 국그릇보다 작은 스텐 밥그릇에 냉면을 담아주는 것이었다. 규호는 꼬맹이들 중에 몸집이 제일 크고, 집주인 아들이었던 터라 어른들에게 제공된 큰 냉면사발에 냉면을 받아먹었다. 나는 내 몫으로 받은 밥그릇 속에 새콤달콤한 냄새가 나는 냉면을 보면서 너무 억울하고 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엄마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것은 그 집에 세 들어 사는 세입자였다는 위치가 가장 컸을 거고, 특별히 자기 자식만 챙길 정도로 유난을 떨지도 못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 두어 젓가락 먹고 나니 냉면이 없어졌다. 정말 맛있었다. 엄마가 냉면을 만들어 준 적이 있었을까. 나는 초등학교 1학년 즈음 동네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 북적대는 곳에서 아마 냉면이라는 것을 처음 먹어봤을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게 있다니, 새콤하고 달콤하면서 매콤하고 고소한 맛, 그리고 쫄깃쫄깃한 면발과 면의 목 넘김조차 부드러워 언제 입에 들어왔다가 뱃속으로 들어갔는지 모르게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다 먹고 주위를 둘러보니 규호는 아직도 먹고 있었고 아줌마들도 각자 주어진 양만큼 나눠서 냉면을 먹었기 때문에 남는 것이 없었다. 내가 태어나서 ‘차별’이라는 것을 처음 경험한 순간이었다. 몸집이 작다고 말랐다고 적게 먹을 거라는 생각, 그리고 그 생각에 동조하는 분위기, 내가 작기 때문에 냉면도 조금만 먹어도 괜찮을 거라는 판단 오류. 아니었다, 나는 더 먹고 싶었고 가능하면 어른들이 먹는 냉면사발에 냉면을 가득 담아 먹고 싶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가 억울해하며 입이 뾰족 나와 있으니, 엄마도 속이 상했는지 다음에 냉면 만들어서 우리 가족 셋이서 배 터지게 먹자고 했던 걸 기억한다. 엄마와 했던 그 약속이 지켜지지는 못했지만, 말만 들어도 나는 침이 고여 엄마 손을 꼭 붙잡고 앞뒤로 흔들며 신나 했었다.
나는 그 이후, 내가 자라서 돈을 벌게 되면 ‘아침 · 점심 · 저녁’을 냉면으로만 먹을 거라고 다짐을 했고, 대학생이 되어 과외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정말 ‘아침 · 점심 · 저녁’을 냉면으로만 먹다 장염에 된통 걸려 일주일간 죽다 살아났다. 의사 선생님께 얼마나 혼이 났는지 ‘하루 세끼를 냉면만 먹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냉면집 아들이에요?’라는 소리를 들었다. 면 요리가 양이 적어 보여도 위장 안으로 들어가면 부풀기도 하거니와 자극적인 음식이 위에 좋을 리도 없고 메밀가루가 들어갔다 해도 밀가루도 상당히 들어가 있는 냉면이 소화가 잘 될 리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냉면을 아주 좋아한다. 고종 황제께서도 망국의 한을 동치미 국물에 배를 많이 넣은 냉면으로 달랬다고 하는데, 나도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넣은 냉면을 먹을 때마다 어려서 받은 ‘차별’의 한을 달래는 기분이 들었다. 약간 신맛을 좋아해서 냉면에 식초를 반 숟가락 정도 더 넣어 먹으면 내 입맛에 딱 맞다. 나이가 마흔을 넘어가면서 정말 이상하게도 밀가루만 먹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게 되었다. 빵 한 조각만 먹어도 속이 더부룩해지니 냉면은 말할 것도 없다. 건강검진 때마다 내과에서 위내시경을 하지만 이상이 없다고만 하니,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일본도 면요리가 매우 발달된 나라이지만, 냉면 같은 요리는 즐겨먹지 않는다.『모리오카 냉면』이나『히야시 츄카(찬 중국 냉면)』라고 해서 팔기도 하지만 여름 한정이고 봄 · 가을 · 겨울에는 좀처럼 맛볼 수 없는 음식이다.「돈키호테(대표적인 일본 대형 만물상)」같은 곳에 여름이 지나면 계절상품이 아닌 것은 가격을 좀 내려서 파는데, 한국 인스턴트 냉면을 파는 걸 보고 반가운 마음에 잔뜩 사 와서 매일 끓여먹다가 먹고 나면 역시 소화가 안 되어 고생을 했다. 요새는 정말 먹고 싶고 위 상태가 좋을 때만 참고 참았다가 만들어서 천천히 먹는다. 일본은 냉면 같은 찬 요리보다는 라면이 특히 발달되어 있다.『라멘』이라고 하는 이 요리는 일본 전역에 걸쳐 각 지역 특색에 맞게 독특한 맛을 자랑하며 발달되어 있다. 우리나라의『평양냉면』,『함흥냉면』,『진주냉면』,『부산 밀면』,『춘천 막국수』같은 것처럼 말이다. 