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하시모토에서, 너와 함께.
내가 일본에서 처음 걸린 병은 눈병이었다. 4월이었는데 화사한 날씨와는 정반대로 나는 4월 절반가량을 찌푸리고 있었다. 한국에 살면서는 단 한 번도 눈병에 걸린 적이 없었다. 위생에 취약했던 어린 시절이나 학창 시절에도 나는 눈병은커녕 다래끼 한번 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일본에 와서 눈병에 걸렸다. 처음에는 왼쪽 눈이 매우 따가웠고 아팠기 때문에 안구건조증이 심해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갖고 있던 눈물 약을 넣으면 가라앉겠지 했다. 2010년경에 라식수술을 받은 후로 약간의 안구건조증이 생겼고 안약을 넣으면 아무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눈이 따끔거리고 쓰라려서 걱정이 됐고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하루 푹 자고 나면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
다음날 일어났을 때, 욕실 거울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왼쪽 눈이 완전히 충혈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부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에 이물감이 있었고 평소보다 무거운 느낌이 든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나 새빨갛게 변해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럴 만도 한 게 눈병을 이제까지 걸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놀란 가슴에 주변 안과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내가 일본에 처음 왔을 때〈후치노베(淵野辺)〉라는 곳에서 잠깐 살게 됐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외곽과 경기도 외곽의 경계에 딱 걸쳐있는 곳, 서울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경기도도 아닌 애매한 곳, 도시도 시골도 아닌 모호한 곳이라고 해야 맞을 거 같다. 아파트와 단독주택, 그리고 대형 식료품점 외에는 주변에 큰 상권이 형성되어 있지 않는 곳이었다. 주택가였기 때문에 술집도 없었고 음식점도 띄엄띄엄 몇 개 있다가 사라지고 다시 생기고 하는, 내가 기억하는〈후치노베〉는 뭐라고 딱히 말할 수 없는 황량함이 있던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벚꽃이 필 때는 눈이 부셨고 벚꽃이 질 때는 흩날리는 눈꽃 속을 걸을 수 있는 호사로움이 더욱 도드라지는 곳이었다.
눈병이 걸렸으니 안과에 가야 해서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는데 주변에 안과가 없는 거였다. 아무리 시골 같은 곳이지만 안과가 없다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파트와 단독주택, 초·중·고가 다 갖추어져 있었고 무엇보다 일본에서 꽤 유명한 ‘아모야마학원대학(青山学院大学)’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기도 한〈후치노베〉에 안과가 없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물론 종합병원이 있어 그 안에 안과가 있었으나 종합병원은 1차 진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바로 진료가 안 됐고, 진료를 본다고 해도 1차 진료기관의 진료의뢰서가 없으면 진료비가 가산됐기 때문에 우선은 개인병원에 가야 했다. ) 그러면 지금까지 드나들면서 내가 본 병원들은 다 무엇이었던가, 나는 생각했다. 내가 살았던 아파트를 중심으로 전철역까지 걸어서 15분 정도 걸렸다. 처음에는 길을 몰라서 큰길로만 다녔지만, 차츰 익숙해지면서 지름길로 다녔고 지름길을 지날 때마다 분명 병원을 지나쳤다. 5분 정도 걸어가면 병원이 하나씩 나왔기 때문에 최소한 내가 집에서 나와〈후치노베〉전철역까지 가면서 3군데의 병원을 봤다는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병원은 모두 ‘치과’였다.
