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를 모르는 사람들의 못된 말들.

10. 하시모토에서, 너와 함께.

by 권상혁

내가 ‘일본 국제봉사활동 단체’(마치다-町田-에 지역구를 두고 활동하는 단체이다.) 행사에 점심 식사 초대를 받게 되어 간단한 인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일본 생활에서 겪은 재미있는 일들이 있다면 인사 겸해서 10분 정도 소개를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40여 명 정도 모이는 자리였다. 단상에 나가 사람들 앞에서 일본어로 10분 정도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말이 쉽지 막상 닥치면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경험을 수없이 했기 때문에 겁이 덜컥 났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는데, 나한테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어도 일본인들에게는 실례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피해야 했기 때문에 내용을 고르는 것도 어려웠다. 일본어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대충이라도 시나리오를 짜 놓아야 했다. 당황해서 내용을 놓치기라도 하면 낭패였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지만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의 식습관 차이에서 오는 경험을 소개하는 것이 무리가 없다고 생각해 소개 내용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10분 내외의 이야기로 압축해서 종이에 대충 얼개를 짜 놓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나는 일찍 일어나서 샤워를 하면서 일본어로 해야 할 말들을 계속 중얼중얼거렸다. 일본어를 잘못 말해서 좌중에 찬물을 끼얹은 거 같은 오싹한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웃자고 한 일본어였는데, 일본인들은 아무도 못 알아듣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뭔 소리 하고 있니?'라는 망신만은 피하고 싶었다. 아침밥을 먹으면서도, 옷을 입고 머리를 빗으면서도 오늘 해야 할 말을 반복 연습했다. 약속 장소까지 가는 전철 안에서는 머릿속으로 '일본 국제봉사활동 단체'의 성격을 파악했다. 참가자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남성이며 이미 은퇴를 하고 봉사활동에만 전념을 하는 70대 이상인 분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도 상기했다. 그러니 더욱 예의를 차려서 일본어 높임법 사용에 잘못이 없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행사는 호텔 홀을 하나 빌려서 진행하고 있었다. 홀 입구에 60대 초반이 되는 인상 좋은 아주머니 한 분이 방명록에 이름을 쓰라고 부탁했고 가슴에 달 이름표를 나눠주었다. 이 아주머니는 ‘일본 국제봉사활동 단체’ 사무실에서 사무를 담당하는 분이었고, 식사 자리를 주선해주고 내게 일본 생활에 대한 소감을 부탁한 바로 그분이기도 했다. 이 아주머니를 제외하고 40여 명이 되는 봉사활동 회원들은 공교롭게도 전부 남자였다. 이전에는 여성 회원들도 몇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남자들로만 구성이 됐다는 말을 얼핏 들었다. 전부 까만색 정장을 입고 온 사람들 속에서 나만 회색 재킷을 걸치고 있어 나는 다소 몸이 움츠러들었다. 국제 봉사활동 단체가 아니라, 일본 어느 지역구 의원들이 모인 자리 같은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는 분위기여서 나는 더욱 얼굴이 굳었다.

