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들.

7. 하시모토에서, 너와 함께.

by 권상혁

코로나가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한 2020년 봄, 일본 코미디계의 한 획을 그었던 (故) 시무라 켄(志村けん) 씨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사망했다. 2003년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배우 (故) 장국영 씨처럼, 2008년 가을에 우리 곁을 떠난 한국의 톱스타 (故) 최진실 씨처럼. 너무나 느닷없고 갑작스러운 비보에 할 말을 잃었고 믿을 수도 없고 믿기도 싫은 일이 2020년 코로나로 일어났다. 나는 2003년과 2008년에 받은 충격처럼 시무라 켄 씨의 사망 소식에 한동안 먹먹했었다. 2003년 봄은 내가 군대에서 제대하고 대학교에 복학해 적응이 안 되어 한참 힘든 때였고, 2008년 가을에는 사회인이 되어 직장에 발령받은 첫 해여서 매일 헉헉대며 살았던 시기였다. 장국영 씨와 최진실 씨가 대단히 유명하기도 했거니와 내가 힘들었던 시기와도 맞아떨어져 나는 이들의 죽음을 잊지 못한다.

특히 시무라 켄 씨는 1년에 한 번 특별방송으로 2시간 정도 되는『시무라 켄 콩트』를(-이 외에도 다양한 무대 · 광고 · 영화 · TV 드라마 · 각종 예능 프로그램 등에 다수 출연하기에 자주 볼 수 있는 코미디언이었다.-) 방송국에서 연례행사처럼 내보내 주기 때문에 일본에서 남녀노소 전 연령대에 사랑을 받는 코미디언이다. 또한 시무라 켄 씨가 하는 익살스러운 행동이나 말을 한 번쯤은 다 따라 해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본 코미디 역사에 길이 남을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코미디언 (故) 이주일 씨나, 심형래 씨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희극인이라고 할 수 있다. 2020년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힘든 한 해였고 그런 와중에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나 같은 일본에 사는 외국인들의 웃음까지 책임진 시무라 켄 씨의 사망이, 코로나로 슬픈 날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내가 시무라 켄 씨의 죽음에 마음이 아팠던 것은, 장국영 씨와 최진실 씨가 떠났을 때처럼 매우 친숙하게 느껴지는 유명인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에 더해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나는 일본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한국 생활과 여러모로 다른 일상생활에서 오는 문화적 차이에 다소 지쳐있었고 외국생활에서 올 수밖에 없는 약간의 우울증이 생겼다. 특히, 일본어로 의사소통을 할 때 내가 일본어를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일본인처럼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어처럼 100% 내가 전하고자 하는 뜻을 상대방에서 확실하게 전달했다고 스스로 확신할 수 없는 불안감도 있어서 한동안은 일본어로 말을 하는 것이 두렵기까지 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재빨리 일본어로 나와 줘야 하는데, 설단 현상처럼 입 안에서만 맴돌고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일본인의 표정에 엷게 번져가는 비웃음이 나를 당황스럽고 아프게 할 때가 많았다. 설혹 나를 비웃지 않았다고 해도 내가 대화를 자꾸 끊기게 해서 상황을 어색하게 만들거나, 해야 할 말을 제대로 다 전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일종의 피해의식이 생겼던 시기였다.