나는 일본에 살면서 지금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 것이 바로 이「치과」이다. 일본에는 치과가 너무나 많다. 일본 여기저기를 다녀보면서 느낀 것은 어디 가나 치과가 넘치도록 있다는 것이다. 방금 지나면서 치과를 봤는데, 한 블록 지나가니 다시 치과가 나오는 식이다. 이게 궁금해서 일본 지인에게 물어봤는데 스스로도 크게 의식하지 못했다고 했고, 기회가 있어 다소 연배가 있으신 어르신에게 왜 이렇게 일본에 치과가 많으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국가 정책상 치과를 많이 설치 운영해야 된다고만 했다. 그러면 안과는? 피부과는? 내과는? 이비인후과는? 나는 그런 의문을 갖고 있었지만, 그걸 반드시 알아내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아, 그런가 보다, 치과를 많이 설치해야 하나 보다.’라고만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일본에 치과가 많은 만큼 일본인의 구강 청결이 매우 뛰어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치과가 이렇게나 많은 것에 비해 치아관리가 잘 안 되어 있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런데도 치과는 우후죽순 들어섰고 내가〈후치노베〉에서 도쿄〈에도가와바시(江戸川橋)〉로 이사를 가야 했을 때도 빈 상가 건물 1층에 새로운 치과가 들어서고 있었다. 이미 근처에 치과가 5개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반면에 내과 · 피부과 · 안과 · 이비인후과 · 외과 등은 한 곳이 있거나 없거나였다. 그중에 안과가 없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웠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으니 근방 안과를 검색했고, 전철 한 정거장 정도의 거리에 다행히 안과가 한 곳 있었다. 눈병은 전염성이 강하니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다고 판단이 되어 나는 한쪽 눈을 거의 뜰 수도 없는 상황에서 자전거를 타고 한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를 달려 안과에 도착했다. 한 정거장이라고 해서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역과 역 사이가 우리나라 서울 지하철 기준 두 배 이상 떨어져 있는 거리 정도라고 생각이 된다. 자전거 타고 가면서 의료선진국인 일본에서 아무리 시골 같은 곳인〈후치노베〉지만 엄연히 전철역이 있고 역 주변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 곳에 안과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계속 혼자 구시렁거렸다.
안과에 도착해서는 더 가관이었다. 우선 자전거 세울 장소가 없을 만큼 주륜장이 꽉 차 있었고 사람들이 병원 밖에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9시가 넘은 시간이었으니까 진료를 시작했을 것이고 사람들이 안에서 기다려야 했는데 왜 밖에 나와 있나 했다. 문을 열고 병원에 들어가니 그 넓은 대기실에 앉을자리가 없었다. 앉을자리가 없으니 사람들이 서 있는 거였고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보다 못한 간호사가 보조 의자를 내주기는 했지만 계속 보조의자를 내 줄 수도 없으니 사람들이 밖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아니 여기는 의료선진국 일본이 아닌가, 근처에 안과가 없어서 죄다〈야베(矢部) 역〉에 있는 안과에 왔다는 건데, 그러면 나라에서 치과를 그렇게나 많이 설치하는 것처럼 안과 같은 병원도 설치를 해서 지역 주민들 불편을 덜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접수처 직원도 내가《건강보험증》을 내자, 최소 2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고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괜찮겠느냐 마나 안과가 여기밖에 없는데 이 빨간 눈을 해서 어디를 가겠냐고 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을 할 정신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아가들은 칭얼대고, 사람들이 많으니 한 마디씩만 해도 얼마나 많은 말소리가 뭉쳐서 들렸겠는가? 이건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한 일본의 병원은 이런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우리나라 시골 보건소보다 못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요새 우리나라 보건소가 얼마나 좋아졌는가? 한국에 있을 때 한의원을 찾다가 집 근처 보건소에서도 한의사가 있다는 말에 한번 가본 적이 있었다. 기본적인 침 치료와 찜질 치료 정도만 제공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세련된 시설에 예약제여서인지 사람들도 붐비지 않았다. 무엇보다 개인 병원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현대적인 이미지였다. 그런데, 내가 온〈야베 역〉의 안과는 아니었다. 깔끔한 클리닉의 분위기와는 아주 동떨어져 있는, 내가 초등학생 때나 중학생 때 다녔던 낡은 병원의 딱딱한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졌다.
그리고《건강보험증》도 그렇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병원에 갈 때《건강보험증》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지 않은가. '주민등록번호'만 이야기하면 내가 건강보험 가입자인지 아닌지가 바로 나오고 내가 복용하고 있는 약이 무엇인지까지 나오는데, 그런 전산시스템이 일본에서는 없는 거였다. 그것은 일본의《주민등록증》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일본에 와서 놀랐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일본 국민들이 반드시《주민등록증》(일본에서는 '마이 넘버 카드'라고 한다.)를 갖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무엇으로 신분을 증명하느냐고 물었더니《운전면허증》으로 신분을 증명한다고 했고《운전면허증》이 없는 사람은 무엇으로 신분을 증명하느냐고 했더니《건강보험증》이라고 했다.《건강보험증》이 없는 사람은 애초에 병원에 오지도 않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 신분이 어떻게 되는 거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식이었다. '아니,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 싶었다. 신분증이 없다니, 그러면 나의 '신원 및 정체',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통해 알 수가 있냐는 말이다.
