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그리고 나.

5. 하시모토에서, 너와 함께.

by 권상혁

내가 지진을 처음 경험한 것은 일본에서 살기 전이었다. 2014년 여름이라고 기억하는데 교토에 여행을 왔을 때였다. 비용을 아낀다고 저렴한 여관에서 잠을 잤었다. 교토에는 우리나라 경주처럼 일본 문화재와 옛 가옥들이 많이 남아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교토는 세계문화유산 급 문화재가 많이 있다고 해서 다른 지역보다 폭격의 피해가 덜해 절이나 신사 같은 건물이 온전히 보존된 곳이 많다. 그래서 교토 역에서 내리면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여기저기 절이며 신사가 참 많았던 것이 지금까지 인상 깊게 남아있다. 내가 묵었던 여관은 지은 지 꽤 오래되어 복도를 걸으면 삐거덕거리는 나무 이음새 부딪치는 소리가 났었다. 2층 건물이었는데 전체를 나무로 지었을 거 같은 오래되고 삭은 나무 냄새가 났고, 방에 들어가면 일본 다다미방의 마른 풀냄새가 났었다. 좀 오싹한 느낌이 날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여관이었다. 나는 목욕을 한 뒤에 저녁을 먹고 다음 날 이른 시간에 오사카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교토 주요 관광지를 본다고 하루 종일 걸었고 땀도 많이 흘려 지쳐서 그랬는지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뜬 건 누가 나를 막 흔드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청룡열차가 급강하하기 직전에 덜덜덜 거리며 꼭대기로 올라가는 진동처럼 말이다. 가뜩이나 썰렁한 여관에서 홀로 잠들어 있는데 새벽에 누가 나를 깨운다는 것은 잠결이었어도 등골이 오싹했고, 그런 생각을 다 갈무리하기도 전에 방금 전보다 더 강하게 바닥이 흔들렸다. 그때 얼룩 자국이 군데군데 있는 천장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게 샹들리에가 달려있었는데, 그 샹들리에가 서로 부딪치면서 유리구슬 소리가 요란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잠자리에서 튀어 일어났다.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느낌이었다. 청룡열차가 급강하하며 느끼는 공포와 짜릿함에는 안전하게 멈춘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무서우면서도 즐거웠지만, 그때 내가 교토 낡은 여관에서 느꼈던 강한 흔들림은 그런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너무 불안했고 무척이나 놀랐었다. 혹시 방바닥이 갈라지면서 틈이 벌어지면 그 틈 안으로 떨어져 생매장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러 가지 공포영화의 무서운 장면만 순식간에 뒤섞여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뭔가를 붙잡아야 하는데 붙잡을 것은 없었고 방 밖으로 뛰쳐나가야 하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잠옷 차림인데 옷은 어떻게 하나 생각을 하다가도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옷 따위가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도 했었다. 여행 가방은 버리더라도 여권이랑 지갑을 챙겨야 했으니까 손가방을 잡으려는 순간에 다시 한번 건물 전체가 크게 흔들려서 나는 일어나려다가 도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콘크리트로 단단히 지은 여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꺼번에 다 무너져 내리면 어쩌나 하는 온갖 사위스러운 생각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정말 이대로 여기서 못 나가고 이 여관 건물 더미와 함께 묻혀 눈을 감게 되면 어쩌나, 아직 하지 못한 일들이 많은데, 가보지 못한 곳이 많이 남아 있는데, 만나야 할 사람들도 다 보고 나서 죽더라도 죽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도 그 짧은 순간에 다 했던 거 같다. 그런 생각을 두서없이 막 하다가 느닷없이 진동이 왔던 것처럼, 거짓말처럼 흔들림이 딱 멈췄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가 잠에서 깨어나기 전보다 더 고요한 상태로 돌아간 듯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 진동이 15초 내외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짧은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5초가 15분이나 되는 것처럼 나는 지구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실감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땅이라는 것이 단단하고 굳은 게 아니라 찰흙이나 고무처럼 언제든 휘어지거나 끊어질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중·고등학교 과학 시간에나 배우고 시험 보느라 달달 외웠던 ‘지구 맨틀’ 어쩌고 하는 것도 그때 되새겨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쯤이었다. 여관에서 따로 대피를 하라는 방송도 없었고, 다른 객실 사람들도 아무런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전기가 들어오는지 확인을 위해 불을 켰고 창문을 열어 밖을 살펴봤다. 새벽어둠 속, 그저 조용하고 고요할 뿐이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침에 체크아웃을 하면서 어제 새벽에 지진이 나서 깜짝 놀랐다고 여관 직원에게 말했더니, 진도 4 정도의 지진이긴 했으나 금방 멈췄고 일본에서는 이런 지진은 ‘일상의 다반사’라고 했었다. 비행기에서 난기류를 만났을 때의 공포와 비슷하다고 하면 될까, 여하튼 놀이기구를 타며 느꼈던 흔들림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오싹하고 소름 끼치는 느낌이었다. 물컹하고 미끌미끌 거리는 뭔가를 만졌을 때 같은 느낌이, 딛고 있는 발밑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난다는 불쾌감, 뜨거운 햇빛 아래를 걸으며 그런 불쾌감이 그날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그러고 나서 잊고 있었다. 일본에서 살기 시작하면서도 좀처럼 큰 지진을 만나지 못했었다.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진도 1, 2 정도는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바로 그랬다. 일본에서는 진도 1, 2 정도의 지진은 거의 매일 전국 어느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고, 활화산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화산 폭발도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지진 관련 방송도 하루가 멀다 하고 나왔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내가 피부로 느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경각심이 둔해졌던 때였다. 그러다가 2018년 가을, 북해도에 진도 6강强(진도 6보다는 강하고, 진도 7보다는 약하나, 이때 지진으로 44명이 사망하고 약 70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강진이다.) 이 일어난 전후였다고 기억한다. 내가 살고 있는 하시모토에서도 진도 4 정도의 지진이 일어났었다. 지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공교롭게도 그때 정전이 됐었다. 저녁 식사를 하는데 먹고 있던 국그릇 안에 있던 국이 출렁거리더니 건물 전체가 좌우로 크게 한번 움직였고 자잘한 흔들림이 있다가 멈췄다. 큰 배를 탔을 때, 날씨가 안 좋아 파도가 셀 때 느끼게 되는 좌우 흔들림과 매우 흡사했다. 그래도 꽤 큰 흔들림이었기 때문에 나는 정말 얼음이 된 것처럼 숟가락을 든 채로 이후 대처 방법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정리해나갔다. 정전이 됐기 때문에 휴대폰을 켜고 긴급속보를 온라인 뉴스로 보았다. 휴대폰 플래시 앱을 사용해 불을 밝히고 손전등을 찾았다. ‘긴급대피경로도’는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꺼내놓았기 때문에 아파트 관리실에서 대피 방송이 나오는 즉시 나는 밖으로 나가려고 준비를 했다. 챙겨야 할 것이 많았지만 일단 여권과 일본 신분증, 신용카드와 현금이 든 지갑을 챙기고 잠옷을 벗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양말을 신었다. 그 순간, 전기가 들어왔다. 일단 안심이 되었고 재빨리 텔레비전을 틀었다. 지진이 발생하면 일본 모든 방송사는 정규방송을 일시에 중지하고 긴급속보 방송을 하기 때문에 어느 방송을 봐도 되나, 지진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재난 주관방송사인 NHK가 자세하고 광범위하게 지진의 피해규모를 파악해 전달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에 NHK로 채널을 고정했다. 동시에 휴대폰에서 사이렌 소리(지진보다는 이 소리 때문에 깜짝 놀랄 때가 더 많다.)가 나면서 재난문자가 왔고 지진해일의 우려는 없으니 안심하라는 내용이 전달됐다. 방송에서는 지진이 발생한 진원지와 각 지역 지진의 진도를 상세하게 보도했다. 하시모토는 진도 4였다. 2014년 내가 교토 여행에서 경험했던 진도와 같은 진도인데도 훨씬 약한 진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안에 있어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나름 두 번째 경험이라고 나는 비교적 차분하게 대처를 했다.


