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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Mar 05. 2023

이혁진, '사랑의 이해'

이해(理解)하고 싶지만 이해(利害) 안에 갇힌 사랑

'사랑의 이해', 제목만 읽어도 연애소설이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에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같은 은행 지점에서 근무하는 남자 둘, 여자 둘, 네 명의 연애를 그리는데 같은 곳에서 근무한다고 하지만 넷은 서로 다른 배경,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평범한 배경에 성격도 무던하지만 때로는 그만큼 소심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을 가진 정직원 계장 상수, 일도 잘하고 얼굴도 예뻐 인기는 많은데 그리 넉넉지 못한 집안에 일반 직원이 아닌 텔러라 걸핏하면 무시당하기 일쑤인 수영, 마찬가지로 젊고 잘생겨서 인기는 많지만 가장 어려운 집안 환경에 경찰 시험을 준비하면서 청경 아르바이트로 근무하고 있는 종현, 그리고 부유한 가정환경에 자기 자신도 능력 있지만 그만큼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미경까지.


소설 내내 서로 사귀는 사이인 건 상수와 미경, 그리고 수영과 종현이지만 상수와 수영 사이에 있었던 미묘한 분위기는 서로의 관계가 흔들릴 때마다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수면 아래로 내려가기도 한다. 물론 둘씩 사귀는 사이에서 상수와 수영 사이에 흐르는 기류가 있다고 하면 쉽게 말해 바람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소설의 가진 장점은 '그게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것을 네 사람의 서사와 감정을 통해서 알려준다는 점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잘못된 것이고 더 볼 일도 없는 일이지만 거기엔 뭔가 한 마디로 욕하고 넘어가기엔 복잡한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우리도 사람 사이 관계나, 사랑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논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더욱이 그들의 복잡한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여전히 좋은 시간을 보내고 만나면서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흔들리는 일,

사랑하는 마음이면 다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하면서도 상대의 배경과 눈앞에 놓인 현실에 그 마음이 꺾이는 일,

가진 배경이 너무 달라 급이 맞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그런 거 상관없이 그 사람에게 빠져드는 일,

힘든 시간을 겪는 상대를 내가 도와줘야지 싶으면서도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상대를 보며 섭섭한 일,


사람 사이의 복잡한 감정을 빼고 보면 당연히 흔들리면 안 되고, 꺾이면 안 되고, 눈길 돌리면 안 되고, 섭섭할 일이 아니지만 우리는 불완전한 사람이기에 이 문제가 단순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마음이라는 건 그렇게 쉽게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사랑에 있어서 맞고 틀리고를 논하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네 사람의 혼란스러운 마음은 얽히고설키고, 그 모습을 보는 우리도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게 사랑이라면 네 사람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우리는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봤을 때 후회할 만한 게 있다면 그건 자잘한 다툼이나 실수보다는 사랑이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되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다른 거 다 떠나서 그 사람이면 충분하고,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면 충분하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이것저것 따지고 있었던 우리 모습이 아쉬움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어릴 때는 대개 마음의 문제를 현실에 내어주지 않는다. 배경이 어떻고, 돈이 얼마나 있고, 학벌은 어떻고 직업은 어떻게 될 것인지와 같은 조건은 그 사람 자체,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마음에 밀려나 저 멀리 있다. 좋으면 그냥 좋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사회에 나가고,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 그 사람 주변의 것들을 따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도 변한다.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치는 우리 모습을 떠올려보고, 마치 그가, 혹은 그녀가 내가 차는 액세서리라고 했을 때 눈여겨봐줄 만한 물건인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변화는 마음의 문제에서 마음의 자리를 저기 뒤쪽, 구석으로 밀어낸다.


하지만 결국 지나고 나면, 끝나고 나면 우리가 따지던 건 긴 시간 속에서는 별 것 아닌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자리를 내어줬던 사랑이라는 마음, 그게 긴 시간 속에서는 사실 훨씬 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일 수도 있다. 네 사람, 특히 상수와 수영이 놓쳤던 것도 결국 그게 아닐까.


상수는 사랑만 생각할 수 없었던 자신을 이렇게 회상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뭘까, 사랑이란 뭘까. 상수는 사랑하면서도 사랑일 수만은 없는 자신이 나약하고 남루해 견딜 수 없었다.'

수영도 종현에게 현실적인 건 내려놓고 서로 사랑하는지만 생각하자고 말했지만 결국 이렇게 회상한다. 

'사랑했지만 사랑을 믿지는 않았다. 사랑을 원했지만 사랑만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종현이나 상수에게서 구하려고 했을 뿐 자신에게서 구하려고도, 차라리 깨끗이 체념해 버리지도 않았다.'

사랑을 이해해야 한다는 인생의 문제에서 현실적인 이해를 따지는 주인공들의, 그리고 우리의 나약함을 다른 인물인 경필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절대로 안 그런 남자가 어디 있어? 넌 절대로 그럴 여자였고? 똑같아, 그 문제에 있어서는 남자나 여자나 다 빈민처럼 똑같아. 기회, 외모, 돈, 능력, 시간 그 차이지 다른 거 없어. 우리 다 거지새끼들이야.'


그들의 모습이나, 우리들 모습이나 아마 후회스럽게 남는 게 있다면 끝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자기 자신 때문이지 않을까. 작가는 네 사람의 이야기를 이렇게 정리한다.

이해(理解)하고 싶지만 이해(利害) 안에 갇힌 사랑은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고 갈 데 없이 헤맨다.
작가의 이전글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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