행사장 안은 큰 원형 테이블이 7개 정도 배치되어 있었고 테이블마다 6명 정도가 둥그렇게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로는 양식을 먹을 때나 볼 수 있는 각종 나이프와 포크, 크고 작은 숟가락이 놓여있었다. 내가 막 도착했을 때는 사회자가 행사 시작을 위해 마이크를 테스트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안내받은 자리에 조용히 앉아 같은 테이블 사람들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간단한 식사 자리라고 하더니 정식 만찬 같은 분위기여서 나는 더욱 긴장이 됐다. 이윽고 사회자가 개회 인사를 하면서 행사가 시작되었다. 이번 행사는 '일본 국제 봉사활동 단체'에서 교육혜택이 열악한 동남아 지역에 직접 방문해 50개 정도의 책가방(일본에서는 '란도셀'이라고 한다. 주로 검은색과 빨간색으로 앞뒤로 볼록한 가방이다. 이 가방은 물에 빠졌을 때 튜브 역할을 하며, 교통사고가 났을 때 완충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본의 모든 초등학생은 이 가방을 멘다. 가방 가격이 최소 5만 엔, 한화 약 52만 원 정도로 매우 비싼 편이다.) 전달식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것을 축하하고 상반기 봉사활동 내용을 정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평소 이 단체가 안팎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뜻깊은 자리였고, 이런 자리에 내가 초대되어 일본 생활에 대한 소감까지 말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 감사한 마음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난 것은 바로 그다음 순서부터였다. 원형 테이블 앞으로 단상이 있었고 좌우에는 각각 일장기와 단체 깃발이 놓여 있었다. 여기는 일본이고, 이 단체가 국제단체이기는 하나 일본에 적을 두고 있는 단체이기 때문에 일장기가 있는 것은 뭐라고 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사회자가 '기미가요'(일본 국가)를 부를 것이니 행사장에 있는 사람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 내 귀를 의심했다. 손님으로 초대된 나는 한국인이었고, 한국인인 내게까지 일본 국가를 부를 테니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너무나 당황해서 나는 앞으로 튀어나올 거 같은 눈으로 사회자를 바라보았다. 사회자에게서는 아무런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형식적인 행사 진행 순서일 뿐이었다. 국가를 부르는 것이 이 행사의 특징인가 본데, 손님인 나를 위해서 일본 국가를 부르지 말자는 생각까지 미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일본 국가를 부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건 매우 큰 실례이며 모욕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행사장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으나 앞서 말한 대로 사회자가 악의가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행사 진행상 형식적인 요식 행위다,라고 생각하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본 국제봉사활동 단체'는 민간단체일 뿐인데, 왜 행사장에서 일본 국가를 부르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더구나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어떤 노래인가? 우리나라에 있어서 과거 식민지배의 치욕적인 역사를 되살리는 군국주의의 상징인 노래가 아닌가? 그런 노래를 한국인인 나에게 같이 부르자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내가 가만히 앉아 있자 사회자가 나를 지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달라고 다시 한번 말을 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내가 잘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한 사회자가 재차 자리에서 일어나 달라고 말을 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본 국가가 행사장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흘러나오는 반주에 맞춰 모두 ‘기미가요’를 부르고 있는데 나는 눈을 감고 입을 꾹 다물었다. 주먹을 꽉 쥐고 있었는데, 부들부들 몸이 떨렸다. 이대로 나가버릴까,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인가, 여기는 일본이니 행사 진행상 일본 국가를 부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 일본 국가를 부르는 1분 남짓의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그 순간, 내가 준비하고 연습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싹 다 지워져 버렸다. 처음 생각했던 한국과 일본의 식문화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서 나는 마음을 바꾸었다. 어쩌면 일본 사람들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나는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일본 국가 제창이 끝나고 모두 자리에 앉았다. 나는 물을 한잔 마시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를 평온한 분위기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한국인에게 '기미가요'를 같이 부르자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는 모습에 기가 막혔지만, 일단은 초대받은 손님으로서 예의를 차리는 것이 같은 부류의 사람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내가 해야 할 말을 10분 동안 하자고 했다. 단체의 회장과 간사장의 중요 보고가 모두 끝나고, 사회자가 식사를 하기 전에 오늘 초대 손님에게 일본 생활에 대한 소감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하며 나를 소개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좌중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단상 위로 올라갔다. 집에서 준비해 온 원고는 재킷 안쪽 주머니에 있었지만 나는 그 종이를 꺼내지 않았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일반적인 인사를 마치고 마음을 바꿔 하기로 한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웃던 사람들 표정이 점점 굳어지더니 마침내 아무도 웃지 않게 되었고, 말을 마친 나는 목례를 하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결국 나는, 그렇게 우려했던 좌중에 찬물을 끼얹어버리는 일을 하고야 말았다. 내가 단상 위에서 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저는 한국에서 온 권상혁이라고 합니다. 제가 일본에 와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했지만, 주어진 10분 안에 그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수 없으니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한 가지만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그건 바로 한국과 일본의 완전히 다른 목욕탕 문화입니다. 저는 몸이 찬 편이라 목욕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런데, 목욕탕에 갈 때마다 저는 너무나 놀라운 광경과 마주하게 되어 어쩔 줄 몰라할 때가 많습니다. 그건 바로, 남탕 목욕탕 청소를 하러 수시로 남탕을 들락거리는 '여성 청소원' 때문입니다. 대체로 50대 이상의 여성분들이지만 온천 같은 관광지에서는 20대 정도의 젊은 여성들까지, 아무것도 걸친 것이 없는 남탕에 무시로 들어와 청소를 하고, 청소하는 여성분 앞을 아무렇지 않게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다니는 남성분들을 보면서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탕의 세신사가 여성인 것도 저는 믿기 힘들었습니다. 저도 세신을 받기 위해 일본 목욕탕에서 부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여성 세신사 분이 나와서 그 자리에서 바로 거절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것도 걸친 것이 없는 남성들만 있는 남탕에 여성 청소원이 들어와서 청소를 하고, 여성 세신사가 세신을 하는 것이 여러분들은 아무렇지 않으십니까? 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는 일본이고, 그건 일본 문화이니까요. 그렇다면 반대로, 여탕에 남성 청소원이 들어가서 청소를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남탕에 여성 청소원이 들어와서 청소를 하는 게 당연하다면, 여탕에 남성 청소원이 들어가서 청소를 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왜 그건 안 되는 것입니까? 남자들의 벌거벗은 몸은, 여자들이 봐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입니까? 남자인 저도 부끄러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 벌거벗은 모습을 같은 남자가 본다고 해도 쑥스러울 때가 있는데 제가 원치도 않는 상황에서, 제 알몸을 여성이 보는 것이 저는 너무 싫습니다. 여러분들은 일본인이니 그것이 아무렇지 않겠지만, 한국 사람인 저는 다른 건 다 이해해도 이것만큼은 이해가 안 됩니다.