일본에서 사는 외국인은 반드시 우리나라의 주민 센터에 해당하는 곳(市役所-시야꾸쇼- 또는 区役所-구야꾸쇼-)에 전입신고를 해야 하는 데, 전입신고를 마치게 되면 직원으로부터 미용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잡지책 2권 정도 되는 두께의 생활안내 자료를 건네받게 된다. 나는 일본에 처음 와서 한 번, 도쿄 ‘에도가와바시(江戸川橋)’에 잠깐 살았을 때와 지금 살고 있는 하시모토까지 총 3번의 전입신고를 했었는데 그때마다 이 두꺼운 책자를 받았다. 보험 가입할 때 받는 보험약관 설명서 같은 자잘한 글씨가 가득 쓰여 있는 책을, 잡지책 두께로 2권 정도 받았다고 생각해 보라? 물론 아무도 안 본다. 일본에서 처음 전입신고를 하고 그 안내책자를 받았을 때는 사방팔방 모르는 것 천지이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자잘한 글씨들을 하나하나 읽었던 적이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재미있게 만들려고 그림도 그려 넣고, 만화도 그려 넣는 등 갖은 노력을 한 정성이 보이는 책이기는 했지만 평상시에는 별로 쓸모가 없어 그 후에는 방 한 구석에 쌓아놓기만 했다. 그런 그 책자가 유용하게 쓰일 때가 지진 같은 비상사태가 일어났을 때고, 그 책자의 절반 이상이 '지진, 태풍, 홍수, 화재'와 같은 재난에 따른 대비 관련 내용이다. 그 책자 안에는 반드시 '긴급대피경로도'라는 것이 있는데, 지진 등 자연재해로 집에서 나와 대피를 해야 할 경우 집결해야 하는 대피 장소와 대피 장소까지 가는 최단 경로를 자세하게 안내해 주는 지도 요악본이 있다. 다른 건 안 보더라도 이건 꼭 본다. 보통 근처 초·중·고의 체육관이나 앞서 말한 주민 센터 강당 같은 곳이 대피 장소가 된다. 하시모토에서 진도 4의 지진과 맞닥뜨렸을 때, 나는 내가 대피해야 할 대피장소의 초등학교 이름을 확인하고 가는 방법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정전이 됐기에 잠시 두려웠으나 금세 불이 들어오기도 했고 뉴스에서 실시간 지진 소식과 대처방법을 안내해주었기 때문에 당황할 필요가 없었다.