일본인 지인의 말에 의하면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것은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맞고, 개인 신분증이 필요한 사람은 만들어 쓰도록 되어 있고 필요 없는 사람은 안 만들고 신용카드 같은 거 사용하지 않고 현금 쓰면서 살면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런 것이 문화적 충격이구나, 싶었다.「컬처 쇼크」그러니까, 나는 그때 ‘쇼크’를 받았다. 오히려 일본인 지인은, 한국은《주민등록증》이 있어 편하고 좋은 거 같아도 결국 그것은 국가가 국민을 언제든지 통제할 수 있다는 거 아니겠냐고 반문을 했다.《주민등록증》이 있다고 해서 국가가 국민의 '사생활'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국민은 국가에 세금을 내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는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 · 안전을 보호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주민등록증》을 만들고 국가에 신고하는 것은 내가 한국 사람이며, 한국의 보호를 받고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증표이다. 또한, 범죄 예방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주민등록증》이 있어도 그걸 위조해서 범죄가 발생하는 판국인데《주민등록증》이 없다면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고 신분세탁을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이고 그것이 더 무서운 일이 아닌가 싶었다. 또한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더 어둡고 은밀한 곳에서 주민등록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 하나 어떻게 하는 거 손쉬운 일 아니겠는가. 내가 그렇게 따지니까 일본인 지인의 말이《호적등본》이 있으니 괜찮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주민등록증》은 필수가 아니나《호적등본》은 반드시 있으니, 그것으로 신분을 증명하면 되고《호적등본》조차 없는 사람은 그야말로 무호적자이니 그런 사람들까지 어떻게 다 신경을 쓰며 사느냐는 것이었다.
일본에는 무호적자가 있다. 그러니까, 어떤 사정에 의해 자녀를 낳고도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호적에 올라가지 못한 아이가 있다. 그런 아이가 자라서 학교에 갈 나이가 되고도 국가로부터 입학 통지가 오지 않으니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고, 의무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됐는데도 이를 방임한 부모가 실제로 일본에 있었다. 이것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고 영화나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져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온 적도 있었다.
나는《재류카드》라는 일본 신분증이 있다. 일본에 사는 외국인은《재류카드》를 반드시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경찰이 불심검문을 했을 때《재류카드》를 제시하지 못하면 벌금은 물론이고 운이 나쁘면 구류될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 외국인 불법체류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니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불심검문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도 이해는 하지만, 이를 불쾌하게 여기는 외국인들도 상당히 많다. 일본 자국민들은《주민등록증》같은 신분증이 없는 사람도 많아서 수상쩍은 사람을 불심검문한다고 해도 신분을 확인할 방법이 없는데, 외국인들은《재류카드》가 있어 그럴 염려는 없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일본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참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일이다.
지금도『헤이트 스피치(차별·혐오 발언)』라고 해서, 일본 우익들이 한국인 및 북한 국적의 조선인들에 대한 모욕적인 차별성 발언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나도 예전에 일 때문에〈요코하마(横浜)〉에 갔을 때 우익 차량을 본 적이 있다. 신호등을 건너려고 대기하고 있는 데 검은색 선팅을 한 봉고차 같은 차에 대형 스피커를 앞뒤로 달고 주변은 아랑곳없이 엄청 큰 방송을 해대는 차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우익 차량은 언제나 일상생활 속에서 보게 되는 슬픈 진풍경이 됐다. 그 스피커에서 나온 말은 더 가관으로 주변을 순식간에 살풍경으로 만들기도 한다.