이 목욕탕 문제에 대해서 저는 일본인 친구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제 일본인 친구 역시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목욕탕에 엄마 나이 또래의 아주머니들이 청소를 했었고, 그것이 관습처럼 되어왔기 때문에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다고 합니다. 남탕에서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들어와서 본인 알몸을 보는데도 괜찮으냐고 물었더니, 그거야 말로 행운 아니냐고도 했습니다. 저는 그때 알아차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화와 생활습관의 차이라고요. 하지만, 제가 일본에 살면서 아직까지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바로 남탕에 여성 청소원과 여성 세신사가 있는 것이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입니다. 그것이 제가 일본에서 겪은 가장 충격적이고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시간이 벌써 10분이 다 되어 더 드리고 싶은 말씀이 많으나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인사를 하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사실 나는 덧붙여서, 어떻게 한국인이 있는 자리에서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를 부를 수 있느냐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어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형식적인 박수 소리가 흐리게 들렸다.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웃는 것도 아니고 화가 난 것도 아닌, 무척 당황스러우나 무엇이 충격적이라고 하는 건지 전혀 알지 못한 표정이었고, 일본 고유의 문화를 한국인인 내가 좋다 싫다 그러는 거 자체가 불쾌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나를 노엽게 응시하고 있는 시선들이 많다는 것은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압력이 높은 공간에 들어간 것처럼 사방이 나를 내리누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자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물을 마셨다.

일본어는 많이 틀렸을 것이다. 내려와서 생각해보니 단어 사용이 서툴렀고 발음이 틀린 것도 있었으며 시제 표현에서 실수가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기차는 이미 떠났고 두서없는 말이었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최대한 또박또박 전달했다고 믿었다. 사회자의 얼굴을 봤는데, 굉장히 무안을 당한 것 같은 표정으로 허둥대다가 이윽고 마이크를 잡고 나를 향해 직접 이야기를 했는데, 그 말이 더 가관이었다.

“곤 상(권 씨), 일본에서 50대 이상의 여자는 여자가 아닙니다. 아시겠어요? 하하하!”

사회자는 60도 넘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50대 이상의 여자는 여자가 아니라면, 60대 이상의 남자는 무엇인가? 사회자는 60이 넘어서도 건강하니까 남자라고 생각한다면, 접수처 아주머니도 60이 넘었어도 나이보다 훨씬 젊고 건강해 보였다. 단순히 50대 이상의 여자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여자가 아니라면, 60대가 넘은 노년의 남자도 당연히 남자가 아닌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런 말 같지 않은 소리에 논리를 따질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런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웃기까지 하는 사회자라는 사람은 제정신인가, 나는 너무 놀라서 전신에 뜨거운 물벼락을 맞은 거처럼 화끈거렸다.

나이가 60이 넘어도 다 어른은 아니구나, 나이를 먹어도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 못 하는 사람이 있구나, 생각했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며 비상식적이고 생각이 천박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기 때문에 진작 알고 있긴 했지만, 눈앞에서 다시 그런 경우를 당하고 보니 정말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사회자의 웃음을 따라 모두들 웃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이 자리에는 행사장 접수처에 60대 아주머니가 앉아 있었고, 사회자가 그 말을 하는 순간 아주머니는 여성으로서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당한 것이었다. 아주머니가 없었다고 해도 이것이 가당키나 한 말이기나 한가? 이런 말들을 듣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웃어넘기는 것이 맞는 것인가? 이런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면 그 봉사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 21세기 일본 땅에서 가능한 이야기인가?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고 너무나 기가 막히고 슬퍼져서 사회자를 빤히 바라보았으며, 내 눈빛에 분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최대한 표현하려고 했다. 사회자는 재빨리 내 눈빛을 피하고는 다음 순서로 넘어갔고, 식사가 나왔으며 나는 그 식사에 손을 잘 대지 못하고 속이 더부룩해져 물을 계속 마시다가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행사장을 나오면서 접수처에서 아주머니를 차마 볼 낯이 없었다. 아주머니가 오늘 참석해줘서 고맙다면서 긴 일본어로 나에게 감사의 표현을 하는데도, 눈을 못 마주치고 있다 내가 죄송할 것은 없었지만 왠지 사과를 해야 할 거 같아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사회자가 같은 남자로서 너무나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사회자는 본인이 한 말이 주제를 모르고 한 못된 말이라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나는 왜 이 '일본 국제봉사활동 단체'에 여성 회원이 한 명도 없게 됐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됐다.