눈에 띄는 것은 방송에서 너무 '오버'다 싶게 아나운서가 다음과 같이 안내방송을 반복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지금 바로 자신의 생명부터 지켜주세요. 다른 사람을 돌보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챙기셔야 합니다. 지진해일의 위험은 없으나 그래도 상황을 확인한다고 해안가에 가는 일은 절대 삼가 주세요.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전에는 늦습니다. 모든 걸 제쳐두고 지금 바로 피난해주세요.”

이 안내방송은 긴급방송 내내 반복해서 나온다. 그대로 외워서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 정도로 반복을 하고 청각장애인 분들을 위한 수화와 외국인을 위한 영어자막, 긴급방송을 인터넷 실시간 방송으로 볼 수 있는 큐알 코드도 안내가 된다. 지진이라는 긴급사태에 빈틈없이 대비하고 국민들을 안심시키려는 노력이 외국인인 나의 눈에도 가슴에 와닿았고 무엇보다 아나운서의 안내방송 목소리가 아주 절박하고, 절실하고, 또 애절하게 들려 이 또한 귓가에 오래 남았다. 마치 지금 곧 지진과 지진해일이 나와 당신, 우리 모두를 덮칠 수 있고 한순간에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간절한 목소리였다. 나는 긴급방송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떠올렸고 그러한 끔찍한 참사가 있었던 일본이기 때문에, 아나운서가 저토록 간곡하게 방송할 수 있다는 것을 다소 먹먹한 상태로 바라보았다.


얼마 전 일본 NHK 뉴스에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사랑하는 가족들을 모두 잃은 할아버지가 한 분 나오셔서 인터뷰한 것을 방송했었다. 지진해일로 한꺼번에 살던 터전이 쓸려가 버리고 본인만 생존하고 나머지 가족을 모두 잃은 곳에 다시 돌아와 새로 집을 짓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할아버지가 인터뷰하면서 꾹꾹 참았던 눈물을 터트릴 때 할아버지를 따라 나도 눈물을 쏟아냈다. 할아버지는 질문을 하는 기자에게, 혼자 살기는 넓으나 예전 가족들이 다 모여 살았던 그대로 방을 5개 만든다고 했다. 이미 하늘나라로 간, 아내와 큰아들, 큰며느리, 손녀에게 각각 하나씩 방을 주고 싶다고, 그래서 방을 5개 만든다면서 주름이 가득하고 거친 손으로 눈가를 훔쳐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 소방관이었던 할아버지는 바닷물이 제방을 넘어 마을 안으로 넘쳐흐르는 걸 막기 위해서 또 마을 사람들에게 피난하라는 방송을 하기 위해서 가족들을 뒤로하고 소방서로 달려갔었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집에서는 큰아들이 할아버지의 아내와 며느리, 손녀를 자신의 품에 가득 안고, 그 모습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2층까지 검은 바닷물이 넘쳐 들어왔고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던 큰아들은 2층으로 남은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올라가 출입문 쪽에서 가장 떨어진 구석에 가족들을 품에 끌어안고 마지막까지 가족들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며 목숨을 잃어갔다고 했다. 바닷물이 다 빠지고 나서, 큰아들 품에 안겨 죽어있는 가족들을 발견했을 할아버지의 참담한 심정을 생각하니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지진해일이 휩쓸어간 지역은 재건축을 해서 새롭게 조성을 한다고 해도, 잃어버린 생명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는 만날 수도 없다. 마음의 준비라는 걸 하고 이별을 준비했다면 마음에 상처도 그만큼 적었을 텐데, 이별은 그 어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 살아남은 사람이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이때 지진으로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쳐 약 2만 명의 소중한 목숨이 희생됐다. 그 엄청난 희생자 중에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재일 한국인 같은 외국인도 다수 있었을 것이다. 고향에서 목숨을 잃어도 그 영혼이 갈 곳을 못 찾고 헤매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낯선 타향에서 희생당한 재일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분들을 생각하니 희생당한 일본인 분들에 대한 슬픔에 더해 나는 가슴이 더욱 아플 수밖에 없었다.