"조선인(일본 우익들은 '한국사람'과 '북한 사람'을 모두 합쳐서 '조선인(일본어 발음으로 '조센징')'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이 '조선인'이라는 말의 의미에는 단순히 '조선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식민통치 기간에 있었던 인종 차별적 언어라는 것을 그들도 알고 우리도 알고 있는 주지의 사실이다.)은 지금 당장 일본국 영토에서 나가라! 독도는 일본 땅인데 조선인들이 불법 점유하고 있으니 당장 내놓아라! 조선인은 지금 즉시 일본을 떠나라!"
이런 종류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떠들면서 거리를 활보하며 방송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 그런 경우를 당했기도 해서, 나는 그때 신호등에서 그 말을 고스란히 들으며 오물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치욕스러워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했었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그런 우익의 발언 자체를 귀담아듣지 않고 넘겨버리지만, 한국인인 나는 그냥 넘겨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나 같은 사람은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인과 다를 바 없이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교포들은 평생을 저런 소리를 들으며 일본에서 살고 있는 것이었다. 재일교포들 모두《재류카드》를 갖고 있다. 일본 영주권을 갖고 있는 재일교포들의《재류카드》에 ‘영주’라는 기록이 되어 있고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한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서 일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재일교포들도 일본 땅에서는 외국인이며 선거권조차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영주권을 갖고 있는 외국인은 대통령 선거 외에 선거권을 갖고 있다.) 과거에는 이것이 차별의 요소가 되기도 했다. 한국인을 차별하는 일본인들이 재일교포들에게 '너희들은 재류카드가 없으면 마음대로 밖으로 돌아다닐 수도 없을 테니, 목에 걸고 다니는 건 어때? 개들도 목줄이 있잖아.’라는 식으로 극히 모욕적인 발언을 일삼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나도 이야기만 들은 거라서 지금에야 이런 무식한 일이 일어나지 않겠지만, 일본 우익 단체의『헤이트 스피치』를 보면 일본 땅에 살고 있는 재일교포와 나 같은 외국인들이 상황에 따라 언제든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며 3시간을 기다려서 안과 의사를 만났다. 대기실에 넘치게 있던 만화책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애들은 지쳐서 늘어져 자고 있고, 어르신들은 지친 표정이 역력하고, 젊은 사람들은 다들 뭔가 화가 나 있는 표정이었다. 나 역시 화가 났지만 어쩌랴 기다리고 참아야지 했다. 내 이름이 호명되어 진료실에 들어갔을 때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벌떡 일어나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유행성 결막염'이 좀 심한 상태라는 진단이 나왔고 눈에 넣는 약만 4종류가 나왔다. 주사 같은 걸 놔주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일본에서는 웬만하면 주사는 일체 놔주지 않는다. 항생제 같은 먹는 약도 잘 처방을 안 해주는 나라인데, 안약만 4개를 줬으니 내 눈 상태가 상당히 심했던 거다. 일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듣고 3시간을 기다릴 것을 생각하니 아주 질린 기분이 되었다. 접수처에서 예약제가 아니냐고 물었는데 환자가 워낙 많아서 오는 순서대로 접수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이해가 안 됐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을 이해하려고 해 봤자 내 머리만 아프니까 알았다고 하고 병원비를 내고 약국에서 다시 약을 타려고 기다렸다. 그 많은 사람들이 진료받고 약국에 다시 다 모여서 약을 타려고 기다리니 30분 이상 기다렸던 거 같다. 약국도 딱 한 군데밖에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약사는 약 복용법과 부작용 등을 세세하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현재 복용하는 약을 파악해 중복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기도 해서, 이건 아주 훌륭한 제도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진료를 3시간 기다려서 받고 약을 타려고 30분 넘게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이 약이 이렇고 저 약이 저렇다고 꼼꼼하게 이야기하는 게 내 눈에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너무 진이 빠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약봉지와 영수증에 일일이 다 도장을 찍는 거 아닌가. 안과에서도 컴퓨터로 뭔가를 처리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수기로 작성하는 것이 많아서 놀랐기도 했었다. 하지만, 정말 약사들의 친절함과 꼼꼼함은 최고 수준이 아닐까 싶다. 약을 받고 드디어 자전거에 올라타니 병원 오전 진료가 끝나서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그 병원 대기실에 아직 3분의 1 정도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의사에게도, 간호사들에게도, 접수처 직원들에게도 그리고 환자들에게도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다. 치과만 만들지 말고 안과 같은 병원을 늘려야 주민 생명에 지장이 없을 거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눈이 아파서 간 병원에 화병이 얹어져 나왔으니 정신적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거라고 생각하면 말이다.
