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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상혁 Feb 28. 2024

뜻밖의 소식.

5. 일상의 평온함을 바라며.

 병원 진료가 끝나고 수납을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 1층 벽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 풍경이 고스란히 보였는데 눈발이 흩날리고 제법 바람이 불었다. 병원 오는 길에 있던 나무들 가지마다 연분홍 꽃봉오리가 눈에 띄었기 때문에 봄이 오나 싶었다. 난방이 되어 있는 병원 실내였지만 어디서 인가 한기가 들어와 나는 팔짱을 끼고 수납 번호표에 찍힌 내 번호가 호출되길 기다렸다. 그 사이 가방 속에 있는 휴대전화 진동 벨이 울렸다. 문자 메시지가 왔다는 신호였다. 요새 광고 등 스팸 문자가 많이 와서 오는 족족 차단 처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런 메시지라고 생각하니 나는 약간 미간이 좁아졌다. 역시나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문자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얼핏 눈길을 주었는데 메시지 첫 문구가 ‘권상혁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나는 휴대전화를 가방에 도로 넣지 않고 메시지를 열어보았다.    

 

 ‘권상혁 선생님, 저 윤수(가명)입니다. 지금 제가 천주교에서 혼나면서 문자 드려요. 제가 과거에 박정배(가명) 친구를 선생님께 일러서 불편하게 했나 봐요. 죄송해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나는 윤수와 정배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내가 2008년 교사로 임용되어 첫 발령을 받고 2009년 첫 담임을 한 제자들이었기 때문에 잊으려야 잊을 수도 없다. 나에게는 첫사랑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당시 00고 1학년 10반 아이들 이름을 나는 지금까지 거의 다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까 2009년에 나는 29살이었고 윤수는 17살이었으며, 나는 교직 2년 차였으며 윤수와 정배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의 내 제자였다. 윤수와 정배가 그때 17살이었기 때문에 지금 32살 정도 됐을 거라고 나는 순간적으로 계산을 했다. 제자들을 떠올릴 때마다 나이를 계산하는 것은 내 버릇이기도 하다. 내 제자들이 지금 몇 살쯤 됐을까가 언뜻 가늠이 안 되고 내 머릿속에 마냥 고등학생 어린애로만 머물러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윤수의 문자 메시지가 무슨 말인지 나는 도통 알지 못했다. 문득문득 제자들이 연락을 해오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연락이 올 때마다 그래도 자기들 가르친 학교 선생님이었다고, 담임선생님이었다고 안부 인사를 해오는 아이들이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었다. 대부분 안부 인사인데, 윤수는 안부 인사가 아니라 내게 사과를 하고 있으니 ‘이게 뭐지?’ 싶었다. 몇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로 제자 중 한 명이 취업 소식을 전하면서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대충 이렇다.     


 ‘선생님께서는 모르셨겠지만 그때 우리 반 친구 관계 문제로 많이 힘들었다. 특히 00과 00으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 선생님께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는데, 선생님께서 너무 바쁘시기도 했고 가뜩이나 말썽 많은 우리 반 아이들 때문에 속 썩고 계시는데 저까지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저는 정말 힘들었다. 그 일이 상처가 돼 늘 괴로웠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때 선생님께 솔직히 말씀드리고 상담을 받았으면 좋았을 것을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이런 말씀을 지금에야 드려서 죄송하다. 하지만 이제라도 선생님께 말씀드려 마음이 가볍고 후련하다.’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제자의 연락을 받고 마음이 무척 아팠다. 실제로 그날 나는 잠을 못 자고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밝은 아이였으며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아 학급 생활에 별 불만 없이 생활하고 있다고만 생각했었다. 졸업하고 10년도 넘은 시간이 지났는데, 이제야 속앓이 고백을 하는 걸 보면서 나는 당시 담임교사로서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들어 제자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했었다. 선생님이 네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학교생활 잘하고 있다고만 생각해 너하고 더 많은 상담을 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한다고 제자에게 마음을 담아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보낸 메시지를 받고 한결 더 마음이 가벼워졌다며 앞으로 힘을 내서 살아보겠다고 제자는 말했었다. 그런 일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윤수의 맥락 없는 메시지 내용에서 맥락을 찾으려고 애를 쓰며 윤수에게 답 문자를 아래와 같이 보냈다.     


