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 무료 업그레이드.

13. 하시모토에서, 너와 함께.

by 권상혁

코로나 전의 이야기이다. 일 때문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입국하기 위해 하네다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예상했던 전철을 놓치는 바람에 생각했던 것보다 늦게 공항 체크인 카운터에 도착했다. 체크인 마감까지 20분 정도 남은 시간이었다. 내가 수속이 안 된 표와 여권을 내밀자 항공사 직원이 뭔가를 입력하더니 문제가 생겼는지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그러더니, 내 표에 무슨 숫자를 크게 쓰고는 내게 출국장으로 신속히 들어가라고 했다. 나는 비행기를 놓칠까 노심초사했는데, 다행히 문제없이 탈 수 있다는 것에 밝게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출국장을 통과해 출국심사를 받고 면세구역에 들어섰다.

저녁을 먹지 못 하고 와서 배가 고팠다. 비행기를 타면 기내식이 제공되기는 하나 양도 적을 것이고, 무엇보다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됐는지 갑자기 허기가 졌다.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두 개 사고, 음료수도 하나 사서 비행기가 출발하는 게이트 앞에 빈자리를 찾아 앉고 막 삼각 김밥 한 입을 먹으려고 하던 찰나였다. 방송에서 탑승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탑승 안내를 하나보다 했는데 탑승 안내는 안 하고 누구를 찾는 거 같았다. 일본어와 영어로 방송했는데 일본 사람 이름은 아니었다. 그런가 보다 하고 나는 삼각 김밥 한 입을 베어 먹고 음료수를 마셨다. 음식물이 들어가니 마음까지 안정을 찾는 기분이었다. 1~2분 뒤에 다시 방송이 흘러나왔다.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곤 산 혀꾸 님, 서둘러 130번 게이트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방송을 들으면서, 세상에 참 별난 이름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인 직원이 신경을 써서 하나하나 끊어 읽는 이름은 ‘곤 산 혀꾸’였다. 나는 속으로 한국사람 같은데 빨리 좀 게이트로 가지, 뭐 하나 싶다가 어느 순간 ‘아차!’ 했다. ‘곤 산 혀꾸’, 즉 ‘권상혁’을 일본어 식으로 읽으면 그렇게 발음이 되겠구나 싶어서, 삼각 김밥을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자리가 만석인데 체크인을 늦게 해서 자리가 없으니 다음 비행기를 타든 지 밖으로 나가라는 무서운 말을 들을 거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를 계속 찾고 있는 일본항공 여성 직원에게 떨리는 마음으로 다가갔다.

“제가 권상혁입니다. 방송을 이제 들었어요. 죄송합니다.”

“곤 산 혀꾸 사마(권상혁 님)?”

“네, 맞습니다. 접니다.”

나는 진땀이 났다. 친절한 여직원이 상냥한 말씨로 '비행기 못 타게 됐으니까 밖으로 나가세요.'라고 할까 봐 오금이 다 저렸다. (일본에 살며 웃으면서 사람 기가 막히게 하는 말들을 태연스럽게 하는 일을 당하고 나면 사람 웃는 것도 무서울 때가 있다.)

“곤 사마(권 님), 대단히 죄송합니다. 원래 예약하신 일반석 54K는 이미 다른 손님에게 배정이 되어서, 불편하시겠지만 저희가 좌석을 교체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물론입니다. 탈 수 있다는 거죠? 아, 어디에 앉든 상관이 없습니다.”

나는 정말 다행이라고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고 순식간에 긴장된 얼굴이 풀어졌다. 예정대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했다. 이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여러 가지로 일정이 꼬이면서 계획했던 일들이 다 틀어지게 되었으니, 나는 당연한 일인데도 이토록 감사하게 될 줄을 몰랐다.