일본의 전산시스템은 우리나라에 미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전자결제 시스템이 도입되어 결재서류를 들고 다니며 도장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도장 문화'이다. 이 '도장 문화'가 남아있기 때문에 행정절차가 더디고 느리다. 내가 한국의《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하게 되어『요코하마 대한민국 영사관』을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글쎄《가족관계증명서》가 그것도 영어로 된《가족관계증명서》가 공인인증서만 있으면 일본 '내 집' · '내 방'에서 인터넷 출력이 되는 걸 보고 나는 정말 박수를 치며 감탄을 한 적이 있었다. 'IT 선진국은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다.'라고 나는 혼자서 정말 감동을 했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의《주민등록등본》에 해당하는《주민표》를 발급받으려면 직접 주민 센터에 가든지 아니면《마이 넘버 카드(일본 주민등록증)》를 갖고 있는 사람은 편의점에 가서 행정기관 기기에 접속을 한 뒤에 250엔(한화 약 2,600원)을 내고서야 발급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집에서 무료로《주민등록등본》을 출력하는 것 같은 일은, 일본인들에게는 아직 낯선 이야기이다. 그것을 우리나라는 지금 아무렇지 않게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이런 면에서는 우리나라야말로 대단한 선진국이 아닌가 한다.
돌아오는 길에 전철역 근처에서 일본 ‘우익 검은 차’와 마주쳤다. 신호등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는 ‘우익 검은 차’와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기다리고 있는 내가 어쩔 수 없이 가까운 공간에 있어야 했다. 다른 때 같으면 얼른 피했을 텐데 꼼짝없이 ‘우익 검은 차’를 보고 있어야 했다. 새까만 봉고차에 스피커를 달고 지역을 정해 정해진 시간에 순회하는 거 같았다. 스피커에서는 또 엄청나게 무섭고 끔찍한 소리들을 내뱉고 있었는데, 나는 잘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그 ‘우익 검은 차’를 노려보았다. 아마도 ‘우익 검은 차’에 있는 사람들이 노려보는 나를 보지도 못했을 거고, 눈이 퉁퉁 부어 있는 내 모습을 봤다고 해도 저게 노려보는 것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정말 궁금해졌다. 눈병은 내가 나서 이 고생을 하는데, 당신들은 멀쩡한 눈을 갖고 뭘 하고 있는 건지 말이다. 차는 창문까지 검은색으로 페인트칠 같은 걸해서 아주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한 새까만 공간 안에서 제대로 밖이 보이기나 하냐고, 답답하지 않으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사람 면전에 대고 해서는 안 되는 소리를 쩌렁쩌렁 해대면서, 겁날 게 뭐가 있는데 새까만 차 안에 자신들을 꼭꼭 숨기고는 되지도 않는 소리들을 스피커에 울려대는지 말이다. 진짜 심각한 눈병에 걸린 것은 ‘우익 검은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눈에 병이 생겨 당신들이 하는 말에 상처 받아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게 된 건지, 신호등을 기다리는 1분여 동안 흘러나온 소리를 당신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겠지만 그 1분 동안 흘러나온 소리에 하루 종일, 일주일, 어쩌면 1년이나 그보다 더 오래 아파할 사람들이 정말로 보이지 않는 것이냐고 따지고 싶어 자전거 손잡이를 꼭 틀어쥔 채로 나는 겁도 없이 ‘우익 검은 차’를 노려보고 또 노려보았다.
정말 눈병에 걸린 건 누구인지 곱씹어 보며, 새까만 봉고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멀쩡한 눈으로 무엇을 보고 있는지 진심으로 묻고 싶어 졌다. 벚꽃은 흩날려서 이토록 아름다운데 눈이 부신 벚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새까만 봉고차가 땅에 떨어진 벚꽃 잎들을 짓밟고 스피커를 울려대면서 또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
사진제공: H.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