 ‘윤수야, 마음에 짐이 있었나 보구나. 오래된 일이라, 선생님이 기억을 잘 못하겠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래?’     


 메시지를 보낸 지 1분도 안 돼 답이 왔다. 병원 수납 창구에서 내 번호가 게시판에 떴지만 나는 자리에 앉아 윤수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어느새 나를 감싸던 한기도 걷힌 듯했다.     


 ‘제가 정배를 수업 시간에 일러바쳐서요, 선생님. 과거의 일이라,,, 이제는 이런 행동하지 않겠습니다. 선생님, 정배 보게 되면 제가 사과할게요.’     


 윤수의 메시지를 받고 나는 15년 전에 00고 1학년 10반, 우리 반 교실에서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려고 눈을 감고 15년 전 그날로 돌아가 보려고 했다. 윤수의 메시지를 보면, 지금 성당에서 신부님에게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고 반성하고 있는 듯한데 나는 윤수가 말한 일을 전혀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 15년이나 지난 일을 내가 기억할 리 만무하고, 이 일뿐만 아니라 교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그 일들을 일일이 가슴에 새겨두고 되새김질을 했다가는 제명에 살 수도 없기 때문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은 되도록 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오기도 했다. 그러니까, 세월이 많이 지난 것이다. 15년의 시간은 자잘한 기억들을 모두 지워버릴 만큼 오랜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기억이 안 난다’라고 말해버리면 기껏 용기를 내서 연락한 윤수가 무안하기도 할 것이고 나 또한 윤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니 나는 짐짓 아는 척을 하며 답장을 했다. 윤수가 아니라고 해도 교실에서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고 있는 반 친구를 여봐란듯이 교사에게 이르는 경우가 내 교직 생활에 꽤나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답변할 수 있었다.     


 ‘아, 그랬구나. 그 일이 그때 마음에 걸렸다가 잊고 살았는데, 오늘 성당에서 생각이 나서 선생님한테 연락했다는 거구나. 그래, 네 마음에 짐이었다면 내려놔야지. 언제고 정배 만나서 이야기해 주면, 정배가 기억을 하고 있다면 무척 고마워하겠다. 이제라도 스스로 돌아보는 모습 기특하고, 오래된 일을 잊지 않고 이런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무척 소중하고 대견하구나. 오늘 애썼겠어, 우리 윤수. 이제 좀 가벼워졌지? 고맙다, 윤수야.’   

  

 답장을 쓰고 송신 버튼을 누르면서 나는 윤수 이름 앞에 ‘우리’를 지웠다가 다시 썼다가 했다. 생각해 보니 윤수가 17살이 아니고 32살 다 큰 어른이었기 때문에 어린애 취급을 하는 것이 실례가 되면 어쩌나 하다가, 결국 나는 내 마음 가는 대로 ‘우리 윤수’로 확정하고 송신을 했다. 윤수가 32살이 됐어도 내가 담임을 했던 내 제자인 것은 변함이 없으며 나에게는 언제까지나 17살 아이로 생각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32살의 윤수가 고1 때 담임교사를 기억하고 연락을 했다는 사실과 그 옛날 일들을 이제라도 반성하며 사과하는 모습에 나는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윤수가 32살 어른인데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에게나 하는 것처럼 마구 칭찬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윤수의 편이 되어줘야 했다. 윤수가 바란 것은 위로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잠시 윤수가 17살이었던 2009년, 내가 00고 1학년 10반 담임교사였던 때로 돌아가기로 했다.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17살 윤수의 머리를 대견하다고 쓰다듬어줘야 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윤수는 지금 32살이 아니라 17살 그때 그 마음 그대로 담임선생님 앞에서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정배와의 일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다니, 그 일로 마음이 많이 아팠겠구나 생각하니 나는 한편으로는 윤수가 짠해졌다. 그때 나는 아마도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한 정배를 크게 혼내면서도 그런 일로 친구를 담임교사에게 일러바친 윤수를 결코 좋게는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혹시라도 내가 윤수를 꼬부장하게 본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을 더듬어봤다. 

