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은 반대했고 반대하는 이유도 알고 있었지만, 한 번은 가야겠다고 이미 마음먹은 터였다.
" 그럼 어떻게 해요.. 거길 가야 많이 볼 수 있는데.. "
답정너 와이프는 아이와 이미 떠날 채비를 다했고, 아이는 성난 경주마처럼 흥분 상태다.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젓는 신랑.
작년 10월쯤부터 시작된 아이의 스포츠카 사랑에 크리스마스 선물도 그란투리스모 라는 레이싱 게임 CD를 사주었다 (From 산타). 주말만 하는 게임인데도 게임 속 자동차 이름을 다 외우기 시작했고, 도서관에서 빌린 슈퍼카 책은 몇 번이고 정독해서 읽었다. 3월 아이의 생일 때는 가지고 싶은 모델을 콕 찍어 부가티 시론과 페라리 라페라리 RC 카를 선물로 받았다. 그냥 지나가는 호기심일 줄 알았는데, 덕질이 보통 덕질이 아니다. 저 차는 뭐고 이 차는 뭐냐?라고 질문을 툭 던지면,
" 엄마 그건 엔진이 차이가 있고요. 배기구의 위치가(...) 배기구의 개수가(...) 문 여는 방법이(...) "
물어보는 것마다 막힘없이 대답한다. 자동차에 대해서 나름 안다는 아빠의 지식도 뛰어넘은지 오래다. 함께 외출을 할 때마다 도로 위의 차에서 눈을 못 떼고, 아파트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도 매의 눈처럼 살피고 다닌다. 자기가 좋아하는 자동차 주위를 돌며 꼼꼼히 살펴보거나, 자동차 유리에 가까이 다가가 자동차 내부를 살피기도 한다. 혹여 차주가 블랙박스 영상이라도 보게 된다면, 영락없는 자동차 도둑이다. 어른이 아니란게 천만다행이다.
# 특별한 모험
아이가 슈퍼카 덕질에 빠질수록 신랑과 나는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스포츠카 대부분이 아주 고가의 자동차라는 것이다. 자동차 값이 집값에 버금가는 것들이다 보니, 아이 입에서 ' 억억 ' 소리가 나는 게 썩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 아빠와 나는 벌써부터 아이가 물질만능주의에 빠질까 봐 걱정이 많았다.
한 번은 아이에게 진지하게 스포츠카가 왜 좋은지를 물었다. 아이는 생긴 것이 멋있고, 빠르고, 배기음이 멋지다고 한다. ' 니가 배기음을 어떻게 알고? ' 라고 물으니 유튜브를 통해 들었다고 한다' 아 그놈의 유튜브.... '.
벌써 6개월째 슈퍼카 덕질을 하고 있는 아이를 위해 나는 특별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직장 생활 때 신사역 쪽으로 외근 갈 일이 자주 있었는데, 그때마다 휘황찬란한 자동차들이 많이 출몰하던 그곳.' 도산 대로 '를 가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이에게 ' 슈퍼카가 자주 출몰하는 곳이 있으니 엄마랑 같이 갈래?' 라고 제안한 그날부터 ' 모험은 언제 떠나요? '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2번이나 갈아타서 도착한 신사역에서 나는 아이에게 ' 니가 보고 싶어 하는 자동차 딱 10대만 엄마가 보게 해줄게 '라고 약속을 했다.
예상했던 대로 강남은 별천지였다. 15분 정도 걸었는데 고가의 슈퍼카 5 ~ 6 대는 기본으로 지나갔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사진 찍어야 한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엔 길가에 서서 봤는데, 슈퍼카들은 차체가 낮아서 키 작은 아이는 더더욱 보기 힘들었다. 그러던 중 맞은편 건물의 계단 난간이 보였고, 그쪽으로 자리를 옮기자 예상대로 양쪽 차선이 한눈에 보였다. 아이가 말하면 내가 동영상을 찍었다.
나와 아들이 서있던 그 곳
" 엄마 이쪽이오! 엄마 맞은편이오! 엄마 와요 와요! 찍었어요? "
" 어. 찍었어. 찍었어. "
무슨 파파라치가 따로 없다. 그렇게 2시간 가까이 서서 아이가 이제 됐다고 할 때까지 원 없이 찍어 주었다. 10대만 보자고 했는데, 50대 가까이 봤다. 그중에는 아이가 꼭 보고 싶다는 차가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 정말 중요한건 말이야
" 야 저차는 얼마 달리지도 못할 거면서 왜 저렇게 시끄럽게 소리를 내면서 달리는 거니? "
" 아마 자랑하고 싶어서 그럴걸요? "
" 저게 좋니? 다른 사람들도 시끄럽고, 순간 속도를 저렇게 내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럴까? "
" 네 그건 좀 그렇죠 "
" 그래. 그게 엄마 아빠가 걱정하는 부분이야. 자기가 좋다고 남들한테 피해 끼치고 그러면 되겠니? 남한테 피해 주면서 자기만 좋다고 하는 건 안되는 거야~
아들. 그리고 비싼 차 타면 행복할까? "
" 아니요 "
" 행복할지 안 할지는 우리가 알 수 없지.그건 본인 마음인데, 비싼 차 탄다고 행복하고, 저렴한 차 탄다고 안 행복하고 그런 게 아니야. 그러니깐 비싼 차 탄다고 해서 마냥 부러워할 필요가 없어. 중요한 건 스스로가 얼마나 행복해 하느냐야. 알겠지? "
" 네 엄마 알겠어요 "
" 그래~! 그럼 됐다. 엄마 다리 너무 아픈데, 이제 우리 짜장면이나 먹으러 갈까? 난 짬뽕. 너는? "
" 저는 짜장면이요 "
그렇게 힘들게 찍은 동영상을 일시 정지하고 캡쳐 하여 자동차 사진 폴더를 만들었다. 아이가 좋다니 어쩔 수 없는 파파라치 행세까지 했지만, 아들이 엄마 아빠의 깊은 뜻을 잘 헤아리길 바란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이 엄마가 아들을 위해 신사역 가로수길 스타벅스 난간에 기대어 힘겹게 사진을 찍은 이 노고를 부디 잊지 말기를....