“저희가 새로 마련한 좌석은 비즈니스석 2F입니다. 지금 바로 입장하시면 됩니다.”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여직원이 내 옆에 노란 줄로 된 접근금지 선을 해제하고 몸을 뒤로 빼면서 내가 들어갈 공간을 마련해줬다. 지금은 항공사 상용고객, 임산부 및 몸이 불편하신 분, 그리고 비즈니스석 손님이 입장하는 시간이었다. '비즈니스석이라니?' 나는 아무 데나 앉아서 가기만 해도 감사한 상황에서 비즈니스석에 배정되었다는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얼떨떨한 상황에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여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비행기를 타러 갔다. 그러니까, 내가 체크인을 늦게 하는 바람에 내 자리가 누군가에게 먼저 배정이 됐고, 그날 일반석이 만석이어서 나는 '혼자인 손님'이었기 때문에 비즈니스석으로 좌석 무료 업그레이드가 된 것이었다.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통상 비즈니스석은 일반석보다 2배가량 비싸다. 나중에 한국에 와서 내가 타고 온 일본항공의 하네다-김포 비즈니스석 편도 항공권을 검색해 봤는데, 내가 원래 갖고 있었던 일반석 왕복항공권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간혹, 이런 식으로 좌석을 업그레이드받아 비행기를 탔다는 사람들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났다. '우와, 정말 멋진 일이겠구나, 큰 행운이겠구나.' 싶은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이었다. 비록 한일선의 짧은 구간이었지만 일반석과 비즈니스석은 좌석의 편안함과 제공되는 기내식, 음료 및 주류 서비스 등 상당한 차이가 있다.

내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을 타지 않고 일본항공을 이용한 것은 국적기가 매우 비싸게 판매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한국 사람인데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을 못 타고, 일본 사람인데 일본항공이나 아나(ANA)항공 타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일본인 친구에게 '이번에 일본항공 타고 한국 다녀왔어.' 하면, '돈 많은 가 보다? 일본항공도 타보고.'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로 일본인 친구가 '대한항공을 타고 한국에 다녀왔어.' 하면, '진짜 부럽다, 어떻게 대한항공을 타냐?'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만큼 가격 차이가 많이 난다. 당시에 일본항공이 가장 저렴했기에 선택했지만 비행기 기종이 오래되거나 기내 서비스가 좋지 못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비행기도 국제선 최신 기종이었고 기내 서비스는 우리나라 대형 항공사 서비스만큼 좋았다.

드디어, 비행기에 올라서고 승무원에게 표를 보여드리니 나를 좌석까지 안내해주었다. 그때가 여름이었고, 짐은 체크인 카운터에서 부쳤기 때문에 작은 손가방 하나 갖고 있었는데 승무원이 '손가방을 보관해드릴까요?'라고 말을 걸었다. 일반석이라면 생각 못할 서비스였다. 나는 아니라고, 작은 것이니 내가 갖고 있겠다고 했다. 승무원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감사하다고 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지나치게 친절해서 어안이 벙벙했다. 비즈니스석을 처음 타보기도 했고, 여름이기도 해서 나는 반팔 셔츠와 여름용 긴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주변을 살펴보니 거의 다 양복을 입고 있었다. 승무원이 다른 손님 양복 외투를 받아 따로 보관을 해주는 걸 보고서야 외투나 짐 보관 서비스가 있구나 생각했다. 자리는 창가 자리였다. 내 옆에 앉은 사람은 이미 구두를 벗고 기내 실내화를 갈아 신은 뒤 신문을 보고 있었다. 나는 착석한 자리가 엄청 넓어서 눈을 휘둥글리며 사방팔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딱 봐도 ‘아, 쟤, 비즈니스석 처음 타 본 얘야.’라는 티가 팍팍 났을 것이다.

일반석에 타면 타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좁은 복도에서 짐을 올리는 사람, 올렸던 짐을 다시 내려서 뭘 꺼내는 사람, 복도 쪽에 앉았다가 나중에 입장한 사람이 창가 쪽에 앉아야 해서 복도로 일어나 나왔다가 다시 앉는 사람이 들고나며 복잡하다. 또한 승무원들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손님들 도와드리느라 비행기 문을 닫기 전까지는 매우 어수선한 상황이 연출된다. 그런데 비즈니스석은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우선 사전 입장이기 때문에 여유 있게 입장해서 전담 승무원의 에스코트를 받고 외투나 짐 보관 서비스를 받는다. 특별 주문 사항 등이 있는지 승무원이 미리 확인까지 하기 때문에 원활하게 착석하고, 승무원이 가지고 오는 신문이나 잡지를 골라서 읽는 여유까지 부릴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도 읽으시는 신문이나 잡지가 있으면 말을 하라고 했지만, 맨날 보는 신문을 비행기 안에서 읽기도 싫었고 눈에도 들어올 리 없어 괜찮다고 했다.