일본에 가면 라면을 먹지 않을 수가 없고 가격도 싼 편이라 점심 한 끼 간단히 때우기에 안성맞춤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밀가루 음식을 잘 먹지 못하게 되었고, 특히나 일본 라면의 경우『돈꼬츠(돼지 뼈를 우려내 만든 육수)라면』을 많이 파는데, 기름기가 많기도 하거니와 맛있게 만들지 못하는 곳에서는 돼지 잡내가 나기 때문에 내 입에는 맞지 않아 나는 잘 먹지 않는다. 하지만『간장라면』이라든지『된장라면』이라면 한국인 입맛에도 맞을 만한 라면이다. 일본 여행 시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그런 라면 가게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일본 라면을 맛보는 것도 색다른 식도락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계기라 되리라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하시모토’에서 전철을 타고 10분 정도 가면 ‘마치다’라고 일본의 대표적인 JR 전철과 오다큐 전철이 만나 큰 상권을 이루는 역이 있다. 약속이 있어 ‘마치다’에 갈 일이 있었고 나는 일을 하느라 점심때를 놓친 상태에서 ‘마치다’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고 약속 시간까지 대략 40분 정도가 남았었다. 간단하게 점심을 때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어서 맥도널드에 가서 햄버거를 먹으려고 했는데, 우연히도 지나는 길에 멸치가 살아 움직이는 거 같이 생생하게 그려진 간판이 내 눈에 들어왔다. 초밥집이나 생선회집이라면 멸치만 그려놓을 일이 없었기 때문에 궁금증이 발동했고 무슨 가게인가 잠깐 멈춰 서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이라 손님이 거의 없었고 낯익은 냄새가 콧속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건 나에게 매우 익숙한, 익숙하다 못해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거 같은 우리나라『멸치국수』의 냄새였다.『멸치국수』에 단무지나 김치 하나 얹어 먹으면 행복해질 거 같은 생각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왔다. 아니, 일본에 웬『멸치국수』란 말인가? 나는 간판을 자세히 보았다. 간판에는『煮干し ラーメン』(‘니보시 라멘’ – ‘쪄서 말린 멸치라면’ – 이하 ‘멸치라면’)이라고 쓰여 있었다. 쪄서 말린 멸치로 국물을 낸 라면이라는 뜻이었다. 보통 일본 라면은 돼지 뼈로 국물을 내서 먹는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마른 멸치로 국물을 내서 라면을 만들어 먹는다는 것을 처음 보게 된 것이다. 반갑고 그리운 마음에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젊은 서빙 직원이 자리를 안내해줬고, 라면 위에 계란이며 유부며 여러 가지 토핑을 얹어 먹을 수 있으니 고르라고 권유해서 고기와 계란을 얹은『멸치라면』을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국수와 얽힌 추억 하나가 주방에서 나오는 하얀 김처럼 몽글몽글 떠올랐다. 바로『가락국수』였다. 그리고 ‘청량리역’이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 고향을 가려면 ‘청량리역’에서 열차를 타야 했다. 설과 추석 때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아버지 고향에 가기 전에 아버지는 항상 ‘청량리역’ 옆에 있던『가락국수』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때 먹었던 『가락국수』, 3,000원이었나, 그보다 더 쌌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고명으로 고춧가루 조금과 김 가루, 새끼손가락만 한 유부 두어 개, 파 몇 가닥이 얹어있을 뿐이었지만 나는 그『가락국수』가 그렇게 맛있었다. 달달하면서도 매콤하고 먹고 나면 든든한 것뿐만 아니라 추석이나 설처럼 쌀쌀하거나 추운 날씨에 그만한 음식도 없는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없는 맛이었다. 안타깝게도 지금 ‘청량리역’에는 예전에 아버지와 항상 갔던 그 가락국수 집도 없고, 내가 어려서 먹었던『가락국수』의 맛이 그리워 식당을 찾아 가봤어도 어릴 때 먹던 그 맛이 나지 않아 실망할 때가 많았다. 아버지가 고향 가자는 말을 할 때면, 나는 아버지 고향에 가는 것보다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먹었던『가락국수』맛에 입안에 침이 고였고 어서 빨리 아버지 고향에 가고 싶었다. 