일본인 지인들과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을 같이 보게 될 기회가 있을 때, 주변 일본인 지인들을 모두 웃고 있는데 나 혼자만 웃지 못하고 있을 때의 난처함을 겪고 나서는 내가 정말 일본어를 못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고, 그때마다 어떤 벽 같은 것을 느꼈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일본어를 못 하는 것이고 내 전공이 일본어가 아니었으니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에 살면서 코미디를 못 알아들어 같이 웃지 못한다는 것은 내게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취미로 일본어로 조금씩 공부해왔다. 일본어를 공부한 계기는, 어느 날 뉴스를 보는데 일본 정부 관계자가 나와서 인터뷰하는 내용을 우리나라 일어 동시통역사가 바로바로 한국어로 통역을 하는 것을 보고부터였다. 어린 마음에 그 모습이 상당히 멋있어 보였다. 일본어를 어느 정도 하고 나서 알게 됐지만 동시통역은 정말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일본어 실력은 물론이고 고도로 숙련된 상황 판단능력과 대처능력에 더해 정치 · 경제 · 문화 · 사회 · 역사 · 의학 · 과학 · 군사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정보 능력 또한 필수이다. 그때는 그런 것을 전혀 몰랐고 그저 외국인이 하는 말을 바로바로 우리나라 말로 통역해 내는 모습에 매료되었을 뿐, 그것이 마침 일본어였기 때문에 내가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것이었다.

새끼 오리는 알에서 깨어나서 처음 본 것을 무조건 제 어미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나도 영어 이외의 '외국어'라는 것에 눈을 뜨고 알에서 깨어나던 시기에 만난 것이 일본어였기 때문에 무조건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 같다. 그 당시 내가 일본어 동시통역사의 통역을 본 게 아니라, 중국어나 프랑스어 또는 독일어 동시통역을 보았다면 아마 관련 언어를 취미로 공부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 인연이 오늘까지 이어져 일본에 살게 됐으니 한용운 시인의 시구처럼,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외국어를 공부하는 데 있어 가장 최고의 수준은 해당 국가의 코미디를 완벽하게 알아듣느냐에 따라 판가름이 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코미디는 단순한 일상의 대화가 아닌, 대화에서 발생하는 언어유희를 극대화하기 때문에 속담이라든지 관용어 · 발음에서 연상되어 웃음의 소재 등 해당 언어의 사회적 · 문화적 배경을 모르면 알아들을 수 없는 그야말로 '복합 언어의 잔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어로 진행되는 코미디를 알아듣고 웃을 수 있다는 건, 위에서 언급한 모든 것을 어느 정도 통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들 웃는데 나만 웃지 못하는 상황이 싫어서 나는 코미디를 멀리했다. 코미디를 보고 있으면 만화에 나온 ‘스머프’라도 된 듯이 내가 점점 작아지고 작아져서 더 이상 작아질 수 없는 크기로 줄어든 거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모르면 배워야 하는데 노력도 안 했으면서 못난 자존심에 코미디만 나오면 텔레비전을 돌렸다. 그런 날들 속에 다행히 내 일본인 지인 중에는 일본어 교육 전문가가 있었다. 그 지인이 내게 싫은 걸 자꾸 피하면 더 싫어지게 되고 스트레스가 되니 아예 안 할 거면 모르겠지만 일본에 사는 이상 일본어는 반드시 해야 하니, 쉬운 것부터 접근해 보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렇게 접하기 시작한 것이『시무라 켄의 콩트』를 보는 것이었다.

그때 시무라 켄 씨를 화면으로 처음 만났다. 물론 그 전에도 봤겠지만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코미디언이라는 것 정도만 알았지 이름조차 몰랐다. 처음에는 텔레비전으로 보다 시무라 켄 씨의 표정과 행동, 그리 어렵지 않은 콩트 내용 등을 보면서 재미를 느꼈고 정말 제대로 알아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유튜브로 시무라 켄 씨가 출연한 유명 콩트를 저장해놓고 매일 반복해서 듣고 받아쓰면서 일본어 공부를 했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30분 정도 꾸준히 하려고 노력했지만 바쁜 날은 하루 거르더라도 되도록 매일 하려고 애를 썼다. 단순히 일본어 인터넷 수업이었다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 금방 관뒀을 것이다. 그러나『시무라 켄의 콩트』는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으며, 그런 실수를 유머로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가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연민과 측은한 마음을 느끼는 것을 통해 너를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는 데까지 내용이 나아가면서 나는 한순간에『시무라 켄의 콩트』에 빠져들었으며 큰 감명을 받기도 했다. 때로는 뒤로 넘어질 정도로 웃겨서 배꼽을 잡다가도, 어떻게 보면 심각한 삶의 뒷모습들을 유머라는 생의 선물 같은 장치로 유연하게 표현하며 넘기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주 보면 정이 든다는 말처럼 나는 시무라 켄 씨가 무척 좋아졌다.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쓰고 분장만 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데, 그 모든 인물이 결국은 매우 따뜻하고 착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우리 주변에서 항상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 웃음의 소재를 찾고 그 소재를 최대한 모든 연령의 사람들이 함께 웃을 수 있도록 고안해낸 노력이 보이기도 했다. 나태주 시인의 시 ‘자주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것처럼 나는 그때 시무라 켄 씨를 자주 보고, 오래 보아, 우리 집 옆에 사는 이웃 할아버지 같다는 생각에 정이 담뿍 들었다.