좌석 앞주머니에 기내 실내화가 있었는데 저렴한 일회용 실내화가 아니라 폭신폭신한 느낌이 나는 고급스러운 실내화였다. 또한 일반석에서 볼 수 있는 이어폰이 아니라 제대로 된 헤드폰이 제공되었다. 치약 · 칫솔 · 머리빗 · 미니 구둣주걱이 작은 비닐봉지에 들어 있었다. 안대와 귀마개는 요청하면 제공하겠다고 안내판에 쓰여 있었다. 정말 별천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출발 전까지 어수선한 상황인 비행기만 타다가 출발 전에 이토록 고요하고 안정적인 분위기가 연출되는 좌석에 앉아 김포공항까지 갈 수 있다니 이게 정말 웬 떡, 아니 웬 횡재냐 했다. 체크인을 늦게 했기 때문에 비행기를 못 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초조감에서 한순간에 안락과 평화로움을 맞보게 되었으니, 이른바 지옥과 천당을 오고 간다는 말을 비슷하게라도 체험한 것이 아닌가 싶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안정 고도에 접어들자마자 승무원들이 재빨리 일반석과 비즈니스석 사이를 구분하는 커튼을 쳤다. 천 하나로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가 완전히 갈라진 것이었다. 운항 시간이 짧기 때문에 바로 기내식 및 음료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일반석처럼 승무원이 카트를 밀고 와서 기내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었다. 비즈니스석 담당 승무원이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탑승해주셔서 감사하며 곧 기내식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류나 음료는 무엇으로 준비를 해드릴까요, 라는 말을 했다.

내 옆에 앉은 사람은 비행기가 안정 고도에 오르자마자 승무원에게, 자기는 잘 거니까 도착 때까지 깨우지 말아 달라고 하고 안대와 귀마개를 한 뒤에 좌석을 뒤로 젖혀 잠을 잤다. 아니, 좌석 한 개에 가격이 얼마인데 주는 걸 먹지도 않고 잠만 자겠다고? 사업관계로 매일 같이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무원에게 나는 화이트 와인하고 사과 주스를 같이 주문해도 되냐고 물었고, 승무원은 물론 가능하며 더 마시고 싶은 주류가 있으면 말씀을 하시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 소주나 맥주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친절하게 말했다. 그 걸 다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너무 촌스러운 사람이 되는 거 같아, 이쯤만 하자고 스스로 달랬다. 나는 정말 놀이동산에 놀이기구를 타는 것보다 더 신나 있었다.

기내식은 일반석에서 제공되는 쟁반보다 훨씬 큰 쟁반을 승무원이 직접 일일이 손으로 나르고 각각의 손님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아주었다. 테이블보가 씌워진 것은 물론이다. 컵은 플라스틱이 아닌 유리였고 제공되는 그릇은 모두 사기그릇이었다. 진짜, 돈이 좋구나 싶었다. 나는 좌석 무료 업그레이드였기 때문에 좌석만 비즈니스석이고 식사는 일반석으로 제공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식사도 비즈니스석 식사가 그대로 제공됐다. 승무원이 가져온 쟁반 위에는 색색깔의 초밥 10개와 일본식 따뜻한 된장국이 제공되었다. 기내 안에서 초밥을 맛볼 수 있다니, 이거 정말 호강하는구나 싶었다. 지상에서 먹는 초밥만큼 신선하지는 않았지만 애를 써서 만들어 제공한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도 남을 만큼 맛있었다. 일본식 된장국도 따끈따끈하니 마시면 마음까지 차분해졌고, 아까다시(赤出汁)라고 해서 일반 된장 국보다 그 맛이 깊고 진했다. 나는 된장국이 정말 맛있어서, 승무원에게 혹시 된장국을 좀 더 먹을 수 있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새로 가져다 드리겠다고 하면서 새 그릇에 된장국을 담아서 제공해주었다.