사실 나는 아버지 고향에 갈 때마다 낯선 친척들 사이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해 우물쭈물거렸고, 어색하기만 했기 때문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할 만도 한데 고명도 얼마 올라가지 않은 멸치로 육수를 낸『가락국수』맛 때문에 아버지 고향에 군말 없이 같이 가곤 했다. 물론, 명절에는 가난한 아버지라도 다른 때보다는 얼마간 돈이 생겼기 때문에 평소보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 내가 말하는 군것질 거리를 이것저것 잘 사주었기 때문이기도 했었다. 일본 ‘마치다’에서 만난『멸치라면』식당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며 나는 잠시『가락국수』를 맛있게 먹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기다리고 있으니『멸치라면』이 나왔다. 김치는 기대도 할 수도 없고 그래도 단무지 한 조각이라도 줄 거라 생각했는데, 알 짤 없었다. 일본은 반찬도 다 돈 내고 사 먹어야 하는 경우가 많고 만약 곁들여 나오는 반찬이 있다고 해도 단무지 두 조각, 오이장아찌 세 조각 뭐 이런 식이라 반찬은 아예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너희 나라는 왜 그렇게 반찬에 인색하냐고 일본인 친구에게 물으면 ‘메인 요리의 맛을 즐겨야지 반찬을 왜 먹느냐’는 식이기 때문에 더 말 섞을 필요가 없다. 그래도 우리나라『멸치국수』냄새가 흠뻑 나는『멸치라면』앞에서 나는 침을 꿀떡꿀떡 삼키고 추운 날이었는데도 코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청량리역’에서 먹었던 김이 모락모락 나는『가락국수』보다는 고기가 고명으로 올라가 있는 등 고급스러웠지만 국물 색깔이나 냄새만큼은 우리나라의『멸치국수』또는『가락국수』와 비슷해 나는 내 앞에 놓여 있는 라면 사발 앞에서 그만 마음이 먹먹해지기까지 했다. 낯선 타지에서, 생각도 못한 장소에서 만난 우리나라의 냄새, 우리나라의 맛, 그리고 어릴 적 추억까지 그 모든 것이 이 라면 한 그릇에 담겨 있는 듯했다.
젓가락으로 라면을 집어 한 입 입에 넣었다.『멸치국수』의 소면이나『가락국수』의 우동 면발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식감이 있고 맛있었다. 그리고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우리나라『멸치국수』와 완전히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주 흡사한 맛이 났다. 라면 한 그릇, 국수 한 그릇에 나는 그만 한국의 어느 식당에 앉아 있는 거 같은 착각이 들었다. 30년도 더 지난 그 옛날, ‘청량리역’에서 사발 바닥이 보일 정도로 깨끗하게 먹어치웠던『가락국수』가 생각났고, 그 보다 더 어릴 때 먹었던『냉면』도 떠올랐다. 돈이 있다고 해도 언제든 사 먹을 수 있는 맛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앞에 있는『멸치라면』이 나는 정말 고맙기까지 했다. 힘들고 지칠 때, 일본 땅에서 외국인이라고, 한국인이라고,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가 휘리릭 빠르게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일본어를 잘 못 알아들었다고, 발음이 틀렸다고 나를 비웃었던 사람들이 생각났고 그때 느꼈던 서러움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손톱자국이 빨갛게 나는지도 모르고 주먹을 꽉 쥐며 참았었다. 몸집이 작고 왜소하다고『냉면』을 국그릇이 아닌 밥그릇에 주던 그 옛날의 규호 엄마였던 집주인 아줌마도 떠올랐다. 나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조금씩 번져나가던 멸치 국물의 냄새를 맡으며 국물을 마시자 코끝이 시큰해졌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며 나는 라면을 먹고 국물을 마셨다. 쫄깃한 면은 내 뱃속으로 들어가 시장기를 채워주었고, 멸치국물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한 끼를 든든하게 먹었으니 이제 ‘마치다’에서 약속되어 있는 일을 하러 가면 되었다. 시간도 딱 35분 정도가 흘러있어 5분이면 약속 장소에 충분히 갈 수가 있었다. 양치질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가글이 있으니 오늘은 양치질 통과라고 혼자 신나 있었다. 마치 그 옛날 엄마가 우리 세 식구끼리 냉면을 배 터지게 만들어 먹자고 했을 때처럼, 그 말에 신이 나서 엄마 손을 잡고 앞뒤로 흔들며 뛰듯이 걸었을 때처럼 말이다.