시무라 켄 씨가 방송 인터뷰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사회자가 시무라 켄 씨에게 코미디를 계속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오느냐는 질문을 했었다. 어느 초등학생인가 중학생이 시무라 켄 씨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 내용 때문에 힘을 낼 수가 있다고 했다. 아버지 없이 엄마 밑에서 자라는 한부모 가정의 학생이었다. 엄마가 혼자서 가정을 이끌어 가고 자신을 키우느라 너무 고생을 하고 돈이 없어 늘 쪼들리는 삶에 웃을 일이 없는데, 시무라 켄 씨가 하는 콩트 한 시간은 엄마와 꼭 함께 시청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 한 시간만큼은 힘든 일 모두 말끔히 잊어버리고 완전히 콩트에 빠져들어 엄마와 함께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고, 그렇게 웃을 수 있게 해 줘서 감사하다는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이렇게 힘든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는 일이라면, 그분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이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또 있겠냐는 생각에 시무라 켄 씨는 코미디를 포기하지 않고 더욱더 분발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일본 생활에서 점점 웃음을 잃어갈 때 여유를 갖고 유머로 일상을 시작해보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사람이 시무라 켄 씨였다. 일본 사람들의 겉과 속이 다른 태도, 속을 알 수 없는 말하기 방식, 이게 거절인지 아닌지 모르는 애매한 표현, 나는 정말 하루하루 적응이 안 되는 일본 생활에서 길을 잃고 방황했었다. 그럴 때마다 시무라 켄 씨를 텔레비전이나 유튜브를 통해 만났고, 콩트를 보는 시간만큼은 머릿속의 복잡한 일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못 알아 듣는 일본어가 나오면 빠르게 메모를 한 뒤에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 사전을 찾아 공부해두고, 다음에 같은 단어가 나올 때 이해가 안 되어 내용 파악을 못 하는 일이 없도록 단어를 암기했다. 잘 안 되는 것은 메모지에 써두고 틈나는 대로 봤다. 요새는 스마트 폰 일본어 사전 앱을 이용해서 저장해 두고 짬이 날 때마다 조금씩 보고 외울 수 있는 만큼만 외운다. 시간이 지나면서『시무라 켄의 콩트』에 나오는 말장난을 알아듣는 빈도수가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다. 시무라 켄 씨가 하는 농담도 예전보다 훨씬 잘 파악하게 되면서 나는『시무라 켄의 콩트』를 누구보다 기다리는 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았다.