일본 소주를 좀 마시고 싶다고 하니까, 기내에 있는 일본 소주가 두 종류가 있는데 무엇을 마시겠냐고 했다. 내가 잘 모르겠다고 추천을 해달라고 하니, 승무원이 일본 소주 두 개를 직접 가지고 와 내 앞에 보여주면서 맛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했다. 고급 호텔에서나 받는 서비스와 다를 바 없는 서비스였다. 맛이 강하지 않은 소주를 선택해서 마시고 초밥도 다 먹고 하니 이번에는 디저트로 멜론이 담긴 과일 몇 종류가 제공됐다. 멜론은 우리나라에서도 고급 과일이지만, 일본에서는 특히 중요한 자리나 손님에게 제공되는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과일이다. 과일을 다 먹으니 이번에는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제공했다. 먹다가 볼 일 다 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맛있는 음식과 주류, 음료들이 제공되었다. 그러다 보니 벌써 김포공항에 도착할 시간이었고 착륙 준비를 할 시간이었다. 그전에 커피나 녹차 같은 따뜻한 차를 서비스했는데 마지막으로 입가심을 하라는 의미 같았다. '정말 좋구나, 돈만 있으면 맨날 타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착륙을 한다고 하니 내 옆에서 계속 코를 골면서 자던 사람을 승무원이 와서 깨웠고, 그 사람이 일어나더니 딱 물 한잔만 주문해서 마셨다. 나는 그것도 대단히 신기했다. 50대 초중반의 회사 중역 정도 되어 보이는 아저씨였는데 엄청 피곤해 보였다. 비행기는 이제 그만 좀 타고 싶다는, 제발 좀 나를 한 곳에 가만둬 달라는 그런 표정이 만면에 가득했다.

나는 내가 앉아 있는 라인을 담당했던 승무원에게 ‘감사 카드’를 주문했다. 승무원이 다소 놀란 표정으로 ‘감사 카드요?’라고 되물었다. 나는 감사 카드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료로 좌석이 업그레이드된 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기내식과 음료 · 각종 기내 용품 모두 비즈니스석 서비스로 제공됐고 그날 승무원들의 서비스도 훌륭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다시 한번 승무원에게 ‘승무원분들께 감사카드를 쓰고 싶어요. 가져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볼펜은 있습니다.’라고 말을 했다. 승무원이 환하게 웃으면서 대단히 감사하다며 겔리(기내 주방)에 들어가더니 사무장과 함께 와서 감사 카드를 내게 건네며 인사를 했다. '아, 이럴 필요까지는 없으신데.'라고 내가 말을 했다. 좀처럼 감사카드를 쓰지 않는 비즈니스석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처럼 대놓고 감사카드를 가져다 달라고 하는 사람이 드물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객실 사무장까지 와서 인사를 하는 건 내 입장에서 매우 신기하고 또 무슨 대단한 일 하는 것도 아닌데 굉장히 쑥스러웠다. 나는 그저 승무원 분들이 비행 내내 서서 고생하고, 온갖 손님들 상대하면서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프로 정신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제공된 감사카드에 일본어로 감사 인사를 적었다. 와인 한 잔과 일본 소주를 마셨기 때문에 알딸딸해져서 일본어 한자가 생각이 잘 안 났다. 할 수 없이 한자 말고 히라가나(우리나라 ‘한글’ 같은 발음 글자) 로만 쓴 단어도 있지만 기내 손님 접대와 기내 청결 · 기내식 제공 수준 · 기내 음료 제공 수준 · 기내 실내화를 비롯한 기내 용품에 대한 수준 · 안락한 의자와 좌석 스크린 화면에 각종 영화와 뉴스 · 오락 프로그램의 다양함, 무엇보다 열일 하는 승무원 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꼭꼭 눌러 담아 감사 카드 작성을 마쳤다. 술기운에 썼기 때문에 약간 들떠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내용을 과장되게 쓴 것도 있지 않았나 싶다. 비즈니스석이니 당연한 것 아닌가, 할 수도 있겠지만 당연한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지 했다. 미세먼지가 세상을 뒤덮으면서 깨끗한 공기의 감사함을 깨달았듯이, 지금의 항공사 친절함이 언제까지 똑같은 수준으로 제공되리라는 보장이 없고, 내가 그날 일본항공 승무원에게 받은 서비스는 내 생애 첫 비즈니스석 서비스였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코로나 사태로 대형 항공사인데도 불구하고 기내식 서비스 자체가 줄어들고 있고, 주류는 아예 제공하지 않는 항공사도 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그때 감사카드를 요청해서 쓴 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때가 아니었으면 비즈니스석을 언제 탈지 몰랐고, 언제 다시 그날과 같은 서비스를 받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감사카드를 다 쓰고 승무원에게 제출하자 승무원이 두 손으로 내가 내민 감사카드를 받고 허리를 다소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나도 앉은자리에서 내가 숙일 수 있는 만큼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정말 잊지 못할 비행이었다고, 내 생애 이런 행운이 있을지 몰랐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속으로 되뇌면서 말이다. 그렇게 2시간 30분간의 비행이 끝이 났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나는 갑자기 좌석이 업그레이드됐기 때문에 짐을 찾는 곳에서 다른 비즈니스석 승객처럼 짐이 빨리 나오지는 않았다. 내 옆에서 잠만 자다가 딱 물 한 잔만 마셨던 아저씨는 짐이 첫 번째로 나와서 바로 입국장으로 나갔다. 짐 찾는 곳에서 일반석 손님들도 절반 정도 빠져나갔을 때 내 짐이 나왔다. 정말 구름을 타고 둥둥 떠다니다가, 갑자기 딱딱한 땅을 밟고 현실로 돌아왔다는 실감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했다.