나는『멸치라면』식당을 나오면서 점장에게 인사를 했다.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오늘 먹은 라면이 제가 일본에서 먹은 라면 중에 가장 맛있었습니다. 이런 맛있는 라면을 먹을 수 있게 해 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맛이 나는『멸치국수』,『가락국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반갑고 기뻤습니다. 다시 오겠습니다. 꼭 다시 오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식당 안에 손님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점장에게 이렇게 말할 수가 있었다. 혹 내가 일본어를 틀리고 발음이 다소 어색했다 하더라도 이런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나를 충분히 이해해 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생겨 나는 제법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점장은 내 말을 듣자마자 주방에서 서둘러 뛰어나오더니 모자를 벗고 허리를 숙여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맛있게 드셔주셔서 감사하고 꼭 다시 오시라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가까이서 보니 서글서글하고 따뜻한 눈매의 내 나이 또래 사람이었다. 나를 보며 짓는 눈웃음에『멸치국수』같은 구수한 정이 담뿍 담겨있었다.
그러고 나서 반년쯤 뒤에 볼 일이 있어 그 식당을 다시 찾았다. 간다 간다 하면서도 가지 못한 여러 사정이 있었고 생활에 치이다 보니 가는 걸 번번이 잊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다 '마치다'에 갈 일이 생겼을 때, 나는 발걸음도 가볍고 다급하게『멸치라면』식당에 갔다. 그런데, 식당이 문을 닫은 것이었다. ‘내부 수리 중’이라는 안내문이 쓰여 있었지만 식당 안을 들여다보니 음식점이 아니라 아예 다른 가게로 영업을 전환하는 거 같아, 사실상『멸치라면』은 폐점을 한 것이었다. 문이 안 열리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출입문을 잡고 문을 열어보려고 했다. 당연히 열릴 리 없었고 문이 안 열리니 너무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일본인 입맛에는 맞지 않는 맛이었나,『멸치라면』말고도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돈코츠(돼지 뼈 육수)라면』도 메뉴로 있었는데, 아무래도『멸치라면』이 주를 이루다 보니 찾는 손님이 많지 않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등 마음이 복잡했다. 그 뒤로『멸치라면』맛이 그리워질 때면 혹시 비슷한 식당이 있을 거 같아 집 주변을 찾아보았지만, 아쉽게도 내가 살고 있는 ‘하시모토'에는 그런 식당이 없었다.
대신 새로운 방법을 발견해 냈다. 내가 만들어 먹는 것이다. 요새 레시피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가?『멸치국수』나『가락국수』만드는 방법이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상세하게 나와 있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 하면 그 맛이 나겠지만 재료를 다 구하는 것도 번거롭고 해서 '멸치, 무, 다시마, 파' (+한국에서 공수해 온 다시다 조금+국 간장)을 넣어 나만의 비법으로 만들어 먹는다. ‘청량리역’에서 먹었던『가락국수』맛이나, ‘마치다’에서 먹었던『멸치라면』맛처럼 맛있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다만, 다른 음식을 먹으면 별 이상이 없는데 밀가루가 정말 몸에 안 맞게 된 것인지, 국수 한 그릇을 다 먹지 못할 때가 있고 아까워서 억지로 먹으면 소화제를 먹고 그다음 식사를 못하게 될 때가 많아 이것도 역시 정말 먹고 싶을 때, 참고 참았다가 만들어 천천히 먹는다.
국수 한 그릇에도 사람마다 수많은 추억이 다 있을 것이다. 싸고 쉽게 먹을 수 있으며 언제든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어릴 적 ‘청량리역’에서 먹었던『가락국수』는 이제 어디 가서 먹어야 할지 모르게 됐으며 우연히 ‘마치다’에서 만난『멸치라면』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게 되었다. 항상 가까이 있을 거 같고 당연히 있어야 해서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막상 없어지고 나면, 나는 그때서야 그 사소한 것의 고마움과 절실함을 깨닫게 되는 거 같다. 가장 소중한 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고 하는데, 멀리서 무엇을 찾기보다는 가까이에 있는 것을 다시 한번 더 살펴보자는 생각도 들었다. 국수 한 그릇이 내게 알려준 값진 깨달음이었다. ■
사진제공: 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