시무라 켄 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은 아침 뉴스 겸 생활정보 프로그램에서 보게 됐다. 오전 10시경이었을 거라고 기억이 된다. ‘시무라 켄 씨,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폐렴으로 사망’이라는 자막이 떴다. 방송을 진행해야 하는데 방송 게스트 중에 시무라 켄 씨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며 콩트를 한 여성 희극인이 있었고, 생방송 중에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그 오열을 시작으로 시무라 켄 씨가 사망했다는 것을 나도 실감하게 되어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마치 내 가족이, 내 친구가, 내 지인이 코로나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처럼 가슴이 미어졌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에게 내가 이토록 피붙이 같은 정을 느낄 수 있다니, 시무라 켄 씨는 나 같은 외국인을 알 수도 없고 알 리도 없는데, 나 혼자서 시무라 켄 씨를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좋아했다. 그건 시무라 켄 씨를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무라 켄 씨에게 빠져보려고 했다. 그러니까, 팬이 되려고 했었다. 공연을 하면 따라다녀도 보고, 시무라 켄 씨의 일정을 내 일정처럼 체크해 보기도 하고, 팬 카페도 가입을 하고,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그런 걸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시무라 켄 씨가 만들어낸 콩트는 유튜브 채널에 넘치도록 있었기 때문에 일본어 공부를 할 때 하나씩 보면서 할 계획을 세우고, 시무라 켄 씨 같은 사람이 있으니까 답답한 일본 생활에도 어떤 활력 같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며 지내는 시기였다.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고 황당하게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나뿐만이 아니라 일본 전 국민이 충격에 빠졌고, 도쿄 도지사를 비롯해서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스가 현 총리, 전 총리였던 아베 씨까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슬픔을 표하고, 마지막까지 코로나의 위험을 국민들에게 알리며 대(大) 희극인의 역할을 하고 하늘나라에 간 것을 깊이 애도드린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시무라 켄 씨의 사망이 충격인 것은, 웃음의 종합 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웃게 해 줬고 행복하게 해 줬기 때문이었다. 어떤 자리에서건 시무라 켄 씨의 이야기 하나면 어색한 분위기에서도 금방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영원히 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빨리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먹먹한 마음이 한동안 이어졌다. 지금도 상상도 안 되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소중한 목숨을 잃고 있다. 코로나 백신이 나왔는데도 부작용을 비롯해 접종 시기 등 많은 문제가 있어 언제쯤 이 길고 긴 고통의 시간이 끝나게 될지, 어서 빨리 종식되어 감염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더 이상 이런 슬픔이 없게 말이다.


그리고, 올해 우리나라에서 내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희극인 (故) 박지선 씨도 세상을 떠났다. 나는 박지선 씨의 당당함이 좋았다. 못생긴 것이 아니라 개성 있게 생긴 것이라고, 자신처럼 생긴 사람은 세상에 자신뿐이라며 그래서 스스로가 무척이나 소중하다고 말하는 그녀가 나는 좋았다. 자신의 개그를『개그콘서트』에서 마음껏 펼치는 모습, 등장하는 것 자체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고, 하는 콩트마다 웃음의 소재를 독특하게 발견해내어 특별한 웃음을 선사하는 실력 있고 재능 있는 소중한 희극인이었다. 그런 박지선 씨가 피부병으로 분장을 못해 괴로워했다는 것은 뉴스를 통해서야 처음 알게 됐다. 무대 위에서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코미디의 천재였던 박지선 씨가 무대 뒤에서 얼마나 괴로웠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코미디언은 항상 웃고 있으니 행복하고 즐겁기만 할 거라고 쉽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무대 뒤에서 하나의 콩트를 만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밤새도록 연습하고 무대에 섰을 때 얼마나 떨고 긴장하며 웃음의 코드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을지, 그 모든 것을 이번 계기로 오래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오래전에 멀리서 박지선 씨를 직접 본 적이 있었다. 무대에서는 늘 웃고 재미있는 사람이라 항상 재미있는 표정일 거라 생각했는데, 일상에서는 ‘희극인 박지선’이 아니라 ‘사람 박지선’, ‘학생 박지선’ 등이었을 테니 웃고만 있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을 그때는 몰랐다. 많이 바빠 보였고 표정이 밝지 않았으며 주변에서 사인을 요청해도 급한 일이 있는 듯 정중하게 거절을 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무대와 무대 밖의 희극인은 다르구나, 일상과 무대를 구분하고 싶겠구나, 같은 생각도 처음으로 해보았다. 어쩌면 대중 속에서 그저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자유를 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가나 무엇을 하나 누군가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영광인 것과 동시에 상당한 스트레스이자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거 같다는 깨달음도 있었다.