그리고, 스스로 말했다. '정신 차리자. 행운은 여기까지.' 좋은 일이 생기면 항상 경계하라고 하던 옛 성현의 말씀도 떠올랐고, 오늘 큰 행운을 얻었으니 이 행운을 기회가 있을 때 다른 방식으로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 큰 행운들이 있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집 앞에서 동네 꼬마들하고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꼬마들 엄마들도 죄다 나와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것을 눈으로 좇으면서 수다를 떠느라 바빴다. 그러다가 누가 멀리 찬 공을 내가 잡으러 가겠다고 뛰어가다가 가면 안 되는 도로까지 넘어갔고, 엄마들이 일제히 경악을 하면서 내 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때 멈췄어야 했는데, 불행히도 공은 도로로 굴러가버렸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공을 따라 도로에 뛰어들었다. 그때 급정거하는 자동차 앞 범퍼에 부딪혀서 도로 위를 굴렀다. 여러 번 굴렀는데 구르면서 멀리 엄마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주저앉았고, 아줌마들이 울고불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팠을 것이다. 나는 아픈 기억이 없었지만, 데굴데굴 구르고 나서 나는 그대로 쓰러져있던 것이 아니고 내 발로 일어섰다. 아무렇지 않았다. 아픈 데도 없었고, 무릎이 좀 까졌었나, 그런 기억도 거의 없다. 어떤 아줌마가 자동차 안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에게 나오라고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나는 순식간에 엄마를 비롯해서 아줌마들에게 둘러싸였다. 나를 품에 끌어 안았다가 놓았다가 하며 이리저리 돌려보며 괜찮으냐고, 괜찮으냐고 30번은 넘게 들은 거 같다. 괜찮다고 했더니, 아줌마들이 천지신명이 도왔다고 기도를 하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허공에 대고 절을 하고 했다.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그 이후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마, 겁에 질린 운전자와 동네 아줌마들과 엄마 품에 안긴 내가 병원에 갔을 거고 이런저런 검사를 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다. 아주 세게 부딪치진 않았다. 차가 내 앞에서 급정거를 했고, 나는 살짝 부딪혀서 튕겨 나갔고 뼈 하나 부러지지 않았으니 정말 이보다 큰 행운은 없는 것이었다. 운이 나빴다면 그때 크게 다치거나 죽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늘이 도와주셔서 살아났으니 정말 감사하고 큰 복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나는 엄마와 함께 지낸 9살 때까지 공놀이를 절대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수영이나 등산 · 배드민턴 · 요가 같은 운동을 매우 좋아하는데도 축구나 농구 · 배구 같은 것은 아예 못 한다. 엄마가 ‘공’에 ㄱ 자만 들어도 경기를 했었고, 그게 나에게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지금도 공을 보면 엄마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라서 공 관련된 운동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약간 겁이 난다. 이제는 많이 무뎌졌지만 말이다. 그러니, 어려서 교통사고를 겪고도 살아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행운아인 것이다.

아무것도 바란 것이 없는데, 뜻밖의 행운을 만날 때가 있다. 정말 어쩌다 한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이기 때문에 늘 가슴속에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다. 매일 같이 행운이 일어난다면 행운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살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날도 많고 괴롭고 끔찍한 날도 많지만 내가 비행기 좌석 업그레이드를 받은 것처럼, 하늘이 도와 어린 시절 큰 교통사고에서 내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생각지도 못한 선물 같은 행운과 맞닥뜨릴 때가 있다.

그런 행운이, 앞으로도 가끔 나와 우리 인생 어딘가에 숨어있다 불현듯 나타나 주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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