최근 일본에서 올림픽조직위원회 회장인 모리 요시로우(森喜朗)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여자들과 회의를 하면 길어진다.'라는 발언을 했다가 언론의 뭇매를 시작으로 일본 국민 전체의 지탄을 받았다. 또한 세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비난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고, 여러 단체에서 올림픽 정신에 위배되는 발언을 한 모리 회장의 강력한 사퇴를 요구했다. 지금의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 올림픽조직위원회 회장으로 바뀌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올림픽을 개최하는 국가의 올림픽 개최 수장인 모리 회장의 발언은 지금 현재 일본의 남녀차별에 관한 인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뒤로도 올림픽 개폐회식 공식 책임자 사사키(佐々木宏) 감독이 살이 찐 여성 희극인을 올림픽 개회식 때, 돼지 분장을 해서 내보내는 것은 어떠냐는 식의 표현 (올림핏구-올림픽 돼지-オリンピッグ)을 했다가 역시 전 일본 국민의 공분을 사고 엄청난 비난을 받은 뒤에, 부랴부랴 사과하고 사퇴하는 사건까지 있었다.

2021 세계경제포럼 지수의 젠더격차지수에서 일본은「남녀 격차 세계 순위 156 국가 중 120위」이며 한국은「남녀 격차 세계 순위 156 국가 중 102위」이다. 우리나라가 일본보다는 젠더격차지수가 우위에 있지만, 순위만을 놓고 보자면 선진국인 일본이나 우리나라의 젠더격차지수는 창피할 정도로 낮다.

남자든 여자든 모두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다. 그런데도 여자를 무시하는 발언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나라도 성대결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서로에 대한 혐오와 차별도 날로 더해지고 있다. 모두가 어울려서 더불어 잘 사는 사회가 이토록 어려운 것인지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겁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남성, 여성, 간성(남성과 여성의 성을 모두 갖고 있는 성), 트랜스젠더인 남성과 여성, 무성(남성도 여성도 아닌 성). 그리고 사랑의 형태로 분류하면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무성애자, 범성애자 등 다양한 사랑의 색깔이 엄연히 존재한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존중해야 한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할 때만이 우리는 서로를 제대로 바라보고 인식할 수 있으며, 50대 이상의 여자는 여자가 아니라는 말 따위를 감히 할 수 없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교토에 갔을 때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를 방문해 크게 깨닫고 감명받은 일이 하나 있다.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는 건물 길이가 약 118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긴 목조 건물로 경내가 1,001개의 천수관음으로 꽉 채워져 있다. 안에 입장하면 수백 년의 세월에도 변함없이 빛나고 있는 1,001개의 장엄한 천수관음상에 압도되어 버린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1,001개의 천수관음의 얼굴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각각의 천수관음에는 전부 다른 존명(이름)이 있다고 한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안내서에 나와 있는 대로 정말 다른 얼굴인지 자세히 들여다보니 '눈썹 모양' · '입가의 미소' · '코의 높이' · '귀의 길이' 등 얼굴 모양 전체가 조금씩 오밀조밀하게 달랐다. 1,001개의 천수관음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 수 없는 얼굴이었고 그런 걸 따지지 않더라도 충분히 각각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두 다르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며 1,001개의 천수관음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저절로 손을 모아 머리를 숙이고 경의를 표하게 되는 묘한 분위기가 경내 전체에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의 천수관음처럼 우리는 모두, 다른 이름 · 다른 얼굴로 세상을 살아간다. 누가 위고, 누가 아래며, 이것은 귀하고 이것은 천하다, 라는 식으로 사람과 직업, 인종과 성별을, 성적 지향과 가치관의 높고 낮음을 절대 평가할 수 없다. 각자의 생각과 취향을 존중하는 것,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의 1,001개의 천수관음이 우리에게 조용하고도 엄숙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사진제공: H.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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