시무라 켄 씨도 무대 밖에서는 과묵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도 감독과 눈을 잘 마주치지 않고, 자신 앞에 놓인 물 잔만 바라보면서 대답도 작게 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콩트를 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는 여러 지인들의 증언들을 들으면서, 시무라 켄 씨가 가졌을 고민의 깊이를 가늠할 수야 없지만 콩트 앞에서 매 순간 긴장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무라 켄 씨의 친형님과 형수님의 증언에 의하면 하루 종일 콩트 생각만 하는 사람이었고, 잠을 자면서도 콩트 생각에 잠을 잘 못 잘 때도 많았다고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코미디언, 집중과 몰입의 경지에 오른 코미디언들이 진심으로 전달하려는 웃음은, 보고 있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힘든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마음껏 파안대소할 수 있었다고, 그래서 힘든 오늘을 너머 내일을 사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개그 프로인『개그콘서트』가 폐지됐다. 희극인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요새는 리얼 예능이 대세라 리얼 예능이 선사하는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생활 속 유머가 무척 재미있기도 하지만, 나는 리얼 예능보다 희극인들이 더욱 빛날 수 있는 정통 희극 무대에서 그들의 재능과 능력을 보고 싶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무대에서, 관객들 또는 시청자들과 호흡하며 연기를 할 때 희극인들 스스로의 자존감도 높아지며 그로 인해 바라보는 우리들도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내 기억에 내가 대학생 때만 해도 MBC에서『웃으면 복이 와요』같은 정통 희극 무대가 큰 인기를 끌었었다. 그래서 희극인들이 자신들이 제일 잘하는 코미디에 대한 재능과 능력을 희극 무대에서 마음껏 펼치며 우리들을 더욱 즐겁고 재미있게 해 주었다고 기억한다. 그런 프로그램이 더욱 늘어나기를 소망해본다.


유명인들의 사망에는 반드시〈베르테르 효과〉라는 것이 따르게 마련이다. 시무라 켄 씨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아니나 원치 않은 상황에서 목숨을 잃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이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지 않을까 걱정스럽고 두렵다. 보통 여성 자살자보다는 남성 자살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게 일반적인데, 코로나 시대에 들어와서는 여성 자살자의 수가 급증하고 있고 특히 청소년들의 자살이 코로나 전보다 더 많이 늘었다는 소식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고 눈물부터 맺힌다. 우리를 행복하고 즐겁게 해주는 사람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지만, 본인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고서야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므로, 이 땅의 모든 희극인들이 행복한 상황에서 진정 어린 유머와 웃음으로 코로나의 난국에 처해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달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희극인들이 설 수 있는 정통 희극 무대인『개그콘서트』같은 프로그램이 재탄생되어 우리들 곁으로 다시 돌아와 주었으면 한다. 시무라 켄 씨가 오랫동안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시청자와 관객들이 만날 수 있는 '무대'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희극인들에게 있을 자리와 설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은 생계와도 연결되는 것이지만, 그보다는 희극인 스스로의 존재가치와 자존감 ·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남들을 행복하고 재미있게 해주는 것이 보람이고 삶의 목적인 사람들에게 무대를 뺏는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희극인들이 그 어떤 때보다 빛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는 것, 마음으로나마 응원해 주는 것이 내가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끝으로, 이 글에 언급된 불행한 일로 고인(故人)이 되신 모든 분들께 깊은 애도(哀悼)를 표하며 삼가 고인(故人)의 명복(冥福)을 빌고 모쪼록 하늘 위 세상에서 편안히 잠드시길 간절히 바란다. ■


사진제공: H.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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