 

 그러는 사이 윤수와 있었던 일 하나가 떠올랐다. 반에서 중상위권이었던 윤수 성적이 크게 떨어졌던 일이 있었다. 현상 유지는커녕 중위권 이하로 떨어져서 내가 급하게 윤수를 교무실로 불렀다. 정배와의 일이 있기 앞이었는지 뒤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평소에도 윤수가 항상 팔짱을 끼고 뭔가 불만이 있는 듯한 태도로 입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 거슬려 내가 지적을 많이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성적이 떨어져서 담임교사가 교무실로 호출을 했으면 긴장할 법도 한데 윤수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나는 부아가 나기 시작했다.

 “너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성적이 이렇게 떨어진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뭐 그런가 보죠.”

 윤수는 항상 이런 식으로 답변했다. 그것도 팔짱을 끼고.

 “팔짱 안 풀어? 선생님 앞에서 그게 무슨 태도야? 그리고, 뭐 그런가 보죠? 그게 지금 성적 떨어진 네가 할 말이야?”

 “인생이 뭐 그런 거 아니겠어요?”

 나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었다. 나는 '하! 하!' 하며 코뿔소처럼 입김을 내뿜었다.

 “뭐가 어쩌고 어째? 인생이 뭐 그런 거 아니겠어요? 아주 다 산 늙은이처럼 말은 잘한다. 이게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어? 제정신이야? 아주 제대로 혼이 나야 정신 차리지, 어? 선생님 앞에서 아주 가관이다, 가관이야, 이리 따라 들어와, 이 웬수 같은 인간아! 으이구, 진짜 내가 제명에 못 산다 못 살아!”     

 나는 이렇게 말하며 윤수 귀를 잡아 당시 교무실 뒤편 자재 창고 같은 곳으로 끌고 들어가 폭풍 잔소리를 쏟아부었다.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께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지만 나중에 들은 소리로는 애 잡는 소리가 교무실에 다 울리고 퍼졌다고 해서 내가 민망해했던 기억이 있다. 병원에 앉아 윤수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나는 이 일화를 하나 떠올리며 그때의 속상했던 마음이 생각나 얼굴을 찡그렸다가, 그 시절에 나와 윤수가 그리워 잠시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윤수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32살이 됐고 어른이 돼 그 옛날 기억도 안 나는 일에 대해 뉘우치고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이니 나는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의 '성장'이라는 것은 전 생애에 걸쳐 이루어지고 교육이라는 것이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5년 뒤, 10년 뒤, 20년 뒤에도 발현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뭉클했다. 부족했던 담임 밑에서 그래도 일취월장 성장했구나,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답문을 보내고 나니 금방 윤수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이제 열심히 살게요. 권상혁 선생님!’     


 윤수에게 답 문자를 받고 나는 ‘권상혁 선생님’이라는 글자를 오래 바라보았다.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어도 나는 윤수에게 언제나 담임선생님이었겠구나, 나를 거쳐 간 많은 제자들을 나는 다 기억하지 못해도 적어도 내가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은 나를 기억하고 있겠구나, 내가 내 스승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윤수에게 무척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윤수의 뜻밖의 소식에 나는 내 제자들과 내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다시 한번 받았다. 15년이 아니라 30년이 지난다 한들 나와 내 제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 말이다. 제자들과 나는 그런 사이인 듯하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2월인데도 분홍색 꽃 하나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살짝 피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신기하기도 하고 이 추위에도 잘 견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꽃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사진을 윤수에게 전송하며 앞으로 네가 걷는 모든 길이 꽃길처럼 환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덧붙였다. 그러고 나니 내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먹고사는 일에 모두가 바빠 설혹 제자들과 내가 만나지 못한다 해도, 우리는 지구에 살고 있으니 언제고 보게 될 거라고,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나는 윤수가 보낸 답문을 오래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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