재난을 당해 다친 사람들이나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주변인들이 겪은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나는 오늘도 별 탈 없이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감사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하루를 더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너무나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떠난 사람도 괴롭겠지만 남은 사람의 괴로움과 충격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헤어질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고, 그 주어진 시간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이별을 준비해도 죽음으로 헤어지는 건 고통에 고통을 더해 내가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괴로운 일인데, 인사도 없이 한 마디 따뜻한 말도 전하지 못하고 헤어진 고통은, 남은 사람에게 있어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삶이 언제까지고 계속될지 모르는 무한대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살아남은 사람은 그래도 밥때가 되면 밥이 넘어가는 스스로가 저주스러울 것이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되살아나는 스스로가 괴물 같을 것이다. 사랑하는 그 사람이 없는 집에 들어가서 멍하니 앉아있다 보면 울컥울컥 죽고 싶다는 생각에 부들부들 떨 것이고, 모든 것에 화가 나고 모든 것이 싫어지고,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고, 잠을 자도 편하지 않고,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은데 잠들지 못해 하얗게 날을 새기도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소중한 사람이 그렇게 속절없이 떠나버리고 나면 빈껍데기만 남아 허허롭게 세상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 남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무서운 것이 이별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별, 죽음으로 헤어져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별 말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기도 하지만 많은 것을 빼앗아 가기도 한다. 동일본 대지진을 보면 알 수 있고 지금도 일본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진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에 살고 있던 한국인 지인의 말에 의하면, 지진 발생 후 모든 대중교통 운영이 중단되어 평소 40분 정도면 올 수 있는 집을 5시간 이상 걸어서 왔다고 했다. 그나마 중간에 집 가까운 곳까지 오는 버스가 운영을 재개해서 겨우겨우 버스를 타고 왔다고 하니 그때의 혼란이 얼마나 큰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큰 지진이 발생하면 사회 모든 기능이 일시에 마비된다. 전기가 나가고, 가스가 중단되고, 물이 나오지 않는다. 아무런 사전예고 없이 말이다. 마치 불청객처럼 느닷없이 우리를 방문해 당혹스럽게 하고, 때로는 우리 삶을 휘젓고 파괴한다. 자연재해 앞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내가 일본 교토에서 지진을 처음 만났을 때, 여관 직원은 내게 일본에서의 지진은 '일상의 다반사'라고 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지만 나는 우리 삶도 일상의 다반사인 지진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는 매일 같이 흔들리는데, 흔들림을 느낄 때도 있지만 일상에 치여 흔들림에 둔감해질 때도 있다. 누군가에게 매일 같이 상처 받으면서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참고만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누가 흔드는 것도 아니고 땅이 흔들리는 것도 아닌데 휘청거릴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밤 풍경을 바라본다. 평화롭게만 보이는 밤의 네온사인 사이로 수많은 집들이 있고, 그 집 안에는 수많은 사연을 갖고 있는 소중하고 귀한 생명을 가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지구의 움직이는 맨틀 위에서 오늘도 자신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휘청거리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그 생각 뒤편에 소중한 것을 한순간에 앗아가 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가슴 깊은 곳에 감추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눈앞에 보이는 밤 풍경이 그저 아름답다고만은 생각할 수 없었다. 마음의 준비, 언제 어디서 내가 불행한 일을 당할 수 있고 내가 아니더라도 내 가족, 나와 가까운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할 수 있으며 지금도 세계 여러 곳에서 아까운 목숨들이 아무 이유 없이 또는 부당하게 목숨을 잃어 가고 있다. 자연재해 하나만으로도 한 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데, 거기에 더해 지진해일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사악한 욕심과 탐욕에 의해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들 목숨이 길거리에 들꽃처럼 짓밟힌다.

분명한 것은, 사람의 생명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지킬 수 있을 때 지켜내야 하는 것이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잃고 나서 후회해본들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


사진제공: H.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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