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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NA PINK Jun 03. 2022

궁합

궁합이 좋지 못할 때




# 좋지 않은 궁합

신랑과 나는 궁합이 좋지 않다. 총 4번 본 궁합 중에서 3번이 좋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는 점을 그다지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면서 호기심으로 몇 번 본 타로점이 전부다. 정해진 운명 같은 것이 있다면 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미리부터 알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도 결정이 쉬이 되지 않거나,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문제에 맞닥뜨리게 될 때면 용하다는 점쟁이에게 한번 가서 답을 물어볼까?라는 흔들림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 망설임의 끝에는 ' 내껀 내꺼다 '였다. 내 문제는 내 거고, 해결 방식도 내 거니깐.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답을 구하고 설사 내게 답을 쥐여 준다고 해도, 나는 그 답을 따르지 않을 거니깐.




# 내 궁합은 내가 정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합이 좋지 않다는 말은 떼어낸 스티커의 끈끈한 자국처럼 남아 묘하게 신경 쓰였다. 그래서 나는 돈 들이지 않고 그 자국마저 모두 없애 버릴 한 가지 묘책을 생각해 냈다. 바로 네이버 지식 in 이다. 결혼 전에 총 3번의 질문을 했고 그 3번 중에 2번째 결과에서 원하는 답을 얻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궁합. 그게 최상이었다. 2번째에 무난하다는 궁합을 받고도 3번째 질문을 던진 것은 혹시라도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에서였다. 그러나 역시 3번째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내가 선택한 우리의 최종 궁합 - 네이버 지식 in>

100% 궁합이란 있을 수도 없겠지요.
어느 정도 무난한 궁합이라면 좋은 궁합이 될 수 있습니다.
남성분은 정화(丁火)라는 불(火)로 태어나셨습니다.

신약(身弱) 하므로 목(木) 운이 들면 사주가 피게 됩니다.
대운(大運:10년씩 드는 운)을 보면 인묘진(寅卯辰)동방목운으로 이어져있어서 대운에서 밀어주어 발복하는 사주라고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여성분은 임수(壬水)이니 물(水) 기운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역시 신약사주이므로 금(金)을 원하는 사 주인데 운(運)에서 물(水) 운이 들어도 발전을 이루게 된답니다.

대운(大運)을 보면 해 자축(亥子丑).수(水) 운으로 흐르고 있으니 두 분 다 대운 에서 떠받들어주어 발전하는 사주랍니다.
두 분이 앞으로 잘 살아가실 수가 있습니다.


됐다!
앞으로 이게 우리 궁합이다!



# 내민 엄지손가락 같은 책

정말로 나다운 결정이었다. 어차피 내 고집대로 밀고 나갈 거면서도, 내가 갈 방향에 힘을 실어 줄 입김 하나를 원했다. 10년 전 그때 내가 찾은 입김은 네이버 지식in이었다면, 요즘 내가 찾는 입김은 책이다. 내가 책을 어떤 마음에서 읽을까. 책에서 원하는 바가 뭘까. 하고 문득 생각했더니, 그런 답이 나왔다. 어차피 갈 길은 정해졌는데, 마지막으로 주춤 거리는 발걸음에 힘을 보태줄 무언가, 따스한 입김과 같은 지지를 원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발 한 발을 떼었다. 원하는 길을 더듬 거리듯 찾았고, 그때마다 딱 맞는 책 한 권 한 권들이 매 발걸음에 힘이 되어 줬다.



어차피 가긴 갈 거야.
가긴 갈 건데,
손가락으로 '톡'하고 한 번만 밀어 줄래?


그렇게 무언가를 결정 짓기전 마지막 단계에 남은  자기 의심이나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여전히 나는 책의 힘을 빌리고 있다. 마치 어렸을 때, ' 술래잡기할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 하며 엄지손가락을 내밀고 있는 사람처럼. 여기 붙어 줄 사람. 딱 한 명만 하고 기다리고 있다. (아직까지)



그치만 언젠가는. 누가 불어주는 입김 따위나 누구의 엄지가 위에 붙지 않더라도, 내가 내민 오른손 엄지에 올라간 내 왼손 엄지만으로도 충분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렇게 내 발걸음 한 걸음 한 걸음에 온전한 확신과 힘이 실리는 그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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